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나 보내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두 편
올 해 10월 한 달은 참 많은 죽음을 대면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채 20일이 안되는 동안 세 명의 지인과 작별을 해야 했지요. 70대 한 분, 60대 한 분, 그리고 50대 한 분... 그리고 그에 이어 다행히 지인 중에는 없었으나 이태원의 할로윈 참사...
두 분은 지병도 없었는데 갑작스레 훌쩍 가셨고, 한 분은 50대에 중풍으로, 그 후 60대 들어서는 암으로 계속 고생하고 계셨기에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믿음 생활을 하시던 분들인지라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죽음도, 슬픔도, 우는 것도, 아픔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가신 것임을 믿지만, 평균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그 분들과 앞으로 오랫 동안 보지 못할 작별을 한 것은 여전히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작별 인사 할 틈도 없이 가버리셨어도 고통 없이 가신 것이 복된 것인지, 아니면 긴 고통의 시간은 겪어야 했어도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 시키고 떠나신 것이 복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과는 무관하게,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오는 개인의 종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주위 사람들이 그 죽음을 이 세상의 큰 손실로 여기는지 아니면 되려 이득으로 여기는지에 따라 그 인생의 가치는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0여년 전 33세의 꽃 다운 나이에 요절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과 영향력을 남기고 갔던 사랑하는 후배 수현이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평균 수명은 많이 늘어났으나, 암은 여전히 어려운 질병으로 우리 주위를 늘 맴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포기한 채 연명에 가깝게 살기도 하고, 그 연명도 어려워 결국 우리 곁은 떠나는 사람들도 아직 많습니다. 실낱 같은 기적을 바라볼 수는 있으나 결국 곧 떠나보내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드라마로 담아낸 작품 두 편을 보았습니다.
사실 시한부 인생라는 주제는 사용한 드라마나 영화가 너무 많아서 진부할 수 있기는 한데 이 두 편은 눈물 짜내기에 주력하지 않고 생각할 거리들을 나름 던져 주어서 식상한 느낌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당사자와 가족들과 절친들이 생각해야 할 작별의 준비, 시시각각 심해져 가는 고통과 비례해 점점 피폐해지는 환자의 감정적 고갈과 붕괴, 그런 붕괴를 받아 내고 함께 감당해 주어야할 가족들과 절친들, 그리고 또 그 가족들과 절친들을 지켜봐줘야 하는 사람들...
<서른, 아홉>
JTBC에서 12부로 제작 된 작품으로 [넷플릭스 링크] 고등학교 때 만나 20년 넘게 쌓아온 39세 미혼여성 3명의 우정을 그렸습니다.
일곱살에 입양되었으나 양 아버지/어머니/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잘 자라난 차가운 성격의 피부과 원장 전문직 여성 미조 (손예진 扮), 뛰어난 연기자였으나 중요한 촬영 날 사고를 겪게 되면서 배우의 꿈을 접고 연기 지도를 하며 살고 있는 화끈하고 털털하고 진솔한 찬영 (전미도 扮), 고3때 암에 걸린 엄마를 간호 하다가 대학을 포기했고 20대 중반부터 백화점 매장 직원으로 일해 왔는데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주희 (김지현 扮).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친구 부모를 친 엄마/아빠처럼 스스럼 없이 서로 대하고 친 자매보다도 끈끈하고 탄탄한 우정을 쌓아온 이들 중 한 명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결국 이들의 곁을 떠납니다. 세 친구들의 로맨스도 나오지만, 주제는 여전히 이 세 친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입니다. 주인공 3명이 각 캐릭터에 적합한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 냅니다. 특히 손예진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작품에서보다 연기력이 돋보이네요.
더 자세한 설명은 줄거리를 소개한 45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From Scratch>
넷플릭스에서 Tembi Locke의 자전적 소설 <From Scratch: A Memoir of Love, Sicily, and Finding Home>을 8부작 드라마로 제작했습니다. [넷플릭스 링크]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예술도시 피렌체(Florence)에 단기 예술 강좌를 들으러 간 텍사스 출신의 흑인 여성 에이미(Amy)가 이탈리아 셰프 리노(Lino)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됩니다. 마피아의 본고장인 시실리(Sicily) 출신인 리노는 가업인 농사를 거부하고 요리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극보수적인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는데, 흑인 여성과 결혼한 덕에 결국은 아버지와 완전 절연하게 됩니다. 변호사 집안인 에이미의 가족들 역시 학력이 없는 리노를 달가와 하지 않아 두 사람은 양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LA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리노가 무릎 관절에서 시작된 희귀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합니다. 결국 리노는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리노는 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되고, 에이미는 모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으며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견뎌갑니다. 시한부 인생이란 큰 주제 외에도 다문화 가정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 이민자들이 당면하게 되는 어려움들도 잘 그려냈습니다.
원작이 1992년~2012년에 있었던 일을 쓴 것인데, LA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가 생소한 것으로 그려지는 등 내용 일부가 좀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주인공들의 연기력과 연출은 좋았습니다. 추가 설명은 2분 30초짜리 예고편으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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