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Meu Pé de Laranja Lima)"
한국에서 무척 널리 읽혔던 책이지요. 브라질 작가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José Mauro de Vasconcelos: 1920~1984)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소설 내용을 축약하여 2012년 브라질에서 영화를 만들었네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브라질에서는 1970년에도 한번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고, 드라마로는 1970년, 1980년, 1998년 총 3번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DAUM영화 8.9/10, RottenTomatoes 시청자만족 61%, IMDb rating 7.1/10. 만족도가 책이 많이 팔렸던 한국에서 무척 높지요? 이야기의 촛점을 포르투가(Portuga) 아저씨와의 관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일은 과감히 잘라내거나 암시적으로만 언급하고 넘어가면서 몰입도를 높였고, 아주 영상미 좋게 잘 담아내서, 저 역시 추억 속에 잠겨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영화는 작가 조제(José)가 출판된 자신의 책을 들고 묘지에 가 어릴 때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 됩니다. 자아가 너무 일찍 들어버린 8세의 (원작 소설에서는 5세) 소년 제제(Zezé)의 이야기지요.
같은 책이라도 읽는 나이에 따라 이해도가 많이 다르습니다. 어릴 적에는 별 생각 없이 읽었던 책을, 나이가 좀 들어서 다시 읽어보면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을 훨씬 넘어서는 가정의 문제, 상처 받은 가슴, 차별등을 주제로 담은 내용들이 많이 보이곤 합니다.
처음에 가슴 따뜻한 동화로 생각하고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작가가 책에서 묘사했던 잔인한 리얼리티 (reality) 를 지극히 순화시키고 감성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어릴 적에 읽고 그 뒤로 읽지 않은 분들은 만족스러워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인공 제제(Zezé)는 당시 아빠가 실직해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3남 3녀의 남매 중 5째입니다. 다들 가난하고 형제 많던 시절의 대부분 가정이 그랬듯,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완전 방목으로 컸습니다.
막내인 루이스(Luís)도 같은 처지이고, 제제는 그런 루이스를 열심히 챙기는 좋은 형이었습니다.
변변한 장난감이라고는 없던 시절이지만, 두 형제는 상상력의 날개로 매일을 즐겁게 보냅니다.
제제의 아빠는 정리해고로 인해 실직한 가장입니다. 원래부터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직으로 점점 깊은 좌절에 빠져들면서 알콜 중독이 되어가지요. "가난 + 술 (혹은 약물)"...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사람을 완전 망가뜨리는 악마의 레시피(recipe)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아빠는 철들기 전인 어린 제제가 크리스마스에 멋진 선물을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혼잣말로 "가난뱅이 아빠가 너무 싫어!"라고 내뱉은 말을 우연히 듣고 심하게 상처 받기도 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주워 들은 유행가를 부르며 "엄마 거시기를 팔아야 해요" (원작 소설에서는 "난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고 하자 설명도 하지 않고 때려서 반죽음을 만들기도 합니다.
탈장(脫腸)으로 고생하는 엄마는 자상하고 제제를 너그럽게 잘 이해해주지만, 집에는 거의 있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설명하지 않는 원작 소설 내용에 의하면, 엄마는 원주민 출신인데, 남편이 실직하자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멀리 있는 방직 공장에서 일하고, 공장이 쉬는 날에는 이웃집의 빨래를 하는등 늘 바빴다고 합니다.
집에서 제제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늘 보호해주는 것은 둘째인 글로리아(Glória) 누나입니다. (고도이아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큰 누나와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셋째누나 그리고 형은 제제를 걸핏하면 두들겨 팹니다.
제제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본인의 주관과 생각이 무척 뚜렷한 아이입니다. 속 마음이 참 따뜻한 아이지요. 크리스마스에 동생 루이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고
담임선생님께 꽃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실직한 아빠를 위로하려고 구두닦이를 해서 번 돈으로 수입 담배를 사다 주기도 하고 재미있는 노래도 불러드리고, 아빠 드시라고 생선도 잡아다 드립니다. 하지만, 아빠와 손위 남매들은 제제의 주체할 수 없는 장난기와 철없는 모습만을 보며 화 내고 때리기만 합니다.
제제의 가족은 미나스 제라이스 (Minas Gerais, 수도인 리우 데 자네이루에 인접한 주.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쯤)에 살고 있는데, 가정의 재정형편이 점점 악화되자 더 외곽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이사한 집에 가니 형 누나들이 큰 나무를 하나씩 골라 자기 나무라고 찜해 버립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작은 오렌지 나무 (Laranja Lima, 라임 오렌지라고 번역 되었으나 그냥 오렌지 나무의 한 품종) 한그루였지요.
자상한 글로리아(Glória)가 이 나무는 제제처럼 밍기뉴(Minguinho, 새끼 손가락이란 뜻) 같다며, 잘 돌보면 쑥쑥 잘 자랄거라고 말해줍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제제는 이 나무를 기분 좋을때는 슈르르까(Xururuca) 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걸터 앉아 말을 타고 달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합니다.
제제 또래 아이들이 가장 영웅시하는 놀이가 있는데, 자동차 트렁크 위에 몰래 올라타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 스타로 등극하게 되는 거지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독신 아저씨가 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이라서 포르투가 (Portuga)라고들 부릅니다. 최신형의 멋진 차를 타고 기차와 경주를 벌이며 아슬아슬하게 건널목 건너는 것을 즐기곤 합니다.
워낙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져 올라타는 것은 다들 엄두를 내지 못하던 터에, 제제가 시도를 했지만 곧바로 들통이 나 볼기를 흠씬 얻어맞고 맙니다.
앞으로 또 그러면 거시기를 잘라 버리겠다는 엄포에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어느날 다른 집 정원에 맨발로 몰래 숨어 들어갔던 제제가 유리에 발바닥을 찔려 크게 다칩니다.
절룩거리며 학교를 가고 있던 제제를 발견한 포르투가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저씨는 제제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 치료 받게 해줍니다.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살고 있고, 하루라도 맞지 않고 사는 날이 있었으면 빌던 제제의 삶에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의 이름은 마누엘 발라레리스 (Manuel Valadares). 하지만, 제제는 아저씨를 이름보다 포르투가로 부르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루는 아저씨가 멋진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보니 유럽에서 가져온 집안의 유산이라고 합니다.
아저씨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너무 멋졌습니다. 제제는 자기 안에는 악마가 있어서 흉보는 할머니의 울타리 불지르고, 공으로 그 집 거울 깨고, 잘난 척하는 애 머리에 돌 던지고, 성당 앞에 왁스 칠해 할머니들이랑 신부님이 넘어지게 한다고, 덕분에 자기는 매일 얻어맞는다고 합니다. 포르투가 아저씨는 어릴때는 다 그런 악마가 있다며, 제제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자기 집에 보여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제제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마치 자기 집 정원이 거대한 동물원인듯 꾸며 말하자, 만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달라며 격려를 해줍니다.
포르투가 아저씨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제제가 동생 루이스의 생애 첫 종이풍선을 만드는데 열중해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큰 누나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자, '내가 네 식모인 줄 아냐'며 누나는 홧김에 종이풍선을 찢어버렸고, 격분한 제제가 누나를 '개년'이라며 욕을 하자 누나는 제제를 기절할 정도로 때립니다. 아빠에게도 또 얻어 맞지요.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폭행 당하는 장면들은 암시적인 장면들로 대체했습니다)
잠시 착하게 살아보려 했던 제제 마음 속의 악마가 완전히 고삐가 풀려 버렸습니다. 도자기 공장에 가서 말리고 있는 토기를 죄 밟아 망쳐 버리지를 않나
성당 미사를 위해 켜놓은 촛불들을 죄다 꺼버리지 않나
차 뒤에 무리하게 올라탔다가 떨어져 뒹굴지를 않나...
극에 달한 제제의 반항기 짓거리에 너무 기가 막힌 아빠는 야단치지도 않고, 제제를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오랜만에 포르투가 아저씨를 찾아간 제제는 자기가 아빠를 마음으로 미워해서 죽어가게 만들거라고 말합니다. 또 자기 자신은 밥만 축내는 쓸모 없는 아이라서 없어져야 하니, 밤에 기차에 뛰어들겠다고도 말합니다. 작은 아이의 무너진 자존감에 가슴이 메어진 포르투가 아저씨는 제제를 달래 집에 보내고,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밤에 기차길 옆을 밤새 지키기도 합니다.
어느날 함께 물놀이를 함께 하고 옷이 젖어 벗으라고 말했습니다. 머뭇거리다가 옷을 벗은 제제의 몸에서 수많은 상처와 멍을 발견한 포르투가 아저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신을 입양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제제에게, 포르투가 아저씨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하며 살 수는 없다'고 말해주고, 대신 친 아빠처럼 도와 주겠다며, 자신의 유산인 펜을 줄테니 그것으로 멋진 이야기들을 써보라고 말합니다.
제제의 무너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포르투가는 제제를 자신의 차 범퍼에 올라타게 한 뒤 일부러 제제 학교 앞을 달렸습니다.
부심 쩌는 제제의 웃음.
행복감에 부푼 제제에게 비보가 날아듭니다. 포르투가 아저씨의 차가 기차에 충돌했다는...
사고 현장에 달려가 보니, 풍비박산이 난 포르투가 아저씨의 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제제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며칠간 사경을 헤메다 깨어납니다.
정신을 다시 차린 제제는 포르투가 아저씨의 유품인 펜을 가지고 라임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약속대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내 친구 포르투가 아저씨. 아저씨를 위한 첫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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