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싱어게인 2: 울부짖는 허스키 보이스 33호 가수
싱어게인 시즌 2가 시작된 것을 뒤 늦게 알고 주말에 3회 분량의 조별 생존전을 몰아서 봤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요즘 참 많아 보이는데, 이 프로그램은 특히 취지가 참 좋아 보였습니다.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층으로 여행/요식업계를 꼽는데요, 공연으로 생계를 어렵게 이어오던 소위 "인디 뮤지션" (independent musicians, 타인의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직접 앨범 제작과 홍보를 하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 역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상태입니다. 이번 참가자 중 한 사람인 34호가 "무명이 힘든 이유는 음악을 못해서라기보다 음악을 못하게 될까봐에요" 라고 말한 것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얼마전에 TV 조선의 "내일은 국민가수"를 보면서 정말 허접한 경선룰과 진행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했던 후라 비교가 많이 되더군요.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시작해서 음향의 질까지 모든 면에서 TV 조선은 JTBC에서 보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시즌 1도 상당히 괜찮았는데, 이번 시즌 2는 참가자의 실력들이 전혀 다른 레벨로 보였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일은 국민가수" 결승전 진출 7명도 이 프로그램에 나왔으면 다들 훨씬 고전했을 것 같아 보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상금이 1/3 밖에(?) 안되는 "싱어게인"에 이런 실력자들이 대거 몰린 이유를 TV 조선은 겸허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가수는 3회차에 방송된 33호였습니다. 말을 할 때는 쩍쩍 갈라진 지저분한(?) 소리인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거친 질감이지만 깨끗한 음정으로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앞의 잔잔한 운문부(verse)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는데, 중반부를 넘어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가 되니 마치 슬렛지 햄머 (sledgehammer, 대형 망치) 로 때리는 듯한 음질이 충격으로 가슴을 연신 가격하네요. 뭐랄까... 람보르기니 (Lamborgini) 같은 슈퍼카 타고 초고속으로 달리면 쫄깃해질 가슴이 이런 느낌일까요?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의 반응을 보면 저랑 비슷한 심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허스키 보이스 (husky voice)의 대표적인 국내 가수들로 임재범, 하동균, 김현식, 전인권, 황치열 등을 꼽고 해외 가수로 Bryan Adams 등이 있는데요, 여태껏 이정도 고밀도의 허스키 보이스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니 이름은 김기태. 1983년 9월생으로 작사/작곡/노래로 13년 넘게 활동을 해 온 사람입니다. 방송에 처음 등장했던 것은 2015년 "너의 목소리가 보여" 에서 "여러분"을 부른 것인데 그 때 불렀던 노래와 본인의 유튜브 채널 노래들을 들어보면 지난 몇 년간 창법/발성 면에서 엄청난 변화와 진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심하게 갈라지던 지나치게 거친 음색이 거의 없어지고 쇠몽둥이처럼 단단하면서도 정확한 음들이 아주 큰 임팩트 (impact) 를 주는군요. 이번에 불렀던 고 김광석 원곡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은 원 키 (G) 보다 한 키 높여 (A) 부르되, 김기태 본인의 최대 음역을 다 사용하지 않고 중고음 정도에 치중해서 불렀는데 딴딴한! (탄탄도 아니고, 단단도 아닙니다) 음색의 F# 음이 계속 될 때마다 듣는 사람들이 다들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어서 업로드 된지 불과 4일만인 27일 정오 현재 무려 360만회를 넘어섰네요. 이번 시즌 유튜브 클립 중 현재 가장 조회수가 많은 것은 보컬 트레이너인 31호 가수 것으로 590만회인데, 이것은 1회차 방영분으로 18일 전에 올린거라서, 같은 4일간으로 환산하면 131만회입니다. 아래 유튜브 한번 시청해 보시길 권합니다.
내일이 4회차 방영일인데 아주 많이 기대가 됩니다. 33호 김기태 외에도 정말 잘하는 사람들 많았는데요 제가 정말 완성도 만점의 훌륭한 무대를 선사해 좋게 들었던 사람들 3명만 더 소개 합니다.
먼저 유튜브 조회수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는 31호 신유미.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나왔고 JYP 전속 보컬 트레이너를 거쳐 YG 전속으로 일하며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긴 호흡과 다른 참가자들과 차원이 다른 완성도의 기교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은 37호 박현규. 김범수의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한 목소리와 테크닉을 구사해 보였습니다. 심사위원 유희열이 농담으로 "너 범수지!" 라고까지 말했어요 😜 "국민가수"에 출연했던 박장현과 함께 "브로맨스"에서 활동해 왔군요.
마지막으로 48호 안다은. CD 음원을 재생하는 듯한 완벽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여 대체 연습을 어떻게 얼마나 하는지 시니어 심사위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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