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식당 "Auberge du Soleil" in Napa Valley
결혼 기념일을 맞이하여 정말 오랜만에 1박으로 짧게나마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근 2년만인듯 합니다. 한 가족이지만 취향이 제각기인지라 공통 분모가 그리 많지 않은데, 다행히(?) 식도락에는 약간의 합의점이 있습니다.
좋은 식당이 되려면 많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지요. 당연히 맛이 가장 기본인데 의외로 그 맛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곳이 무척 적습니다. 메인 셰프의 이직, 불안정한 요리팀, 경영진의 문제등 여러가지가 결국 맛으로 드러나게 되지요. 그래서 아주 괜찮은 노포가 아닌 곳은 거의 다 맛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인데, 미국에는 노포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가성비, 서비스, 분위기등 많은 요소들이 잘 유지되어야만 하겠지요.
북가주 (Northern California)에서 직접 가 본 식당중 그런 모든 요소를 만족시켜서 언제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데요, 그 중 저희 가족의 최애 식당은 "Auberge du Soleil" (오베르쥬 듀 솔레일, 태양의 여인숙이란 뜻)의 The Restaurant 입니다. 2015년에 처음 가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후로도 1년에 한두번씩 가곤 했지요. 예전에 "Napa의 경치가 있는 레스토랑 3선" 이라는 제목으로 가격대별로 하나씩 추천의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때 $30~$50의 비싼 곳으로 추천했던 곳입니다. 최소 1달 전에 사전 예약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끔 취소한 자리가 나니까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
이 식당은 하루 숙박비가 무려 $1,300~$5,500에 (150만~600만원) 달하는 초 럭셔리 리조트 안에 있는데요, 현재 총 20여개의 초 럭셔리 리조트만을 운영하는 소규모 Auberge Resorts 그룹이 1981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모태가 바로 이 식당이었습니다. Napa시내에서 북쪽으로 27Km (25분 거리) 올라가서 Rutherford Ranch Winery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 서쪽 St Helena Fwy 고속도로 대신 경치 좋은 동쪽 Silverado Trail로 올라갔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주차요원 (valet parking) 이 차를 인계 받습니다. 무료이지만 미국 정서상 팁을 조금 주는게 맞겠지요. 주차장에서 본 외벽입니다. (2016년 11월 사진)
안으로 들어가면 조형물이 하나 전시되어 있곤 합니다. 이번에는 커다란 와인 오프너를 가져다 놓았네요. 예술적 감각이 남다른 작품은 아니지만 나파 밸리 분위기에 잘 어울립니다.
예전에는 큰 가위에 종이학을 얹은 것이었는데 다른 쪽으로 옮겨두었더군요. (2015년 12월 사진)
조형물 오른쪽으로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처음 갔던 2015년 12월에는 겨울비로 촉촉하고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였지요.
한 여름에는 처음 가본건데 의자들이 젖어 있지 않고 나무 그늘도 있어 또 다른 느낌으로 좋네요. (집에서 2시간 거리인지라 혹시 몰라 예약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가서 조금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면서 구경차 아래층으로 잠시 내려가봤습니다. 개인 파티용 공간이 있는데 아직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지라 비어 있습니다.
이 리조트에 식당이 2개가 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The Bistro and Bar" 입니다. 예약이 필수가 아니고, 메뉴도 파스타와 수제 버거, 샌드위치등 $20 중반대의 것들이 있어 지갑 걱정을 조금 덜어주지요.
왼쪽에는 "The Restaurant" 가 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13년 연속 별 1개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성비의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계가 별 1개입니다. 별 2 이상은 맛의 차별성보다는 음식 세공에서 판가름 나는 것 같아서, 최상급 요리사들이 들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 가격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만 곧 뱃속에 들어가 소화될 것에 그 정도의 돈을 쓰고 싶지는 않거든요.
다이닝 홀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들이 커다란 통나무 기둥들 사이로 손님들을 반겨 줍니다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이 실내 테이블에는 앉는 사람들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2015년 12월 사진)
왜냐하면 이 식당의 큰 매력 중 하나가 야외 테이블의 정취이기 때문이지요. (2016년 4월 사진)
이번에는 한 여름인지라 풍경 사진 찍기에는 햇빛이 너무 세서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요, 언제 가도 멋집니다. (2015년 12월 사진) 몇년 사이에 아래 조금 보이는 나무가 꽤 자라서 리조트의 정원은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어도 나파의 풍광이 워낙 좋아서 여전히 매력적인 식탁의 풍경이었어요.
오프닝하자마자 예약 시간보다 15분 일찍 자리를 내어 주어서 안쪽 자리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거리나 비용 면에서 아무때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라 대부분 잘 차려입고 오지만, 캐주얼한 평상복 입고 가도 무방합니다.
테이블에 물컵과 빵접시 위치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아서 누구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네요 😅 쉽게 외우는 방법은 양손으로 OK 사인 모양을 만들어 왼손은 b (bread, 빵), 오른손은 d (drink, 음료수) 입니다.
식전 빵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빵순이 마눌님의 지론에 의하면 버터에 굵은 소금 뿌려 나오는 곳 치고 빵 맛 없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고 합니다. 😜 빵은 1시간 거리의 Della Fattoria Bakery에서 납품 받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빵은 아니지만 잘 만든 좋은 빵입니다.
큰 아이는 셜리 템플 (Shirley Temple, 병조림 체리의 시럽에 스프라이트를 부어서 만든 탄산 음료)
작은 아이는 아놀드 파마 (Arnold Palmer, 아이스 티에 레모네이드를 부어 만든 음료). 저는 병콜라.
예전에는 단품 메뉴 (a la carte)가 있었는데 이제는 2 코스 (메인 + 전채/디저트 중 택일, $60) 나 3 코스 (전채, 메인, 디저트, $75) 만 주문할 수 있네요.
전채 요리 (starter) 들 입니다. 큰 아이가 주문한 White Corn Soup (흰옥수수 수프). 랍스터 (lobster)를 물냉이 (watercress) 로 맛을 내고, 브리오슈 빵 크루통 (brioche croutons, 빵을 정육면체로 잘라 버터로 바삭하게 구운 것) 과 같이 테이블로 가져와서 그 위에 흰 옥수수 수프를 부어 줍니다. 미국 옥수수는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초당 옥수수와 맛이 비슷합니다. 갓 수확한 옥수수와 랍스터가 어우려져 깊은 단짠의 맛을 내어주네요.
마눌님께서 주문하신 Potato Gnocchi (감자 뇨키, 이탈리아식 수제비). 자연산 버섯과 콩순으로 맛을 더하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Parmigiano-Reggiano, 원산지 오리지날 파마잔 치즈)를 얇게 썰어 뿌렸습니다. 5년 쯤 전에 JTBC에서 방영한 "쿡가대표 셰프원정대" 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십 대회에 초청 받은 프랑스의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 셰프가 "감자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를 알려주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홋카이도 감자 맛에 이미 깊이 매료된 바 있는 제가 먹어봐도 이런 맛을 감자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는게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제가 주문한 Cow's Milk Burrata. 완숙된 에어룸 토마토 (heirloom tomato), 방울 토마토, 잘게 썰은 줄기콩 약간, 작은 바질 (basil) 살짝 올리고 새콤 달짝지근한 발사믹 식초 (balsamic vinegar) 를 뿌린 후 부라타 치즈 한 덩어리 얹어 나왔습니다. 이건 뭐 재료만 있으면 제가 만들어도 될 정도로 간단한 음식이라 결국 식재료의 신선도와 질에 따라 결판이 나는건데, 채소들은 아침에 집 텃밭에서 딴 것 같은 싱싱함이 터져 나올듯 하고, 메인인 부라타 치즈 (burrata cheese)가 정말 발군이네요. 1시간 거리의 Cowgirl Creamery 에서 납품 받는 것인데, 집 근처의 수퍼마켓에도 이 회사 제품들이 여러가지 들어오지만 부라타 치즈는 보존성이 떨어져서 그런지 일반 소매로는 팔지 않는것 같아요.
작은 아이가 주문한 Sauteed Foie Gras (팬에 볶은 푸아그라 - 거위 간). 치폴리니 (cipollini, 미니 양파) 구운 것을 밑게 깔고 피스타치오 (pistachio) 갈은 것 약간 그리고 제철 체리 (cherry) 를 얹었습니다. 푸아그라는 차갑게 해서 버터처럼 빵이나 과자에 발라 먹기도 하고,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기도 하지요. 구웠을 경우 워낙 기름진 음식이라 레드와인 졸인 소스나 과일등으로 그 느끼함을 얼마나 잘 잡아주느냐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체리가 정말 잘 어울렸어요. 전채 요리중 최고였습니다.
메인 요리 (main dish) 들 입니다. 마눌님께서 주문한 Sonoma Chicken (소노마 닭). 나파 옆 동네의 또 다른 와인 지역 소노마에서 키운 유기농 닭 가슴살을 한쪽 면만 팬 (pan)에 강한 불로 튀겨냅니다. 아마도 저온으로 익힌 (Sous-vide) 후에 튀겨내는 듯 육즙이 넘치면서 겉의 바삭함이 환상적이에요. 스페인산 와인으로 만드는 쉐리 식초 (Sherry vinaigrette) 를 섞은 레드 와인 소스는 본연의 고기 맛을 살려주는 조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해줍니다.
큰 아이가 주문한 Heirloom Tomato Risotto (에어룸 토마토 리조토). 자연산 새우, 쑥 종류인 tarragon, 베이컨 등을 추가해서 만들었는데요 이날 먹은 것 중에서 유일하게 그저 그랬어요. 이날 음식들이 예전보다 간이 조금 센 편이었는데 이건 좀 짜기도 하고 훌륭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고요.
제가 주문한 Diver Scallops (자연산 가리비). 살구버섯 (chanterelles), 콩, 제철 옥수수 등을 볶은 것에 위 아래를 팬에서 튀겨낸 (pan seared) 가리비 조개를 얹어 나왔습니다. 가리비 신선도와 불조절이 핵심이지요. 제가 가리비를 좋아해 이전에도 몇번 주문했던 것인데 이날도 실망시키지 않네요. 제철의 초당 옥수수 맛도 잘 어우러지고요.
작은 아이가 주문한 Cabernet Braised Short Rib (와인에 삶은 갈비살). 카버네 쇼비뇽 레드 와인에 쉐리 식초를 추가한 소스에 갈비살을 넣고 흐물흐물해질때까지 삶아 낸 프랑스식 갈비찜입니다. 예전 단품 메뉴 시절에 메인 요리 중 가장 비쌌던 것이라서 ($43) 비용 면에서 보면 가장 실속이 있기도 하고, 고기 누린내 하나 없이 입에서 녹아 사라지는듯 부드럽습니다. 가리비 모양으로 나온 감자, 초당 옥수수, 베이비 양파등 모든 면에서 너무 조화롭게 훌륭한 맛입니다.
후식 (dessert) 들입니다. 제가 주문한 Valrhona Manjari Crémeux (크리미한 발로나 만자리 쵸콜렛). 초콜렛의 명가인 발로나(Valrhona)사의 대표상품 만자리 다크 초콜렛 (Manjari dark chocolate)을 크림처럼 만들고 단맛이 극히 절제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체리를 곁들여 나왔습니다. 달지 않고 거의 모카 커피에 가까운 쌉싸름하면서 진한 카카오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호평,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불호평을 받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콜렛에 과일향이 강한 것이 아주 맛있었는데 다른 가족들에게는 그리 호평을 받지 못했네요. 😅 덕분에 제가 혼자 거의 다 먹을 수 있었지요.
마눌님께서 주문하신 Ortiz Farm Blackberries (오르티즈 농장 블랙베리). 레몬 파이에 녹차 젤라토, 생강 그래놀라를 곁들인 블랙베리입니다. 디저트 중에서는 이게 유일하게 별로였어요. 블랙베리는 괜찮았는데 레몬 파이가 좀 겉돌고 안 어울리더라고요.
큰 아이가 주문한 Front Porch Farms Strawberry Mille-Feuille (딸기 밀푀유). 딸기 소르베 (sorbet), 꿀을 조금 섞은 크림, 라벤더 스폰지 케익을 얇은 파이 안에 넣어서 나왔는데요, 이 파이가 예술이네요. 식감이나 맛이나 보통 먹던 밀푀유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작은 아이가 주문한 Zorzal Reserva Chocolate Mousse (초콜렛 무스). 도미니카 공화국의 조류 보호지역인 Zorzal Reserva라는 곳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카카오를 재료로 만든 무스 케익입니다. 코스타리카 산 Sweet Tooth 원두커피로 만든 젤라토, 헤이즐넛 (Hazelnut, 개암나무 열매) 커스터드, 통 헤이즐넛이 함께 나왔는데 서로의 궁합이 완벽했네요. 이 날 디저트 중 가장 훌륭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아이가 주문한 것들은 3 코스 모두 최고 였던것 같아요.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음식은 모양이나 맛이나 너무 훌륭했는데, 가성비 면에서는 이전보다 좀 떨어졌습니다. 2년 반만에 가본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모든 식당들이 다 가격을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가장 섭섭한 부분은 단품 메뉴 (a la carte) 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3코스 기준으로, 제일 비싼 것으로 구성하면 10%쯤 인상된거라서 괜찮은데 원하는 메뉴로 조금 싼 것 섞어 구성하면 20%쯤 인상된 것이 되더라구요. 예전에는 가볍게 먹고 싶으면 $20 이하로도 식사가 가능하게 넓은 가격대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단품 주문시 $70짜리 3코스 메뉴를 $43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공했었는데 이제는 최하 $60이니, 앞으로는 The Bistro & Bar 로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저녁은 3코스 $120⇒$135, 4코스 $140⇒$155, 6코스 tasting $165⇒$185는 10% 남짓해서 오른 폭이 적당합니다.
그래도 앞으로도 또 올거에요. 미슐랭 1스타 식당치고는 아직 가성비 훌륭한데다, 같은 1스타 식당과 비교할 때 여기가 모든 면에서 훨씬 괜찮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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