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리 심장 (Glass Heart)" - 이게 된다고??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무척 힘든 분야가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시적으로 표현하거나 그림으로 형상화하면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공감하기가 쉽습니다. 반면 그 음악 자체를 직접적으로 들려줘버리면 공감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 크게 부풀린 표현을 말하고 있는데 그 때 들리는 음악이 그 느낌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그 대사는 즉시로 힘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밀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에스트라, 무인도의 디바 등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만남, 심리, 사건을 그리지 음악 자체를 그리지 않습니다. 꼭 음악 자체가 주 테마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카모토 유지 (坂元 裕二) 작 일드 콰르텟처럼 탄탄한 극본과 연출이라면 훌륭한 드라마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만 [Netflix], 음악 자체의 감동을 드라마/영화로도 느껴보고 싶은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곤 합니다.

서구권에서 제작한 Farinelli, Le Concert, The Greatest Showman, Copying Beethoven 등은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의 음악을 잘 편집해서 시청자의 몰입을 끌어냄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연주를 수준급으로 하는 연기자들을 성공적으로 기용한 Amadeus, Immortal Beloved 같은 명작들도 있고 jazz drummer의 성장을 그린 Whiplash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수백년간 전세계의 사랑을 받아온 검증된 클래식 곡들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 제작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월드 스타급 가수를 주연으로 발탁해서 만든 A Start is Born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중음악을 주제로 드라마/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추가 됩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 중에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같은 경우 나쁘지 않은 연주 실황 녹음을 사용해서 음악 자체의 비중은 높인 반면, 연기자들이 수준 높은 연주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심히 티나게 시늉 내는 정도로 그쳤지요.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는 아이돌 스타들을 주연으로 기용해서 만들었지만 천재 작곡가와 스타급 보컬이라는 설정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는 연주들로 인해 전혀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만화의 실사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경우 놀라울만큼 원작에 충실하게 연출을 했고, 연주도 좋은 편집을 해서 무척 좋은 작품이 되었지만 원작 만화에서 묘사된 '날고 튀는' 노다메의 연주가 드라마의 음악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화 원작을 100점이라고 한다면, 드라마는 80점 정도? 아마도 임윤찬 같은 독특하면서도 걸출한 연주자가 기용되지 않는 한 작가가 상상한 느낌과 수준의 연주는 아마도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임윤찬이 어떻게 라흐마니노프 3번을 특이하게 치는지 비교해 봅시다"].

그런 면에서 2025년 7월 Netflix에 공개된 "유리 심장 (Glass Heart)"는 음악, 특히 록 (rock) 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 좋아할만한 드라마입니다. 라이트 노벨 (에니메이션 풍의 삽화가 많이 들어간 가벼운 소설)인 "グラスハート (글라스 하트)" (만화로도 발간되었다고 함. 한국어 번역판 없음) 를 실사화한 이 드라마의 백미는 주연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생동감 만점의 실황공연 영상미라고 하겠습니다. 프로페셔널 음악가들의 뮤직 비디오도 많은 경우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오디오에 따로 찍은 비디오를 sync 하기 때문에 미세한 엇갈림들이 있는 법인데, 이 드라마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싱크로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Bohemian Rhapsody"의 연주보다 더 생동감 있고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주인공인 4인조 밴드 Tenblank 의 남성 3인은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이 드라마 촬영 준비를 하는 1년 동안 배운 것으로 이 드라마를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사용한 연주 음원의 많은 부분은 베테랑급 프로 뮤지션의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극 중 밴드 TENBLANK의 데뷔 앨범도 실제로 드라마 공개와 동시에 발매 되었고, 더빙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만큼 기존 음악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생동감이 있습니다. 극중 천재 작곡가 후지타니 나오키(藤谷直季) 역을 맡은 사토 타케루 (佐藤 健)가 제작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기타리스트 타카오카 쇼(高岡尚) 역의 마치다 케이타 (町田啓太) 와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카즈시(坂本一至) 역의 시손 준 (志尊淳)도 그가 개인적으로 연락해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모두 15년 이상 경력에 빼어난 외모로 알려진 연기자들입니다.
드러머 사이조 아카네(西条朱音) 역의 무명배우 미야자키 유 (宮﨑優) 만 유일하게 1000:1이 넘는 경쟁률의 오디션을 통해 발탁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의 남자 3인은 이미 명성 높은 연주자들인데 비해, 여자 1인만 무명 드러머인 설정과 현실이 그런 면에서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출연 분량이 가장 많은 이 여배우는 아마도 원래 드럼을 쳤던 경력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이나믹이 넘치는 연주 영상에서 싱크로율이 완벽하기도 하고, 연주곡들도 시종일관 드럼이 많이 두드러지게 편곡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는 드라마의 대표적 클리셰 (cliché, 상투적인 것) 인 넘사벽의 천재, 그리고 시한부 생명을 중심으로 흘러 갑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천재는 독단적이지만 괴팍하지 않고, 무척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2000년대 초에 쓰여진 원본의 감성과 일드 특유의 흐름 + 가벼운 삼각관계 로맨스 역시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감 넘치는 밴드의 연주와 수만명의 엑스트라를 카메라 12대의 동시 촬영해 만든 영상은 그런 소소한 진부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에너지로 다가 옵니다. 모든 음악은 에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의 OST 전체를 맡았던 일본의 대표적 록 그룹 RADWIMPS의 리더 노다 요지로 (野田洋次郎) 가 작업했습니다.
이하 글은 내용 스포 (spoiler) 입니다.
Rock Alive Japan이라는 대규모 록 페스티벌 공연장 앞에서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여자 주인공 아카네는 테디메리라는 밴드의 멤버로 함께 참석 예정이었는데, "한 기획사가 데뷔 시켜줄테니 대신 남성 밴드로 만들어오라고 했다"며 갑작스럽게 아카네를 쫓아 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아카네 위로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록 페스티벌은 부득이하게 공연을 취소하고,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 주차장에서 아카네가 갑작스레 혼자 드럼을 치기 시작합니다. 멀찌감치 빈 무대 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이 드럼에 맞춰 현란하게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하면서 청중들은 열광하는데.... 벼락이 무대의 남자 위에 내리치면서 끝납니다.
그 후로 3년이 지났습니다. 아카네는 여전히 오디션마다 번번히 낙방하는 무명 드러머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한 오디션에도 떨어진 어느날,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 버밀리온 (Vermilion) 에 카레 배달 주문이 오는데 굳이 배달할 사람을 아카네로 지명합니다. 아카네는 현관에 붙은 "사이조 아카네님, 지금 바쁘니 안으로 들어오세요"라는 쪽지를 보고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3년전 비오는 날 들었던 피아노 소리를 연상하며 뛰는 가슴을 안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놀랍게도 그 곳에는 정말로 후지타니 나오키가 있었습니다. 그는 14세부터 수많은 히트곡을 써 록의 아마데우스라고 불리웠지만 베일에 싸인채 결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수수께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다는 정상급 기타리스트 다카오카 쇼와, 우아하고 고고한 음악으로 온라인을 떠들석하게 한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카즈시가 후지타니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연주에 끼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아카네는 매니저 카이 야요코 (甲斐弥夜子) 이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4인조 밴드의 멤버로 합류합니다.
후지타니 나오키에게서는 넘쳐 나오는 샘물처럼 새로운 곡의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럴때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채 시간과 장소에 상관 없이 곡을 쓰는 것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후지타니 나오키는 자신이 천재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망가지는 것을 많이 봐왔고, 그래서 세상에서 자신을 격리시켰습니다. 그는 "저는 많은 사람의 유리 심장을 상산히 부서뜨리고 그 파편의 광체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 스스로를 가둬야 했습니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을 경험한 사람들마다 그의 넘사벽인 천재성에 압도되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전히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후지타니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사람은 일본의 대표적 프로듀서 이사기 이치다이 (井鷺一大) 였습니다 (가수 후지키 나오히토 藤木直人 분). 둘이 함께 작업해 음반 100만장 이상 판매를 한 것도 여러개였는데, 마치 모짜르트에 압도 되어 망가진 살리에르와도 같이, 어느 순간 이사기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후지타니의 곡을 자신이 작곡한 것으로 조작해 자신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렇게 후지타니의 음악에 압도되어 그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감히 그에게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지타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것을 어느 순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후지타니가 버스킹 하는 것을 우연히 본 기타리스트 다카오카 쇼가 갑자기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후지타니는 그럴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후지타니가 밴드를 할 결심을 하는데는 2년이 걸렸고, 그 후로 다카오카 쇼는 후지타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챙겨주고 아끼는 베프 (best friend) 가 됩니다.

후지타니가 바라는 밴드는 서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듯 싶을 정도로 멤버 각자가 뚜렷하고 강렬한 자신만의 고유의 소리를 내주는 것이었습니다. 더이상 상대방의 유리 심장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함께 느끼는 행복. 그것이 후지타니가 바라는 밴드의 모습이었고, 그런 면에서 사이조 아카네, 다카오카 쇼, 사카모토 카즈시 모두 대체 불가능한 멤버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했고, 동시에 진심으로 음악을 직면할 때 터져 나오는 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밴드 TENBLANK 는 후지타니에게 애증을 가진 사람들을 결국 하나 둘 씩 치유와 화해로 이끌게 됩니다.
배다른 남동생 신자키 토야(真崎桐哉) 와도... (가수 스다 마사키 菅田 将暉 분)


프로듀서 이사기 이치다이 (井鷺一大) 의 곡인줄만 알고 계속 후지타니의 곡을 불러 유명 가수가 된 사쿠라이 유키노 (櫻井ユキノ) 와도... (가수 타카이시 아키리 髙石あかり 분)

그리고 이사기 이치다이 (井鷺一大) 와도...

3년 전 벼락을 맞고 입원했을 때 그는 뇌 종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계속 혹사하면 언저 죽을지 모르는 상태인데, 그는 주위 사람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음악 만드는 일과 공연하는 것에 매진 합니다. 상황을 알게 된 친구 기타리스트 다카오카 쇼는 그를 살리겠다고 밴드 탈퇴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삶은 후지타니에게 이미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결국 밴드 멤버들은 그와 공연을 하기로 합니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의 병을 갑자기 알게 되어 충격에 휩싸인 팬들에게 그는 말합니다.
"토야(남동생)가 칼에 찔렸을 때 이야기인데요. 결국 인생은 확률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병이 없다고 해도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의 이 심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오늘도 뛰고 있어요. 하지만 만약에요, 이 녀석을 우리 뜻대로 움직이려 하거나, 멈추려고 한다면 불가능할거예요. 마치 우리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신기한 힘때문에 박동하는 것처럼, 심장은 각자의 BPM으로 생명의 소리를 연주해요.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예요. 신이 변덕을 부려서 그 순간이 엉똥하게 닥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가슴이 조여들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믿는 음악이 있기에 고동 소리는 더욱 강해지고 더욱 또렷해져요. 이 생명의 소리는 틀림없이 우리들 것이예요. 내일의 보증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이 세상에서!!! 지금 여러분에게 이 소리를 전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들어줘서 고마와요. 괜찮으면 같이 노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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