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y Forward 장학금
저는 할아버지를 사진으로조차 뵌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5살 되던 해 약을 잘못 쓰셔서 요절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들 어렵게 살던 일제 강점기의 영세농으로 할머니께서는 홀로 2남 1녀를 키우셨습니다. 막내인 고모는 중학교만 마친 후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셨고, 큰아버지와 제 아버지도 대학까지 졸업은 하셨지만 학비를 벌기위해 간간히 휴학까지 하셔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박봉의 상업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셨어도, 한 때 부업으로 작은 공장도 운영하신 적도 있고, 늘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시며 봉급을 아껴 계속 투자를 하신 덕에 5명이나 되는 자식들의 부양과 교육을 마칠 수 있으셨고, 은퇴하실 때는 노후 걱정하시지 않으실 정도의 재산도 축적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인 극도의 절약의 습관때문에 칠순 넘기시면서 찾아온 뇌경색으로 비틀거리시면서도 택시 타기를 거부하시고 늘 버스와 지하철을 고집하셨고, 충분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시기를 주저하시면서 항상 색 바랜 셔츠, 오래된 양복에 너덜거리는 가방만 들고 다니셨습니다.
가난의 아픔과 설움을 누구 못지 않게 평생을 겪어오신 '왕소금 짠돌이' 아버지께서는 은퇴하신 후 "가난해서 못 배운 설움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시며 고향 종친회에 장학기금을 만드시고, 매년 2~3명의 대학생들에게 약간의 장학금을 지급해오셨습니다. 종친 중 사업하시는 분들의 추가 장학기금 출연도 기대하셨고, 종친회에서 조금 더 체계적인 운영을 해주기도 기대하셨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결국 개인 차원으로 계속 해오다가 2018년 말 아버지께서 타계하시면서, 외아들이 제가 이 일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외국에 나와 사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바뀌는 허술한(?) 종친회의 조직에 맡기기에는 미덥지 않았고, 출가외인(?)인 누이들이 종친회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이상했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후에 한국과는 거의 관계 없이 살아온 제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교회 장학 사역부에서 몇년간 일한 적이 있는데 다들 취지는 좋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지는 사실 미지수입니다. 제 아버지께서 하시던 것도 마찬가지로, 한학기 등록금이 채 되지 않는 액수를 한번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라도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에게는 감지덕지겠으나, 장학금 수여한 가정을 보면 대부분 그 돈 없다고 학업을 중단해야할만큼 어려워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긴 세월에 걸쳐, 여러명에서 조금씩 장학금을 주려고 하는 것에서 단기간에 소수에게(단 한명이라도), 그러나 확실하게 도움을 주자! 누이들에게 제 생각을 말하자, 다행히 모두 열렬히 찬성을 해주었습니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에서 중학교 사회 교사(Social Studies teacher)인 유진 시모넷(Eugene Simonet)은 "세상을 바꿀만한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라 (Think of an idea to change our world, and put it into action."이라는 과제를 냅니다. 과제들 받은 학생중 폭력적인 아빠는 집을 나가 버렸고,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는 알콜중독인 결손 가정의 아이 트레버 맥키니(Trevor McKinney)가 이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후 "도움주기 (Pay It Forward)"라는 아이디어를 발표합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 보답을 하려(pay it back)하는 대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 3명에게 도움을 준다 (pay it forward)."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를 통해 촌수로는 한참 먼 형님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고졸이시지만 열심히 살아오셨고 인품이 너무나도 훌륭하셔서 제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원래 어려운 살림에 몇년 전 형수님께서 암에 걸리셔서 재정적으로 수년간 무척 고생을 하셨습니다. 이분에게 피아노를 전공하는 외아들이 있는데 열심히 잘해서 얼마 전 한국 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형님께 전화해 넌지시 여쭤보니, 역시나 아들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가정 형편상 뒷바라지해줄 형편이 되지 않아 안타까와하고 계셨습니다. 얼추 계산해보니 아버지께서 남기신 장학기금이 한명 대학원 공부 마칠때까지 등록금 정도는 될 것 같아, 누이들에게 동의를 얻은 후, 형님께 조카의 공부 지원을 해줄테니 유학 준비를 시켜 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과연 지켜질지는 본인의 양심에 맡기고, 3가지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 종친회의 도움으로 공부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라
- 혹 한국에 귀국해 살게되면 종친회 일을 도와라
- 혹 나중에 형편이 된다면 형편이 어려운 한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라
그 뒤로 조카는 영어 공부를 시작해 미국 동부의 학교에서 올해 초 입학 허가를 받았고, 제가 첫 등록금을 내 주었고, 지난 주에 드디어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도 제 큰 아이가 지금 대학원 공부 중이고, 올해부터 작은 아이가 대학에 다니게 되어 제 코가 석자인지라 (비록 제 돈은 아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위해 뭉치돈을 내어준다는 것이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기는 합니다. 누이들 없었다면 제가 꿀꺽해버리고 싶은 유혹도 일었을 것 같습니다 😅 장학기금을 한 명에게 몰빵하게 되면서 제 아버지의 이름은 더 이상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겠지만,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은 부디 조카를 거쳐 후대에까지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8)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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