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의 마리아: 나드 향유
죽어서 나흘이나 되었던 내 동생 나사로를 선생님께서 살려내신 일은 그 날 우리와 함께 그 장면을 목격한 여러사람들의 입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 지방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직접 본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해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생님이 "오시리라 했던 메시야 (Messiah = Christ)"인 것을 굳게 믿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더 이상 유대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시며 다니셨다.
계속 퍼진 이 소식은 결국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들은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90년 전 하스몬 왕가가 이교도인 로마에게 굴복한 이후로 식민지로 굴욕스럽게 살면서도 이들은 로마의 하수인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작은 자치권을 인정 받아 왔다.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은 우리 일반 백성들에게는 이방인의 압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구원 받는 기쁜 소식이지만, 로마의 권세를 인정함으로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에게는 큰 지각변동이며 로마 제국을 거슬려 그 기득권을 잃게될 수 있는 불안 요소일 뿐이다. 평소 서로 앙숙 관계이었던 그들이 대제사장 가야바가 주동이 되어 선생님을 죽임으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로 야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북쪽 광야 부근에 있는 에브라임이라는 시골 마을로 옮겨 가셨다.
선생님을 뵙지 못한지 두어달이 지났다. 요즘 이 마을 사람이 아닌 못 보던 얼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주로 우리집 부근을 맴돌며 나사로를 주시하는 것 같아 보인다. 대제사장이 불안요소로 지목한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엄청난 이적의 주인공인 동생 나사로 역시 그들에게는 엄청난 불안요소인 것이 자명하니 나사로도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듯 하다.
유월절이 가까와오자 많은 사람들이 명절 준비를 위해 각자 사는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선생님께서 올해도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실 것인가' 였다. 매년 큰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오셔서 이적을 행하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나, 지금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예루살렘에 오시는 것은 자살행위와도 같기 때문이다. 유월절 엿새 전에 선생님께서 갑자기 우리 베다니 마을에 오셨다.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과 더불어,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마을에 계신 며칠간 선생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지 않고 대신 많은 말씀과 가르침을 주셨는데,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면 벌어질 일과 징조, 그 때에 주의하여야 할 당부들, 메시야께서 다시 오실 그 때의 징조, 그 날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등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 날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갈라 심판이 있을거라는 가슴 떨리는 말씀도 해 주셨다. 나흘간에 걸친 긴 말씀 후, 유월절 이틀 전 날에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인자가 배반 당하고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고 말씀 하셨다.
선생님이 위험에 처한 것은 알고 있던 바이지만 막상 선생님의 입으로 직접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라는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의외로 선생님의 제자들은 많이 놀라지 않은듯 해보여 의아해 물어보니 1년도 더 전에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에서 이미 당신께서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처참한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예언하셨다고 한다. 당시 베드로와 제자들이 너무 황당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했다가 되려 사탄의 생각이라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눈치를 보니, 제자들도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까지는 믿지 못하는 것 같고, 이미 예언하신 대로 정말 죽임을 당하신다면 어쩌나 속으로 전전긍긍들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것에 대한 보답은 커녕 감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이 선생님을 뵐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견딜수 없는 마음의 고통과 걱정이 몰려와 혼자 방에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던 중, 불현듯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면 선생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된 메시야이신 그 분께...
메시야라는 호칭은 왕이나 선지자들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몇년전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에서 한 죄 지은 여인이 눈물로 선생님의 발을 씻기고 발에 향유를 부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뿐, 메시야의 호칭에 합당하게 머리에 기름을 부음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죽임을 당하시기 전에 선생님께 기름을 부어 드리고 싶어졌다. 급하게 예루살렘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기름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았다. 히말라야와 인도의 산간 지역에서 자생하는 감송 향나무 뿌리에서 채집하는 나드 (nard) 라는 향유를 찾았는데, 일반 노동자가 300일간 일해서 받는 급료에 해당할 액수 (300 데나리온) 로 그 가격이 엄청났다. 휘발성이 커서 큼직한 고급 석화석고 병 (alabaster flask, 옥합) 에 밀봉해서 팔며, 나눠서 팔지도 남겨 두고 쓰지도 못한다고 한다. 우리 집 형편에는 말도 안되는 미친 짓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죽었던 동생 나사로를 되살려주신 거룩하신 메시야의 마지막 순간을 위함이라는 생각이 결국 내 결심을 굳혀 주었다. 이 나드 한 병을 사기 위해 집에 모아 두었던 모든 돈을 쏟아 붓고도 모자라서,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처분했다.
유월절 하루 전날 나병 환자인 시몬이 자신의 집에서 선생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기 전 마지막 잔치를 열었다. 마르다 언니는 늘 그랬듯 가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왔고, 나사로는 선생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준비한 나드 향유가 든 석화석고 병을 들고 조심스레 다가가 병을 깨뜨리고 식사하고 계신 선생님의 머리에 부어 드렸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고귀한 향이 순식간에 넓은 방을 가득 채웠다. 나드 향유는 왜 자신이 300 데나리온 씩이나 해야 하고, 왜 자신만이 이 거룩하신 메시야의 이름에 합당한 최고 중의 최고인지를 무심하게 증명해 보였다. 한번도 실제 맡아본 적이 없는 것을 사기로 결정한 것이라,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지 내내 의심스러웠던 생각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이 거룩하신 분의 마지막 순간에 어울리는 뭔가를 해드렸다는 안도와 함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순간이 아쉬워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의 발 앞에 엎드려 남은 향유를 그 분의 발에도 붓고 내 머리털로 닦아 드렸다.
나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식사 중이던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나드 향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는 여러 사람들이 혀를 끌끌차며 엄청난 돈을 낭비했다고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제자 중 돈을 관리하는 가룟 유다가 울분을 터뜨리며 큰소리로 한 마디 했다. "이런 한심한 일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저 향유는 족히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을텐데, 그걸 순식간에 쏟아 버리다니요. 저 귀한 것을 저렇게 허비하지 않고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어요?"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다. 당신 말이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것 나도 잘 안다. 나 역시 이 나드 향유를 사면서 수 없이 망설였으니까... 하지만, 난 오늘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고, 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다.'
엎드려 묵묵히 그 비난들을 듣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너희는 왜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이 여자는 지금 나에게 이루말할 수 없이 소중한 일을 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너희와 함께 있을것이니 언제라도 마음 내키면 그들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 나는 그렇지가 않다. 이 여자는 기회가 있을 때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하건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지금 이 여자가 한 일도 기억되고 기념되어질 것이다."
뾰루퉁하게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가룟 유다는 분한듯 입술을 깨물고 한참 생각하더니 뭔가 결심한 듯 일어나 나가 버렸다. '아아~~~ 역시 선생님만은 내 마음을 알아 주셨다. 처음 뵌 날 해야 할 일도 다 까맣게 잊은채 빠져들어 말씀을 듣고 있던 내 마음을 알아 주셨듯이..... 아아~~ 이스라엘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메시야시여, 나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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