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Ukraine) 상황 공부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전운이 감돌던 우크라이나 (Ukraine) 에 결국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현지시간 새벽 5시에 침공을 시작한 러시아는 파죽지세로 9시간 만에 수도 키에프 (Kyiv) 북쪽 코 앞까지 진입했다고 합니다. 폭발 사고가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도 점령당했다네요. 아마도 여차하면 폭파시켜버릴테니 빨리 항복하라고 종용하는 인질로 사용하려는것이겠지요?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할 때, 세계에서 세번째로 핵무기를 많이 보유한 강국이었으나, 1994년 유럽안보협력기구에 의해서 평화보장을 조건으로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양해각서'를 받고 2년에 걸쳐 완전비핵화를 실천했습니다. 핵을 전량 러시아에 반환했고, 평화와 경제협력 보장을 조건으로 미국이 핵시설 해체를 도와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어낸 나라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심히 열악한 상황에서 계속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에서 "1945년 이래 UN의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 중 정복 당해 사라진 나라는 없다. 전쟁이 거의 사라진 이유는 (1) 전쟁의 댓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이젠 큰 전쟁은 인류의 집단 자살일 뿐이다 (2) 전쟁의 비용은 치솟았고 그 이익은 작아졌다. 과거의 부는 물질적인 것이라 전쟁을 통해 약탈하고 점령할 수 있었으나 현대의 부는 인적자본과 조직이라 무력 정복이 불가능해졌다. 대외 교역과 투자가 매우 중요한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오히려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3) 세계정치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의 독립성을 약화시켜 일방적인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라며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 했으나,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동태를 보면 그의 분석과는 달리 "땅따먹기 게임"을 그만둔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진 배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것 저것 찾아보며 수박 겉핥기로 공부한 것을 좀 정리해 봅니다.
우크라이나의 면적은 남한의 약 6배 크기이며, 유럽 대륙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나라입니다. 1989년 소련이 해체 (혹은 붕괴?) 된 후 과거 소련 소속이었던 나라들 중 서쪽에 있는 나라들 대다수가 NATO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 조약기구) 에 가입하여 서방 (북미/서유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등의 국가는 소련 시절부터 이미 러시아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독립하자마자 적극적으로 NATO 가입을 간청해왔으나, 미국에서 초기에 거부하다가 1992~1995년 보스니아 전쟁시 끔찍한 인종 청소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비회원국이라 개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또 러시아에서도 극우 정당이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을 본 후 1999년 이들 세 나라를 NATO로 받아 들였고, 뒤이어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를 2009년에는 알바니아, 크로아티아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 추세를 따라 우크라니아도 EU (유럽연합) 및 NATO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사태의 여파로 2013년 우크라이나는 외화보유고가 바닥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EU/IMF (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 도 200억 유로를 빌려주겠다고 했고, 러시아도 150억 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EU/IMF의 경우 액수는 컸으나 연금삭감, 천연가스의 소비자 가격 인상 등 강도 높은 경제 체제 재편성의 조건이 따른 반면, 러시아는 아주 조건도 달지 않고 덤으로 천연가스를 할인가격에 제공한다는 덤도 얹어 주었지요. 러시아의 의도는 자국 주도의 관세동맹에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여 러시아 경제에 종속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는 비록 친 러시아 성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월까지만 해도 의회에 EU가 요구하는 법개정을 요구하는 등 EU와의 협상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11월에 갑자기 EU/IMF 측의 조건을 거절하고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선회합니다. 이 결정은 소위 "유로마이단 (Euromaidan)"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세력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특수부대를 투입한 초강경 진압와 더 격렬한 시위의 공방을 벌이다가, 3개월간의 대규모 유혈 사태를 겪은 후에 친 러시아 정권이 물러나고 친 서방 정권이 수립되면서 일단락이 됩니다. 이 93일간 벌어진 일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 - 우크라이나의 자유 투쟁 (Winter on Fire: Ukraine's Fight for Freedom)"에 기록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권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쉽게 놔줄 수 없는 것은 단순히 넓은 땅 뿐 아니라, 지정학적 상징성과 더불어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우주항공 산업과 로켓을 비롯한 군수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중화학공업역시 한때 미국과 경쟁하던 수준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현재 러시아의 주 수입원은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입니다. 그리고 서유럽으로 수출되는 파이프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지나갑니다. 사람 몸으로 치면 동맥에 해당하는 이 파이프들의 통제권을 서방 세계에 넘겨줄 수가 없는거지요.
[여담] 지역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아제르바이잔이지만 "007 언리미티드 (The World Is Not Enough)"에서 러시아 송유관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옵니다.
러시아는 매년 이 파이프의 유지 보수와 파이프 관리 시스템 사용을 위해 매년 30억불에 달하는 돈을 우크라이나에 지불합니다. 소련 붕괴 후 극빈국으로 전락한 우크라이나에게 이 액수는 무려 GDP의 2%에 달하는 큰 돈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산이 거의 없고 토질이 매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토 대부분이 비료가 따로 필요없는 비옥한 흑토(초르노젬) 으로 이루어져 옛날부터 세계적인 곡창 지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중부와 서부 지역은 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인데, 1900년대 초부터 계속 소련의 탄압과 수탈을 당한데다, 집단화 영농 체제로의 무리한 전환 과정에서 비옥한 토지에도 불구하고 1932~1933년에 무려 300만명이 굶어 죽는 "우크라이나 대기근"까지 겪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무척 심하다고 합니다. 반면 동부 지역은 소련 시절 대규모 중공업단지, 제철소, 탄광등 중화학 공업과 미사일, 우주선 등 소련 군수 방위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기에,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하며 언어도 러시아어가 주 언어이고, 실제로 인구 분포 상으로도 상당수가 러시아인입니다.
남쪽의 커다란 섬과도 같은 크림 반도의 경우는 아예 주민의 대부분이 러시아인입니다. 원래는 러시아 땅이던 것을 1954년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 가 소련의 주 (state) 체제를 정리하면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주로 소속을 옮겨 놓았던 것이,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에 속한 지방으로 독립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곳을 자치 공화국 (autonomous republic) 으로 인정하였으나, 이 때만 하더라도 주민들 대다수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소속의 자치주가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왕 결정된 것이 그러니, 우크라니아 정부도 존중하고 완전 독립을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20여년간 공존을 해왔는데 앞서 언급한 "유로마이단 (Euromaidan)" 사태가 발생한 후로는 주민들의 불안감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마이단 사태 후 1년을 지낸 러시아는 소치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러시아는 크림 반도 (Crimea Peninsula) 를 덥석 먹어 버렸습니다. 올림픽 폐막 4일 후인 2014년 2월 27일 세르게이 악쇼노프라는 듣보잡이 로켓 발사기를 포함 중화기로 무장한 20여명과 쿠데타를 일으켜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 건물과 지방 정부 청사를 순식간에 점거하고, 의원들을 소집한 후 이 자리에서 아나톨리 모힐로프총리를 해임하고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2월 28일, 세바스토폴 항에 주둔 중인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 소속 해군 보병들이 크림 반도 공항을 무혈점령했으며, 아무런 마크도 없는 소속 불명의 무장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이들을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an) 이라고 칭했는데, 이번 침공 2일 전에도 같은 차림의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서 발견된 것이 보도되었습니다. 3월 1일 쿠데타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크림 자치 공화국 영토의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고 러시아는 "(그들의 요청을) 못 본 척하지 않겠다"고 답하고 즉각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 무장 병력 2천 명을 투입함으로 러시아군의 크림 반도 점거가 시작됐습니다.
3월 17일 크림 자치 공화국은 독립과 러시아 합병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하였고, 96.77%의 압도적인 찬성을 통해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과정은 참 거시기하고 국민투표가 얼마나 공정하게 치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합병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압도적 찬성에 의한 것이었으니 침공으로 먹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수도 있겠습니다.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 후에도 친 러시아 지역인 동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자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 독립 정부 수립을 선포한 후 계속 중앙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여왔는데, 며칠 전 러시아는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속하고 싶지 않은것이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 우크라이나에 속하고 싶지 않은 것이나 도긴개긴으로 보입니다. 그냥 크림 반도와 동부 지역은 러시아에 넘겨주면 차라리 순리가 아닐까 싶은데, 또 그렇게는 안하네요. 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할 공업 부문을 포기하고 농업국으로 남고 싶지 않으니까 버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지난 세월의 과정이나 민족적 상황을 보면 이 나라도 참 복잡하고, 이해 관계가 정반대로 상충하는지라 전쟁이 나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닌데, 그래도 전쟁은 비참한 것이라 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더라면 참 좋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네요. 침공을 막아 보려고 서방의 주유 나라들이 모두 강도 높은 경제 제재 (sanction) 를 가하겠다며 경고했으나, 러시아는 콧방귀만 뀌었습니다. 뉴욕 타임즈의 표현에 의하면 "Russia right now is sitting on quite a pile of extra cash. They have a war chest." (러시아는 지금 여분의 현금 더미 위에 앉아있다. 그들에게는 군자금이 있다)
40일 전 워싱턴 DC 소재 연구기관인 CSIS (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가 러시아의 침공 경로를 예측한 것이 있었는데, 이 경로 전체 지역에 걸쳐 동시에 침공을 했군요.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비핵화를 통한 안전보장책임의 약속을 이행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보호 받지 못한다면 핵보유국들은 "믿을 건 핵 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힐 것이고, 결국 비핵화의 설득명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침공을 일찌감치 예측한 미국이지만 대응은 상당히 소극적입니다. 전쟁에 몸을 사리는 민주당인데다 바이든 현 대통령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말만 할뿐 실질적으로는 발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6개월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을 때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발을 빼버려 순식간에 먹혀 버리도록 방치했고요.
우크라니아가 진즉 NATO에 가입했더라면 좀 더 확실한 지원을 받았을텐데, 미국을 포함한 서방 나라들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추가 배치는 하지만 국경을 넘어 들어가 도울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합니다. 국제 외교는 국내 정치 이상으로 복잡한 방정식이라 누가 우크라이나 상황에 속시원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만, 사실 우크라이나로서는 NATO에 가입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을 하면서 "♪♫•*¨*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 ♪♫•*¨*"를 반복했던 우유부단함(?)도 현 사태를 초래한 큰 이유라고 봐야겠습니다. 국력 없는 나라의 비참한 현실이 남 이야기로 보이지가 않아 짠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먹어 버리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난번 크림 반도 합병때 그랬듯 장기간 경제 제재를 가하기는 할 것이고 러시아가 그로 인해 타격을 받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원래대로 돌려 놓을까요? 그럴 생각의 여지가 있었다면 푸틴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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