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볼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있는
예수께서 활동하셨던 시기의 이스라엘에는 "산헤드린 (Sanhderin) 공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어 '수네드리온 (συνέδριον, conference, 모여 앉는다)'에서 유래된 외래어 명칭의 기관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Εὐσέβιος, 에우세비오스)는 산헤드린이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민사/형사재판을 관할하는 정치 기구라고 했고, 랍비들은 산헤드린이 평신도인 바리새인으로 구성되어 종교 생활의 여러 문제와 율법(Torah) 해석하는 일을 한 종교 기구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지방법원처럼 각 도시마다 23명으로 구성되는 소(小)산헤드린이,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대법원처럼 71명으로 구성되는 대(大)산헤드린이 있었는데, 신약성경에서 공회(公會), 공회의원(公會議員), 관원(官員) 등의 표현은 모두 이 대산헤드린 공회와 공회원을 뜻합니다. '국회의원+대법관' 정도 되는 당시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인데다, 한번 공회원으로 선출 되면 종신직이었습니다.
이 산헤드린 70인 공회원 중 한명인 니고데모 (Nicodemus) 라는 사람이 밤에 은밀히 예수를 찾아와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요 3:2) 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는 보고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다시 나야 한다" 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은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다시 나야 한다" 는 말을 왜 자신에게 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 그 말 자체는 친숙한 표현이었습니다. "다시 난다"는 말이 공회원들이 종종 행하는 의식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구원 (salvation)'의 요건은 무척 단순합니다. 로마서 2:17~3:20에서 바울이 반박했던 당시 유대인들의 보편적 등식(equality)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브라함의 자손” = “이스라엘 민족” = “할례 받은 자”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받을 사람들”
- "타국 사람" = “이방인” = “할례 없는 자” = “할례 받지 못한 자” = “언약 밖의 멸망당할 자”
유대인이 규정대로 할례 받고, 율법 준수하려고 노력하면서 살면 구원 얻는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집단은 출생에 의해서 (by birth) 결정 되는 혈연 집단 (kin group) 이라고 알고있지만, 사실은 종교 집단 (religious group) 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저도 에스더서 읽다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에 8:17, 그 땅에 사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유다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이 되고 싶은 이방인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유대교로 개종하겠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공회원들은 개종 요구를 일단 두 번 거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 자신은 유대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그 이방인에게 "다시 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후 이방인이 할례를 받으면 드디어 유대인이 되어 회당과 성전에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이 절차를 따라서 "다시 나야 한다"는 말을 이방인들에게 늘 해 온 니고데모였지만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었을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나면서 유대인이었고 무려 공회원인 자신에게 예수께서 갑자기 이 말씀을 하시자 그는 그 이유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고 되물으시며 더 설명을 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ἐξ Πνεύματος, 엑스 프뉴마토스)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에크 토우 프뉴마토스) 난 것은 영 (πνεῦμά, 프뉴마)이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바람은 (πνεῦμα, 프뉴마)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Πνεύματος, 프뉴마토스)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이런 당황과 혼란스러움은 니고데모만의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되면, 전에는 거의 듣지 못하던 단어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은혜(恩惠), 긍휼(矜恤), 회개(悔改), 구속(救贖)/속량(贖良), 거룩, 영광(榮光) 등등...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친숙한 단어가 됩니다. 문제는 친숙해졌을 뿐 여전히 그 의미는 모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 단어들의 의미를 물어 본다면 즉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 남, born again)" 역시 기독교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라서,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거듭 남"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과연 니고데모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로마서 2:17~3:20에서 바울이 문제제기를 했던 당시 유대인의 사고 방식은 현대 기독교인들의 사고 방식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이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개독교"인이 되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독 or 개독?")
- “아브라함의 자손” = “이스라엘 민족” = “할례 받은 자”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받을 사람들”
- "교회 다니는 사람" = "크리스찬" = "세례 받은 자"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 "하나님의 복과 영생을 받을 사람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 하셨습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거듭남도 볼 수 있게 인증도장 찍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중의적 (dual meaning)인 "프뉴마 (πνεῦμα)"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람도, 영도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현상 (現象, phenomena)"은 분명 있고, 그 현상을 보아 미루어 알 수는 있습니다. 그 현상은 다른 사람도, 나 자신도 알 수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만약 정말로 "거듭 났다면"... ("거듭남"의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조금 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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