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故안수현: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의사 안수현
by 김선경 기자
지난 1월 7일. 안수현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이 폭주했다. 남겨진 글마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지인들을 통해 발견되는 공통적 문구는 “받기만 했는데…”였다. 의사이자, 군의관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겼던 문화 청지기로 자신의 삶보다는 오로지 소명에 따른 ‘헌신’에만 올인했던 안수현 씨. 그의 아이디 ‘스티그마’(stigma, 흔적)란 의미를 실천하듯 서른셋, 예수님의 나이에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짧은 생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이정현)
‘stigma, 이곳에, 그리고 이제 우리들 속에 남아 있어’ (김선현)
‘오빠처럼 예수의 흔적을 간직하며 하루하루 살게요’ (김혜영)
안수현 씨는 일상에서 섬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석으로 보여 준 사람이다. 군의관이자 의사로, 한국누가회(CMF) 소속 '작누세(작은 누가들의 세계)' 편집인으로, 영락교회 예흔의 설립자로 수많은 꼬리표를 가졌지만 무엇보다 그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남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엔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선행과 헌신이 죽음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훈훈한 영향력은 안씨의 주변인을 넘어서 세상 속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군의관으로 활동 중이던 안씨는 지난 2006년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유행성 출혈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고 병명을 알았을 때조차 죽음을 예상치 못했기에 그의 사망은 청천벽력이었다. “예흔에선 존재감이 컸어요. 사실 예흔을 낳은 사람이기도 하고. 요즘 부쩍 ‘만날 때가 됐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부재가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예흔에서 함께 활동한 송영주(고대병원 간호사) 씨의 말이다. ‘예수님의 흔적’이란 뜻의 예흔은 영락교회 문화사역팀 소속, 예배자를 돕는 공동체로 지난 98년, 안수현 씨가 ‘God will make a way’란 곡에 은혜를 받고 나누고 싶다며 모임이 시작됐다.
당시 인턴이었던 그는 구하기 어려운 수입 앨범을 모으러 다니며 영어 번역, 자막 입히기, 안내지 만들기 등의 모든 작업을 혼자 담당했다. 현재 예흔 리더로 사역 중인 송광수 전도사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예배 자료를 만들었어도 번역이나 소개 자료는 전문가 수준이었어요. 형은 곡 하나를 완벽하게 마스터하기까지 수백 번 돌려 들었다고 해요. 그나마 인턴 땐 예배 준비만 해주셨고 예배에 참석하게 된 건 레지던트 2~3년차 되어서였죠”라며 “지금 예흔은 스태프만 30명이 넘어요. 모두 그분의 섬김으로 맺은 결실들이죠”라고 덧붙인다.
한 번은 사지 않아도 될 법한 앨범까지 구입하는 그에게 “왜 앨범을 다 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수현 씨는 “누군가가 필요할까봐”라고 대답했다 한다. 팀 내에서도 별명이 ‘에너자이저’였던 안씨는 특히 공동체 내 ‘마이너리티’ 그룹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섬김은 지난 의료파업 때 중환자실에서 홀로 환자들을 돌보았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작은 것 하나도 타인 지향적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의 스타그마’가 가능했을 것이다.
큰형인 안일석 씨는 “아마 이런 일을 통해 동역자들을 세우는 미션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수현이가, 길은 만들었어요”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 그는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가족들도 몰랐던 섬김의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늘 값없이 섬기는 리더가 되고자 했던 동생이기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많은 분들께 위로도 받았고. 이젠 가족들이 수현이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야죠. 컴패션이나 예흔 섬기는 일 같은….”
병원 업무가 끝난 새벽녘, 지체들의 집 앞 우체통에 CD나 책 등을 슬쩍 밀어 넣으며 문자를 남기던 사람, 늘 먹을 것을 양손에 가득 쥐고 함박웃음 던지며 나타난 사람, 주말이면 영락교회 의료선교부를 이끌며 의료봉사를 나가던 사람. 그야말로 송영주 간호사의 말처럼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 준” 사람이다.
한국누가회(CMF : 의•치•한의대생들로 구성된 기독 공동체) 활동에도 열정을 보였던 안수현 씨는 95년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나우누리 CMF 탄생을 주도했다. 대학 시절 작누세 편집 활동을 함께 했던 이찬복 씨는 “지방에 사는 누가회 회원들이 의사국가고시를 보러 서울에 오면 수현 형이 호텔로 찾아가 간식도 주고 기도도 나누고 했어요. 인턴이 되어서도 CMF 학생 수련회가 열리면 새벽에 차를 몰고 와 먹을 것을 챙겨 주며 후배들을 격려해 주었죠. 그때부터 수현 형은 저에게 섬김의 지표가 됐어요”라고 회상한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려고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감당했던 것인지 모르겠어요. 누가회와 작누세 식구들 속에 남긴 형의 흔적은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겠지요.” 아직 슬픔이 마르지 않아서일까. 회상 속에 담겨진 이씨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안수현 씨의 장례식엔 4000명이 넘는 하객이 몰렸다. 한경직 목사님 장례 이후 이렇게 많은 장례인파는 처음이라며 영락교회 측도 놀라워했다. 그가 열정적으로 모았던 CD와 서적 수만 점은 그가 섬기던 공동체에 모두 기증되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순결한 사랑 없인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그에게 주어진 진정한 재능은 ‘사랑의 은사’였다고. 그 사랑의 진정성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은 아닐까.
기사를 쓰면서 안수현 씨의 홈페이지에 계속 접속해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 본다. 문득 한 칼럼에 쓴 ‘Jesus, you are my reward’라는 문장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그의 헌신과 노력들이 어디서 발현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발자취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게 한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자. 더 사랑하고 더 섬기며 살자….”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The Best use of life is love
사랑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은 시간이다
The Best expression of love is time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The Best time to love is now
미니홈피에 남긴 안수현 씨 글
[출처: 두란노서원 빛과 소금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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