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의 마리아: 되살아난 나사로
사랑하는 나사로가 창창한 젊은 나이임에도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전통에 따라 굴을 하나 매입해서 시체를 안장하고 커다란 바위로 그 굴을 막았다. 마을 뒤 산 중턱에 있는 초라한 굴이다. 예루살렘에서 찾아오는 친척과 지인들이 꽤 많아 함께 울며 애도하다보니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선생님께 소식을 전하러 갔던 사람이 드디어 돌아 왔지만, 선생님께서는 그와 함께 오시지 않으셨다. 순간 섭섭한 마음이 조금 들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와 주십사 청한 것도, 와 주시리라 크게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고, 이미 나사로는 죽었는데 선생님께서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오시는 것 보다 그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소식 전하러 간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했다. 선생님께서 나사로의 소식을 들으시고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일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셨던 것일까? 하긴 위대하신 메시야라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실 수는 없겠지. 이 사람이 떠날 때까지만해도 나사로는 살아 있었으니까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거야....
마르다 언니와 교대로 집에서 문상 온 손님들을 접대하다가, 나사로 생각이 마음에 사무칠 때마다 무덤 앞에 가서 울다가... 그렇게 쳇바퀴를 수 없이 돌았다. 그런데도 나사로의 죽음이 정말인지,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감이 잘 가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났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오늘까지 나사로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있다가 그 후로는 영영 저승으로 간다고 한다. 이제 정말로 나사로와 작별을 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마르다 언니와 무덤 앞에서 거의 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왔다. 정말로 나사로의 영혼이 이젠 떠나간 것인지, 무덤에서 살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다시 하루가 더 지나 나흘째인데도, 예루살렘에서 찾아오는 문상객 손님들이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타계하신 부모님들께서 우리 세남매에게 남겨주신 재산이 변변하게 없어 이렇게 베다니 마을에 와서 살게 되기는 했지만, 동생 나사로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 주시는 이 모든 분들이 결국 부모님이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인것 같아 새삼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한 사람이 급하게 집으로 와 헐떡이며 말해 주었다. "마르다! 마리아! 선생님께서 지금 이 곳으로 오고 계시단다. 조금 후면 마을에 도착하실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곧 바로 오셨더라면 이틀 전에 도착하셨어야 할텐데... 왜 나사로가 죽고난지 한참 된 지금 굳이 오시는 걸까?' 소식을 전했던 사람이 "선생님께서 오신다고 하자, 제자들이 극구 말렸다고 하는구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데 호랑이 입 속으로 걸어들어가려느냐고. 제자 중에서 성격 괄괄한 쌍둥이 도마(Didymus Thomas)는 글쎄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다고 하더라고. 쯧쯧... 맞는 말이지." 집에는 문상하러 와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마르다 언니는 곧바로 일어나 선생님을 만나러 마을 입구로 나갔지만, 나는 문상객 손님들을 응대해야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남았다. 이미 죽은 동생 나사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 오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을 견딜수 없어 울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죽은 나사로를 생각하니, '선생님께서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계셨었더라면.... 그럼 나사로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비통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흐느껴 울었다.
마중을 나갔던 마르다 언니가 돌아와 조용히 귓속말로 "마리아, 선생님께서 오셨어. 너를 찾으시니 나가 보렴" 말했다.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달려나갔다. 선생님께서는 마을 안으로 아직 들어오시지 않고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타는듯 하여, 그 분 앞에 쓰러지듯 엎드려 흐느끼며 투정하듯 말씀드리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계셨었더라면.... 저희 곁에 계셨더라면...... 나사로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거에요."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집에서부터 내 뒤를 따라온 일부 문상객들도 내 마음을 알고 함께 흐느끼며 울어주었다. 선생님께서 울컥하여 함께 슬퍼하시는건지, 화가 나시는건지 잘 모를 미묘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나사로는 어디에 두었니?" 사람들이 "이 쪽입니다. 와서 보시지요." 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들이 수근수근 말했다. "하~ 선생님께서 나사로를 정말 많이도 사랑하셨군요" "글쎄올시다.. 그토록 사랑하셨다면 왜 나사로가 죽지 않도록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저 분은 눈먼 사람도 번쩍 뜨게 하시지 않으셨소?"
선생님과 함께 바위로 입구를 막은 무덤에 도착했다. 마르다 언니도 와 있었다. 선생님께서 왠지 화가 나신듯 굳은 표정으로 "돌을 치우시오" 말씀하셨다. 언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생님께 "선생님. 죽은 지 벌써 나흘이 되었습니다. 살이 썩기 시작해서 악취가 나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지만, 선생님께서는 마르다 언니의 눈을 들여다 보시며 "마르다, 내가 말했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시며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어서 돌을 치우시오."
몇 명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바위를 밀어내자, 살 썩는 냄새가 동굴 안에서부터 화~악 풍겨 나왔다. 그 냄새를 맡지 못하시는건지, 개의치 않으시는건지 선생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 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들으신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그러낸 내가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서 있는 이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들로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신 선생님께서 무덤의 동굴을 보시며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 나오거라!!" 그러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천으로 감고 얼굴에는 수건을 덮은 시신이 동굴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것이다!!! 나도, 마르다 언니도,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문상객들도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비비며 다시 보는 사람들, 놀란 입을 틀어 막는 사람들, 머리를 움켜 쥐고 절레 절레 흔드는 사람들.... 벌어지는 장면이 현실이라고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그저 입을 벌린채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 적막을 깨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몸에 감긴 천을 풀어 주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시오." 몇 명이 주춤 주춤 다가가 천을 풀었다. 얼굴에 덮었던 수건을 벗겨주자, 나사로가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부신 눈을 비비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나님 맙소사...... 정말 나사로다... 썩어서 냄새가 풀풀나던 나사로가 되살아났다. 나와 마르다 언니는 달려가 나사로를 끌어 안았다가, 얼굴을 다시 보았다가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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