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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6.29 친밀함 or 불경? (2)
  3. 2017.10.17 자기관리 수칙 33가지 (2)
  4. 2017.07.29 면(麵)? 면!!
  5. 2017.03.23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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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6.09.02 Doctrine (교리) (2)
  8. 2016.08.18 Belief
  9. 2016.06.25 동성애의 관용. 그러나 그 열매는? (1)
  10. 2016.05.20 목이 뻣뻣한 백성

기다림

묵상 2018.09.03 19:47

기다림



성경은 과거의 약속(covenant), 성취된 약속, 앞으로 성취될 약속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영어의 Old/New Testament를 한글로는 구약/신약이라고 번역하였다.


일반적인 약속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정한 것이다.  약속을 믿는 사람은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을 믿고 그 때까지 기다린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 그 약속이 지켜질(성취될) 시점이 명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기다림이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사도행전 1:7)


믿음 속의 기다림은 지속적인 관심과 확인으로 나타난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나가 퇴근 길의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과 가족의 편지와 전화와 만남을 기다리며 수시로 확인하는 사람, 타는 가뭄 속에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는 농부, 목마름 속에서 물을 찾아 헤메이는 사슴...  현대의 교회는 과연 이런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서정윤 시인의 기다림은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모태솔로의 아픈 독백이지만, '홀로서기'로 작정한 체념 속의 희망사항일 뿐 그리스도인의 기다림과는 다르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편 130:6) 

My soul waits for the Lord More than the watchmen for the morning; Indeed, more than the watchmen for the morning.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 계시록 22:20) 

"Yes, I am coming quickly " Amen Come, Lord Jesus.


때를 정하지 않고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언뜻 불공평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돌아올지 조차도 불확실한 인간들을 지켜보며 수천년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기다림은 참 쉬운 편이 아닐까...


"나오미야, 아버지는 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시며, 만일 밤중에라도 와서 현관 문이 잠겨 있어 그대로 가 버리면 딱한 일이 아니겠냐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밤이나 낮이나 현관을 잠근 일이 한번도 없었단다.  설마 밤중에 올 리야 있겠냐고 내가 말했지만 말야.  그랬는데 역시 밤중이었구나."

"아아..."  목사관은 곧잘 좀도둑이 노리는 곳이다.  나오미는 자기도 모르게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2년이 넘도록 매일 밤낮으로 부모님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자기를 그렇게 기다려 주었는가 생각하니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미우라 아야코 (三浦 綾子) 著 "양치는 언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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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or 불경?

묵상 2018.06.29 22:03

친밀함(Intimacy) or 불경(Impiety)?


교회에서 음악부서를 섬기다보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다들 눈감고 기도하는 시간에 이동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를 종종 보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 신자들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목회자들의 기도 자세가 전형적인(typical) 모양과는 사뭇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사실 기도할때의 자세가 이러 저러해야 한다는 규범은 없다.  요즘은 보통 눈을 감고 하지만,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당시 유대인들은 눈을 뜨고 때로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했던 것 같고,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경우 선 채로, 혹은 무릎 꿇은 채로 기도했던 것 같다.  양 손을 모으고 할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고 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영과 마음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가끔 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아래 두 사진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 역시 존경하는) 복음주의 목회자들중 한 분께서 설교를 마치고 기도할 때의 모습이다. (이 분을 예로 들고 싶지 않았는데 예배중 목회자 기도하는 모습 몰카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리고 늘 이런 자세로 하시는 것도 아님을 밝혀둔다) 인터넷으로 설교 동영상을 보던 중 끝 부분에 갑작스레 들어온 저 모습은,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자랐고 이미 중년 나이의 내게 의외였고 당황스러웠다.




한가지의 단편적 모습 + 내 선입견으로 한 분의 신앙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짧지 않은 햇수를 살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의 에티켓과 문화차이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과 정말 친밀하게 느껴서 격식 차리지 않고 대하는 것이 일상화 되다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게 정말로 부족한 부분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걸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교인들을 향한"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시간이 되었는데도 혹 목회자는 여전히 "교인들에게" 설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61년에 발간된 개역 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기록했고 1977년대에 발간된 공동번역은 '야훼'라고 기록했다.  히브리어 원문에 יהוה라고 자음으로만 적힌 이름이 너무 거룩히 여겨져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읽는 것 외에는 그 단어를 늘 '아도나이' (주님) 이라고 바꿔서 읽다보니 읽는 법이 완전히 잊혀졌던 것이 그 이유다.  같은 이유로 현대에 사용되는 영어 성경 상당수가 the LORD로 번역했고 2008년 교황청에서도 “거룩한 네 글자(tetragrammaton: YHWH)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전례에서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고 ‘주님’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는 핀잔을 줄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실재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친밀함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꽤나 있는 외경(awe) 혹은 공포(fear, dread)에 가까왔다고나 할까?


자유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매주 적게는 한번, 많게는 7~8번의 예배를 드린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련되어지고 entertainment화 되어가는 추세 속에서 함께 예배를 진행하는 한 명으로 나는 하나님의 실재와 임재를 늘 기억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제집처럼 편해진 교회 속에서 사람들만을 의식하면서 또 한 시간을 그냥 보내다 오고 있는 것일까?  목회자들의 기도하는 자세에서 그 분들이 만나고 있는 하나님 대신 그저 그 분들의 professionalism(?)을 느끼고 있다면 내가 너무 꼰대가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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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17 17:11 신고

    "음악부서"? 성가대? 악기? .... 궁금해라~.
    기도할 때는 눈 감아야지요, 시험에 들지 않게... ㅋㅋ

자기관리 수칙 33가지

by 이재철 목사

  1. 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자가 되라. 말씀과 기도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2. 새벽기도회가 끝남과 동시에 개인 기도를 충분히 하라. 그 시간을 놓치면 하루 중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기는 어렵다.
  3.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 집에 가서 다시 자지 말라. 하루 중 그 시간보다 영성을 기르기에 더 좋은 시간은 없다.
  4. 심방의 댓가로 어떤 경우에도 돈을 받지 말라. 그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인격을 파는 짓이요. 스스로를 삯군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5. 반드시 시간을 지켜라. 어떤 예배이든 정해진 시간 정각에 시작하라.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예배 시간을 늦추지 말라. 예배 시작 시간이란 사람과의 약속인 동시에, 그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6.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이어야 한다. 교인들이 없다고 해서 목회자의 정체성을 망각한다면 결국 사람 앞에서는 목회자의 연기를 하는 셈인데,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7.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지 휴일이 아니다. 만약 목회자의 토요일이 휴일이 된다면, 그 순간부터 목회자는 교인과 구별되지 않는다.
  8.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위하여 교회에 금전적인 요구를 하지 말라. 목회자는 주어진 것 속에서 자족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권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9. 교인들에게 대접만 받는 사람이 되지 말라.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 목회자가 나눔의 종착역이 되려 하면 스스로 썩어 버린다.
  10.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11. 실수를 깨달았을 때에는 즉시 사과하라. 실수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실수를 깨닫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를 세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은 목회자의 자질 문제다.
  12.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설교한 것은 무조건 실행하라. 참된 설교는 강단에서 내려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13. 목회활동 중에 알게 된 교인의 비밀은 누구에게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
  14. 내일 떠나더라도 지금 섬기는 교회를 중간기착지라 생각지 말고 종착역으로 여겨라. 내일이 되기 전에 내 생명일 끝날지도 모른다.
  15. 명단을 작성할 때에는 교인들의 이름을 먼저 쓰고, 교역자의 이름은 제일 말미에 넣어라. 교인들을 위한 섬김은 종이 위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16. 교회 재정에 관여치 말라. 한 번 관여하기 시작하면 재정이 목회의 핵심이 되어 버린다. 목회의 핵은 복음이지 재정이 아니다.
  17.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 한다. 그러므로 교인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에 투철하지 않는 한 진정한 목회자는 될 수 없다.
  18. 교인수첩 제작 등, 교인 명부를 작성할 때에 교인의 이름이 틀리거나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라. 사람의 이름을 빠뜨리거나 틀리게 기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19. 장례식 때 하관예배의 설교는 5분 이상을 초과하지 말라. 그 때가 유족들이 가장 지쳐있는 시간이다.
  20. 하관예배까지 다 끝난 후에는 유족의 집까지 따라가서 위로의 기도를 해 드려라. 장례식을 마치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이 유족이 가장 외로울 때이다.
  21. 이성(異性)이 교역자 혼자 심방해 줄 것을 요구하면 절대로 응하지 말라. 이성과는 단 둘이 식사도 하지 말라. 이성과 상담을 할 때에는 반드시 교회 사무실 공개된 장소에서 하라. 정신질환자인 이성이 상담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누군가를 배석시켜야 한다.
  22. 다른 목회자가 어떤 일을 주관할 때 반드시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 세워 보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그 일이 맡겨졌을 때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
  23. 월요일 아침에는 자기 교구 교인 명단을 놓고, 주일에 누가 보이지 않았는지를 대조하면서 전화로 확인해 보라. 목회는 관심이고 관심은 쏟아야 계발된다.
  24. 좋은 설교는 그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설교에 초점이 없다는 의미다.
  25. 목회자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 목회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 입에서 발해지는 말들은 모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26. 토요일 신문이 오면 주일에 대한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처를 미리 취하라.
  27. 부목사 시절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은 반드시 읽어라. 목회의 대상은 사람이고 문학은 사람에 관한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문학은 사람에 대한 앎의 깊이를 더해 준다. 사람을 알지 못하는 자의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28. 다른 사람이 설교할 때 주의를 집중하여 설교를 경청하라. 타인의 설교를 소홀히 하면 다른 사람도 나의 설교에 집중치 않는다. 다른 사람의 설교에 목회자가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이미 교인을 향한 훌륭한 설교다.
  29. 지식과 정보는 반드시 공유하라.
  30. 교인의 모든 행사는 교역자 위주가 아니라 교인 위주여야만 한다.
  31. 신학자는 수직적인 사고만으로도 족하지만, 목회자는 수직적인 사고와 수평적인 사고가 교직되어야 한다.
  32. 절대적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인 것이라면 모두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33. 삶은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기에, 목회자는 자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중단없이 정진해야만 한다.

[출처] "이재철 목사의 목회자 자기 관리 수칙 33" ("사도행전 속으로"에 포함된 소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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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0.18 16:58 신고

    나중에 이 글 올리신 것을 후회하는 날이 오실지도 몰라요.....

면(麵)?  면!!



일본의 라멘, 우동

중국의 자장미엔, 단단미엔, 러깐미엔

베트남의 포, 버미첼리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페튜치니, 엔젤헤어, 링귀니


저는 배가 출출할때 떠오르는 음식중 상당수가 면 종류입니다. 


한국도 면 종류가 많죠.  칼국수, 막국수, 콩국수, 냉면, 라면, 소면, 쫄면, 짜장면....  (츄릅~~)


그런데 성경에서도 '면'이 상당히 단골메뉴에 속합니다. ㅎㅎㅎ

  • 그리하면 (그렇게 하면)  231회
  • 행하면 (준행하면)            38회
  • 사랑하면                            8회
  • 구하면                               8
  • 회개치 아니하면                7회
  • 거하면                               6회
  • 범죄하면                           6회
  • 영접하면                           5회
  • 시인하면                           3회
  • 거역하면                           3회
  • 회개하면                           2회
  • 용서하면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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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f you are clear on your identity, and clear on your mission, you get clear on when to say "no."


당신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실하고, 당신의 사명에 대해 확실하다면, 언제 "아니오"라고 말할지에 대해 확실해진다.


The reason to say "no" to a lesser good is so you can say "yes" to a greater good.


덜 좋은 것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더 좋은 것에 "예"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이다.


Say "no" to the following three big temptations:

1. You are what you have.

2. You are what you do.

3. You are what people think of you.


아래의 세가지 큰 유혹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라.

1. 당신이 가진것이 곧 당신이다.

2. 당신이 하는 일이 곧 당신이다.

3.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곧 당신이다.


Click here to watch "No" by John Ortberg from Menlo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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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묵상 2016.12.16 21:15

기다림


'아, 이거 정말 꼭 되야 하는데....'


'이번 시기 놓치면 곤란한데....'


'서두르지 않으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텐데....'



나는 성격이 무척이나 급한 사람이다.  의사 결정이건, 일의 진행이건 속전속결을 선호하고 매사를 서둘러 가급적 빨리 종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내가 믿는 그 분은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라 서두름이 일체 없으시다.  그래서 그 분의 때와 그 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늘 내게는 너무나 길고 힘들기만 하다.


큰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결말은 뚜렷하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꽤나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말이 최선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래서 그저 인내하면서 기다려 본다.  



"때가 차매" "when the fulness of the time was come" (갈라디아서 4: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히브리서 11:1)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태복음 6:10)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There is an appointed time for everything. And there is a time for every event under heaven." (전도서 3:1)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In returning and rest shall ye be saved; in quietness and in confidence shall be your strength." (이사야 30:15)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You shall not shout nor let your voice be heard nor let a word proceed out of your mouth, until the day I tell you, 'Shout!' Then you shall shout!"  (여호수아 6:10)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My people who are called by My name humble themselves and pray and seek My face and turn from their wicked ways, then I will hear from heaven, will forgive their sin and will heal their land." (역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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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2.17 08:21 신고

    분위기가....
    조국의 부르심을 받은 듯?
    그렇다면....
    가셔야지요......

    정석루머.com

  2.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2.19 17:05 신고

    역쉬~~~
    그 높은 뜻을 소인이 어찌 다 헤아리이까~~~ ^^

Doctrine (교리)


"썰"을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굼벵이, 메뚜기, 바퀴벌레, 좀 고급스럽게 먹으 쥐 같은 것으로 연명하면서 살았다.  몹시 불결한 음식들이라서, 다들 병치레를 많이 했고 오래 살지도 못했다.


BC 2100년경 신께서 아브라함에게 소 한마리를 주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인데 다들 소고기를 풍족히 먹으면서 살거라고 하셨다.  그 후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신께서 주신 소를 먹고 살면서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히 건강한 몸으로 장수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살게되었다.  그런데, 삶이 편해지면서 다들 소의 관리를 점점 소홀히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소들이 차츰 병들어 죽게 되어 BC 400년경 급기야 소들이 완전히 멸종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후로도 수백년간  쇠가죽, 쇠뼈, 돌덩이 같이 말라버린 육포, 소 그림, 소고기로 만든 음식을 그린 그림 같은 것들을 신전에서나마 구경하면서, 어느 훗날 "메시야"라는 분이 오시면 자신들도  전설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갈릴리 촌구석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길러 나눠주는 짐승의 고기가 전설의 소고기이며, 예수가 메시야라는 소문이 실제로 맛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오랜 세월동안 소의 전설을 팔아 먹으며 기득권을 장악했던 세력들은 위기감 속에 결탁하여 예수를 사회를 혼란시키는 사기꾼으로 몰아세워 죽여 버렸다.


그렇게 끝난 사건인줄 알았는데, 예수와 함께 소를 3년간 길렀던 사람들이 그 뒤를 이어 소를 기르고 소고기를 나눠줬다.  한번 맛보면 더이상 굼벵이, 메뚜기, 바퀴벌레,  따위는 더 이상 입에 대고 싶지 않을 정도의 환상적인 맛 때문에, 불법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소고기는 암시장을 통해서 점점 퍼져나갔다.  단지 소고기를 먹은 것 때문에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고 사형을 당하면서도 소고기의 맛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백년이 흘러 소고기의 유통을 더이상 공공연한 비밀로 방치할 수 없게 되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소고기를 나라의 대표음식으로 공인하여, 그 유통을 양성화하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암시장에서만 유통되어서 짝퉁이나 유사 소고기도 많았기에, 니케아라는 곳에서 회의를 열어 그간 내려온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의논해 "진짜 소"가 가지는 세가지 특징도 정리하게 했다.


이 후로 소고기는 전 유럽에 급격하게 보급되었고, 이에 따라 소를 기르고 도축하고 판매하는 모든 것이 점점 체계화 되고 조직화 되었다.  조직화된 정육협회는 자신들의 이권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소를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을 숨기고 철저하게 비공개로 유지하면서 독점판매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동방 정육협회와 서방 카톨릭 정육협회는 서로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다 갈라지기도 했다.  투명하지 못하게 관리되다 보니, 대다수의 소들은 다시 병들어 죽어 나갔고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지만, 정육협회는 개의치 않고 병들어 죽은 소, 상한 고기, 다른 짐승 고기를 태연히 속이면서 팔아먹었다.


다행히도 정육협회와는 별도로 산에서 목장들을 운영하면서 영세한 규모로 소를 길러오던 수도원들이 있었기에 그 와중에도 소는 멸종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16세기 독일 수도사중 한 사람인 마틴 루터라는 사람이 소를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이 더 이상 비밀로 유지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기록된 문서들을 번역하고 일반인에게 공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장 칼뱅이라는 사람이 5가지 기본 향신료 (5 solas)만을 사용한 홍두깨살 요리를 설파했고, 이보다 조금 늦게 네덜란드에서는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갈비 요리를 전파했는데, 어느 요리가 진정한 소고기 맛의 진수인가의 논쟁은 그 이후로도 근 500여년간 계속되어 왔다.


서쪽으로 계속 전파되어온 소고기는 미국을 걸쳐 약 100여년전에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파가 되었는데, 해방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삶이 윤택해지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를 기르는 것에는 더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안심, 등심, 갈비, 목살, 사태, 양지는 물론이고 꼬리, 족, 위, 곱창까지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였는데, 지금은 입맛도 점점 까다로와져서 마블링이 엄청난 filet mignon정도가 아니면 입에도 잘 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정육점들도 그 기호에 맞춘 제한된 공급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고,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도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풍조도 점점 심해져 간다.




경전(scripture)이 소 한마리 전체라면, 교리(doctrine)는 대략적인 sketch, 신학은 recipe 정도될까?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경전 자체를 멀리하고 교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로 얼룩져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느 때 부터인지 율법서 토라대신, 장로들의 율법해석서 미슈나를 더 따르게 되었다.  기독교는 점점 많은 부분을 교리화하고, 교인들을 만들어진 교리의 틀 안에 가두는 노력에 점점 더 치중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카톨릭이건, 성공회건, 개신교건 현대 교회가 열심히 추구하는 바는 사실상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닌 교단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현실이다.


교리에 무게를 두는 것이 얼핏보면 좋게 보일 수 있다.  일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점들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어떤 교리도 경전(scripture)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교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결국 경전에 칼질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요리를 완성하여 먹는다는 원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된다.


식재료로 요리를 할 때면 종종 모양을 잡아주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케잌을 만들때면 스폰지빵을 굽는 틀이 필요하고, 새우를 구울때엔 꼬챙이가 유용하게 쓰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 단계에는 필수적이지만, 일단 모양이 잡힌 후에는 제거해야만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리가 마치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초기에는 기본적인 모양을 잡아주기 때문에 아주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시작한다.  경전을 읽는데 교리와 상반되는 것 같은 부분을 만난다면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까?  나는 이런때면 과감하게 교리의 틀을 내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먹음직스러운 그림의 떡에 만족할 뿐, 차려진 음식의 그 근사한 맛을 음미할 수도 그 음식을 통해 내 몸을 보양할 수도 없다.


한국교회는 "구원"이라는 한 단어에 참으로 오랫동안 집착해 왔다.  나는 그 틀을 이제는 제거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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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9.12 16:38 신고

    홍두깨살, 정육협회... 재미있다.
    근데, 공대생이 이런 풍자글을 쓰다니... 놀랍네 놀라워~~~

Belief

묵상 2016.08.18 21:52

Belief


계시지도 않은 하나님을 

기독교인들만 계시다고 믿고 있는걸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매일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걸까?


실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을 통해 진화해온 건데 

창조론자들만 창조주가 계시다고 믿는걸까?


아니면, 조물주께서 잘 디자인한대로 만들어진 세상인데 

 알아서 진화한거라고 진화론자들이 믿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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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관용.  그러나 그 열매는?


한국의 원조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과거및 현재의 여러 동성애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보수 기독교에서 본 시각에서 제작한 것이라서 중립적인 시각은 절대 아니지만, 일방적인 혐오나 매도의 입장이 아니고 사실과 현실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엿보임.


'다양성', '소수자'라는 미명하에 관용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실상과,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결국 그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게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보여줌.


"2년에 가까운 제작 기간을 거치면서, 또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본 것은 아무리 동성애가 아름답다 말하고 치장을 해도 그 말로는 고통과 외로움뿐이라는 것이었다."


교회가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함.




  • 다큐멘터리 제작 후기 (click here)
    • “동성애? 너 그거 건드리면 죽는다. 할리우드에서 건드리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낙태이고, 그 중 가장 피하는 나머지 하나가 바로 동성애야. 너 그거 건드리면 감독 인생 끝이야!”
    • 이 사회가 동성애의 정확한 실태에 대해 축소 왜곡 또는 삭제를 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정확하게 알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 단지 동성애에 대한 진실만 이야기해준 것뿐이었다. 동성애자들은 그 진실을 두려워했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고, 느끼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이 프라이드나 게이 단체 같은 그 모든 것들은 제가 원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어떤 면은 친숙한 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게이 사회와 저는 서로에 대해서 잘 이해했던 점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와 평안함이 있었죠.

하지만 그 외의 경험은 너무도 좋지 않았습니다.

무차별적인 성관계, 마약, 서로간의 험담, 분노, 이중적인 생활.

‘나는 행복하고 기쁨이 넘쳐’라고 그들은 말하지만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밝히지 않죠.

사람들에게 동성애가 너무 좋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거나 숨겨놓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거에요.

남자가 여자같이 행동하고, 여자가 남자같이 행동하면서

깨진 관계들과 질병은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죠.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오, 이들은 ‘행복하다! 행복하다!’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저는 이런 동성애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 감지할 수 있어서,

‘난 정말 이걸 원하지 않아’라고 계속 말했지만 저는 이미 갇혀 있었습니다.

나는 동성애자이고, 나는 동성애의 길로 거기 원하지 않지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감정을 억누르고

부정하면서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병원에 오셨던분들은요, 제가 보니까, 동성애자들에게 버림받은 동성애자들이었어요.

왜냐하면, 남성간에 항문성행위를 하다가 에이즈에 감염이 되고 몸이 완전히 망가지니까...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누가 거들떠 보냐구요. 그렇게 되면 여기 오는거죠.

근데 말 그대로, 동성애자가 버린 동성애자가 되면요, 끝이더구만요, 그 세계는.

성적 매력을 잃어버리고, 또 그 사람때문에 내가 감염이 될 수 있으니까 끝나는거죠. 그 관계는.

그렇잖아요?  자기도 살아야 하니까. 


정말 동성애로, 남성간의 항문성교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에이즈 환자된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에이즈 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갉아먹는거에요.

뇌로 들어가면 뇌세포를 갉아먹으니까 치매가 오기도 하고,

부위에 따라 어떤 분은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온 몸을 다 쓰지 못하는 전신마비가 되기도 하고,

심한 분들은 식물인간이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다들 잘 생겼고 미남이고 키도 크고 

나이도 다 젊은거에요. 20대, 30대, 40대,

그런데 이분들이 항문성관계를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른 이유 없어요.  항문성관계를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러다가 에이즈에 감염이 돼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서

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갉아먹어서 20대인데 치매가 온거에요.

치매가 오니까 그분의 지능이 4살인거에요.


그중에 어떤 분은 박사님도 계세요.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중 하나 출신,

전날 까지도 박사로 연구소로 출근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몸 다 못 써, 대소변 못 가려, 항문으로 이제 배변을 못해요.

그래서 인공항문이라고 여기에 장문을 달아요.  

기저귀차고 살아야 해, 그리고 말 안나와...

왔을때 뼈만 있었어요, 뼈만.  그런데 생각하는 건 멀쩡해요.  그게 에이즈에요.

대체 남성간의 항문성관계가 뭐길래…

그거 안하셨으면 이분들이 정말 잘 살았을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몸이 망가져서…


남성간에 항문성관계를 통해서 에이즈, 매독, B형 간염, C형 간염등

30가지 이상의 위험한 질병이 전파될 수 있거든요.

직장과 항문은 점막이 얇고 한겹 밖에 없어서

만약 거기에 다른 남성의 성기가 진입하면, 바로 찢어져서 피가 나요. 

그러니까 거기에 정액을 사정하면 정액 안에 있는 

온갖 바이러스와 균들이 체내로 바로 들어가는거죠. 

군대식으로 말하면 정조준해서 사격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정말 위험한 거죠.

제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환우분들을 보는데

TV나 신문을 보면, '동성애와 에이즈가 상관이 없다' 이렇게 나와요.

그건 제가 본 것과 너무 틀린거죠. 


국가인권위원회가 언론위원회와 언론보도 준칙 협약을 맺었는데 

동성애가 에이즈나 다른 질병을 야기시키는 그런 것을 보도할 경우에

그것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언론이 되기 때문에 차별행위에 해당된다라는

언론보도 준칙 협약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언론이나 이런데서 침묵을 합니다.  보도를 안해요.


우리 의학교과서에서 표현하고 있는 부분들. 그것도 분명히 남성간의 항문성행위와

에이즈는 연관이 있다라고 밝히고 있거든요, 분명하게… 깊은 연관이 있거든요.

'동성애자와 에이즈와는 상관이 없다, 혹은 에이즈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혹은

에이즈 걸려도 약만 잘 먹으면 만성 질환화 되서 아무 문제 없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밝은 면만 보여주고 있는거에요.  그렇게 하면 안되죠.

정말 끝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거거든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밝은 면만 보여주면, 그런줄 알고 그렇게 살다가 그 병에 걸려서

어두운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후회해도 소용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건지, 이 사회는 남성간에 항문성관계를 오히려 하라고

뭔가 부추키는것 같아요.  이 분위기가.

특히 동성애자 인권운동하는 분들을 뵈니까 사실 맞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그분들요 에이즈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환자들 여기 많이 계셨지만

와서 방문한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밖에서만 인권운동가로 자기 이름 쌓아가는것에 주력하는 모습같이

여기 와서 단 하루라도 자원 봉사하고 기저귀라도 갈아주고하는 그런 분, 

단 한분도 없어요.

그 유명한 분들, TV에 매일 나오는 분들, 동성애자로 유명하게 활동하는 분들,

어떻게 그렇게 한번도 안오시는지 이해가 안되요.


2013년 통계가 가장 최근 통계에요.  2014년은 아직 안 나왔어요.

2013년에 우리나라에 1,000명 이상의 에이즈 환자가 신규발생했거든요.

그 에이즈 환자의 100%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었어요. 100%가.

단 한 건도 다른 예가 없어요.   바늘에 찔렸다든지, 수혈을 받았다든지는 한건도 없고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 수혈이나 수액을 맞았다든지, 2007년 이후 대한민국에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꼭 동성애뿐 아니라 수혈 받다 옮을 수도 있다고 하시고, 

주사바늘에 찔려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거죠.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없는거에요. 

현실적으로 100%가 성관계로 감염된거거든요.  2013년, 1,000명 넘는 사람이.

그런데 그거 다 알고 계세요.  그 분들도…  누구보다 더 잘 알죠. 왜냐하면 본인들이 관심이 많으니까.

지금 저희 병원에 에이즈에 걸리신 동성 항문성관계를 하신 환우분들… 

하나같이 다들 피눈물 쏟으며 후회하세요.   후회 않는 사람들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남은 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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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0.06 00:49 신고

    진보주의 자들은 초등학교에서 동성애 성행위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차별금지법을 기독교인 모르게 통과시키기 위해 수백번의 입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단어와 문장을 교모하게 수정해서 입법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 되면 진정한 교회는 문을 닫고, 가짜교회로 그들 마음대로 조정하게 될것입니다. 더욱 슬픈일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영적전쟁터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



"저 여자는 자기가 사장인줄 알아 ㅋㅋㅋ"


한국에서 직장 생활 할 때 같은 건물에 사장 사무실이 있었는데 사장 여비서를 두고 사람들이 이렇게 뒷담화를 날리곤 했다.


사장 비서로 발탁되었을땐 다른 사무원들보다는 뭐라도 더 뛰어난 부분이 있으려니 하는 것을 고려해도, 목에 힘!! 주는 정도가 남다르다보니 그만 사람들 사이에 조소 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 한국과 한인 교민 사회에서 교회와 교인들이 종종 조소 거리가 되는 이유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당나귀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환호하니, 당나귀 자신이 환호의 대상인 줄로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2:17~3:20에서 바울은 당시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던 등식(equality)을 나열하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 “할례 받은 자” = “이스라엘 민족” = “아브라함의 자손”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받을 사람들”
  • “할례 없는 자” = “할례 받지 못한 자” = “이방인” = “언약 밖의 멸망당할 자”


유감스럽게 현대 기독교에도 비슷한 등식들이 만연하고,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obstinate) 백성이로다" (출애굽기 32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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