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태초의 로고스(Λόγος)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 4권 있고 그 책들을 복음서 (福音書, the Gospels, the Good News) 라고 부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기록해서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 부릅니다. 3개의 공관복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부활/승천에 이르는 행적을 시간 순으로 기록한 것과는 달리, 요한복음은 몇 가지 핵심주제를 집중적으로 기록합니다. 특히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마지막 며칠 간 있었던 그 분의 가르침과 기도를 13~17장에 걸친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이 하루가 저녁때부터 시작되어 로마(=현대)의 시간법과 6시간이 차이나는 유대의 시간법으로 기록한 것과는 달리, 요한복음은 로마의 시간법을 썼고, 지명과 명칭도 로마식을 사용하거나 병기(竝記)한 것으로 보아 로마 문화권의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복음은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지칭된 사람이 자신의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며 (요 21:24,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또 이 사실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이다."), 서기 60~100년 사이에 아마도 소아시아에서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에베소 (Ephesus, 에페수스, 현재 터키의 셀죽 에페스 Selçuk Efes) 에서 사도 요한 혹은 요한을 중심으로 한 초기 교회 공동체에 의해 기록되어졌다는 의견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 합니다.
사도 요한의 타고난 성품은 예수님으로부터 '우레(thunder)의 아들' (막 3:17) 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의 다혈질이었습니다. (눅 9:54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가장 어린 제자였던 사람이 로마의 임명직이며 최고 권력층이었던 대제사장과도 아는 사이라서 그 집에도 제재 없이 드나들고는 했습니다 (요 18:15-16,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야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1세기 말, 로마의 심한 박해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순교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한은 밧모섬(Patmos) 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AD 97년경 유배에서 풀려난 요한은, 그가 평생 모셨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요 19:26~27,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와 함께 에베소에 가 있었고, 그곳에서 요한복음, 요한1~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어린 나이의 과격했던 그가, 어떻게 말년에는 저술한 모든 책에 "사랑"만을 강조하는 온유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된 바 없습니다만, 수 많은 검증된 전승자료와 성경내용을 토대로 그려낸 요한의 말년 모습이 김성일 님의 소설 <제국과 천국> 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목적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고 (요 20:31절,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 영원한 생명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밝히고 있습니다. (요 17: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γινώσκωσιν, 기노스코신) 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연역적(deductive)으로 쓰인 모든 책들이 그렇듯, 자주 반복되는 단어들을 따라가면 요한복음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1장 앞 부분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2개의 단어는 "말씀 (the Word)"과 "그 (He, Him, His)" 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고, "말씀 (the Word)"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 단어는 "로고스 (λογος)"인데, 당시 편만했던 헬라 철학의 핵심 사상으로 "the principle and pattern that gave the world or cosmos its character and coherence (우주와 역사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법 또는 신적 정신 또는 원리, 우주창조 및 질서유지의 원리이자 인간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는 원리)"를 뜻합니다. 기록 당시에 '우주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은 소위 영지주의 (靈知主義: Gnosticism) 가 만연 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육체는 악마가 창조했고,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몸은 악하고 영은 거룩하다고 믿습니다. 영지주의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혼이 악마가 만든 육체에 갇혀 있기 때문에 거기서 탈출해서 자유(구원)를 얻기 위해 참된 지식(γνῶσις, 그노시스, 영지)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입니다. 불교의 득도(得道)와 비슷한 개념인듯 합니다.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와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γινώσκωσιν, 기노스코신, 관계를 통해 체험적으로 계속 알아가는 것) 이 곧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 (새번역)에서 이 두 단어를 바꿔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로고스가 계셨다.
그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셨다.
로고스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로고스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로고스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로고스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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