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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peze (공중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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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중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주는 Joe입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몇까지 맞출 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와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날기의 비밀입니다.  Joe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Joe를 잡으려 들면 안 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Joe의 임무예요.  만약 내가 Joe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


Henry J. M. Nouwen著 "죽음, 가장 큰 선물" 중에서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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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ed-Up Vine Branches (마른 포도 나무 가지)


멀리서 보는 포도원은 정말 멋집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어떻게 이렇게 빈약한 가지에서 그렇게 맛난 열매가 열리는지 정말로 신기할 정도로 가늘고 볼품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아마도 포도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나무 중 하나 일 듯 합니다.


"누구든지 내게서 떨어져 있는 사람은 말라 죽은 가지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 가지를 모아다가 모닥불에 던져 버린다." (요한복음 15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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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Voice (그의 음성)


"목자는 곧바로 문으로 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양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면,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다.  낯선 자의 목소리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2~5)


"The shepherd walks right up to the gate. The gatekeeper opens the gate to him and the sheep recognize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When he gets them all out, he leads them and they follow because they are familiar with his voice. They won't follow a stranger's voice but will scatter because they aren't used to the sound of it."


예수께서는 당신의 양들이 당신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감식법이나 선별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 듣는 것이지요.  이 분별은 마치 주인이 집에 가까이 오면 그 소리를 들은 개가 먼저 달려나가 주인을 반기는 것과도 같고, 내가 흰색 분말을 먹어봄으로써 설탕인지, 소금인지 구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분별은 경험을 통한 학습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엄마의 젖을 빨고, 엄마의 자장가를 듣고 자라면서 그 음성에 점점 친숙하게 되듯이, 어린 양들도 자신들을 돌보고 인도하고 지켜주는 목자의 음성을 어미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익혀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음성을 쉽게 알아봤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서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예수께 돌아보며 히브리 말로 '랍오니!'하고 불렀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20:14, 16)


"해가 뜰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지고 어떻게 되는지 보아라.'  그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21:4, 6, 7)


"그들이 한참 묻고 말하는 중에,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 사라지셨다.  그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와 대화하며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24:15, 16, 30~32)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도, 따라서 당연히 분별할 줄도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속한 공동체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함께 들으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점차 상실해왔습니다.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과 리더들은 copy & paste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체험적인 확신을 통해 전하는 사람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에 그리 적혀 있었기 전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뿐 직접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교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부흥회조차도 기도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2~3시간 열변을 토하더라도, 그 후에는 몇분간 함께 기도하는게 고작일 뿐, 그 후에는 각자 알아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도 거의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 성경을 읽는 것 or 설교를 듣는 것"이 되어 버린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사실 기독교의 리더인 목회자들을 양성해내는 신학교들에 있습니다.


많은 교수들이 신학생들에게 훈련시키고 전달해주는 것은 결국 신학서적 많이 읽고, 주석서 찾아 보고, 원어성경 뒤적이면서 설교준비 하는 "열공 자율학습" 방법들 입니다.   교수들 본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지요.  전부 너무 중요하고 꼭 배워야 할 것들이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로고스가 레마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학문"화 될수록 걸출한 신학자는 간혹 나올지 몰라도 이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수는 점점 줄어 들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초대교회의 생명력은 성도들의 "열공"이 아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넘쳐 흘렀습니다.  우리도 그런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다시 찾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는 공동체로 함께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언하는 훈련을 쌓도록 하곤 했습니다.  신약 교회사에서도 폭발적이고 viral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공동체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을 때 차가운 바람은 만으로부터 불어 들어오고 게코 도마뱀들이 벽에서 찍찍 울어댔다.


우리는 배 사역에 대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기다렸다.  큰 벽시계의 뾰족한 검은 바늘이 밤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레오나가 성경 귀절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고 했다.  누가복음 4장 4절.  내가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이런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했던 시간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채로 그들 마음속으로 특정한 성경 귀절을 말하는 것을 '듣곤'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배웠던 중요한 열쇠는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어떤 성경 귀절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 한 분에게만 맞추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듣는 것이다.  그 때 만일 예수님께서 어떤 특별한 성경 귀절을 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 철야 기도 시간에 레오나가 들은 성경 귀절을 찾아 읽었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성경 귀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람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구절이었다.


다시한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시계 바늘은 새벽 1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런데 기대감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아 깨어있게 했다.  하나님께서 곧 말씀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조용히 구하는 시간이 또 한번 오래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시계가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누이가 가엾게도 의자에 기대 무릎을 꿇은채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우리 셋이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2가지가 내 속에 확실하게 떠올랐다.  하나는 "코나"라는 단어였다.  내가 한번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곳이 빅 아일랜드에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는 빅 아일랜드에 있는 등대의 그림 같은 것이 마음속에 보였는데 그 등대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그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마음 속에 있는 관심사는 배에 대한 꿈이 부활되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코나와 등대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는 침묵을 깨고 레오나와 지미에게 나의 의견을 얘기했다. (제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주님,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기도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떠올랐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정규적인 전도 학교 같은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학교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훨씬 광범위하게 훈련시키는 학교였다.  레오나는 하나님께서 농장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이 모든 생각 중에 가장 큰 수수께끼는 만(灣)에 정박해 있는 크고 하얀 배에 대한 그림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제 시계는 아침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생각은 이 모든 새로운 정보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등대, 큰 학교, 빅 아일랜드-코나, 농장, 만에 떠 있는 하얀 배.


지미는 제니를 깨웠다.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아주 뻣뻣함을 느꼈다.  나와 함께 기도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리집으로 가는 컴컴한 진흙길을 내려왔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눕자 잠에 빠져들었다.  몸에는 기운이 다 빠졌지만 나의 내부에서는 기운이 넘쳐났다.


겨우 몇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린이 내 어깨를 가볍게 흔들면서 일어날 시간이라고 나를 깨웠다.  나는 밤에 얼마나 놀라운 시간을 보냈는지 단숨에 그녀에게 말해주고는 서둘러 아침 공부 시간을 위해 식당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아침 식사 후에 깨끗하게 치워진 긴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90개의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긴 머리 소녀들은 청바지나 유행이 지난 치마들을 입고 있었다.  형제들은 한결같이 청바지를 입고, 어떤 이들은 턱수염에 긴머리를 하고 어떤 이들은 깨끗이 수염을 깎고 있었다.


"우리 몇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느라고 아주 진지한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시는지 보고 싶어요."  나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밟았던 순서를 다시 사용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기도했다.  사탄을 향해 그리스도의 권세를 선포하고, 우리가 갖고있는 선입관을 모두 버릴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가 옆집 마당에서부터 들려왔다.


"누가 첫번째로 나누겠어요?"


둥글고 테가 없는 안경을 쓴 둥근 얼굴의 소녀가 부끄러워 하며 얘기했다.  "약간 우스운 소리 같지만 대문자로 'K'라는 인상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어요?"


금발색의 턱수염을 한 청년이 재빨리 얘기했다.  "나는 '코나'라는 단어를 받았어요."  나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화산"이라는 단어를 받았다.  하와이의 유일한 활화산은 빅 아일랜드에 있었다.


그 놀라운 아침이 이렇게 하여 진행되어 갔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단어들을 얘기했다.  "나는 큰 장소에 대한 그림을 보았어요.  어떤 종류의 학교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느 청년이 얘기했다.  어떤 다른 사람은 농장에 대해 언급하고 어떤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하얀집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많은 것들이 어제밤에 우리가 받았던 인상들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귀로 듣고 있는 그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곳에 90여명의 증인들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를 정말로 감동시키는 부분은 하나님을 구하는 그 시간의 바로 마지막 부분이었다.  한 소녀가 배를 보았다.  그녀는 말하기를 그것이 하얀 배이고 섬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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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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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orgiveness


서양교회의 뒤를 이어 한국교회도 점점 세련(?)되고 합리적(?)이 되어져 갑니다.  사랑받음, 내적 치유, 상담, 화합, 가정 사역, ...  이런 단어들을 교회에서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접하게 됩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며 다독여 주는 측면이 강조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그 힘든 연단의 과정을 믿음으로 견뎌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크리스찬 상담 사역자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혼하세요."  "부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우선 순위가 되면 안되지요." 라고 권고하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은 시대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게 되어있기에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보통 자신이 해준 것, 상대방이 내게 서운하게 한 것, 자신이 느끼는 섭섭함과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마련입니다.


까다로운 시부모, 성격이 맞지 않는 배우자, 반항적인 자녀, 신의를 저버린 친구, 괴롭히는 직장 상사....  흔하기만 한 이런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피하는 결정을 누군가 내리는 것을 볼 때 우리가 그 사람들을 향해 감히 잣대를 들이대며 정죄하는 짓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당연하고 정당한 결정을 한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만 한다면,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따라가주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하신 주님의 radical한 '명령'은 어디에 자리하겠습니까?


얼마전 한 동호회 게시판에, 무교인 남자분이 기독교인 여자분과 결혼을 했는데, 부인 왈 "일년에 2번 이상 시댁에 가자고 하면 이혼.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대하면 이혼.  자녀 출산후 세례주는 것과 교회 가는 것 반대하면 이혼."이라는데 어떻게 해야겠냐고 물었고, 상당수가 "기독교인 여자와 결혼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라고 답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이나 선교회 활동에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평가 받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도 시부모와 장인장모를 정성으로 섬기는 모습이나, 가정과 자녀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는 모습이나, 초월적이고 희생적인 베풂을 보이는 모습, 억울함을 변명치 않고 인내하는 모습,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내하는 모습은 사실 거의 자취를 감춘지 꽤 된 듯 합니다.  교회에서도 손에 물 한방울, 얼굴에 땀 한방울 없이, 돈과 lip service만으로 섬기는 것 역시 세대가 갈수록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합리, 공평, 정의라는 그럴듯한 단어 뒤로 숨어버리는 한, 아마도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본질을 절대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故 박용익 목사의 유언)


몇년 전 사람과 음식을 끊고 일주일간 홀로 서는 시간을 보낸 후에 제게 응답으로 다가온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상당수는 아마도 이런 명령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사셨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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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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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odyko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5.13 09:08 신고

    완전... 완전... 완전....
    동의 공감 감사하는 글입니다!!!!

  2.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5.14 16:32 신고

    크~~ 역시 깊어....

무장해제 (Disarmament)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내 마음과 머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빈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text)를 보기에 앞서 내 상황(context), 의도(agenda), 선입견(prejudice)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빈 자리를 만드는 것은 내가 평생을 진리로 확신하고 믿어왔던 교리와 생각과 체험도 틀릴 수 있다고 방패를 내려 놓는 것이 하나요, 내가 싫어하고 거짓으로 여겨 공격해 왔던 것에서도 진리가 발견될 수 있다고 칼을 내려 놓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방패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지고의 가치가 무너질 때 수반 될 “허탈” (요샛말로 “멘붕”) 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심각한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눈과 귀를 틀어막고 현실 부정을 하는 사람들이나, 이단으로 확정되어 대다수가 등을 지고 나간 후에도 세상과 고립된 채 함께 몰락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의 극단에 해당 되겠지만 사실 제 안에도 그런 심리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내려놓음이 없다면, 일년에 여러번씩 성경 통독을 하는데도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 없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남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또 많은 경우에 이것은 내가 그 동안 성취하고 쌓아왔던 것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위, 직업, 학력, 재산, 관계 등....  이런 것들을 ‘똥’처럼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 함으로 불안요소를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칼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과거에 받는 상처를 통해 전해지는 견딜 수 없는 “아픔” 때문입니다.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나, 내가 혐오하는 단체가 주장하는 말과 행동에 관련 되어 있는 부분에는 내 마음이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분명 한두 단어만으로도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인데, 오염된 것 같아 사용하지 않고 싶어 그 단어를 피해 뺑뺑 돌다 보니 어느덧 한두 페이지를 할애해야만 하는 적도 있습니다.  기복주의, 근본주의, 자유주의, 민중신학, 해방신학, 세대주의, 다원주의...  일단 거부반응이 일어나면 마치 정 반대편에 진리가 있는 것처럼 반작용으로 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콩으로 메주 쑨다 하여도 곧이 듣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경우겠지요.  제 짧은 경험으로 볼 때, 가까이 있었지만 싫고 더럽고 혐오해서 쳐다보지 않던 것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나사 하나가 결국에는 뭔가 잡힐 듯, 완성될 듯 하면서도 마무리되지 않고 맴돌고 있었던 것의 마침표가 되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읽는 우리야 여러 번 읽고 들어 그렇지 않지만, 사실 성경에 나온 내용들을 살펴 보면  당사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충격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묵상하는 우리에게도 그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도록 하려면 먼저 내 안 에 빈자리를 마련해야만 하겠습니다.

 

[추신] 한국 신문의 기사나 SNS에서도 “허탈”과 “아픔”을 두려워 상대방의 말에 귀를 닫고 “끼리 끼리” 어울려 떠드는 모습... 참 많이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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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21 21:07 신고

    고등학교 때 본 '순수'한 모습이 아직 변함이 없네요.

라합의 일기 (5) - 무너진 성벽

요단강을 건너온 히브리인들은 길갈 평야에서 뭔가를 하면서 다시 며칠을 있었고 여리고 성 사람들은 성벽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면서 초조한 매일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에 왕은 예정했던대로 성의 어린 아이 하나를 몰렉신에게 산채로 태워 죽여 드리고 성 사람들에게 이제는 걱정말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사실 가나안 지역 전체를 통털어 여리고만큼 견고한 성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연결된 성벽 외벽만해도 어른 5명 합쳐놓은 만큼이나 높게 진흙벽돌과 돌을 사람키 두께로 쌓아놓은데다, 그것도 모자라 그 안으로 다시  엄청나게 높은 내벽을 진흙벽돌로 쌓아놓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이 성을 감히 공략하지 못했다.  성 중앙에 있는 큰 오아시스도 있고,  방금 추수한 곡식도 넘쳐나는 시기라 이기지는 못할지언정 히브리인들이 포기하고 다른데로 갈때까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참조: 창조과학회 "여리고의 성벽" click here]

이윽고 히브리인들이 여리고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높은 성벽을 넘어올 사다리도, 성문을 깨부술 공성기도 가져오지 않았다.  군사들이 반씩 나뉘어 있었고 그 중간에 뿔나팔을 부는 사람들 7명이, 그 뒤로 요단강을 앞서 건너던 궤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걸까?


그들은 요단강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조용히 성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미떼와도 같이 많은 군사들의 발자욱 소리는 그들이 한걸음씩 옮길때마다 성을 조용히 진동시켰고 성 사람들은 초조한 가운데 그들의 발걸음을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성벽위에 난 집 창문 틈으로 그들을 내려다 보다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살몬의 얼굴을 찾았다.  붉은 줄이 드리워진 창을 계속 쳐다보며 돌던 그는 눈길이 나와 마주치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지 말라는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바퀴 돌기를 마친 그들은 길길로 돌아갔다.  화살하나 창하나 던져보지 않고...  긴장 속에 지켜보던 왕과 성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들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하는 전쟁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여리고 성 왕과 성 사람들은 초조함속에 매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히브리인들이 성을 돌기 시작한지 7일째 되는 날이다.  평소와는 달리 한바퀴 돌기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길갈로 돌아가지 않고 돌기를 계속했다.  두바퀴, 세바퀴, ....  그들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성돌기를 계속 반복했다. 일곱바퀴째 돌기를 마치자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러자 7일간 입을 다물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고 그 소리에 성벽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바깥쪽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성 외벽에 붙여 지은 집들도 함께 무너지는데 이 함께 우리집도 무너질 것 같아 집 밖으로 뛰쳐나가 피신하고 싶었지만, 일단 집을 벗어나면 살몬이 지켜주기로 약속한 곳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옆의 집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도망쳐 나갈수가 없었다.  개미떼와 같이 많은 히브리인 병사들이 무너져 내린 벽돌과 돌을 밟고 성으로 뛰어들어와 성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 때 사람들을 헤치며 붉은 줄이 드리워진 이곳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살몬이 먼지 속에서 보인다.  나는 달려나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나와 내 가족들을 즉시로 데리고 나가 길갈 근처로 피신시켰다.  놀랍게도 대부분 무너져내려버린 여리고의 성벽 중에 내가 살던 집에 연결된 부분은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 요단강물을 멈추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신께서는 그 와중에도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셨구나.  살몬만이 아니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신께서도 나를 아시고 구원하셨구나!"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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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4) - 멈춰버린 요단강

강 건너 진치고 있는 히브리인들 탓에 이곳 여리고 성에 드나드는 나그네들도 전 같지 않게 거의 없어 내가 운영하는 여인숙도 한산하기만 하다.  하는 일도 거의 없다보니 틈만 나면 멍하니 앉아 얼마전 들었던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나그네 두 명이 내 여인숙에 들어왔다.  여리고 성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성 분위기에 대해 이런 저런것을 묻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 신들에 대한 나의 회의감과 점토판에서 알게된 히브리인들의 신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듣고 있던 그들은 조심스럽게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겪었다는 기적들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더 해주면서 자신들도 가나안의 신들은 가짜인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두 나그네가 히브리인들이라는 것을 직감하여 캐어 물었고 그들은 망설이던 끝에 결국 시인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즉시로 나는 그들을 재촉해 지붕으로 데려가 그들을 삼대로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되어 왕이 보낸 병사들이 수상쩍은 그들을 체포하러 나타났고 나는 그들이 해지기전에 이미 성을 떠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병사들이 요단강 쪽으로 그들을 추격해 떠나고 성문이 닫혀진 후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숨겨놓은 나그네들에게로 갔다.  숨겨줘 고맙다고 말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여리고 성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문으로 들어왔던 히브리인의 신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후로 자신들의 신에 대한 믿음을 잃었어요. 모두들 이 성이 정복당해 죽을 것을 알고 좌절하고 있지요.  나도 이 성 사람이니 함께 죽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혹 만에 하나 당신의 하나님이 히브리인들 외에도 자신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는 분이라면 제가 당신들을 숨겨주고 보호한 것을 봐서 저와 제 가족들을 살려줄수는 없는지요?"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물론이지요.  저희의 목숨을 보호해준 당신의 은혜를 저희가 꼭 갚을겁니다."라고 말했고 그 중 한명은 "제 목숨을 걸고라도 당신과 당신 가족을 구해낼테니 염려마세요.  당신을 제 목숨의 은인으로 우대할것을 제가 맹세합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의 얼굴은 그가 진심으로 그 말을 하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가운데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제 이름은 살몬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날 밤 나는 성벽 외벽위에 맞붙여 지은 내 집의 창문을 통해 살몬과 그 동료를 밧줄로 달아 내려주며 "추적대가 계속 수색을 하고 있으니 3일간은 산에 숨어 있다가 돌아가세요" 당부했고 살몬은 "곧 침공이 있을건데 모든 가족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집에 모아 놓고 창에는 붉은 줄을 받드시 매달아 두도록 해요"라고 말한 후 어둠을 틈타 빠져나갔다.


사흘이 지나도 살몬과 그 동료가 잡혀왔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후로 다시 3일이 지나자 다시 성이 소란스럽다.  히브리인들이 드디어 요단강 바로 앞으로 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쳐들어 올것을 알았지만 추수기에 내린 많은 비에다, 날씨가 풀려 헐몬산의 눈들이 녹아 내린 물까지 합세하여 요단강은 일년중 어느때보다도 물이 불어 있을 때이기 때문에 설마 최단 거리의 요단강을 향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려는 건지 구경하겠다고 성내 사람중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이 보이는 언덕으로 몰려갔고 나 역시 그들을 따라 나가봤다.


멀리 모래알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히브리인들이 대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 앞으로 궤 같아 보이는 것을 짊어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어 무섭게 흘러내리는 요단강가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어쩌려는걸까?  히브리인들이나 여리고 성 사람들이나 모두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궤를 짊어진 사람들이 요단강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쳤구나!  저 물줄기에 휩쓸리면 시체도 못찾을텐데....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그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마다 그 무섭게 흘러내리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사르단 부근의 아담성에 벽처럼 일어나 쌓이는게 아닌가?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생시였다.  지켜보던 여리고성 사람들 모두가 입만 벌린채 넋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누군가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외치자 그제야 모두 정신을 차리고는 앞을 다투어 성으로 뛰어 갔다.


성으로 돌아온 왕은 곧바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고, 나는 즉시로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어요.  홍해를 가르고 건너왔다는 말도 진짜에요.  요단강물이 멈추는 것을 나와 성사람들이 똑똑히 봤어요.  히브리인의 신이야말로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 분명해요!" 말해줬다.  가족들 모두 내 말에 동의했고 우리는 살몬이 말한대로 창에 붉은 줄을 달아내렸다.  이제 왕과 다른 성 사람들이 모르도록 조용히 모여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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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3) - 점토판에 기록된 신

긴장과 공포로 히브리인들의 동태를 지켜보던 중 얼마 전 히브리인들의 진영에 큰 곡소리가 났다.  왕은 아니지만 그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들었다.  무려 한달간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그 길고도 긴 곡소리는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히브리인들의 구심점을 잃었을 것이며 그러니까 여리고성을 노리지 않을것이라는 안도감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우리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군대가 식량을 준비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갑자기 들려왔고 이로 인해 한동안 안도하고 있던 성 안 분위기는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사장과 사제들이 성을 휘젓고 다니면서 젖을 갓 뗀 어린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걸까?  저렇게 어린 아이까지 데려간 적은 없었는데....  신전에 있을 때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나이 많은 제사장 할아버지를 찾아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들었을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브리인들의 병력규모로 보았을 때 여리고성이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맹세의 신 몰렉에게 어린 아이를 산채로 태워 제사를 드리기로 왕이 결정했단다.  설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몰렉 신께서 우리 성의 굳건함을 통해 히브리인의 공격을 막아내도록 도우실 거라는 믿음의 고백이란다.  


제사장 할아버지를 다그쳐 물어봤다.  그렇게 해서 몰렉신이 도와준 적이 있느냐고.  하다 못해 신의 계시라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할아버지는 "우리 성은 강하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 사람들의 일치된 용기인데. 한 어린 아이의 희생을 통해 우리 성이 하나로 뭉칠수 있다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조상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 안에서 약해질대로 약해졌던 신들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안심시킬 한 마디도 들려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무력한 신.  과연 그 신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엉터리 신, 아니 나무토막 돌덩이를 의지 한답시고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를 산채로 태워 죽인다고?  힘센 것들이 약한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유린하고 착취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말도 안되는 엉터리 신들을 앞세워 성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 자신의 지위를 지켜내려는 발악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아이를 태워죽이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그 제사에 참여할 성 사람들을 생각을 하니 치가 떨려왔다.  하루라도 빨리 이 저주받을 성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사장 할아버지께 히브리인들의 신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생겼냐고?  신상이 있느냐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히브리인들은 신상을 만들지 않는단다.  그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본 사람이 없어.  대신 그들의 신에 대한 기록이 적힌 점토판은 우리에게 있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구석에 있는 점토판을 꺼내 읽어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겠다고 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것이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가슴은 터질듯이 뛰었다.  그간 들어왔던 무수한 신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  끊임 없이 치고 받고 싸우고 빼앗는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담은 허접한 가짜 신이 아닌, 천지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절대자...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듣고 말하시는 구세주...  히브리인들의 신이 정말로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 속의 신이라면 어릴 때 들었던 애굽에서 벌어진 일이나 바다가 갈라졌었다는 등의 이야기도 과장 없는 사실일 수 있지 않은가?


[Note] "점토판" 개념을 비롯한 여러 부분이 김성일님께서 1992년 출판하신 소설 "다가오는 소리"를 참고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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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2) - 신이란?


내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들어오는 나그네들마다 히브리인들 이야기에 한층 더 열을 올린다. 헤스본과 바산에 있던 히브리인들이 모압 평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살고 있던 미디안 족속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그 전쟁에 동원된 히브리인들은 전체의 1/50 에 불과한 일부였다고 하니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가나안 다른 지역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이곳 여리고성은 히브리인들이 진을 친 모압 평원에서 요단강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공포심은 더욱 역력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히브리인의 신에 맞설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13살때 처음 참여한 제사의 경험은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사제들이 성중에서 골라 뽑은 아리따운 소녀들과 잘 생긴 소년들 중 한명으로 나는 사제들의 손에 이끌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성 중앙에 있는 신전으로 올라갔다.  성안의 어른들 대부분이 이미 모여 신상 앞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신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한다는 들뜬 마음을 성의 왕과 제사장, 귀족들과 남녀 사제들이 아세라 신에게 드리는 번제의 숙연함 속에 조심스레 누르면서 우리는 과정 하나 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번제가 마치자 왕과 제사장과 귀족들과 사제들은 음흉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강제로 우리 아이들의 옷을 찢고 겁탈하기 시작했다.  왕과 남자 사제들은 소녀들을, 여자 사제들은 소년들을...  그 뒤를 이어 제사에 참여한 성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혹은 아이들을 혹은 사제들을 택해 난교를 벌였다.  사랑과 다산의 신인 아세라를 경배하는 중요 제사예식 중 하나로 아세라 신와 그 남편 풍요의 신 바알의 관계를 흉내내는 성행위를 통해 그해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그 날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처녀성은 수십명의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유린되어졌다.


그후로도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신전에 끌려들어가는데서 벗어나기까지 우리는 여러차례 같은 일을 치루어야만 했다.  같은 일을 겪은 또래 중 그 의식을 좋아하게 된 아이들도 있었지만 내게는 지금도 그 생각만하면 자다가도 잠이 깰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어, 더이상 제사에 강제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나는 여인숙을 하면서 나그네들에게 몸을 파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성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너무 싫다.  사랑의 신이라고?  사랑이란게 그런것일까?  그런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짓밟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이란 것을 증오한다.  지금껏 수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해왔지만 돈 때문에 그 짓을 했을뿐 단 한번도 그들에게서 따뜻함이나 포근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신전에서 처음 경험한 남자들이나 지금 내게 돈을 내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자들이나, 내가 마치 변소나 되는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내 가랑이 사이에 배설하고 갈 뿐이다.


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싸우고, 질투하고, 성관계를 맺고, 죽기도 한다는데 그럼 인간들과 다른게 뭘까?  그저 보통 인간보다 조금 더 힘센 그런 존재들을 신이라고 부르는 건가?  신을 실제로 직접 만났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신 만이 할 수 있을 그런 기적을 경험한 사람도 없다.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나무와 돌 덩어리에 새긴, 말도 할 줄 모르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기만 하는 그들이 정말 신일까?  성 내에서 증폭되고 있는 공포심에 비례해서 어릴 때부터 들어오고 성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해 왔던 신들에 대한 나의 회의감은 커져만 간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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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1) - 희한한 족속


성 안이 요즘 몇달째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히브리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족속 때문이다.  이 희한한 족속의 이야기는 어릴 때 할머니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이곳 여리고 성에서 이집트로 가는 길을 따라 4일 정도 남쪽으로 가면 시작되는 큰 광야가 있는데 이 곳에서 엄청난 수의 한 족속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듣기로는 할머니가 젊으셨던 시절 즈음에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온 노예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도망쳐 나올 때 이집트에서는 온갖 천재지변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들을 내보내달라는 노예의 대표자 요청이 거부될 때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피부병, 우박, 메뚜기떼 등으로 이집트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고도 하고, 대낮에 칠흙같은 어둠이 뒤덮여 이집트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고도 하고, 급기야는 이집트 내의 모든 가축의 첫 수컷과 사람들의 첫째 아들이 전부 죽어버렸다고도 한다.  결국 이집트 왕 파라오가 노예들에게 가도 좋다고 했는데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군대를 동원해 홍해 바다 막다른 곳에 몰아 넣었더니, 그 거대한 바다가 그들 앞에서 갈라져 히브리 노예들은 이집트 군대를 피해 이 편으로 건너왔고, 그 뒤를 따라 군대가 추격하여 들어섰을 때에는 바다가 다시 물이 넘쳐 군대의 대부분이 익사 했다고 들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히브리인들이 수 백년 전 이곳 가나안 지역에서 이집트로 이주했던 사람들이라서, 이집트를 떠나 다시 이 곳으로 올 것이라는 소문이 함께 전해졌기 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을 당시 주변의 모든 성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극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남쪽 광야 경계부근에 위치한 가데스바네아에서 진쳤던 히브리 노예들은 호르마란 곳에서 아말렉 족과 싸워 한번 힘없이 패한 뒤로 이곳으로 오지 않고 방향을 돌려 큰 광야에서 살기 시작했다.  왜 그들이 광야를 그들의 살 곳으로 택했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곳은 메마르고 척박해서 농사는 커녕 마실 물도 찾기 힘들고 위험한 불뱀과 전갈들이 득실거리는 극히 위험한 지역인데, 그들은 수 많은 소와 양과 염소떼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년간 그들을 주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옮겨 다녔는데 길게는 한 곳에서 1년도 있었지만 어떨때는 겨우 하루 저녁 지나 다시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히브리인들의 수는 엄청나서 한번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으면 끝에서 끝까지 빨리 걸어도 반나절은 족히 걸어야 다다를 정도로 큰데, 노예라는 출신에 걸맞지 않게 질서정연한 천막의 배치와 이동은 마치 거대한 군대와도 같다고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늘 옮겨 다니다 보니 다들 조그만 천막을 쳐놓고 살았는데 그들이 머무는 곳 중앙에 늘 쳐 놓고 제사를 지내는 하얀 천막은 신기하게도 구름 같은 것이 늘 덮여 있고 그 구름이 움직이면, 나팔이 울리고 그 즉시 히브리인 모두가 천막을 걷어 그 구름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임재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한 것일까....  어쨌거나 조그만 구름 하나를 그 많은 사람들이 졸졸 따라 다니면서 수십년째 광야를 맴돌다니...  제 정신들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먹으며 연명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외부 족속들과는 단절된 떠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곡식을 사오는 것도 없었는데도 그들은 분명 곡식처럼 보이는 것을 매일 먹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풀 한포기 없는 들에 나가 뭔가를 주워다가 먹는다는데 나중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주워간 것인지 살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그렇듯 많은 주목을 한동안 받았지만 그런 엄청난 신을 모시는 족속이라면 왜 광야에서 그렇게 힘 없고 대책없이 떠돌고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나 역시 어릴 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히브리의 신은 정말 엄청나게 강한 신인가 하며 놀랐지만 자라면서 많이 들은 다른 신 이야기들 이야기에 섞여 히브리 신의 이야기도 자연스레 함께 내 머리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었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이 히브리 사람들이 사람들의 관심에 다시 떠오르게 된 이유는 얼마전 이들이 수십년간 살던 광야 지역을 벗어나, 40여년전 그들이 크게 패한바 있는 호르마와 그 일대를 모조리 휩쓸어버리고, 이어서  가나안 지역의 동북부에 있는 헤스본과 바산으로 가 전쟁을 벌여 그곳을 점령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 지역에 사는 아모리 족은 모두 엄청난 거인들이고 특히 바산의 왕은 보통사람보다 두배 이상 커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존재였는데, 경악스럽게도 그 불패의 아모리 족속들이 노예 출신의 히브리 인들에게 전멸을 당했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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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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