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쌀밥
가을이면 잘 익은 감, 밤 같은 것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합니다만 빼어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햅쌀인듯 합니다. 보통 10월~12월 사이에만 잠시 판매되고 그 후에는 다시 묵은 쌀을 판매하기 때문에 햅쌀은 가을에 조금 넉넉하게 사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쌀의 수요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기는하나 여전히 한국인의 주식이 쌀밥이라는 것은 아직 변하지 않은듯 합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식당 평균 수준이 이웃 일본의 식당 수준에 아직은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쌀밥의 수준입니다. 같은 단립종(短粒種, short-grain, Japonica rice, 야포니카 혹은 자포니카) 쌀을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 찰지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지어 먹지만 지금껏 한식당에서 정말 맛있는 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평균으로 보나 최고점으로 보나 한식당의 쌀밥 점수는 일식당의 쌀밥 점수에 한참 뒤떨어진다고 봅니다.
이유는 간단한 것 같습니다. 쌀밥에 진심인 요리사들이 한국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일본 요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가이세키 요리 명인 중 한 명에게 "준비하는 요리 중 가장 핵심적이고 맛있는 요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막 지은 밥"이라고 답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심지어 "쌀밥" 전문 식당도 있습니다.
- 기헤이 (나리타 공항에 분점도 있음)
- 긴샤리야 게코테이
반면, 너무 단편적일 수 있겠지만 2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 되었던 한국의 어느 식당에서 '햇반' 썼다가 망신당하고 폐업한 것은 한국에서의 쌀밥의 위상을 나타내는 한 예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직접 찍은 쌀밥 사진들이 그리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아 죄송합니다. 쌀밥 잘 찍기가 원래 쉽지 않은데에다 잡광 섞인 식당 실내에서 찍으니 더 어렵네요)
식당은 그렇다치고 집에서 쌀밥 맛있게 지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맛있는 쌀밥은 맛있는 커피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 쌀 품종이 무척 중요하다
- 신선한 쌀이 역시 맛있다 (위에 소개한 '긴샤리야 게코테이'는 여름 한철은 아예 식당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 도정한지 얼마 되지 않은 쌀이 월등히 맛있다 (일본인 지인에게서 도정한지 1주일 채 되지 않은 쌀을 받아 밥을 지어봤는데, 지금껏 집에서 지은 밥 중 최고였습니다. 일본 쌀밥 전문점들은 도정을 매일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회원제로 갓 도정한 쌀을 정기 배송하는 업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좋은 물로 지어야 더 맛있다 (약숫물로 밥을 짓는 한 음식점에 갔는데, 다른 음식은 다 별로였지만 밥맛만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 관련 글 <"일본 쌀이 더 맛있다?" 한국 밥맛 떨어진 이유>
밥 짓기에 앞서 쌀 씻는 것이 중요한데요 ["밥 맛을 좌우하는 쌀 제대로 씻는 법"]
- 정수기 물이나 생수를 이용한다. (수돗물 그대로 쓰면 소독 냄새나는 물 맛이 밥 맛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 물 먼저 붓고, 물에다 쌀을 붓는다.
- 살살 휘저어 가면서 재빨리 헹궈내기를 반복한다. (일식집에서는 7번 씻고, 심지어 수십분간 물을 흘려 내리기도 합니다. 저는 예전에 2~3번 씻다가 요즘에는 쌀알이 보일 정도가 될 때까지 5~6번 씻는데 밥맛이 확실히 깨끗하고 좋습니다.)
- 시간 여유가 있다면 씻은 쌀을 30분 이상 불렸다가 짓는다.
밥 짓는 것도 중요하지요. 가정집에서 가마솥을 쓸 수는 없고, 압력밥솥이나 돌솥 혹은 뚝배기에 밥을 지으면 쌀 알갱이 하나 하나가 확연하게 살아나면서 맛이 훨씬 좋은데요, 요즘은 전기밥솥도 설계시 노하우(know-how) 반영이 많이 되어서 좋은 쌀 잘 씻어서만 지으면 제 입에는 충분히 맛있습니다. 그리고 묵은 쌀일수록 수분함량이 적으니, 햅쌀은 기준량보다 조금 적은듯, 묵은 쌀은 조금 넉넉하게 물을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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