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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8.09.03 기다림
  2. 2018.06.29 친밀함 or 불경? (2)
  3. 2018.01.20 올바른 관계를 위한 포기
  4. 2017.01.11 오네시보로 (Onesiphorus)
  5. 2016.12.16 기다림 (4)
  6. 2016.08.18 Belief
  7. 2016.04.23 탄로 (Disclosure)
  8. 2016.03.15 Born Again(거듭남)이란?
  9. 2015.12.11 Dried-Up Vine Branches (마른 포도 나무 가지)
  10. 2015.11.26 His Voice (그의 음성)

기다림

묵상 2018.09.03 19:47

기다림



성경은 과거의 약속(covenant), 성취된 약속, 앞으로 성취될 약속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영어의 Old/New Testament를 한글로는 구약/신약이라고 번역하였다.


일반적인 약속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정한 것이다.  약속을 믿는 사람은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을 믿고 그 때까지 기다린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 그 약속이 지켜질(성취될) 시점이 명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기다림이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사도행전 1:7)


믿음 속의 기다림은 지속적인 관심과 확인으로 나타난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나가 퇴근 길의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과 가족의 편지와 전화와 만남을 기다리며 수시로 확인하는 사람, 타는 가뭄 속에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는 농부, 목마름 속에서 물을 찾아 헤메이는 사슴...  현대의 교회는 과연 이런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서정윤 시인의 기다림은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모태솔로의 아픈 독백이지만, '홀로서기'로 작정한 체념 속의 희망사항일 뿐 그리스도인의 기다림과는 다르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편 130:6) 

My soul waits for the Lord More than the watchmen for the morning; Indeed, more than the watchmen for the morning.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 계시록 22:20) 

"Yes, I am coming quickly " Amen Come, Lord Jesus.


때를 정하지 않고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언뜻 불공평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돌아올지 조차도 불확실한 인간들을 지켜보며 수천년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기다림은 참 쉬운 편이 아닐까...


"나오미야, 아버지는 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시며, 만일 밤중에라도 와서 현관 문이 잠겨 있어 그대로 가 버리면 딱한 일이 아니겠냐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밤이나 낮이나 현관을 잠근 일이 한번도 없었단다.  설마 밤중에 올 리야 있겠냐고 내가 말했지만 말야.  그랬는데 역시 밤중이었구나."

"아아..."  목사관은 곧잘 좀도둑이 노리는 곳이다.  나오미는 자기도 모르게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2년이 넘도록 매일 밤낮으로 부모님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자기를 그렇게 기다려 주었는가 생각하니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미우라 아야코 (三浦 綾子) 著 "양치는 언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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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or 불경?

묵상 2018.06.29 22:03

친밀함(Intimacy) or 불경(Impiety)?


교회에서 음악부서를 섬기다보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다들 눈감고 기도하는 시간에 이동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를 종종 보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 신자들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목회자들의 기도 자세가 전형적인(typical) 모양과는 사뭇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사실 기도할때의 자세가 이러 저러해야 한다는 규범은 없다.  요즘은 보통 눈을 감고 하지만,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당시 유대인들은 눈을 뜨고 때로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했던 것 같고,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경우 선 채로, 혹은 무릎 꿇은 채로 기도했던 것 같다.  양 손을 모으고 할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고 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영과 마음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가끔 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아래 두 사진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 역시 존경하는) 복음주의 목회자들중 한 분께서 설교를 마치고 기도할 때의 모습이다. (이 분을 예로 들고 싶지 않았는데 예배중 목회자 기도하는 모습 몰카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리고 늘 이런 자세로 하시는 것도 아님을 밝혀둔다) 인터넷으로 설교 동영상을 보던 중 끝 부분에 갑작스레 들어온 저 모습은,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자랐고 이미 중년 나이의 내게 의외였고 당황스러웠다.




한가지의 단편적 모습 + 내 선입견으로 한 분의 신앙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짧지 않은 햇수를 살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의 에티켓과 문화차이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과 정말 친밀하게 느껴서 격식 차리지 않고 대하는 것이 일상화 되다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게 정말로 부족한 부분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걸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교인들을 향한"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시간이 되었는데도 혹 목회자는 여전히 "교인들에게" 설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61년에 발간된 개역 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기록했고 1977년대에 발간된 공동번역은 '야훼'라고 기록했다.  히브리어 원문에 יהוה라고 자음으로만 적힌 이름이 너무 거룩히 여겨져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읽는 것 외에는 그 단어를 늘 '아도나이' (주님) 이라고 바꿔서 읽다보니 읽는 법이 완전히 잊혀졌던 것이 그 이유다.  같은 이유로 현대에 사용되는 영어 성경 상당수가 the LORD로 번역했고 2008년 교황청에서도 “거룩한 네 글자(tetragrammaton: YHWH)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전례에서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고 ‘주님’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는 핀잔을 줄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실재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친밀함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꽤나 있는 외경(awe) 혹은 공포(fear, dread)에 가까왔다고나 할까?


자유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매주 적게는 한번, 많게는 7~8번의 예배를 드린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련되어지고 entertainment화 되어가는 추세 속에서 함께 예배를 진행하는 한 명으로 나는 하나님의 실재와 임재를 늘 기억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제집처럼 편해진 교회 속에서 사람들만을 의식하면서 또 한 시간을 그냥 보내다 오고 있는 것일까?  목회자들의 기도하는 자세에서 그 분들이 만나고 있는 하나님 대신 그저 그 분들의 professionalism(?)을 느끼고 있다면 내가 너무 꼰대가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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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17 17:11 신고

    "음악부서"? 성가대? 악기? .... 궁금해라~.
    기도할 때는 눈 감아야지요, 시험에 들지 않게... ㅋㅋ

올바른 관계를 위한 포기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그것을 시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율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자기 개선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선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메시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We know very well that we are not set right with God by rule-keeping but only through personal faith in Jesus Christ.  How do we know? We tried it--and we had the best system of rules the world has ever seen! Convinced that no human being can please God by self-improvement, we believed in Jesus as the Messiah so that we might be set right before God by trusting in the Messiah, not by trying to be good.

 


혹시 우리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습니까?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나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이 덕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는 죄의 방조자임에 틀림없다고 비난하시렵니까?  그런 비난은 섣부른 것입니다.  내가 “자기 힘으로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전에 헐어버린 낡은 헛간을 다시 세우는 셈이 되고, 사기꾼처럼 행동하는 꼴이 되고 말것입니다.


Have some of you noticed that we are not yet perfect? (No great surprise, right?) And are you ready to make the accusation that since people like me, who go through Christ in order to get things right with God, aren't perfectly virtuous, Christ must therefore be an accessory to sin? The accusation is frivolous. If I was "trying to be good," I would be rebuilding the same old barn that I tore down. I would be acting as a charlatan.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고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율법의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내게 방법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나를 완전히 동일시 했습니다.  정말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내 자아는 더 이상 내 중심이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의롭게 보이거나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보는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는 이 삶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What actually took place is this: I tried keeping rules and working my head off to please God, and it didn't work. So I quit being a "law man" so that I could be God's man. Christ's life showed me how, and enabled me to do it. I identified myself completely with him. Indee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My ego is no longer central. It is no longer important that I appear righteous before you or have your good opinion, and I am no longer driven to impress God. Christ lives in me. The life you see me living is not "mine," but it is lived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I am not going to go back on that.


 

내가 율법을 준수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로 되돌아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Is it not clear to you that to go back to that old rule-keeping, peer-pleasing religion would be an abandonment of everything personal and free in my relationship with God? I refuse to do that, to repudiate God's grace. If a living relationship with God could come by rule-keeping, then Christ died unnecessarily.


[The Message 성경] 갈라디아서 2장 15~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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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보로 (Onesiphorus)


생명의 삶 오늘 본문....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디모데후서 1:15~18)


"오네시보로"라는 인물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디모데후서에만 간략하게 등장한다.  아마도 에베소에 살았을 그는 본문 앞 부분에 언급되는 "부겔로","허모게네"와 대조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기록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한 성경공부나 설교는 늘 본받아야 할 덕목(virtue)의 사람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왜 사도 바울은 그를 위해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까?  심지어 "그날(that day, 아마도 the judgement day)"이란 단어을 써서...


통상 "은혜(grace)"는 받을 자격이 없는 좋은 것이 허락되는 것을 말하고, 반대로 "긍휼(mercy)"은 마땅히 받아야할 벌이 면제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 부분을 썼다면 아마도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면류관을 씌워 주옵소서"라고 기록했을것 같다.  원문을 찾아봐도 제대로 번역한 것이 맞다.  "ἔλεος" (kindness or good will towards the miserable and the afflicted, joined with a desire to help them)


그렇다면, 그의 선한 성품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보로 역시 결국에는 바울을 버린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론을 조심스럽게 해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왜 그마저 그래야 했을까에 대한 아무런 이유의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그 후에 그가 믿음의 길로 돌아왔는지의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당시의 초대교인들이 겪어야했던 혹독한 믿음의 댓가에 대해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을 뿐....

지난 연말에 개봉되어 상영중인 영화 "Silence"가 문득 생각난다.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신앙을 버리고 사람들을 살릴 것이냐, 아니면 죽음을 불사하고 순교정신으로 신앙을 지킬 것이냐"의 갈등을 다룬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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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묵상 2016.12.16 21:15

기다림


'아, 이거 정말 꼭 되야 하는데....'


'이번 시기 놓치면 곤란한데....'


'서두르지 않으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텐데....'



나는 성격이 무척이나 급한 사람이다.  의사 결정이건, 일의 진행이건 속전속결을 선호하고 매사를 서둘러 가급적 빨리 종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내가 믿는 그 분은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라 서두름이 일체 없으시다.  그래서 그 분의 때와 그 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늘 내게는 너무나 길고 힘들기만 하다.


큰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결말은 뚜렷하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꽤나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말이 최선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래서 그저 인내하면서 기다려 본다.  



"때가 차매" "when the fulness of the time was come" (갈라디아서 4: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히브리서 11:1)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태복음 6:10)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There is an appointed time for everything. And there is a time for every event under heaven." (전도서 3:1)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In returning and rest shall ye be saved; in quietness and in confidence shall be your strength." (이사야 30:15)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You shall not shout nor let your voice be heard nor let a word proceed out of your mouth, until the day I tell you, 'Shout!' Then you shall shout!"  (여호수아 6:10)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My people who are called by My name humble themselves and pray and seek My face and turn from their wicked ways, then I will hear from heaven, will forgive their sin and will heal their land." (역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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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2.17 08:21 신고

    분위기가....
    조국의 부르심을 받은 듯?
    그렇다면....
    가셔야지요......

    정석루머.com

  2.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2.19 17:05 신고

    역쉬~~~
    그 높은 뜻을 소인이 어찌 다 헤아리이까~~~ ^^

Belief

묵상 2016.08.18 21:52

Belief


계시지도 않은 하나님을 

기독교인들만 계시다고 믿고 있는걸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매일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걸까?


실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을 통해 진화해온 건데 

창조론자들만 창조주가 계시다고 믿는걸까?


아니면, 조물주께서 잘 디자인한대로 만들어진 세상인데 

 알아서 진화한거라고 진화론자들이 믿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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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로 (Disclosure)

묵상 2016.04.23 11:19

탄로 (Disclosure)


'이만 하면 뭐.... ' 


'그래도 나 정도면...'


'다들 그러는데 뭐...'


'설마 누가 알겠어?'



이런 "교만"이라는 어두움과 


"위선"이라는 그림자 속에 감춰진 나의 실체는 


"그 분"이라는 아침 햇살 속에 여지 없이 탄로나고 만다.



"All things become visible when they are exposed by the light."

"모든 것은 빛에 의해 밝혀질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에베소서 5장 13절)


"Woe is me, for I am ruined! Because I am a man of unclean lips, And I live among a people of unclean lips; For my eyes have seen the King, the LORD of hosts."

'이제 나는 화를 입고 망하게 되었구나. 내가 스스로 입술이 더러울 뿐만 아니라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전능한 여호와이신 왕을 보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사야 6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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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Again(거듭남)이란?


(black coffee를 즐기는 분들께는 적절치 못한 비유입니다만...)


예전에는 쓴 커피가 변하여 우유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쓴 커피에 우유가 섞여 라떼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한복음 3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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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ed-Up Vine Branches (마른 포도 나무 가지)


멀리서 보는 포도원은 정말 멋집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어떻게 이렇게 빈약한 가지에서 그렇게 맛난 열매가 열리는지 정말로 신기할 정도로 가늘고 볼품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아마도 포도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나무 중 하나 일 듯 합니다.


"누구든지 내게서 떨어져 있는 사람은 말라 죽은 가지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 가지를 모아다가 모닥불에 던져 버린다." (요한복음 15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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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Voice (그의 음성)


"목자는 곧바로 문으로 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양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면,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다.  낯선 자의 목소리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2~5)


"The shepherd walks right up to the gate. The gatekeeper opens the gate to him and the sheep recognize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When he gets them all out, he leads them and they follow because they are familiar with his voice. They won't follow a stranger's voice but will scatter because they aren't used to the sound of it."


예수께서는 당신의 양들이 당신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감식법이나 선별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 듣는 것이지요.  이 분별은 마치 주인이 집에 가까이 오면 그 소리를 들은 개가 먼저 달려나가 주인을 반기는 것과도 같고, 내가 흰색 분말을 먹어봄으로써 설탕인지, 소금인지 구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분별은 경험을 통한 학습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엄마의 젖을 빨고, 엄마의 자장가를 듣고 자라면서 그 음성에 점점 친숙하게 되듯이, 어린 양들도 자신들을 돌보고 인도하고 지켜주는 목자의 음성을 어미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익혀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음성을 쉽게 알아봤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서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예수께 돌아보며 히브리 말로 '랍오니!'하고 불렀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20:14, 16)


"해가 뜰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지고 어떻게 되는지 보아라.'  그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21:4, 6, 7)


"그들이 한참 묻고 말하는 중에,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 사라지셨다.  그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와 대화하며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24:15, 16, 30~32)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도, 따라서 당연히 분별할 줄도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속한 공동체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함께 들으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점차 상실해왔습니다.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과 리더들은 copy & paste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체험적인 확신을 통해 전하는 사람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에 그리 적혀 있었기 전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뿐 직접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교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부흥회조차도 기도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2~3시간 열변을 토하더라도, 그 후에는 몇분간 함께 기도하는게 고작일 뿐, 그 후에는 각자 알아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도 거의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 성경을 읽는 것 or 설교를 듣는 것"이 되어 버린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사실 기독교의 리더인 목회자들을 양성해내는 신학교들에 있습니다.


많은 교수들이 신학생들에게 훈련시키고 전달해주는 것은 결국 신학서적 많이 읽고, 주석서 찾아 보고, 원어성경 뒤적이면서 설교준비 하는 "열공 자율학습" 방법들 입니다.   교수들 본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지요.  전부 너무 중요하고 꼭 배워야 할 것들이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로고스가 레마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학문"화 될수록 걸출한 신학자는 간혹 나올지 몰라도 이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수는 점점 줄어 들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초대교회의 생명력은 성도들의 "열공"이 아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넘쳐 흘렀습니다.  우리도 그런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다시 찾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는 공동체로 함께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언하는 훈련을 쌓도록 하곤 했습니다.  신약 교회사에서도 폭발적이고 viral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공동체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을 때 차가운 바람은 만으로부터 불어 들어오고 게코 도마뱀들이 벽에서 찍찍 울어댔다.


우리는 배 사역에 대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기다렸다.  큰 벽시계의 뾰족한 검은 바늘이 밤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레오나가 성경 귀절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고 했다.  누가복음 4장 4절.  내가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이런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했던 시간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채로 그들 마음속으로 특정한 성경 귀절을 말하는 것을 '듣곤'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배웠던 중요한 열쇠는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어떤 성경 귀절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 한 분에게만 맞추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듣는 것이다.  그 때 만일 예수님께서 어떤 특별한 성경 귀절을 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 철야 기도 시간에 레오나가 들은 성경 귀절을 찾아 읽었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성경 귀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람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구절이었다.


다시한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시계 바늘은 새벽 1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런데 기대감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아 깨어있게 했다.  하나님께서 곧 말씀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조용히 구하는 시간이 또 한번 오래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시계가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누이가 가엾게도 의자에 기대 무릎을 꿇은채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우리 셋이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2가지가 내 속에 확실하게 떠올랐다.  하나는 "코나"라는 단어였다.  내가 한번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곳이 빅 아일랜드에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는 빅 아일랜드에 있는 등대의 그림 같은 것이 마음속에 보였는데 그 등대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그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마음 속에 있는 관심사는 배에 대한 꿈이 부활되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코나와 등대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는 침묵을 깨고 레오나와 지미에게 나의 의견을 얘기했다. (제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주님,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기도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떠올랐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정규적인 전도 학교 같은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학교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훨씬 광범위하게 훈련시키는 학교였다.  레오나는 하나님께서 농장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이 모든 생각 중에 가장 큰 수수께끼는 만(灣)에 정박해 있는 크고 하얀 배에 대한 그림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제 시계는 아침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생각은 이 모든 새로운 정보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등대, 큰 학교, 빅 아일랜드-코나, 농장, 만에 떠 있는 하얀 배.


지미는 제니를 깨웠다.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아주 뻣뻣함을 느꼈다.  나와 함께 기도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리집으로 가는 컴컴한 진흙길을 내려왔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눕자 잠에 빠져들었다.  몸에는 기운이 다 빠졌지만 나의 내부에서는 기운이 넘쳐났다.


겨우 몇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린이 내 어깨를 가볍게 흔들면서 일어날 시간이라고 나를 깨웠다.  나는 밤에 얼마나 놀라운 시간을 보냈는지 단숨에 그녀에게 말해주고는 서둘러 아침 공부 시간을 위해 식당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아침 식사 후에 깨끗하게 치워진 긴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90개의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긴 머리 소녀들은 청바지나 유행이 지난 치마들을 입고 있었다.  형제들은 한결같이 청바지를 입고, 어떤 이들은 턱수염에 긴머리를 하고 어떤 이들은 깨끗이 수염을 깎고 있었다.


"우리 몇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느라고 아주 진지한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시는지 보고 싶어요."  나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밟았던 순서를 다시 사용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기도했다.  사탄을 향해 그리스도의 권세를 선포하고, 우리가 갖고있는 선입관을 모두 버릴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가 옆집 마당에서부터 들려왔다.


"누가 첫번째로 나누겠어요?"


둥글고 테가 없는 안경을 쓴 둥근 얼굴의 소녀가 부끄러워 하며 얘기했다.  "약간 우스운 소리 같지만 대문자로 'K'라는 인상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어요?"


금발색의 턱수염을 한 청년이 재빨리 얘기했다.  "나는 '코나'라는 단어를 받았어요."  나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화산"이라는 단어를 받았다.  하와이의 유일한 활화산은 빅 아일랜드에 있었다.


그 놀라운 아침이 이렇게 하여 진행되어 갔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단어들을 얘기했다.  "나는 큰 장소에 대한 그림을 보았어요.  어떤 종류의 학교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느 청년이 얘기했다.  어떤 다른 사람은 농장에 대해 언급하고 어떤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하얀집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많은 것들이 어제밤에 우리가 받았던 인상들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귀로 듣고 있는 그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곳에 90여명의 증인들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를 정말로 감동시키는 부분은 하나님을 구하는 그 시간의 바로 마지막 부분이었다.  한 소녀가 배를 보았다.  그녀는 말하기를 그것이 하얀 배이고 섬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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