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가을 (2) 아칸 국립공원
홋카이도의 가을 (2) 아칸 국립공원
후라노가 있는 홋카이도 중부에서 동부에 위치한 아칸(阿寒)국립공원을 향해 달립니다. 가는 길에 물의 교회(水の教会)와 스키장으로 많이 알려진 호시노 리조트가 있는 토마무산(トマム山), 그리고 토카치 천년의 숲(十勝千年の森)이 있는데 다음날 돌아오는 길의 몫으로 남기고 통과.
홋카이도 동부의 관문격인 아쇼로(足寄)까지 약 2시간 반 정도 달리면 고속도로가 끝나고 국도로 접어듭니다.
아칸 국립공원의 시작 부분에 위치한 온네토 호수(オンネトー湖, 온네토코, Map Code 783 761 760)가 이 지역 첫 행선지입니다. 규모가 작고 개발이 덜 된 곳이란 사실에 더 마음이 끌렸지요. 아쇼로(足寄) IC에서 241번 국도를 따라 약 1시간 가량 가서, 664번 국도로 빠져 6Km 정도 올라가는데 그 길에서 잠시 멈춰 한장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건너편에서 오는 자동차들이 '좌측통행'의 나라 일본을 상기시켜 주네요. ㅎㅎ 일본에서 운전하면 처음 하루는 내내 깜빡이 켠다는게 번번히 와이퍼를 동작시키곤 했습니다.
드디어 온네토 호수 도착입니다. 제대로 된 주차공간은 나무로 만든 전망대 앞에만 하나 있는데 가능한 댓수가 10여 대 남짓해 자리가 없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갓길 주차를 하고 몇장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왼쪽에는 해발1,499m의 활화산 메아칸다케(雌阿寒岳)가, 오른쪽으로는 후지산을 닮은 '짝퉁' 아칸후지(阿寒富士)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이 참 맑아보이는데 유황성분이 많아서 물고기는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기후와 풍향과 보는 위치에 따라 호수의 색이 변해서 일명 '오색 호수'라고도 한다더니, 작은 호수인데도 불구하고 부분별로 펼쳐지는 식물군도 다양하고 물색깔의 확연한 차이도 2~3색은 쉽게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칸 국립공원의 3대 호수에는 끼지 못한 아담한 호수, 온네토...
이 호수 덕에 아칸 국립공원의 첫 인상이 참 마음에 들었네요. 일반적인 관광코스를 따르면 다음은 온네토에서 멀지 않은 아칸 호수(阿寒湖, あかんこ,아칸코)인데, 제가 위치를 잠시 착각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이 지역 호수 중 제일 개발이 많이 된 곳이기도 하고, 아칸 호수에서 유명한 유람선과 호수에 서식 한다는 마리모(毬藻,マリモ,둥근마름풀)등은 어차피 제게 관심이 그리 없는 것들이라 그냥 통과 하기로 합니다.
아칸 호수에서 쿳샤로 호수(屈斜路湖, くっしゃろ, 쿳샤로코)로 1시간 가량 넘어가는 길은 꽤 굽이진 산 길입니다. 중간에 잠시 차에서 내려 멀리 보이는 오아칸다케(雄阿寒岳:해발 1,370m)를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온네토 호수 앞에 있는 메아칸다케(雌阿寒岳)는 암컷 '자'(雌), 아칸 호수 앞에 있는 오아칸다케(雄阿寒岳)는 수컷 '웅'(雄). 두 산이 자웅을 겨루는 곳... 아칸 국립공원입니다.
쿳샤로 호수의 남쪽으로 진입해 노천온천인 코탄온천(コタン温泉, 코탄온센)에 도착 했습니다. 조그만 족욕탕이 하나 있습니다. 성진국에 걸맞게(?) 허벅지 정도 높이의 대나무 담장과 작은 바위 하나로 남녀의 유별함을 표시했습니다.
아칸 국립공원 내의 호수 중 가장 큰 호수 답게 넓찍하고 시원한 호수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있고, 물도 무척이나 깨끗해 보입니다.
사람이라고는 족욕탕 관리인 같아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커플이 다 입니다. 대표적인 연휴인데, 이렇게 사람들이 없을 수가...
코탄 온천에서 조금 북쪽으로 이동하면, 100~200대는 거뜬히 수용할 만한 큰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 곳이 쿳샤로 호수의 대표적인 노천 온천인 스나유 온천 (砂湯温泉, 스나유온센)입니다. 검은 모래 사장만 파면 섭씨 50도에 달하는 물이 나온다고 해서 삽질 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보입니다.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싶어하는 백조 도래지라서 페달 보트의 모양도 백조 모양으로 만들었네요.
호숫물이나, 주변의 숲이나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기만 합니다.
점심때가 되어서 근처 카와유 온천(川湯温泉, かわゆおんせん, 카와유온센) 시내를 조금 벗어나 위치한 소바도라쿠(そば道楽, ☏ 015-483-2929)에서 메밀국수로 간단한 요기를 합니다.
식당 같은 것이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밭 한구석에 생뚱 맞게 자리한 위치에, 냉방도 되지 않는 후덥지근한 방에, 냉/온 메밀국수 합쳐 5가지가 전부인 메뉴를 가진 곳이지만, 77세의 장인 주방장께서 식당 건물 옆에 붙은 물레방아를 돌려 메밀을 빻고, 직접 면을 뽑아내는 것으로 홋카이도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곳 입니다. 냉 메밀(자루소바) 한 소반에 잘 익은 멜론 한조각이 전부인데, 입 안에서 탱글하고 목구멍을 까끌하게 넘어가는 면발을 느끼면서, 왜 일본인들이 면발에 그리 집착하는지를 실감해 봅니다.
이곳에서 약 1시간이 걸리는 외딴 곳에 신의 아들 못(神の子池, かみのこいけ, 카미노 코이케, Map Code 910 216 104*34)이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못이 있습니다. 이곳을 거쳐서 시레토코 쪽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갈까 말까를 계속 망설이다가, 냉 모밀 먹으면서 결심하고 결국 갔네요.
긴 쪽도 직경 100m가 채 안되는 아주 작은 못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습니다만, 이 손바닥만한 못에서 솟아나는 물의 양이 무려 하루 12,000톤 (분당 8.3톤) 이나 되어 제법 규모가 있는 개울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를 포함해서 한참 돌아가지만 마슈 호수(摩周湖, 마슈코)에서의 직선 거리는 2Km에 불과해, 호수 바닥의 물이 이곳으로 솟아난다고 합니다. 가장 깊은 곳이 5m정도 된다는데, 워낙 물이 맑고 깨끗해서 못의 바닥이 다 보이고, 그리 깊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압도적인 풍경이라기 보다는 숲속에 감춰진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이랄까요? 차를 몰고 못 바로 앞까지 와 구경해서는 안될것 같고, 수풀을 헤치고 몇 Km걸어 들어와 발견해야 제대로 된 감흥을 느낄 것 같은 그런 곳이네요. 물 색깔, 바닥 색깔, 그리고 반영되는 나무 색깔이 어울려 마치 물감을 흩뿌린 유화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쉼 없이 계속해서 바닥에서 솟아나는 물이 못 곳곳에 동심원을 그려줍니다.
다시 1시간을 달려 소바도라쿠(そば道楽)로 돌아왔습니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 있는 유황산(硫黄山, 이오잔, 휴게소 ☏ 015-483-3511)을 찾아 봅니다. 주차장 입구에서 ¥500을 받네요. 멀찌감치 있는 산 계곡 사이로 유황가스들이 구름처럼 올라갑니다.
간판에, 유황산 / 아칸 국립공원 / 카와유라고 쓰여있네요. 분출되는 증기가 섭씨 100도에 가까우니 발 같은 곳을 각별히 주의하라는 주의사항도 다른 간판에 적혀 있습니다.
분출된 유황들이 계곡 곳곳에 노란 퇴적물로 쌓여 있고, 여기 저기 구멍에서 뽀글 뽀글 물 끓는 소리며 쉬익~ 쉬익~ 가스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곳에서 유황 증기 많이 마셔서 목 아팠다는 분들 많았는데 이 날은 바람이 산 위쪽으로 불어줘서 덕분에 쾌적하게 구경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노란 바늘로 뒤덮힌 밤송이같이 유황덩어리들이 널려 있네요.
멀리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는 반면 이곳은 단 한포기의 풀도 자라지 못합니다. 추정컨대, 예전에는 계곡을 따라 이곳으로 유황온천수가 흘렀는데 그 물줄기를 막아 카와유 온천마을로 끌어가 쓰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일정의 마지막 행선지인 마슈 호수(摩周湖, 마슈코)로 향합니다. 굽이진 길이지만 유황산에서 15분이면 갑니다. 1931년 호수 투명도 조사에서 종전 바이칼 호수의 기록을 깨고, 세계 제일의 투명도 41.6 m를 기록했다는 청정도 으뜸 수준의 마슈 호수를 제 3전망대(摩周湖第三展望台, Map Code 613 870 655)에서 내려다 봅니다.
안개 끼는 날이 어찌나 많은지, "안개의 마슈호"라는 노래도 있고, 안개 없는 맑은 마슈 호수를 본 사람은 “혼기가 늦어진다” “연인과 같이 맑은 마슈호를 보면 헤어진다” “출세할 수 없다” 등등의 각종 다양한 징크스도 있다는데, 여하튼 저는 맑게 개인 마슈호수를 본 몇 안되는 불운아(?) 중 하나인가 봅니다.
마슈 호수 전망대에서 반대편으로 멀리 쿳샤로 호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3전망대에서 호수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제1전망대 주차장이 나옵니다. 무료인 제3전망대와는 달리 여기서는 ¥500을 받는데 유황산에서 받은 주차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차 공간도 넓고 전망대도 좀 더 넓찍하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아까 본 제3전망대에서의 경치가 더 맘에 들었습니다. 예전에 사진 찍기 좋은 제2전망대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위험해서 폐쇄되었다고 하고, 신의 아들 못(神の子池) 쪽 길을 통해 호수 반대편에 가면 우라마슈 전망대 (裏摩周展望台, '뒷면'마슈라는 뜻) 라는 곳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한시간 정도 더 있으면 석양이 질 것 같아 쿳샤로 호수의 노을을 담아볼까해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날 새벽 4시 반에 나와 이미 12시간 정도를 거의 길 위에서 있었던데다, 이미 숙소를 예약해 놓은 쿠시로(釧路,くしろ)까지 다시 한참 가야해서, 아쉽지만 산을 내려오기로 결정합니다.
산을 벗어나자 녹색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쿠시로 가는 길 중간 쯤에 위치한 시라루토로 늪(シラルトロ沼) 옆을 지날 때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네요. 이곳은 쿠시로습원(釧路 湿原)의 북쪽 경계부근입니다. 습지답게 9월인데도 모기떼가 장난 아니게 극성입니다. 찍은 사진 수 이상 모기에게 물려 저녁 내내 침 바르며 가려움을 견뎌내야 했지요 ㅎㅎㅎ
이미 어두워진 쿠시로 시내에 들어섰습니다. 역에 붙어있는 비즈니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는 내일을 위해 곧바로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마지막 글은 시레토코(知床) 국립공원에 대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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