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
2015년작 스웨덴 영화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리메이크(remake)한 2022년작 <A Man Called Otto>를 먼저 보고 이어 원작을 봤습니다.
- <A Man Called Ove(En man som heter Ove)> (2015) : 왓챠 (한국에서만 시청 가능)
- <A Man Called Otto> (2022) : Netflix (한국에서는 시청 불가능)
스웨덴의 무명 작가 프레드릭 바흐만(Fredrik Backman 프레드릭 배크만)이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연재하다가 네티즌들의 성원으로 2012년에 출간한 소설 <En man som heter Ove>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인구 900만명의 스웨덴에서만 90만부 이상이 팔렸고, 번역본은 유럽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미국과 한국에서도 2015년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었다고 하네요.
대본이 탄탄한 것에 힘 입어 스웨덴의 원작, 미국의 리메이크 두 편 다 아주 잘 만들었고, 국가적인 배경에 따른 약간의 변경을 제외하면 같은 줄거리와 같은 흐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두 편의 장단점이 있어서 가능하다면 스웨덴 원작부터 시작해서 둘 다 보시기를 권합니다. 스웨덴 원작은 이야기의 흐름이 점프 없이 매끄럽게 잘 흘러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연출을 했고, 미국 리메이크는 몇 군데 생략하거나 단축해서 살짝 따라가기 어려운 전개가 있는 반면 핵심 인물들의 감정선을 아주 잘 표현해서 이 영화의 핵심인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순간순간 함께 느끼고 공감하기 쉽게 연출을 했네요.
영화는 59세의 한 독신 남성 오베(Ove)/오토(Otto)의 이야기입니다. 자신만의 확고한 원리원칙와 삶의 규칙이 있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줄기차게 강요하며 매사에 화(怒)가 가득한 소위 '꼰대남' 입니다. 자녀도 없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던 부인은 6개월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의 타계후 삶의 의욕을 잃고, 아내의 무덤에 가 혼자 넋두리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하루 하루를 마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수 십년간 같은 주택 단지에 함께 살아온 이웃들은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뒤틀려 있는 오베/오토는 이웃들의 인사조차도 빈정거림과 욕으로 되돌려주곤 합니다. 그러던 중 10대 때부터 무려 43년간 일해온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자, 그렇지 않아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뒤를 따라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합니다. 목을 매어 자살하려 했으나 줄이 끊어져 실패, 자동차에서 가스 중독으로 자살하려 했으나 앞집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실패,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하려 했으나 갑자기 누가 집 초인종을 눌러 실패.
그의 자살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앞집으로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와 아이들입니다. 원래도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치 않는데다 자살 결심까지 해서 아무와도 말을 섞고 싶어하지 않는 그에게 이 가족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사소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공구나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갑자기 다쳤으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고, 부부가 사정이 생겼으니 어린 딸들을 돌봐달라고 하고,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아무리 싫은 기색을 팍팍 내며 퉁명스럽게 거절을 해도, 엉터리로 하는 꼴(?)은 도저히 보지 못하는 더러운(?) 성격때문에 결국에는 집요하게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청을 다 들어주었고, 그러면서 앞집 여자가 주는 음식에도 맛을 들이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게 해맑은 두 아이에게도 정과 기쁨(喜)을 느끼게 됩니다.
앞집 딸 아이는 다친 아빠를 대신해 가족들을 도와주고 있는 오베(Ove)/오토(Otto)가 마치 가족의 한명이 된 것처럼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주택 단지에서 배회하는 길냥이(street cat)도 늘 귀찮기만 했는데, 어느날 얼어죽을뻔 한 것을 발견한 뒤로는 맡길 곳이 없어 결국 침대에서 같이 자는 사이가 됩니다. (박스 구멍으로 내다보는 자태가 Shrek의 Puss in Boots 급입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오베/오토의 삶은 부인 소냐(Sonya)를 향해 헌신적으로 바쳐진 순애보(純愛譜)의 인생이었습니다. 빈털털이던 젊은 시절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해 버린 둘은 첫 데이트로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오베/오토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고 수프(soup) 한 그릇만 먹고 말자, 소냐가 물었습니다.
"근데 당신은 왜 메인요리를 주문하지 않아요?"
"집에서 먹고 왔어요"
"왜 집에서 먹었어요?"
"....돈이 딱 그거뿐이라... 당신에게는 식사를 대접하려고...
... 그때 거짓말했어요. 지금 군 복무 중이 아니라 기차 청소부에요.
우리 집은 화재로 무너졌고.............
가 볼께요. 여러가지로 고마왔어요."
그렇게 작별하고 떠나려는 오베/오토를 소냐는 붙잡고 키스 했고, 결국 둘은 몇년 후 결혼 합니다. 최고로 즐겁고 행복한(樂) 시간이었지요. 어느날 소냐가 임신을 하자,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둘 만의 추억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 버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만 버스가 전복사고를 일으켰고 소냐는 유산과 동시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립니다. 최고로 행복했던 때는 하루 아침에 그렇게 가장 큰 슬픔(哀)의 시간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오베/오토의 삶은 오로지 소냐만을 위한 헌신적인 희생으로 채워졌습니다. 소냐의 사고에 대한 보상을 위해, 소냐가 원하는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오베/오토는 모든 사람들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가 나날이 자랐던 것이었습니다.
미국 리메이크에서 스웨덴 원작과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높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앞 집에 이사온 임산부의 캐릭터 설정인 것 같습니다. 원작에서는 파르바네(Parvaneh)라는 이란인(Iranian) 여성으로 평범한 가정주부 스타일인데 반해, 미국 리메이크에서는 마리솔(Marisol)이라는 멕시코인(Mexican) 여성이 나오는데 다분히 푼수끼(?)가 있는 해맑음으로 짧은 기간에 오토(Otto)의 마음에 높게 쳐진 담을 무너뜨리고 이웃 정을 알게 합니다. 이 여성이 연기한 백미(白眉)는 총으로 자살하려다 실패한 오토가 다음날 전화를 쓰게 해달라고 가자 쌀쌀맞게 거절을 하고는, "당신은 당신 전화가 왜 끊겼는지 말해주지 않아요. 왜 내 전화를 쓰려고 하는지도 말해주지 않아요.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주지 않아요. 당신은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죠. 내가 어젯밤 얼마나 오래 밖에 있었는지 알기나 해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혹 생겼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겁이 났어요 " 라고 울며 말하는 장면일 것 같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오토는 결국 마리솔에게 자신의 과거를 모두 털어 놓고 자살을 하려던 결심을 내려 놓습니다.
너무 거대담론으로 풀어가지 않고 쓸데 없이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과 함께 삶의 소중한 부분들을 느끼며 공감해갈 수 있는 좋은 영화로 강!추! 입니다.
'영화&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6) | 2023.04.19 |
---|---|
오드리 헵번 (Audrey Kathleen Hepburn) (6) | 2023.01.20 |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Joyeux Noël)" (10) | 2022.12.24 |
빈란드 사가 (Vinland Saga) 애니메이션 (10) | 2022.12.16 |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나 보내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두 편 (15) | 2022.11.08 |
드라마 "작은 아씨들" (12) | 2022.09.25 |
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국 영화들 (4) | 2022.09.02 |
영화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 (10) | 2022.08.16 |
넷플릭스 먹방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9) | 2022.08.12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8) | 2022.06.30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2023.04.19 -
오드리 헵번 (Audrey Kathleen Hepburn)
오드리 헵번 (Audrey Kathleen Hepburn)
2023.01.20 -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Joyeux Noël)"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Joyeux Noël)"
2022.12.24 -
빈란드 사가 (Vinland Saga) 애니메이션
빈란드 사가 (Vinland Saga) 애니메이션
202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