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분들을 떠나 보내며...
2개월 전 아내의 가장 큰 영적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셨던 이모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대학 시절 투옥되어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 되신 후로 무려 70여년 간을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시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만 쏟으셨던 분입니다. 제 장모님께서도 늘 기도에 힘쓰셨던 분이시지만, 이모님(언니)만큼 기도하시지는 못하셨습니다. 아내가 결혼 전 한국에 있었을 때는 요양원으로 자주 찾아가 뵈었지만 미국에 온 뒤로는 일년에 한번 밖에 뵙지 못하는 것을 늘 아쉬워 했습니다. 조카들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늘 기도하셨고,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당사자들이 미처 알기도 전에 보여 주셔서 전화를 드리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믿음의 격려를 주시곤 하셨습니다.
평생 앉아서 기도만 하시며 사셨던 분이라 직계 가족도 지인도 없으셔서, 일반인의 눈으로만 본다면 조카들 몇 명 외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nobody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장례였습니다만 하나님의 상급은 결코 작지 않을 삶을 살아오셨다고 믿습니다.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누가복음 2:36~37)
지난 주 토요일에는 제가 고등학교 때 저를 전도하셨던 친구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갓난 아기와 같은 저를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시면서 친아들처럼 제 믿음을 돌보시고 권면해 주셨던 분입니다. 그 때 선물 받았던 관주성경은 지금도 제 개인 성경공부에 가장 기본이 되는 책입니다. 한국 무역 진흥공사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직원이셨던 부군을 따라 케냐, 멕시코 등 한인들을 찾아 보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홀로 가족들과 함께 믿음을 지키며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사셨습니다. 1984년에 미국 플로리다 주로 이민을 오셔서 그곳에 정착하신 후로는 거의 뵙지 못 하다가, 제가 7년 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원래부터 건강하신 몸이 아니셨는데, 2년전 코로나에 2번 감염 되시면서 폐렴을 심하게 앓아 그 때부터 가정용 산소 호습기를 정기적으로 사용하셨어야 했고 경미하지만 치매가 생기신 후로는 더 이상 전화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지셨습니다. 그 후로 아버님께서 24시간 곁을 지키셨는데 건강이 더 악화 되자 테네시 주에 있는 막내 딸이 집 근처로 이사 오시기를 권해서 가셔서 지내시던 중 심정지가 와서 가족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원래 생각은 오늘부터 시작될 작은 아이 Fall Break에 맞춰 뉴욕주 Finger Lakes에 가을 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일정을 잡았다가 이것 저것 맞지 않아서 계획을 전면 취소했었는데, 혹 이것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녁 10:50에 출발하는 야간 비행기 (red-eye flight)을 타고 애틀란타 공항으로 가서 테네시 주로 다시 2시간을 운전해 가야 하는 긴 여정 끝에 참석한 장례식은 지금껏 참석했던 장례식 중 가장 길었습니다. 교회 합창단의 합창, 유가족 전체 합창, 손자손녀들의 연주등 3번에 걸친 조가(弔歌)가 있었고, 3번의 긴 조사(弔辭)가 있어 2시간을 꽉 채워야만 했습니다. 이 분도 가족들과 교회 지인들 외에는 아는 분 거의 없고 세상적으로는 내세울만한 것이 없이 사셨습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믿음을 전하시고,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삶을 끝까지 계속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아는 손자, 손녀, 아들, 딸들, 그리고 저와 같이 그 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고인께서 받으실 하나님의 면류관이 어떠한 것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큰 삶이었기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회고하는 이들의 조사(弔辭)는 조문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간증(干證)이었고, 장례식은 가을 부흥회와도 같았습니다. 마지막 1년의 시간은 남편과 딸과 다른 자녀들에게 큰 수고와 짐을 끼친 기간이었지만, 유가족들이 입을 모아 그 고통에 비례해서 더 커진 부부애, 가족애, 신뢰에 대한 깊은 감사를 나눈 것도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가족들만의 특권이었습니다.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이해인 "봉숭아")
장례식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던 중 YWAM(Youth With A Mission)의 창설자인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께서 하와이 현지 시간으로 10월 6일 새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국어 부고(訃告)] 전신에 암이 퍼진지가 꽤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거동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사역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238개의 주권국은 물론, 속령과 섬을 포함한 400개 이상의 전 세계 모든 국가를 방문해 본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7~8)
제가 직접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큰 그룹의 수장을 맡았던, 그래서 비록 제가 개인적 친분을 쌓을 수는 없었던 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만큼 겸손하고 친근하고 눈꼽만큼의 권위 의식도 느낄 수 없었던 분이셨습니다. 13세에 받았던 부르심을 좇아 평생을 한결같이 믿음의 선한 길을 살아왔던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 (시편 9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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