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국 영화들
9월 1일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날입니다. 1939년 9월 1일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고, 1945년 9월 2일 추축국(樞軸國, the Axis powers, 독일/이탈리아/일본)중 마지막으로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만 6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올해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지 어느덧 만 6개월이 조금 넘었네요. 세계를 먹어치우려는 야욕과 그를 막으려는 연합이 다시 시작된 지금, 제2차 세계대전의 상황들이 더 이상 한낱 옛날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은 수세기에 걸쳐 진행된 전세계의 식민지 쟁탈 경쟁, 그리고 불과 21년 앞서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소위 협상국(Triple Entente, 3국 협상)과 동맹국(Triple Alliance)이 충돌하면서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전쟁이었지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 방아쇠가 되어 1개월 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했고, 수십년에 걸쳐 맺어진 국제적 동맹으로 강대국들이 연달아 참전하여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1922년에 오스만(튀르키예) 제국도 붕괴되었습니다.
패전국 독일은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갚으려고 화폐를 마구 찍어냈고, 그 결과로 3년간 물가 상승이 무려 1조(0이 12개) 배나 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의 혹독한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화폐개혁을 통해 간신히 그 위기를 넘기자, 그 뒤를 이어 다시 세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의 뼈아픈 시기를 거쳐야 했는데,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승전국들과는 달리, 원래 있던 적은 식민지들조차 패전으로 다 빼앗긴 독일의 국민들은 기아와 절망을 겪어야만 했지요. 이 과정에서 식민지 확보의 중요성은 점점 더 크게 부각되었고, 낭만적이지만 힘이 없는 민주주의보다는 국력을 단기간내에 키울 독재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히틀러와 나치라는 괴물이 탄생합니다.
히틀러가 1939년 4월 폴란드에게 옛 땅 단치히(Danzig)를 내 놓으라고 시비를 걸어 9월 침공했고, 이에 반발해 영국과 프랑스가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던만큼, 여러 나라에서 이를 배경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년)>,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3년)>,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2년)>,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1997년)>,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2009년)>등 수많은 명작 영화들을 제작하였지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독일은 파죽지세로 서유럽 국가를 먹어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아시아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중립법을 통과시켜 초기에는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덴마크는 즉시 항복, 노르웨이는 2개월만에 항복,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각각 5일과 2주만에 정복 당했고, 프랑스마저 1940년 6월 독일/이탈리아의 협공에 항복했기 때문에 영국이 상당히 꽤 오랜기간 외로운 전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국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더욱 더 큰 아픔의 기억과 승리의 자부심이 교차하는 사건입니다.
지난 몇년 간 역사적 사건들을 주제로 영국에서 제작한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을 몇편 소개해 드립니다. 전부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1.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 (Munich: The Edge of War, 2022년)>
다음 영화 평점 7.8/10.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거주지역 주데텐란트의 합병을 요구하자, 더 이상 전쟁을 원치 않은 총리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처칠의 전임자)이 유화정책을 펴며 당사자인 체코슬로바키아는 배제한채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맺어 합병을 승인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외교관이 전세계를 삼키려는 히틀러의 큰 야욕을 비밀문서를 통해 알게 되면서 옥스퍼드 대학 동창이었던 영국 총리 보좌관을 은밀히 접촉해 협정을 만류하고, 히틀러의 제거를 시도하려던 상황을 묘사합니다. 주인공인 독일 외교관과 영국 보좌관은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비밀문서, 협정 내용, 히틀러 제거 시도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참고: "Is Munich: The Edge of War based on a true story?"]
2.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 2017년>
다음 영화 평점 7.8/10. 전쟁이 발발하고, 독일이 순식간에 서유럽을 차지하자 유화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이 물러나고 처칠(Winston Churchill)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을 때를 그린 영화입니다.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침공했는데, 프랑스가 독일과의 국경에 견고히 쌓았던 마지노 선 요새(Ligne Maginot)는 벨기에로 우회 침공한 독일에게 무용지물이 되었고, 프랑스로 파병되었던 영국군을 포함 40여만명이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 누가 맡아도 욕먹을 상황이라 아무도 맡고 싶어하지 않다보니 떠맡게 된 것입니다. 국왕의 지지도 같은 정당의 지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영국군 전체를 잃지 않기 위해 독일과 굴욕적인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국회의 압력에 떠밀리다가, 생전 처음 지하철을 타고 가며 평범한 국민들의 의사를 물었고 그에 용기를 얻어 죽기까지 싸우기로 결심을 합니다. 프랑스 덩케르크(Dunkirk)에 고립된 40여만 명 중 1/10도 채 구출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 속에서 고심 끝에 민간선박을 징발해 보낸 것이 대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처칠 역을 맡아 훌륭하게 재현해 낸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3. <덩케르크 (Dunkirk, 2017년)>
다음 영화 평점 7.6/10. 위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의 마지막 부분인 덩케르크(Dunkirk) 철수 작전에 촛점을 맞춰 제작된 영화입니다. 특정 영웅도, 인위적인 클라이막스나 긴장 조성도 없이 덤덤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끌어가는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감독의 연출 방식이 호불호 논란을 좀 부르기는 했습니다. 전쟁터에 떠밀려 들어간 앳된 젊은 병사들이 어떻게든 살고 싶어 온갖 꼼수를 부리는 것도 비난하지 않고 그러려니 덤덤하게,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계산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도 특별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고 그러려니 덤덤하게, 같은 사건을 두고 육해공에서 벌어지는 다른 광경을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시간으로 보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육(陸)에서 벌어진 기간은 일주일, 해(海)에서 벌어진 기간은 하루, 공(空)에서 벌어진 기간은 한시간 남짓한 것을 병치혼합한 것이라 제대로 이해하려면 2번 이상은 보기를 권합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860척의 화물선, 어선, 유람선이 동원되어 9일간 총 338,226명의 병사들(영국군 192,226명, 프랑스군 139,000명)을 프랑스의 덩케르크에서 구출해 낸 후 대형 구축함으로 운송했다고 합니다.
4. <시크릿 에이전트 (A Call to Spy, 2019년)>
다음 영화 평점 8.1/10. 독일에게 점령 당한 서유럽에 영국은 계속해서 스파이들을 보내어 레지스탕스들을 지원하였는데, 나중에는 민간 여성들도 훈련시켜 프랑스에 투입했고, 이중 2명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한명은 외교관을 꿈꿨으나 의족으로 인해 번번히 좌절되었던 미국인 여성 버지니아 홀(Virginia Hall)입니다. 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후방 교란과 지하조직을 성공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하다가 신분이 발각된 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영국으로 복귀했고, 전후에는 최초의 여성 CIA요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명은 인도 왕족 출신 무슬림 여성 누어 이나얏 칸(Noor Inayat Khan)입니다. 파시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살던 자신과 가족들이 히틀러 침공으로 인해 영국으로 피란을 온 후로는 어떤 방법으로든 히틀러를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싶어해서 무선통신병으로 프랑스에 투입되었습니다. 신분이 노출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다하기 위해 잔류했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5.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년)>
다음 영화 평점 8.2/10. 2차대전때 독일은 잠수함 유보트(U-boat)로 대서양 바다까지 장악했습니다. 석유 전량과 식량의 절반을 해상 보급에 의존하던 영국은 유보트로 인해 심각한 물자 부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라는 인식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이 보통 이 시기라고 추정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인 당시 무선통신은 쉽게 감청할 수 있었지만, 유보트에 전달되던 작전은 매일 바뀌는 암호체계 '에니그마(enigma)'를 거쳐 암호화(encrypted) 되었기에 해독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영국은 극비리에 최고의 수학자들을 뽑아 매일 수작업으로 암호해독을 시도했는데, 그중 한명인 앨런 튜링(Alan Turing,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扮)이 암호 해독 기계를 개발에 성공함으로 적의 작전 지시를 완벽한 해독을 해내고, 덕분에 영국은 모든 유보트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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