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카라얀: 베토벤
유튜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Berliner Philharmoniker)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의 풀 비디오 (full videos) 모음을 발견 해서 토요일 내내 열심히 봤습니다. 1989년 타계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이 지휘한 것을 1968년부터 시작해서 만든 것들인데 웬만한 음악 영화보다도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 오는군요. 가장 짧은 것이 25분짜리 1번 교향곡이고 가장 긴 것이 1시간 5분짜리 9번 교향곡입니다.
따로 소개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 카라얀은 1954년 46세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가 된 후로 사망 3개월 전인 1989년까지 무려 35년간에 걸쳐 베를린 필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지요. 기록에 의하면 카라얀은 57년 베를린 필과 일본 순회 공연에서 자신의 공연이 생중계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이후 영상 매체에 크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60년대 중반에 방송용 음악회 녹음을 한 후 흑백으로 슈만 교향곡 4번, 베토벤 교향곡 5번,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등을 촬영을 하였고, 이어 컬러로 베토벤 교향곡 6번을 녹화하였는데 휴고 니벨린의 지나치게 난잡한 카메라 워크에 실망하여 이후 카라얀 자신이 직접 촬영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카라얀은 스스로 카메라 기술을 배웠고 그 후 1968년에 베토벤 교향곡 9번 녹화를 주관한 것을 시작으로 70년대초에 유니텔을 통해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 등 영상물의 촬영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합니다.
연주의 수준이야 두말 하면 잔소리인데, 비디오도 연주 수준에 못지 않은 아주 훌륭한 수준입니다. 50년도 넘게 전에 만든 영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감한 클로즈업 (close up) 과 편집으로 마치 교향악단 옆에 앉아서 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음악 수준에 걸맞는 훌륭한 영상미입니다.
60세의 로맨스 그레이 카라얀이 우아하면서도 열정적인 지휘를 하는 모습은 영화 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하더라도 절대 흉내내지 못 할 영역의 수준을 보여 줍니다. 특히 교향곡 9번 「합창」 제 4악장에서 바리톤 솔로 직전의 지휘 모습은 정말 숨이 멎을 (breath taking) 정도 입니다 (46분 51초부터). 교향곡 9번은 또한 시종일관 눈을 감고 지휘하는 카라얀이 합창단과의 교감을 위해 드물게 눈을 뜨고 지휘하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좋아 하시는 분들께는 강추하고 싶은 모음입니다.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만든 음악 영화 중 잘 알려진 것이 2007년 작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과 1994년 작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지요. 둘 다 스토리 면에서나 음악적인 면에서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만, 연주하는 영상 부분만 보자면 베를린 필의 영상이 압도적으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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