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겨울 (1) 폭설
홋카이도의 겨울 (1) 폭설
일본에서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이름난 지역중 하나인 홋카이도(北海道)의 겨울은 홋카이도에 거주한 걸출한 작가들에 의해 여러 소설, 드라마,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 아사히가와(旭川)를 무대로 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대표적 소설 "빙점(氷点)"
- 후라노(富良野)를 무대로 한 구라모토 소우(倉本聰)의 드라마 "북쪽 나라에서(北の國から)", "자상한 시간(優しい時間)"
- 오타루(小樽)를 무대로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잘 지내요?)" 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 (단, 이 대사는 일본 알프스 산맥 야마나시현 야츠가다케 목장 八ヶ岳牧場에서 후지이가 죽은 나가노현 야츠가다케를 보면서 촬영된 것임)
- 후라노(富良野) 인근의 시골마을 종착역에서 일평생을 보낸 역무원의 마지막 겨울을 그린 영화 "철도원"
그 겨울을 한번 꼭 보고 싶어 작은 아이의 1주일간의 짧은 방학동안 가족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눈 많이 오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닌데 왜 그렇게 멀리 갔냐구요? ㅎㅎ
처음 일본 홋카이도를 방문한 것이 2015년 4월이었습니다. 꽤 북쪽에 위치한 곳이라 봄이 채 찾아오지 않아 홋카이도의 경치를 구경하기에는 최악(?)의 시기에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도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분위기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최상급 농수산물로 만든 풍성한 먹거리,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는 천연 온천의 여유로움. 이 삼박자 매력에 함께 간 가족 모두가 매료되었지요.
그리고 같은 해 초가을인 9월말, 한국 방문길에 우연치 않은 일탈로 3박 4일간 홀로 홋카이도를 다시 찾았었습니다. 중부 후라노와 비에이의 꽃밭을 거쳐 동부 산속의 호수들을 거쳐 동쪽 끝 시레토코까지 홋카이도의 풍경들을 눈에 담고 다녔네요.
단순히 눈구경만 생각하면 더 좋은 곳도 많을 것 같은데, 전체적인 홋카이도의 '분위기'가 저희 가족들에겐 참 좋더라구요. 그냥 멋진 겨울이라기보다는 뭔가 낭만(浪漫)적인 겨울을 경험하고 싶어 갔다고나 할까요?
이번 여행은 기간도 짧고 눈길에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3박 4일을 중부 후라노에만 처박혀 보냈습니다. 작은 행동 반경에서 한가로이 보낸 시간을 앞으로 몇개로 나눠 올려보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하루에 갈 수가 없어서 도쿄 들르고 삿포로 들러 그렇게 갔는데요, 도쿄에서 삿포로로 가는 날은, 거의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민함으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점심 먹고 2:05pm에 공항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침에 홋카이도에 폭설 예보가 있어 비행기가 cancel될 수도 있다는 이메일이 날아왔습니다.
급하게 전화를 했더니 12:05pm 비행기는 확실히 가는데 지금 당장 오겠느냐고 하네요. 전화로 항공편 변경하고 15분 후에 떠나는 공항 버스 타려고 큰 가방 3개 + 작은 가방 4개를 번개 같이 8분내로 꾸리고 hotel check-out 완료!!
공항에서 이른 점심 간단히 먹으면서, 2:20pm에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면 3:00pm 있는 JR Rapid 기차 타고 3:35pm에 삿포로역 가서 4:00pm에 삿포로 외각에 있는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탄다는 나름 좋은 변경 스케줄을 세웠는데.....
아뿔싸... 홋카이도에서 오는 비행기가 연착해서 30분 늦게 출발 -.- 공항에 내리니 벌써 2:55pm이 되어 마눌님은 곧바로 먼저 JR 기차표 끊으러 나가고, 나와 아이는 짐을 기다렸다 찾음. 3:07pm에 나온 가방을 끌고 승강장으로 달려가서 아슬아슬하게 3:15pm 기차를 탐.
도착 예정시간이 3:50pm이니 버스를 잡기에 몹시 빠듯한데, 이 버스 놓치면 다음 버스는 2시간 후 라서 마음이 무척이나 조급해짐. 삿포로역에서 이동할 동선을 파악해서 기차 안에서 미리 숙지. 삿포로역에 도착하니 벌써 3:53pm *.* 다시 허겁지겁 달려서 3:59pm에 극적으로 4:00pm 버스를 탔습니다!!! 헥~ 헥~ 헥~ 헥~~~~~
버스에 타고 땀 닦으면서 드디어 숨을 좀 돌립니다.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2월답게 눈은 정말 많이도 내리더군요. 1월은 31일중 평균 28.1일이, 2월은 28일중 평균 25.2일이 눈 내리는 날이고, 일년 평균 강설량이 약 6m (20ft)라고 합니다.
홋카이도에서의 마지막 밤에 본 삿포로 시내의 설경입니다. 삼각대를 가지고 나가지 않아서 손각대로 대충 찍었습니다.
가는 날은 눈이 그다지 오지 않았습니다만,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내리더군요. 홋카이도 오던 날 눈이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비행기가 취소되기도 했기 때문에, 과연 일정대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의문시 되었지요.
저는 "회사에 제 때 복귀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염려로, 와이프는 "홋카이도에 혹시 합법적으로(?) 더 머물수 있는거 아닌가"는 기대로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ㅋㅋㅋ
늦은 저녁을 많이 먹고는 소화 좀 시켜야할 것 같아 호텔에서 우산 하나 빌려 10시 넘은 시간에 삿포로 시내를 좀 걸어다녔습니다. 눈이 점점 더 내리는게 너무 멋진데 카메라를 두고 와서, 아쉬운대로 iPhone에 한장 담아봤습니다.
(여담인데, 길을 잃지 않으려고 map app을 켜고 다녔더니, 한 20분 후에 iPhone이 꺼지네요. Battery가 40%이상 남았고 영하 3~4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뭐 이미 알려진 문제긴 하지만 덕분에 길 잃을뻔 했습니다 ㅎㅎ 다행히 품안에 한 10여분 넣었다 꺼내니 다시 작동하더군요)
후라노에서는 "신 후라노 프린스 호텔"이라는 스키 리조트에 계속 있었습니다. 미국 스키장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지만, 리조트에 묵는 사람들 이외에는 스키장 이용하는 외부 사람들이 없다시피해서 아주 조용하고 한적했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일컬어 "물 반(半), 고기 반"이라고 한다는데, 하도 눈이 많이 내리니 "공기 반, 눈 반"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EBS "아시아 테마기행"에서 2008년 방영한 후라노 스키장 영상입니다.
사실 설경으로만 본다면,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 집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Lake Tahoe의 Heavenly Mountain Resort가 한수 위 입니다만, 너무 크고 넓고 혼잡해서 늘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요. 아시아에서는 손 꼽히는 유명한 스키장의 제 철이 이렇게 한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ㅎㅎㅎ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눈의 촉감이었습니다. 흔히 설질(雪質)이라고들 하지요.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참 폭신 폭신(?)하더군요. 검색을 좀 해보니, 시베리아의 습한 공기가 홋카이도 서해안에서 일차 대량의 눈내림 (濕雪, 습설, 젖은 눈) 으로 습기를 잃고 난 후 내륙에서 건조한 공기가 이차 눈(乾雪, 건설, 마른 눈)을 내려 그렇다네요.
Lake Tahoe의 눈도 소위 powder snow라고 하는데, 홋카이도 눈은 그에 비해 얼음기가 없고 잘 뭉쳐지네요. 쌓인 눈을 밟는 느낌이 마치 밀가루나 녹말가루를 밟는 것 같은게, 느낌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눈길 걷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위 EBS 방송의 인터뷰에도 나오는데, 호주 사람들 중 스키 매니아 중 홋카이도의 스키장에 매료된 사람들의 수가 상당합니다. 남반구에 위치한 더운 호주의 여름에 최고의 설질을 가진 북반구의 스키장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겠지요. 특히 니세코 안누푸리 (ニセコアンヌプリ) 지역에 가면 적지 않은 수의 호주 사람들이 아예 이주해 와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도 야간에 스키를 탈 수 있게 조명을 해줍니다. 눈입자가 너무 가벼워서 조명에 비추인 눈발이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날아다니는게 약한 바람인데도 마치 엄청난 눈폭풍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옆으로도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도 솟구친다고 해서 "후부키(吹雪, 취설, 흩뿌리는 눈)"리고 부른다는군요.
아이가 낮에 스노우 보드를 타는 동안 마눌님과 저는 숲으로 들어가 봅니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걸어다닐 수 있는 오솔길들 몇 개가 잘 닦여 있습니다.
약간의 경사가 진 이 오솔길은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지난 여름에 다녀 온 모리노도케이 (森の時計, 숲의 시계)라는 카페로 가는 길입니다. 너무 예쁜 곳이라 3박 4일동안 매일 한두번씩 산책 삼아 다녀오곤 했습니다.
모리노도케이 (森の時計) 가는 길 왼쪽으로 넓게 펼쳐진 평원과 숲이 있습니다. Lake Tahoe 부근과는 달리, 스키장도 아니고 별장이 빼곡히 들어찬 곳도 아니어서 그런지, 문명과 지척의 거리인 곳인데도 적막과 쓸쓸함이 담겨있는게 자연 깊이 들어온 것과 같은 감성이 듭니다. 아래 사진은 동 틀 무렵에 나가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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