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만민이 기도하는 집
유대인의 유월절(Passover)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가,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아래 YouTube 동영상 참조)
당시 예루살렘에서 제물로 드릴 짐승을 파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매년 3대 절기 (유월절/무교절, 칠칠절/맥추절, 초막절/수장절) 때마다 예루살렘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출 23:14~17, 너희는 한 해에 세 차례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너희가 그 때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가 애써서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 또한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 너희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한 해에 세 번 주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 먼거리에서 오는 사람들은 짐승을 가져오기도 힘들고, 흠 없이 가져오는 것은 더 힘들어서 예루살렘에서 제물을 사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신 14:24~26, 그러나 주 너희의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너희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너희는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너희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거라.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너희와 너희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여라) 당시 절기 때마다 약 13만 가정이 인구 6~8만명의 예루살렘에 매년 3번씩 왔고, 예루살렘 인근의 감람산에는 이들을 위한 4개의 가축 시장이 있었다고 추산합니다.
문제는 제물로 드려지기 전에 제사장들이 제물의 흠결(欠缺) 여부에 따라 합격 판정을 해주는데, 자신들과 연줄이 있는 가축 판매업자가 아닌 곳에서 산 제물에 대해서는 온갖 이유를 대서 퇴짜를 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태가 점점 심해지면서 순례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제사장들과 연줄이 있는 곳에서 몇 배 비싼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대제사장 인증', high-priest certified) 가축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환전상도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 반 세겔 (노동자 약 2일치 임금) 을 내야 했습니다. 당시 통용되던 화폐는 로마 황제의 형상이 그려진 로마의 화폐, 혹은 다른 형상이 그려진 외국 화폐였지만, 성전세는 유대교 자체의 정결법에 부합하게 특별히 만들어진 동전 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순례객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관리하는 환전상에서 반드시 환전을 해야만 했는데, 이것 역시 부르는게 값이어서 정당한 환율보다 최소 50% 이상 바가지를 씌웠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 어마어마한 이권 규모의 가축 판매업 주도권을 쥐고 있던 대제사장 및 사두개인(Sadducees)들과 그들과 연줄이 닿는 카르텔 (cartel) 이었고, 환전업 주도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산헤드린 공회 및 바리새인(Pharisees) 을 중심으로 한 카르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전의 뜰 (courtyard)을 자신들의 전용 사업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뜰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뜰 (Priests courtyard)이 아닌, 여인의 뜰 (Women's courtyard)과 바깥 이방인의 뜰 (Gentiles courtyard) 입니다. 먼 길을 걸어 예루살렘에 왔으나 제사장의 뜰 안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로 만든 장소지요. 원래의 율법 규정대로라면 성불구자/사생자/암몬인/모압인 (신 23:1~5) 은 유대교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방인도 성불구자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말씀 하신 바 있습니다.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다." 공평을 지키고 공의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 안식일을 지켜서 더럽히지 않는 사람, 그 어떤 악행에도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방 사람이라도 주께로 온 사람은 '주께서 나를 당신의 백성과는 차별하신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고자라도 '나는 마른 장작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백성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 주를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house of prayer for all the peoples)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사야 56:1~7)
하지만 당시 제사장들은 여전히 그들의 제사를 허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구역이었던 성전의 뜰 (courtyard) 마저도 그들의 부를 축적할 사업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분노하셨던 이유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마태복음 21:13)
교회의 역사를 보면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중세 시대때 성당 건축을 한답시고 면죄부를 팔아 자기 배를 채웠던 교황청도 그렇고, 신자들의 귀한 헌금 모아서 큰 교회 짓고 재단 만든 후 세습 열심히 하고 있는 한국 일부 대형 교회들도 그렇습니다. 2,000년에 걸친 교회 역사를 볼 때 교회 타락도(墮落度)의 선행 지수(先行指數)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이 교회의 부(富)와 권력(權力)입니다. 교회가 부하게 되는 이유는 복의 통로로 세상으로 흘려 보내야 할 존재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에 축적되는 부는 결국 교회 지도자의 부로 흐르게 마련이고, 그렇게 교회는 "강도들의 소굴"로 점점 변해갈 것입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이 그랬듯... 그리고 심판의 그 날에 그 분께서는 이런 교회를 결코 좋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부연설명]
- 이 사건은 3개의 공관복음도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21:12~13 막 11:15~17 눅 19:45~46) 하지만, 요한복음이 예수의 사역 초기인 2장에 쓴 것에 반해, 공관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하셨을 때인 후반부에 써있어서, 동일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비슷한 두 번의 사건이었는지는 견해가 갈립니다.
-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소위 "헤롯 성전 (Herod's Temple)"이라 부르는 것으로, BC 63년에 파괴된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려고 BC 19년에 착공해 AD 63년에야 완공되었습니다. 2장 대화 내용에 46년째 건축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니, 이 일이 AD 27년에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 2:20,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이 성전 재건을 시작한 유대지역의 통치자 헤롯왕은 유대인 행세를 했으나 사실은 아랍 혈통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규모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Εὐσέβιος, 에우세비오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사용된 돌 하나의 길이가 12미터, 너비가 3.6미터, 높이가 6미터였다고 합니다. 또한 성전의 뜰은 대리석으로 깔았고, 어떤 특별한 문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할 때 돌과 돌 사이에 작은 홈을 파서 그 안에 금을 녹여 부어서 돌이 서로 딱 달라붙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전의 천정은 온통 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거기 순금으로 된 포도송이가 있었는데, 포도 한 알의 크기가 볼링 공 크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전은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이 성전은 무너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이 성전은 완공된지 불과 6년 만에 로마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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