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함의 베일 - 발췌
from 권연경 著 "갈라디아서 산책"
친숙함은 양날의 칼이다.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이 없다는 점에서 좋기도 하지만, 내 앞의 대상에게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생생한 관심을 거두게 한다는 점에서 친숙함은 종종 지속적인 앎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누군가 나에게 '아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를 향한 나의 관심은 절실함을 잃는다. 그래서 나와 어떤 사람의 관계는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되는 순간의 수준에서 고착되기 쉽다. 물론 내가 친숙하게 느낀다는 말과 내가 그 대상을 제대로 안다는 말은 다르다. 대개의 경우 내가 느끼는 친숙함이란 상대방을 두고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에 대한 친숙함일 뿐,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친숙함은 아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친숙함의 베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친숙함의 베일"은 인간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앎'에는 동일한 위험이 존재한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우리의 지식은 그 수준에서 고착된다. 하지만 더 알아야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무언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친숙함의 느낌은 위험하다. 실제로 알아야 할 것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자주 들어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해진 이름만 벗기고 나면, 막상 할 말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얼굴과 이름 아래 정작 알아야 할 것이 많이 있는데, 내가 어딘가에 선을 그어 버리고 나 스스로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학의 기능 중 하나는 '낯설게 하기'다. 익숙한 일상을 다소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함으로써 "친숙함의 베일"에 가려진 무언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문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꾸며 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물음으로 우리 삶을 다시 보게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삶의 각도를 살짝 비틀어 줌으로써,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발명가들의 말로 하자면, '발상의 전환'이다. 뻔히 아는 돌도 뒤집어 보려는 호기심, 혹은 이미 아는 것도 다시 물을 수 있는 겸허함이다.
성경을 읽는 우리의 태도나 복음을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이런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식이 구원의 진리에 관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착각의 대가가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처음 성경을 대하는 심정으로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다시금 뒤집어 본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반복에 의한 학습 효과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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