아카펠라 (a capella)에 함께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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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a capell)는 영화 "피치 퍼펙트 (Pitch Perfect)"의 주제입니다. 뜬금 없는 19금 썰렁한 대사들은 참 별로인데도 음악은 좋아 개봉 되면 결국 보게 되는 영화지요. 잘 아시다시피 아카펠라는 악기를 전혀 쓰지 않고 사람의 목소리로만 부르는 다성부 합창 (unaccompanied polyphonic voices) 을 뜻하는 말인데, 이탈리어인 이 단어의 본래 뜻은 "교회 스타일로 (in the church style)" 입니다.
정확한 음감이 없으면 부르는 동안 조금씩 음이 이탈해 결국 죽을 쑤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무나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초부터 국산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아직 숫자도 적고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그룹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어쨌거나 사람의 목소리는 잘 부르면 악기 연주보다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좋아하는 너무 멋진 음악이 되지요. 그래서 덩달아 저도 엄청 좋아합니다. 제가 숨겨진 보석 같은 아카펠라 그룹들을 아는 것은 아니고, 대중적이며 널리 알려진 그룹들 것들 중에 제가 특히 즐겨 듣는 곡 몇 개를 골라 봤습니다.
아카펠라가 시작된 곳이 교회였으니, 시작점인 중세 시대의 곡부터 하나 들어볼까요. 이탈리아의 사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Gregorio Allegri)가 작곡한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곡이라서 200년 넘게 시스티나 성당 (Sistine Chapel) 외에서는 부를 수 없도록 악보 자체가 유출을 금지당했다가, 1770년에 방문한 14세의 모짜르트가 단 한번 듣고 악보를 만드는 바람에 봉인해제 (封印解除) 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합창단 탈리스 스칼라스 (Tallis Scholars) 가 부른 것이 유명하며, 목떨림 (vibrato) 전혀 없는 소프라노의 C6 음이 곡의 백미로 꼽힙니다.
영국은 수많은 대학들과 지방 구석 구석에 흩어져 있는 교회마다 성가대가 있는데 이들 다수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가대가 노래를 하는 전통을 중세 시대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하면서 교회 합창 음악을 지키고 발전시켜왔기에, 지방 교회 성가대가 도이치 그라모폰 (Deutsche Grammophon) 같은 대형 음반사의 상도 받을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여성 성부는 코리스터 (chorister)라고 부르는 소년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인지, 과장되지 않고 목떨림 배제하고 담백한, 마치 잘 우려낸 홍차의 맛과도 같은 음색이 특징입니다. 영국인들은 이 음색에 오랫동안 젖어 살아 그런지, 아무리 유명해도 외국 합창단 공연은 객석 반 채우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제가 산 첫 아카펠라 음반이 영국 합창단 킹스 싱어즈 (The King's Singers) 것이었습니다. 캐임브리지 (Cambridge) 대학의 킹스 칼리지 (King's College) 성가대 출신들이 1968년에 결성한 남성 6인조 아카펠라 그룹이지요.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출신의 엄친아들 😅 클래식 아카펠라와 현대적 아카펠라의 경계선에서 아카펠라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명동 부근의 교회에 다니면서 집에 올때면 (지금은 사라진) 중앙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곤 했는데, 1990년 어느 날 그 앞 레코드 가게에서 킹스 싱어즈의 "It was almost like a song"가 흘러 나왔습니다. 주인 아저씨께서 이 노래가 너무 좋았는지 몇 주간 지날 때마다 계속 틀어주더라고요. 들어가서 CD를 구입했고 그 CD의 타이틀 곡이 "You are the New Day" 였습니다. 듣자마자 완전 매료가 되어 엄청 반복해서 들었지요. 테이프였으면 늘어져서 못 듣게 되었을것 같아요. 몇 년후 미국에 오니 PBS (Public Broadcasting Service) 방송국의 어린이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계속 "You are the New Day"를 틀어주더군요. 가사가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데 딱 인듯 합니다.
You are the new day
You are the new day
I will love you more than me
And more than yesterday
If you can but prove to me
You are the new day
킹스 싱어즈는 낸 음반이 무려 100개가 넘는데, "Danny Boy"같은 곡은 비에 촉촉히 젖은 날 해질 녁에 귀에 꽂고 수풀 사이를 걸으면서 산책할 때 들으면 최고입니다!! 킹스 싱어즈 덕에 아카펠라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다른 아카펠라 그룹 음반을 여러개 샀는데, 그 중 클래식 재해석을 많이 한 스윙글 싱어즈 (The Swingle Singers)의 바흐 (Bach)푸가 (Fugue) 재즈풍으로 재해석 한 것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Libertango도 아주 훌륭하고요.
동방 정교회 (Eastern Orthodox Church) 에서는 아직도 모든 노래를 아카펠라로만 부릅니다. 화성도 다르고 발성도 많이 달라, 영국과는 정반대로 성인 남성이 주가 되어 통 크고 장엄한 소리를 냅니다. 아래 노래는 댓글에 의하면 "Saviour Monastery of St. Euthymius Monastery in Suzdal, Russia" 에서 저녁기도 (vespers) 시간에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알려진 사람들도 아니고 음이 좀 불안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곡도 좋고 잘해서 자주 듣곤 합니다. 저녁기도 시간에 정~~말 잘 어울려요 (영어 자막 켜시면 가사가 참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음악에서 저음(低音)을 무척 좋아하는데, 러시아 정교회 성가대에서는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슬라브인 베이스 (Slavic bass) 만의 넘사벽 베이스 음역과 음색을 맛 볼 수 있습니다. (무려 C1 까지 내려가는 음역대라서 octavist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에서는 이 초저음으로 하나님의 신성이나 천사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 노래는 2:51부터 러시아의 전설적 octavist였던 Mikhail Zlatopolsky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습니다. 목소리만 들으면 엄청난 거구일 것 같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체구입니다. 의외죠?
노래 이야기를 하면서 흑인과 아프리카를 빼 놓으면 섭섭하겠지요. 뭐 대충 모여 노래만 했다하면 하모니가 끝내주는 (가사가 재미있어요. "아주 싸"답니다 😜 ) 인종들이라, 미국의 흑인 교회들은 음악이 대체로 다 좋지요.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을 비롯한 엄청난 가수들이 다들 어릴때 성가대에서 날리던 사람들이고요. 아래 곡은 Armor Music Ministry라는 짐바브웨 (Zimbabwe) 토종 그룹입니다. 유명한 고전 찬송가 Amazing Grace를 편곡했네요.
전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합창하는 사람수가 많은 나라는 스웨덴입니다. 무려 인구의 15%가 합창단 생활을 정기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1984년 스톡홀름의 왕립 음악원 (Royal College of Music, Kungliga Musikhögskolan) 학생들로 시작한 혼성 5인조 리얼 그룹 (The Real Group) 은 상당히 넓은 장르를 소화해내는 그룹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재즈쪽이 참 탁월합니다 (Pass Me The Jazz, Count Basie Medley 등). 아래 노래의 하모니는 마치 정밀 세공한 보석 공예품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줍니다.
지금까지 주로 노래 화성을 반주 없이 부른 클래식 아카펠라 위주로 소개를 했습니다. 현대적 아카펠라는 스윙글 싱어즈 (The Swingle Singers)의 Libertango나 리얼 그룹 (The Real Group)의 Count Basie Medley 처럼 음성으로 악기소리도 만들어 냅니다. 그룹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악기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는 대표적인 보컬리스트로 바비 맥페린 (Bobby McFerrin)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화질이 엉망이지만 그의 역량을 잘 보여줍니다.
이런 현대적 아카펠라 중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있는 그룹이 미국의 펜타토닉스 (Pentatonix) 라는 것에는 크게 반론의 여지가 없을듯 합니다. 유럽의 유명한 아카펠라 그룹들 상당수가 클래식 성악을 하던 사람들인 것과 달리 팝 음악 (pop music) 적인 개성있는 발성, 훌륭한 편곡, 깨끗한 진성 (가성도 당연히 씀) 카운터 테너와 매혹적이고 편안한 메조 소프라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남녀 음역대의 어긋남, 천재적인 비트박스 음 모사 능력, 거기에 슬라브인 옥타비스트 (Slavic octavist) 에 필적하는 굵은 저음이 자유자재로 어우러지며 이 그룹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정말 매력적이지요.
안타까운 점은 대체불가의 저음을 맡았던 아비 캐플런 (Avi Kaplan) 이 펜타토닉스에게 급속도의 유명세를 안겨준 원동력인 빠른 페이스가 가족들과의 시간도 자신의 시간도 낼 수 없게 하는 것 때문에 계속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나 자신 때문에 그룹 전체가 속도를 늦추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2017년 탈퇴한 것입니다. 본인은 솔로로 데뷔하여 "Outside"와 "Floating on a Dream" 등 아주 훌륭한 노래들을 발표하고 있어 고무적이지만, 펜타토닉스 쪽에서 보면 참 아쉬워졌습니다. 새 멤버 맷 샐리 (Matthew Levon Sallee) 도 아주 잘 하는데도, 워낙 아비의 음역대와 음색이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콘트라베이스가 없어져 첼로로 대신 메운 느낌입니다. 멤버가 바뀐 후 저희 동네에 순회 공연 왔을 때 갔었는데, 아쉬워진 저음을 과도한 이퀄라이징으로 메우려고 한 것이 너무 두드러져 상당히 실망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뭐 CD 로 듣는다면 이만한 그룹은 쉽게 다시 나오지 않을것 같아요. (아참, 아비 캐플런도 작은 체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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