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Goodbye (2)
Goodbye (2)
2023.10.2718년간 고마왔다. Bye~~ 아이들도 이제 집에 없고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라서 당분간 차 1대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Goodbye 1984년 3월 첫주, 대학 1학년 입학하면서 구입했던 공학용 계산기.... 갑자기 불현듯,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뭘 썼던거지? 하는 의문이.... 아마 전부 손으로 계산 했었나 보다.... 하긴 1960년대에 nearer.tistory.com
소중한 분들을 떠나 보내며...
소중한 분들을 떠나 보내며...
2023.10.082개월 전 아내의 가장 큰 영적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셨던 이모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대학 시절 투옥되어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 되신 후로 무려 70여년 간을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시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만 쏟으셨던 분입니다. 제 장모님께서도 늘 기도에 힘쓰셨던 분이시지만, 이모님(언니)만큼 기도하시지는 못하셨습니다. 아내가 결혼 전 한국에 있었을 때는 요양원으로 자주 찾아가 뵈었지만 미국에 온 뒤로는 일년에 한번 밖에 뵙지 못하는 것을 늘 아쉬워 했습니다. 조카들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늘 기도하셨고,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당사자들이 미처 알기도 전에 보여 주셔서 전화를 드리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믿음의 격려를 주시곤..
공돌이가 졸지에 인사과 과장이 된 사연
공돌이가 졸지에 인사과 과장이 된 사연
2023.02.13서류 버릴 것들 정리하다보니, 한국에서 다녔던 직장의 재직 증명서가 나오네요. 대학원 마치고 미국에서 취직을 하면서 과거 경력 증명이 혹 필요할까 해서 발급 받아둔 것이었지요. 그런데, 공돌이인 제 재직 증명서에 "Manager of the Human Resources Management Department," 번역 하면 "인사과 과장"이라고 적혀있어서 결국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 한국에서 학부 졸업하기 전인 1월 2일부터 일을 시작해서 늦깎이 유학을 나올때까지 7년 반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최종 직급이 선임 연구원(과장급) 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별일 없는 한 한국에 돌아갈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장기 휴직을 신청하고 나왔지요. 그런데 공부를 하는 중에 한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주도로 소위..
Pay Forward 장학금
Pay Forward 장학금
2022.08.29저는 할아버지를 사진으로조차 뵌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5살 되던 해 약을 잘못 쓰셔서 요절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들 어렵게 살던 일제 강점기의 영세농으로 할머니께서는 홀로 2남 1녀를 키우셨습니다. 막내인 고모는 중학교만 마친 후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셨고, 큰아버지와 제 아버지도 대학까지 졸업은 하셨지만 학비를 벌기위해 간간히 휴학까지 하셔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박봉의 상업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셨어도, 한 때 부업으로 작은 공장도 운영하신 적도 있고, 늘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시며 봉급을 아껴 계속 투자를 하신 덕에 5명이나 되는 자식들의 부양과 교육을 마칠 수 있으셨고, 은퇴하실 때는 노후 걱정하시지 않으실 정도의 재산도 축적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인 극도의 절약..
Rest in Peace
Rest in Peace
2019.01.24Rest in Peace 한국시간으로 지난 12월 27일 새벽에 아버지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한국에 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1999년 12월 23일에 어머니께서 일찍 먼저 떠나셨는데 아버지께서도 12월 말에 떠나셨네요.지병으로 파킨슨병과 가벼운 당뇨가 있으시긴 했어도 장기 쪽이나 기력 면에서는 건강하신 편이었기에 다소 갑작스럽고 당혹스럽게 가셨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주무시던 중에 고통 없이 조용히 떠나셨기에 감사드립니다.결코 풍족해 남아도는 여유로운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쪼들리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압구정동을 비롯한 부촌의 부유한 친구들과 함께 학창 생활을 보내면서도 상대적 빈곤감을 느껴본 적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일년 365일 집에는 늘 저를 반겨주는 어머니가..
Sweet Hall
Sweet Hall
2018.08.16Sweet Hall 대학원 시절 course work을 하는 기간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도서관이 아닌 workstation room이었다. Linux의 물결로 사라져버린 SUN Solaris workstation이 한 층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그 곳은 학기중에는 밤낮 없이 과제로 나온 CAD simulation을 하는 학생들로 늘 붐비곤 했다. Workstation room은 기증자 Elaine Sweet의 이름에 따라 명명된 Sweet Hall이란 건물의 2층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정답이 정해진 교과서 문제를 푸는 것과는 달리 정해진 답이 없는 목표 spec을 달성하려고 며칠이고 꼬박 밤을 지내우는게 일상이었던 당시 학생들에게 얻은 3개의 별명이 있었다. Sweat HallSweet Hell..
Goodbye
Goodbye
2018.07.211984년 3월 첫주, 대학 1학년 입학하면서 구입했던 공학용 계산기.... 갑자기 불현듯,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뭘 썼던거지? 하는 의문이.... 아마 전부 손으로 계산 했었나 보다.... 하긴 1960년대에 처음 우주선 날릴때 탄도(彈道) 계산도 손으로 다 계산했으니 뭐... 헐~ Low Power Design이란게 뭔가를 보여주듯, 한번 battery를 넣으면 10년은 거뜬히 썼고, battery가 거의 소모되어 LCD가 잘 안보일 정도가 되어도 계산 속도만 늦어질뿐 결과의 오류는 없어서 지난 34년간 내 책상을 지켜온 내 단짝이다. 혹 나랑 나란히 은퇴하게 되는 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노안이 진행되는 내 눈처럼 2년 정도 전부터 LCD가 조금씩 침침해지더니, 급기야 중증 녹내장이라도 ..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2017.12.24Merry Christmas 곧 성탄절이다. 집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으로 반짝거리고, 교회는 성탄 행사 준비로 다들 분주하다. 나도 12월 내내 칸타타 연습, 예배 찬양 연습등으로 참 바쁘다. 바쁜 것도 괜찮고 성탄을 노래하는 것도 즐거운데 다들 교회 내에서만 하는 것은 참 아쉽다. 동네 교회마다 다 있었던 성탄 새벽송이 차츰 없어져버린 것은 정말 아쉽다. 2010년 성탄을 앞둔 어느날 이런 아쉬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함께 있던 교회 사람들 마음이 갑.자.기. 의.기.투.합. 했다. 교회 밖으로 같이 나가자고!평소 알고 지내던 San Francisco Symphony에서 violin 주자로 있다 은퇴하신 일본인 할머니와 contrabass 연주를 하는 남편, 함께 성경공부하던 Indian..
오랜 기록
오랜 기록
2016.10.27어머니 타계하신지 17년. 큰 누나가 예전에 친정집 정리하다 찾은거라고 상자를 하나 주어서 열어봤더니, 학생증, 개근상장 (우스운 성적이라 흔한 우등상 같은것은 당근 없음 😓), 대학 합격확인서, 대학교 장학증서 (이 땐 뒤늦게 정신차리고 좀 했었나벼?), 직장 사령장, 몇년치 한국 직장 급여 명세서... 이런걸 언제 다 챙겨두셨나 그래 ㅎ
그 날이 올때
그 날이 올때
2008.09.12오늘은 7년전 전세계를 경악하게 한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났던 9월 11일이다. 미국 곳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그 날 가족이나 아끼는 사람을 잃었던 사람들이 모여 그리운 마음으로 눈시울을 적신다. 아직 그리 긴 세월을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99년에 암으로 타계하신 어머니 이외에도, 동갑내기 친구도 몇을 떠나 보내야 했고, 또 후배들도 있었다. 삶의 종말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왔을 때 나는 과연 그 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을 것인가?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가슴으로 살아가던 꽃 같은 시절에 부름을 받은 후배가 있다. 얼마 전 그가 몸담고 있던 CMF에서 그의 유고집을 발간하기로 했는데, 내가 만난던 그에 대한 모습을 적어..
스티그마 故안수현: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의사 안수현
스티그마 故안수현: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의사 안수현
2006.04.21by 김선경 기자 지난 1월 7일. 안수현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이 폭주했다. 남겨진 글마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지인들을 통해 발견되는 공통적 문구는 “받기만 했는데…”였다. 의사이자, 군의관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겼던 문화 청지기로 자신의 삶보다는 오로지 소명에 따른 ‘헌신’에만 올인했던 안수현 씨. 그의 아이디 ‘스티그마’(stigma, 흔적)란 의미를 실천하듯 서른셋, 예수님의 나이에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짧은 생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이정현) ‘stigma, 이곳에, 그리고 이제 우리들 속에 남아 있어’ (김선현) ‘오빠처럼 예수의 흔적을 간직하며 하루하루 살게요’ (김혜영) 안..
스티그마 故안수현: 군의관 안수현 대위 소천
스티그마 故안수현: 군의관 안수현 대위 소천
2006.01.09“정말 슈바이처 같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더 훌륭하게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허망합니다. 당신이 여러 사람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을 나도 조금씩 끼치며 살렵니다. 주님의 흔적을 갖고 살고자 했던 당신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삶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들여다 봅니다. 비록 길지는 않았다 해도 우리에게 뚜렷한 흔적을 남겨주셨어요. 크리스천들은 마지막 순간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죠. 오히려 기뻐하는 거라고. 하지만 왜 이렇게 슬퍼지지요?” 예수님의 흔적이 되고자 스스로를 ‘스티그마’(stigma·흔적)라고 했던 한 신실한 젊은이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뒤 그를 향한 추모의 열기가 뜨겁게 일고 있다. 국방부 군의관으로 있다가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불의의 병마를 만나 지난 5일 하나님의 ..
스티그마 故안수현: 사진과 추모동영상
스티그마 故안수현: 사진과 추모동영상
2006.01.07
스티그마 -- 시작에 붙여
스티그마 -- 시작에 붙여
1989.10.23“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 (갈 6:17) 바울은 자신이 가진 예수의 흔적을 스티그마(στίγματα)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상처(scar), 또는 낙인등을 뜻하는 그리 명예롭지 못한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으며 (렘 20:8)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어 (고전 4:13)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와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속에서 (고후 6:4,5)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낙인을 보끄러워하지 않았고 그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을 믿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