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먹방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제가 먹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음식이나 식당을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들을 즐겨 봅니다. 쯔양, 벤쯔 등의 대식가들의 먹방은 관심 없고 <냉장고를 부탁해>, <파이널 테이블>, <아이언 셰프> 같은 요리 대결이나 외국의 음식 소개 같은 것 무척 좋아합니다.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즐겁게 본 프로그램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Somebody Feed Phil) 입니다. 여행 다큐멘터리인데, <EBS 세계테마기행> 같은 프로그램이 자연과 문화와 촛점에 맞춘 반면,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은 도시와 그 도시의 음식 소개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은 필립 로젠썰(Philip Rosenthal, 애칭 Phil)이라는 사람이 세계 각국의 도시를 방문하여 취재하는 먹방으로, 필립 로젠썰은 미국 방송국 CBS의 시트콤(situation comedy) 피디출신입니다. 한 두명이 휴대용 캠코더들고 돌아다니면서 대충 찍어 만든 수준이 아니라, 방송 작가가 제대로 기획을 하고 10명 이상의 프로 방송국 제작진들이 동행하면서 전문 방송기재들을 사용해 조명, 녹음, 촬영해 제작했기 때문에 영상부터 내용의 구성까지 전체적인 완성도가 무척 높습니다. 총괄 피디는 에미상(Emmy® Award)을 3번 수상한 필의 남동생 리처드 로젠썰(Richard Rosenthal)이 맡았습니다.
매회 일관된 구성 방식이 참 마음에 듭니다. (간단한 문화/역사 소개, 식재료/음식 소개, 사회사업 소개, 좋은 식당 소개, 가족과의 영상 통화, 출연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시즌 3의 제 3화에서 서울을 방문했는데요, 방송된 내용들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신당동 떡볶이, 광장시장 먹자골목, 부대찌개, 쭈꾸미, 칼국수, 노량진 수산시장
- 탈북자 지원단체, 북한 순대, 북한 감자만두
- 북창동, 동대문 플라자, 미슐랭 2스타 정식당, 대한항공 기내식 공장, 편의점 간식, 치맥, 삼계탕, 갈비/냉면
행선지인 도시를 방문하면, 먼저 그곳의 근대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각 나라와 도시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려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겠지요. 그 도시의 특성에 따라, 주인공 필은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배도 타고 스쿠터도 탑니다.
(넷플릭스에서 screen capture를 막기 시작해서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가져왔습니다)
사우나, 냉수 다이빙등 현지의 독특한 체험 관광도 합니다. 매 회마다 현지의 소외된 이웃들 혹은 장애자들을 돌보는 사회 사업도 하나씩 소개합니다.
필은 음식 관광은 보통 식재료를 파는 전통시장에서 시작이 됩니다.
대부분의 먹방들은 대중음식과 파인 다이닝중 택일을 하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아주 넓은 범위의 음식을 소개한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지의 음식 평론가나 요리사 혹은 지인들의 추천을 따라서 제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 (street food)부터 소개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늘 먹고 사는 소박하고 편안한 음식 (comfort food)과 전통 음식 (soul food)도 소개 합니다. 주인공 필은 유태인이지만, 엄격한 유대교 전통의 코셔(kosher)는 지키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사람입니다. 곤충 같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 먹는데, 딱 한 번 멕시코 오아하카(Oaxaca)에서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이구아나(iguana) 도마뱀은 보더니 도저히 못 먹겠던지, 요리하는데 30분쯤 걸린다고 하니까 시간이 촉박해서 가야할것 같다고 뺑소니를 치네요 ㅋㅋㅋ 주인공 필은 시트콤 제작자 출신답게 시종 과하지 않은 농담과 개그로 즐거운 담화를 이어가며 현지 음식에 담긴 유래와 전통과 문화를 배워갑니다.
현지 요리사 가정에도 꼭 방문해서 현지의 가정식 (home meal)도 함께 즐깁니다.
여담으로 <EBS 세계테마기행>은 제가 참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 딱 한가지는 많은 진행자들이 현지 음식을 먹을 때 반응이 너무 무덤덤하다는 겁니다. 아마도 원래 성격이 그런 사람들 같긴 한데요, 시청자 입장에서 전혀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 주인공 필은 음식이 맛있으면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곤 합니다. 눈을 감고 신음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Marry me!" 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어떤 맛인지 자세하게 분석적인 설명을 하기 보다는 호기심을 높이는 스타일입니다. 먹방은 이래야 재미있지요.
달달구리 소개도 빠지지 않습니다. 디저트 종류들 이외에도 소개하는 음식들 상당수가 엄청난 양의 버터와 기름을 퍼붓는 칼로리 폭탄들이라, 건강과 몸매 유지를 위해 매일 촬영을 마치면 호텔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가성비 좋은 중간 가격대의 식당들을 여럿 소개하는데, 독특한 것은 현지 전통적인 음식으로 알려진 식당들 외에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타 문화의 식당들도 함께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사회로 가면서 전세계 대도시에는 소수 민족 음식 (ethnic food)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좋은 기획이라고 봅니다.
현지에서 명성을 떨치는 최정상 스타 셰프의 식당도 찾아갑니다. 보통 이런 곳은 몇달치 예약이 밀려 있기 때문에 식당 개점 시간 이전에 조용히 찾아가던가 아니면 영업 시간에 주방으로 가서 셰프를 취재하며 그의 음식 철학을 들어 봅니다.
매회분의 뒷부분에는 가족들과의 짧은 영상통화를 합니다. 시즌 1과 2에서는 필의 부모인 맥스(Max) & 헬렌(Helen)과 영상통화를 하고, 어머니 헬렌이 2019년 루게릭병(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으로 타계한 후 시즌 3와 4는 아버지 맥스 & 부인 모니카(Monica)와 통화를, 아버지 맥스가 2021년 타계한 후 시즌 5에는 아들/지인들과 통화를 합니다. 필이 촬영지의 즐거웠던 점, 맛있었던 음식 이야기를 해주면 아버지 맥스는 '이 날의 썰렁한 15금 농담' 하나를 던지고, 시즌 5에서는 통화하는 사람들이 필의 아버지를 대신해 농담(joke for Max)을 한마디 해줍니다. 아버지 맥스는 독일에서 학살 (holocaust)를 겪고 생존하여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계 유태인입니다. 그리고 매회의 마지막 부분은 필과 함께 출연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찬을 나누는 것을 빨리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지도에 시즌 1~5까지 방영된 도시들을 표시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제작한 것이니까 미국과 멕시코가 많은 것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반면, 음식으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두 나라인 프랑스와 일본은 아직 한번도 방영하지 않은 것이 의외입니다. 제대로 하려고 아껴놓은 것일까요? 아니면 이 프로그램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다 충족시킬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걸까요? 그동안 격년으로 한 해에 두 시즌을 방영해왔는데 올해 말에 시즌 6이 방영될지 아니면 코로나로 인해 방영되지 못할지 궁금합니다. [10월 19일 업데이트] 시즌 6가 방영되었네요. 미국 도시 3개와 남미 칠레, 남유럽 크로아티아에서 촬영했습니다.
[방영된 도시 목록]
- 시즌 1 (2018년) : 태국 방콕(Bangkok), 베트남 사이공(Saigon), 이스라엘 텔 아비브(Tel Aviv),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미국 뉴 올리언즈(New Orleans), 멕시코 멕시코 시티(Mexico City)
- 시즌 2 (2018년) : 이탈리아 베니스(Venice),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 남 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Cape Town), 미국 뉴욕 시티(New York City)
- 시즌 3 (2020년) : 모로코 마라케쉬(Marrahesh), 미국 시카고(Chicago), 영국 런던(London), 한국 서울(Seoul),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 시즌 4 (2020년) : 브라질 리오 드 자네이루(Rio De Janeiro),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싱가포르(Singapore), 미국 미시시피 델타(The Mississippi Delta), 미국 하와이(Hawaii)
- 시즌 5 (2022년) : 멕시코 오아하카(Oaxaca), 미국 메인(Maine), 핀란드 헬싱키(Helsinki), 미국 포틀랜드(Portland, Oregon),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 시즌 6 (2022년) :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Philadelphia), 크로아티아(Croatia), 미국 텍사스 오스틴(Austin), 칠레 산티아고(Santiago), 미국 테네시 네쉬빌(Nash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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