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의 마리아: 나사로의 죽음
쨍그랑~~~ "나사로! 나사로!! 정신 좀 차려봐! 나사로~~~~!!"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와 마르다 언니의 목소리에 놀라 동생 나사로 방으로 달려갔다. 나사로가 먹은 것을 다 토해낸 상태로 의식을 잃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최근에 심해져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한지 벌써 몇 주 되었는데, 오늘은 정말로 상태가 심상치 않다. 동공이 풀린 상태를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언니! 제발~~~~~ 선생님께 연락할 수 있게 허락해 줘!! 이대로 나사로를 죽게할거야?"
우리 마을의 이름은 베다니(בֵּית-עַנְיָה)... 아픈 자의 집, 가난한 자의 집, 슬픔의 집 등의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들 중 많은 가족이 중증 병자를 두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율법의 규정에 따르면 나병을 비롯한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여겨지고, 일반인들에게서 격리된 상태에서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따로 살아야 하는데, 예루살렘의 병자들 대부분이 걸어 30여분 정도의 거리에 자리잡은 이 마을로 흘러들어와 살고 있다. 우리 세남매도 예전에 예루살렘에 살다가 부모님을 병으로 잃고 난 후에 이 마을에 들아와 살게 되었다. 멀지 않은 거리라서 예루살렘에 사는 친척들이나 과거 지인들과는 그래도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긴 하나, 그렇다 해도 우리의 일상은 이 마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3년 쯤 전부터 북쪽 갈릴리 호수 부근에서부터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면서 사람들에게 "오시리라 했던 메시야 (Messiah = Christ, 그리스도, 구세주)"라고 불리게 된 선생님... 감히 이름을 부르기도 황송한 예수.... 그런 거룩하신 분께서 이런 가난하고 소외 되고 저주 받은 마을에 찾아 오시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선생님을 마지막 뵌 것은 몇 달 전 수전절 (חֲנֻכָּה, 하누카)에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였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메시야로 믿게 되자 유대인들이 성전 회랑을 지나가는 선생님을 에워싸고 "당신, 대체 언제까지 사람들로 추측만 하고 헷갈리게 하려고 합니까? 정말 당신이 메시야라면 속 시원하게 밝히시오!" 몰아 세웠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늘 그러셨듯 당당하게 "내가 말했지만 당신들이 믿지 않을 뿐이오. 내가 행한 모든 일이 내 아버지께서 인정해 주신 것이고, 내 말보다 더 분명한 증거입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은 잠시 제쳐두고, 당신들 눈 앞에 벌어지는 일만이라도 증거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이 모든 일을 한번에 깨닫게 될 것이오. 우리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로 같다는 것,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말이오"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고 펄펄 뛰며 잡아서 돌로 치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선생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약 10시간 거리의 요단강 건너 동쪽에 있는 또 하나의 베다니 마을로 가셔서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다. 실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아도 로마령인 유대 지방이 아니라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베레아(Perea) 지방이라 유대인들이 섣부르게 손을 대지 못하는 곳이며, 예전에 선생님의 이종 사촌인 광야의 사람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베풀던 곳이기도 하다.
그 동안 나사로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자 걱정이 된 나는 "선생님을 모셔오자. 오시기만 하면 나사로 병쯤은 금방 낫게 해주실거야. 그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것, 언니도 봤잖아" 며 언니 마르다에게 계속 채근해왔지만, 언니는 "마리아, 나라고 모르겠니? 나도 선생님께 달려가 지금 당장 와 달라고 매달리고 싶어. 하지만...... 선생님을 잡아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 다니는 예루살렘이 지척인 이 곳에 목숨을 걸고 와 달라고 선생님에게 부탁 할 수는 없어. 같이 기도하며 병세를 지켜 보자. 나사로는 분명히 다시 일어날거야" 라며 나를 만류해 왔다.
하지만 언니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사로가 결국 저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나사로가 잠시 의식을 회복한 것을 본 언니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털썩 주저 앉았다. 한참을 말 없이 앉아 있던 언니가 마침내 마음을 돌려 선생님께 전갈을 보내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 마리아... 선생님께 사람을 보내보자. 하지만...... 친히 와 주시라는 말씀은 도저히 못 드리겠어. 선생님께서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말씀 만으로도 로마 백부장 (centurion)의 하인을 고치신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나사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시기만하면 분명히 나사로도 그렇게 고쳐주실 수 있을것 같아. 편지에 이렇게만 적으렴 '선생님, 선생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
다행히 강 건너 베다니까지는 산 꼭대기에서 바다보다 낮은 저지대까지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서, 더 빨리 소식을 전해질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마을에서 발 빠른 사람을 수소문해 선생님께 보냈다. 제발 나사로가 숨을 거두기 전에 선생님께 이 소식이 전해질 수 있기를....
힘겹게 한 숨 한 숨 가늘게 내쉬는 나사로를 보면서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처음 오셨던 때를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우리 마을에 들어 오셨고, 평소 선생님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던 언니 마르다가 선생님과 그 일행을 초청해 우리집으로 맞아 들였다. 꿈만 같았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메시야로 불리시는 분께서 우리 집에 오시다니! 이 날도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을 포함한 따라 다니는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웃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특히 많은 말씀을 하셨다. 이 신비한 분의 말씀을 한번 듣기 시작하자 나는 마치 내가 사는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주위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저 선생님의 모습과 그 분의 말씀만 들어올 뿐이었다.
"선생님! 제 여동생이 부엌일을 제게만 떠넘기고 있는데 그냥 두십니까? 저 좀 거들라고 동생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 신기한 세상이 갑자기 깨지고 말았다. '아뿔싸... 내 정신 좀 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거야? 내가 정신이 나갔었구나. 언니, 미안! 미안!! 미안!!!' 당황해서 허둥지둥 일어나 부엌으로 가려는데 선생님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언니에게 말씀하시는게 등 뒤로 들려왔다. "마르다, 사랑하는 마르다, 네가 지나치게 염려해서 별 것 아닌 일로 흥분하고 있구나. 우리 일행 사람 수가 꽤 많은데, 여러가지 하느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쉽게 하렴. 난 한 가지만 준비해줘도 충분하고 너무 고마워. 그리고 내게 정말 귀중한 것은 너희와 함께하는 이 시간 자체지 음식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란다. 마리아는 나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선택한 것 뿐이니, 이 아이에게서 그 기쁨을 빼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아~~~~~ 이렇게 따뜻한 말을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룩하신 메시야께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이해해 주신다니....
그 후로도 선생님께서는 우리 베다니 마을에 종종 오셨고, 그 때마다 우리 집에도 들르셔서 우리 세남매와 시간을 보내주시곤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허물 없이 대해주셨고, 나사로는 선생님 일이라면 만사를 제끼고 나설 정도가 되었다. 오실 때마다 마르다 언니는 늘 정성껏 음식으로 접대를 하였고, 나는 언니를 돕는 틈틈이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열심히 듣곤 했다.
"나사로! 안 돼!! 나사로, 조금만 더 기다려!!" 언니 마르다가 다급한 소리에 나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여리던 숨이 짧고 거칠어지다가 꺽꺽 숨 막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러더니 급기야 엄청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나사로~~~ 아~~~ 어떻게 해~~" 그렇게 급박한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나사로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급히 맥을 짚어보니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다.........
마르다 언니의 울부짖는 얼굴은 보이는데, 갑자기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뭐야.... 나사로..... 나사로........ 이렇게 그냥 가버리는거야? 선생님께 사람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직 그 쪽에 도착하려면 한참 더 가야 할텐데......... 아니지? 눈 떠 봐, 나사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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