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내용 요약
제1부 인지혁명
- 전형적인 진화론의 입장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솔로엔시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호모 데니소바,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터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인류 종들을 나열하고 끝으로 현존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를 소개한다.
- 저자는 나열한 여러 종들이 직선적인 진화의 단일 계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공존했던 것이라고 주장한 후 왜 그럼 지금은 사피엔스 만이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인지혁명이란 유일하게 사피엔스에게만 등장했다고 믿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저자는 진화론자이므로 이 인지혁명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로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 덕이었다고 믿는 학설을 따른다. 인지혁명은 집단 개체수 150이라는 한계를 유일하게 뛰어넘어 공동목적을 공유하는 대규모 집단을 가능케 했다.
- 당시 사피엔스들은 수렵채집(hunt & collect)을 통해 생존했다.
-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했는데, 발굴된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 시기들이 사피엔스가 그곳에 정착한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피엔스가 호주에 진출한지 몇천년 사이에 50Kg이상되는 24종 가운데 23종 멸종. 4천년전 멸종한 북극해 랭겔섬의 매머드, 아메리카에 도착한 지 2천년 이내에 북미에서는 47속 중 34속, 남미에서는 60속 중 50속 멸종, 약 1500년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갑자기 사라진 코끼리새와 자이언트 여우원숭이 등)
제2부 농업혁명
- 현대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 이상은 밀,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 등에서 얻어진다.
-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은 BC 9500~8500사이에 세계 각 지역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저자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가 정착, 식량공급 증가, 출산 증가등을 얻었지만, 결과로 얻은 삶의 실상이 아마도 더 바쁘고 여유 없는 일과, 밀집된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 증가, 흉년과 자연재해시 더 높은 기아의 확률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 동의한다.
- 농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목축은 오늘날 각각 10억 마리의 양/돼지/소 그리고 무려 250억 마리의 닭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었는데, 개체수와는 역으로 이 가축들은 자연수명의 1/50 정도에 불과한 삶을 살고 도살 당한다. 저자는 "숫적인 진화적 성공(?)과 개체 고통간의 괴리"가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본다.
- 농경을 중심으로 커진 사회는 지배자와 엘리트를 출현시켰고 이들이 농부로부터 가져간 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소수의 이야기들 뿐이다.
- 농업혁명 이후 생물학적 협력본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도시와 국가와 제국 규모의 협력망을 가능케 했던 두가지는 "상상의 질서 창조"와 "문자체계의 고안"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보의 양은 문자의 발명과 검색기술의 개발로 이어졌다. 많은 쓰기 체계가 독자적으로 발달했지만 수메르,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은 문자기록의 보관및 검색 기술면에서 뛰어났었기에 지금까지도 가치가 남아있는 것이다.
- 저자는 "상상의 질서"가 "공통의 신화"로 이루어진 것인데 BC 1776년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과 AD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신화"의 예로 들며, 서로 상반된 내용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진리라고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불평등한 위계질서를, 독립선언문은 평등과 자유라는 것을 진리화 한다.
- 역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차별 (자유민과 노예, 인종, 부자와 가난한 자)이 존재했고 각 사회의 엘리트들은 그 차별이 타당한 합리성과 객관적 능력차이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며 사회의 필요한 위계질서라고 종교적 과학적인 신화를 만들어 주장해왔다. 하지만 신분, 인종에 따른 근본적 능력차는 증명된 바가 없고 대부분의 부와 빈곤은 그저 세습된 것일뿐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물론 한몫 하지만 대부분의 재능은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정도의 차이일뿐 대규모 사회 중 차별을 완벽히 없앤 곳은 아직까지 없었다. 차별을 정당화하는 입법은 불평등한 기회와 관습으로 뿌리를 내려 법이 철폐된 후에도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를 잡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미국의 흑인 문제이다.
제3부 인류의 통합
- 인간의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작고 단순한 문화들이 점차 뭉쳐 더 크고 복잡한 문화로 변한 것이 방향성이었다.
- 지난 몇세기간 모든 문화는 서로간의 영향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문화가 하나도 없다.
돈
-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 질서를 통한 지구적 통일 과정이 BC 1세기 이후로 진행되어 왔는데 그 보편적 질서는 바로 "돈"이다.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닌 심리적 구조물이다. 각 나라의 크게 다른 문화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들 금에 대한 믿음을 공유한다. 다른 두 지역이 무역으로 연결되는 순간 수요와 공급의 힘에 의해 점차 가치가 평준화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하는 반면 돈은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 돈은 지역 전통, 친밀한 관계, 인간의 가치를 "수요와 공급"의 냉정한 법칙으로 대체해왔다. "돈으로 사거나 팔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믿음은 돈에 의해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았으며 공동체와 가족에 관련된 것 조차 결국 돈에 팔려버린 수많은 예가 있다.
제국
-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수많은 소수 문화는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어 왔고,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제국의 후예들이다.
-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정치적 욕설이지만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 바로 제국이었다. 제국은 더 강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부 분열로 무너지기 전까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였고 붕괴된 제국은 새로운 제국으로 이어졌다.
- 제국의 일반적 수단은 전쟁, 노예화, 국외 추방, 대량학살이다. 이런 암울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등 인류문화 성취의 대부분이 제국이 분배한 정복과 착취의 이익을 기초로 얻어진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표준화가 황제에게 대단히 유용했기 때문이다. 제국은 유혈사태를 포함한 모든 행위가 피정복자에게 더 큰 이익이 되는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의 집행, 도시 계획, 도량형 표준등 그 이득이 현저한 것도 있었고, 세금, 징집, 황제 숭배등 의문스러운 것도 있었다.
- 제국은 복속시킨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의 용광로였다. 인도의 경우처럼 끝까지 동등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로마 제국, 아랍 제국, 중국 제국과 같이 동등함을 이룬 경우도 있었다.
- 21세기 들어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특정국적의 사람이 아닌 인류전체의 인권과 인류 전체의 이익이 중요한 것이라면 2백개의 독립국가보다는 단일 세계정부가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종교
-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였다. 종교가 맡은 핵심적 역할은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 대부분의 다신교(多神敎, polytheism)가 여러신들의 배후에 있는 최고권력 (전능한 힘, 단 하나의 원리)을 인정했다. 일신교(一神敎, monotheism)와 구별되는 점은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권력은 관심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아, 인간의 평범한 삶에 개의치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부분적 권력을 가진 신들에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 로마인들은 피정복 민족들의 신들을 관용했다.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관용을 거부했던 유일한 신은 일신교적이고 개종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신이었다. 기독교 신앙 분파의 첫 리더 중 하나였던 바울은 만일 우주의 최고 권력이 관심과 편견을 지니고 있으며 수고롭게도 피와 살을 가진 존재로 화신하셔서 인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면 이것은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할 이야기이므로 예수에 대한 좋은 말씀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했다. 바울의 주장은 비옥한 땅에 씨를 뿌렸다.
- 하지만 다신교 내에서 애니미즘이 계속 살아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신교 내에서 다신교 역시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신교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일신교들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대문으로 잡신들을 내쫗고서는 창문을 통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자들로 구성된 나름의 만신전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은 다신교의 만신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기독교 성인들은 옛 다신교의 신과 단순히 닮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신들이 변장한 경우도 흔했다.
인본주의
- 지난 300년간 유신론적 종교들이 중요성을 점점 잃어가면서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들과 같은 자연법칙 종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데올로기라고 칭하지만,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다는 면에서 종교와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분파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모든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원천이다. 이런 것들을 통칭하여 "인권"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신성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에 의지하지 않을 경우, 사피엔스 개개인이 뭐 그리 특별한지 설명하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이들은 개별 인간이 아닌 전체를 신성하게 보며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나치다. 나치의 주된 야망은 인류의 퇴화를 막고 진보적 진화를 부추키는 것이었다.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 이 우월한 인종을 보호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1933년 당시 서구 엘리트 대부분이 갖고 있던 믿음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무덤뿐 아니라 인종차별주의 전반의 무덤을 팠다. 이후 인종차별주의는 서구에서 신뢰받지 못했다. 나치는 인간을 혐오하지 않았다. 나치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약자를 원조함으로써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생존을 허용할 뿐 아니라 번식할 기회를 주어 자연선택을 약화시켰다고 했다. 히틀러와의 전쟁이 끝난 후 60년간, 인본주의를 진화와 연관시키는 것은 금기였다.
-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조와 생명과학의 최근 발견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백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인간의 신성한 내적 본성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약화시켰다.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제4부 과학혁명
수학
-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 현대과학에는 도그마가 없지만 공통적인 연구기법이 있는데, 경험적 관찰들을 모은 뒤 수학적 도구의 도움을 받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관찰들을 연결하는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때 과거 전통에서는 이야기를 써서 이론을 꾸며냈지만, 현대과학은 수학을 사용한다.
- 1744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 2명이 목사 미망인과 고아를 위한 생명보험기금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야코프 베르누이의 "큰 수의 법칙"을 비롯한 당시 통계와 확률분석법을 동원해 목사 사망 통계에 따른 보험비와 수령액을 결정했다. 이 기금은 현재 자산가치가 1천억 파운드(100 billion) 가 넘는 세계 최대의 연금및 보험회사가 되었다.
- 정밀과학을 향하는 흐름은 대세이고, 정밀하다는 말의 정의는 수학적 도구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제 통계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기초 필수 과목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100% 정확한 이론이 없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진리인가의 여부가 아닌 "유용성"이 시금석이 되었다.
과학과 자본주의
- 동서양을 막론하고 19세기까지만 해도 전쟁의 승패는 조직적 병참과 전략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과학의 산물이다. 세계의 군대는 인류의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의 대부분을 선도하고, 자금을 대고, 방향을 조종한다.
- 많은 과학자들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행동한다. 그러나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 1750년까지는 지중해의 오토만 제국, 페르시아의 사파위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청왕조등 세계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황금시대였다.
- 그후 유럽인들이 점차 세를 확장해 1900년에는 세계 경제와 대부분의 땅을 확고하게 지배했다. 1950년 서유럽과 미국을 합친 생산량은 전세계의 50%가 넘었고 중국은 5%로 줄어들었다.
- 그러나 당시 기술 격차는 크지 않았다. 아시아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적 발명이 아닌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것들을 영국과 이미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유럽이 300년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였다. "현대 과학"이 추구한 것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에서 암시되는 새로운 발견을 향한 탐험과 관찰의 자세였고 이것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으로 이어져 식민지 개척을 향한 무한한 욕심을 낳았다.
과학과 제국주의
- 정복당한 원주민들에게 식민지는 지상의 지옥이었다. 원주민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과 정복자를 통해 들어온 전염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첫 항해 27년 후 멕시코에 들어간 550명의 스페인 군대는 수백만명의 아즈텍인들을 4년만에 인종청소했다. 카리브해의 원주민들은 20여년만에 완전히 사라졌고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 빈 자리를 수입한 아프리카인 노예들도 채웠다. 10년 후에는 168명이 페루로 가서 잉카제국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10만 여명의 민간 영국인들은 3억명의 인도인들을 2세기 동안 지배, 억압, 착취했다.
- 제국에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의료, 교육, 철로, 운하, 정의, 번영등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래서 제국주의자들은 거대한 착취사업이 아닌 타인종을 위한 이타적 프로젝트이자 '백인의 짐(burden)'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압제와 착취의 이야기도, 백인의 짐 이야기도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간단히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실용적 지식,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술적 장치를 공급했다. 이런 기여가 없었다면 유럽인들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역으로 제국의 지원이 없었더면 근대 과학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신용과 자본주의
-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한 유일한 단어는 '성장(growth)'이다.
- 오늘날 은행은 보유액의 10배까지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즉 모든 예금의 90%는 실제 화폐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금주들이 갑자기 전액 인출을 요구하면 은행은 즉시 파산하게 된다. 대출금에 의존한 모든 기업은 이처럼 상상된 미래의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시스템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재화를 사용하는 것에 동의해서 생긴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줄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봤다. 즉 파이는 정해져 있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은 것이다. 신용은 "오늘의 파이와 내일의 파이 간의 차이"다. 진보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 현대 자본주의의 경제적 핵심은 "이윤은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윤리의 등장이며,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이 그 기초가 되었다. "자본"과 "부"는 다르다. "자본"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하며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되는 것이다.
- 중세 귀족들은 관대함과 과시적 소비라는 윤리를 신봉하며 "부"를 누렸고 근대 엘리트는 사치성 소비가 아닌 투자에 몰두하며 "자본"을 늘렸다. 자본주의의 핵심 신조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라는 것이다.
- 근대과학은 자본의 투자를 받아 발전했고, 자본은 과학발달을 통해 경제를 성장 시키는 사이클로 계속 이어져왔다. 최근 몇년간 정부와 은행은 미친듯이 돈을 찍어 내어 값싼 신용을 시스템에 집어넣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만약 연구실들이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 애초에 신용시스템을 만든 것이 유럽 제국주의였다. 왕과 정부에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투자를 하라고 하면 모두가 기꺼이 한다. 1484년 콜롬부스는 새 무역로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고 아메리카 정복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림으로써 자본주의 마법의 순환의 시초가 되었다. 신용대출은 새 발견을 위한 자금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했으며, 수익은 신뢰는 만들어냈고,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이어서 유럽인들은 잠재적 투자자의 숫자를 늘리고 자신들이 발생시키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합자회사를 만들었다.
- 1568년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 군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후 80년간에 걸쳐 독립뿐 아니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함대를 완전히 몰아내고 세계 해양항로의 주인이자 유럽 최고 부자나라로 등극했는데, 그 성공의 비결은 역시 신용에 있었다. 스페인 왕이 신뢰를 갉아먹는 동안 네덜란드인들은 어김없는 부채변제, 사법제도의 독립, 사유재산권 보호를 통해 신용을 쌓아 암스테르담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대륙 금융의 메카로 급성장 시켰다.
- 네덜란드 제국을 세운 것은 국가가 아닌 상인들이었다. 당시 유럽 주요 도시 대부분에 주식거래소가 설립되었는데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주식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그 시기에는 민간회사가 대포, 함선을 구매하고 군대를 고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로 진출했고 결국 인도네시아 대부분이 이 회사의 식민지가 되어 200여년간 통치를 받았으며, 그후 네덜란드 국가로 인계되어 150년간을 더 통치받았다. 이러한 근대 초기 역사는 기업이 이익을 무한히 추구하게 놔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말해준다.
-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반대편인 대서양으로 진출했다. 미국 허드슨강 입구에 후에 뉴욕으로 개명한 뉴암스테르담이란 정착지를 건설했는데, 이 때 원주민들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wall)이 지금의 Wall Street가 있는 곳이다.
- 17세기말부터 네덜란드가 쇠퇴하면서 생긴 공백을 놓고 프랑스와 영국이 경쟁을 벌였는데, 영국이 금융제도의 신뢰를 잘 쌓아올린 반면, 프랑스는 "미시시피 버블"이라는 사상 최악의 금융붕괴를 겪으며 신용을 잃었다. "미시시피 버블"은 1717년 루이 15세 당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사장인 미시시피사가 아메리카에 뉴올리언즈 시를 건설하면서 엄청나게 부풀린 장밋빛 선전과 정치적 연줄로 투자가들을 끌어모아 2년사이에 주식이 200배나 뛴 후에, 폭락한 사건이다. 상황을 수습하려고 중앙은행이 주식을 구매했지만 역부족이되자 화폐를 추가 발행했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아 결국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중앙은행과 재무성은 돈은 없고 무가치한 주식만 보유하게 되었다. 손자 루이 16세가 왕위를 이어 받았을때에는 프랑스의 연간 예산 절반이 대출금 이자지불금이었고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
- 프랑스 해외 제국이 무너지는동안 급속히 팽창한 대영제국 역시 대체로 런던 주식거래소에 기반을 둔 민간 주식회사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었다. 인도 아대륙을 정복한 것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한때 35만명에 이르는 막대한 군대를 유지하며 막강한 인도 제국을 약 1백년간 지배했다.
- 식민지의 국유화가 이루어졌지만, 서구 정부는 자본주의자들의 노동조합이 되어 사장과 대주주들의 이익을 국가가 지켜주었다. 가장 악명높은 사례가 영국과 중국간의 제1차 아편전쟁이다.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보다 못한 중국이 마약 거래를 금지하자 마약 회사 주식을 보유한 영국의 의원들과 각료들이 압력을 넣어 영국 정부는 '자유 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벌였고 승리해 1997년까지 홍콩을 통치하며 마약 거래 기지로 계속 사용했다. 19세기 말 중국 인구의 10%가 마약 중독자였다.
- 오늘날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말한다. 그래서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자본주의의 위험
- 열렬한 자본주의자는 자본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지만 역으로 정치가 자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최대의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믿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시장을 적절히 규율하지 않으면 신뢰의 상실, 신용의 축소,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1719년 미시시피 버블과 2007년 미국 주택시장 버블의 결과는 이에 대한 교훈이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론상 완벽한 논리같지만, 현실에서 자본가들은 독점을 할 수도 있고 노동자 탄압을 할 수 도 있다. 근대 초기 유럽 자본주의의 부흥은 대서양 노예 무역과 함께 일어났는데 이 책임은 인종차별이 아닌 고삐 풀린 시장에 있었다. 유럽은 아메리카를 정복한 뒤 금광, 은광을 개발하고 농장을 건설했다. 농장에서 노동집약적 일을 할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노예를 데려오기 시작해서 16~19세기간 약 1천만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수입되었고 이중 70%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는데 대부분은 노예는 짧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유럽인들의 달콤한 홍차, 캔디, 케이크, 쿠키등의 폭발적인 수요와 그에 따른 막대한 이윤을 위해 자행된 일이었다. 노예무역은 정부나 국가에서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았다.
-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될 때 이것은 쉽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경영자들은 아프리카인이나 인도네시아인이나 인도인의 고통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어도,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 19세기에도 자본주의 윤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노예무역을 막기 위해 설립된 비중부 인도주의 기구는 이윤추구 목적의 기업으로 변했고, 고무 산업 육성을 위한 고무 채집에 휩쓸려 콩고 인구의 20~33%가 학살 당했다.
에너지와 원자재
- 경제성장에는 에너지와 원자재가 필요하다. 만일 이것들이 고갈되는 때가 온다면, 전체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다.
- 산업혁명은 화약,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등 한 에너지의 유형을 다른 유형으로 바꾸는 것에 있었다. 몇 십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원자재 부족도 함께 해결되었다.
- 산업혁명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와 원자재라는 전대미문의 조합을 통해 폭발적인 생산성의 증가를 초래했는데 그 성장은 트랙터를 이용한 농사, 냉장고/선박/항공기를 이용한 저장과 수송, 좁은축사/사료/약품을 이용한 축산등 2차 농업혁명으로 나타났다. 현대의 동물산업 역시 악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의 방법으로 생겨나 일반인의 무관심 속에 커진것이다. 기계화된 농작물 재배와 산업적 가축사육은 현대 사회경제 질서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은 고작 2%의 농가에서 생산한 것으로 먹고도 남아 수출까지 한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핍 속에 살았기에 금욕윤리와 검약이 중요한 윤리였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과 그에따른 소비량을 늘려야만 한다. 파국을 막기위해 "소비지상주의"라는 새로운 윤리가 등장했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 오늘날 세상에 남아 있는 기린은 8만 마리, 소는 15억 마리; 늑대는 20만 마리, 개는 4억 머리, 침팬지는 25만 마리, 사람은 70억 명이다. 생태계 파괴는 자원 희소성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사피엔스는 필요한 원자재와 에너지를 확보하되 그 과정에 자연서식지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종을 멸종시킬지 모른다.
표준시간과 개인주의
- 현대 산업은 정밀성과 획일성을 신성시한다. 산업혁명은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을 시간표와 조립라인으로 변화시켰다. 시간표 체계가 확산된 결정적 고리는 대중교통이었다. 편차가 큰 지역시간별로 출발시간만을 명시한 마차 시간표에서 시작되어 상업용 열차가 운행되면서 영국 열차회사들이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계에 맞추기로 정한 것이 표준시의 출발점이 되었다.
- 산업혁명 이전의 일상은 핵가족, 확장된 가족, 지역 공동체라는 틀 숙에서 이루어졌다. 가족과 공동체에 속해 사는 삶은 꼭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억압은 오늘날 국가와 시장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와 시장은 점점 큰 권력을 가졌고 가족과 공통체의 결속력은 약화되었다. 가족 간의 유혈 복수는 경찰과 법원이 대체했으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의사와 이익을 옹호하게 되었고 부모의 권위는 완전히 후퇴하였다. 기존의 가족 공동체가 죽은 후 생긴 감정적 공백을 국가와 시장은 각각 "국민"과 "소비 공동체"라는 상상의 공동체로 채웠다. 돈/유한회사/인권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소비 공동체 역시 거짓말이 아닌 상호 주관적 실체이다.
-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 "질서"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의미했지만 지난 2세간의 너무도 빠른 변화속도로 인해 이제 사회 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으로 바뀌었다. 전통질서 수호나 황금 시대로의 회귀가 아닌 구세대를 파괴하고 더 나은 것을 건설하겠다는 약속이 주를 이루는 사회가 된 것이다.
평화의 시대
- 그러나 현대사는 전에 없던 수준의 폭력과 공포만의 시기가 아니라 같은 수준의 평화와 평온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70년은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폭력은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 일으키는 국지적 반목이 원인이었는데 국가의 등장으로 폭력은 감소했다. 심지어 가혹한 독재정권 아래일지라도 타인의 손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훨씬 낮아졌다. 무엇보다 국가 간의 폭력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45년 지구의 1/4을 지배하던 영국은 비교적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제국에서 은퇴했다. 프랑스도 부분적으로는 유혈사태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평화롭게 철수함으로 현지에 안정적인 국가들을 남겼다. 1989년 소련의 붕괴는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역사상 유례 없이 신속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공산주의가 파산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힘을 포기하고 실패를 인정했다. 1945년 이래 UN의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 중 정복 당해 사라진 나라는 없다. 아프리카는 많은 분쟁이 있었지만 대부분 내전과 쿠테타였다.
- 전쟁이 거의 사라진 이유는 (1) 전쟁의 댓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이젠 큰 전쟁은 인류의 집단 자살일 뿐이다 (2) 전쟁의 비용은 치솟았고 그 이익은 작아졌다. 과거의 부는 물질적인 것이라 전쟁을 통해 약탈하고 점령할 수 있었으나 현대의 부는 인적자본과 조직이라 무력 정복이 불가능해졌다. 아직 남아있는 국제적 전면전은 유전과 같은 구식 재화에 관련된 것이다. 대외 교역과 투자가 매우 중요한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오히려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3) 세계정치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의 독립성을 약화시켜 일방적인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행복
- 과학과 산업혁명 덕에 인류는 초인적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이것은 사람이 역사를 향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잘 아는대로 새로운 재능, 행태, 기술이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 행복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정의는 '내 삶이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느끼는 즉각적인 기쁜 감정이나 장기적 만족감'인데 몇가지 발견된 내용들은 (1)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만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2) 질병이 행복감을 낮추지만 단기적이다. 점차 악화되거나 지속적인 고통이 없다면 행복감은 회복된다 (3) 가족과 공동체는 돈과 건강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행복은 부/건강/공동체등 객관적 조건 자체보다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행복은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수가 존재하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람, 전사, 성자, 예술가에 대해 말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 세계의 생물학자들은 지적설계(창조론) 운동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과거에 대해서는 생물학자들이 옳지만 미래에 대해서라면 역설적으로 지적설계 옹호자들이 맞을지 모른다.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는 일이 활발히 진행중인데, 첫째가 생명공학, 둘째가 사이보그공학, 셋째가 비유기물공학이다.
- 현대는 이미 생물학적 족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중이며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지만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예방과 치료가 아닌 인간 능력의 강화에 의학이 몰두한다면, 죽음을 넘어서는 불멸을 위한 과학에 몰두한다면 그 혜택은 모든 인간에게 돌아갈까 아니면 초인간 엘리트 족속을 낳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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