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시대 (Age of Discovery) - 서평
발견의 시대 (Age of Discovery)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이언 골딘 (Ian Goldin) 교수와 크리스 쿠타나 (Chris Kutarna) 박사가 함께 쓴 책입니다. 총 500페이지의 책 중 참조문헌 목록 (reference list)만 무려 53페이지의 분량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역사 문헌과 데이터를 수십명의 석학들의 도움을 받아 축약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과학과 기술을 다시 천시(賤視) 혹은 홀대(忽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나 기술자는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서울대 공과 대학원생 중에 서울대 출신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지방대 출신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게 된지가 이미 한참 됩니다. 돈 많이 버는 의사, 변호사들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인재들이 과학과 기술을 기피하기 시작한 한국의 미래는 절대 밝지 않겠지요. 이런 한국의 상황에서 한국의 이과생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은 먼저 소위 "르네상스" (the Renaissance, 문예 부흥기) 라 칭하는 14~16세기 유럽의 "집단적 번영의 시대" 중에서 1450~1550년 사이의 한 세기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 중 번영의 시대를 열게 했던 요인들을 정리하고, 21세기가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유사한 요인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상기 시키면서 "신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신 르네상스"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극복하고 경계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특별히 과학과 기술의 신 르네상스를 꽃 피우게 하기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하는데요, 젊은 이과생들과 양심 있는 정치인들이 마음에 담아두었으면 하는 내용입니다.
- 천재성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기 때문에 기득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점점 안전지향적이고 보수적이 되어가는 국가 연구지원의 1/3 이상을 독창적이고 위험 부담이 크며 불확실한 연구를 하는 뛰어난 지원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한 사람이 겪을 부담을 줄여주는 취직/이직 기회의 개선, 과도하게 대기업 위주로 치우친 지적재산권 보호의 재 조정, 규제의 간소화를 통한 창조적 자원낭비의 최소화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Florence) 처럼 천재성이 집중되고 공유되고 발휘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 이미 성장한 혹은 급격히 성장하는 국제 도시에서 주류의 흐름을 경험하라.
책의 핵심 내용은 아니지만, 7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소개된 15세기 피렌체 도미니코수도회 출신의 포퓰리스트 (populists)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Girolamo Savonarola) 의 이야기가 요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한 상황과 많은 유사성이 있는 것 같아 일부분을 옮겨 적어 봅니다.
"사보나롤라는 민중을 상처 입히고 두려움에 떨게 한 사회 엘리트 계층의 무능함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종말론적 메시지만으로 대중 혁명을 이끌어 냈고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뒤 피렌체공화국을 차지하고 스스로를 사실상 왕으로 세웠다."
"사회 시스템은 함께 살기 위해 공동의 규범 및 가치로 견고히 세운 합의다. 공평성, 정의, 도덕적 책임, 법적 책임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합의의 심장부에 있는 개념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가득한 사회는 가연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사회는 없다. 지도층이 지키지 않은 약속이 쌓여서 제대로 된 불꽃으로 점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돌이켜보면 피렌체 엘리트 계층은 깨뜨린 약속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민중이 여전히 복종하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음이 분명하다. 피렌체 지배층은 자신들이 '공언한' 가치와 '행동으로 표출한' 가치 사이에 모순이 쌓이도록 내버려뒀다. 겉보기에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환멸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사회 최상층에 자리한 사람과 제도가 나머지 이들을 무시한다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정서가 존재한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공공복지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과 제도가 대다수를 살리기보다 소수를 배 불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존재한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대중은 현시대에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했다고 느낀다."
"이 새로운 서사는 대중이 불안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러한 감정이 대중의 신뢰가 배반당한 것에 대한 정당한 반응임을 '증명'하며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를 타인에게 '전가'한다. 이 새로운 서사의 핵심은 '충성심'이라는 훨씬 더 원초적인 감정에 호소한다. 이 충성심 서사의 강점은 중도파가 저지른 일을 원상 복구해서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는 극우 및 극좌 정치인이 선거에서 계속 인기를 얻고 승리하는 현상에서 드러난다. 이미 정립된 과제와 규범을 방어하는 목소리를 내려는 공인이 있으면 충성심 서사를 적용해 손쉽게 '불충하다고' 매도해버림으로써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는다. 이 충성심 서사에서는 공동체 구성원이 특정 피해나 고난을 감수하더라고 광범위한 시스템적 위험을 완화하자는 발언조차 반역 행위가 된다.
"사보나롤라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추종자들에게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글의 목차를소개합니다
1부 21세기의 신 르네상스 (드디어 도래한, 인류의 두 번째 황금기)
1장 지금부터 펼쳐질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지리학 | 신의 계시부터 인간의 관찰까지 | 이념부터 시장경제까지 | 새로운 미디어 매체 | 혁신적 인쇄술 | 신 구텐베르크 혁명, 디지털화 | 인류의 변곡점
2장 뒤얽히는 세계
무역의 뒤얽힘 | 금융의 뒤얽힘 | 사람의 뒤얽힘 | 기술의 뒤얽힘 | ‘연결’을 뛰어넘는 ‘뒤얽힘’이란
3장 가능성으로 가득 찬 신인류, 비트루비안 맨
비참한 극빈층이 풍요로운 중산층으로 | 건강하고 부유하며 똑똑한 인간들 |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인류 | 14세기 황금기의 얼룩, 양극화 | 21세기의 새로운 얼룩 |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순간
2부 폭발하는 천재성: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
4장 신 르네상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다 | 놀라울 정도로 ‘천재’가 흔한 시대 | 인류의 도약 | 생명과학: 의료부터 유전자 변형까지 | 유전학: 포스트휴먼의 탄생 | 물리과학: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다 | 천재성이 폭발하는 시대적 조건 | 더 빠르고 풍부하게
5장 인류의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라
지식의 팽창 | 우리는 더 지혜로워졌을까 | 사회 인식의 한계 | 암울한 통계, 측정되지 않은 발전 | 멀고 먼 유토피아 | 꿈꾸기를 포기한 기업들 | 모든 한계를 깨부수는 ‘천재성’ | 후대에 남길 것들
3부 번성하는 위험성: 인류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법
6장 무찔러야 할 거대한 적들
전염병의 발견 | 풍요의 딜레마 | 새로운 천연두 |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 극악무도한 범죄와 재앙적 자연재해
7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
포퓰리스트의 탄생 | 대중의 환멸과 극단주의 | 분열하는 세계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 잃어버린 선량함 | 천재성과 위험성의 갈림길에서
종장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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