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의 "봉이 김선달"에게 빼앗긴 우리의 인생
세계 각지의 "봉이 김선달"에게 빼앗긴 우리의 인생
문재인 정부에서 내어 놓은 온갖 부동산 정책들로 인해 연일 신문지상이 시끄럽습니다. 시골 벽촌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공동주택 (아파트, 연립, 다세대) 의 비중이 80%에 가까운 상황이라 사실은 아파트 가격 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제가 대학원을 다녔던 곳은 부지 면적으로 미국 6위에 랭크 된 대학입니다. 실제 대학 캠퍼스로 사용하는 면적은 7.19 Km² 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면적이지만, 대학 소유의 병원, 쇼핑센터도 있고 회사들이 입주해 있는 거대한 리서치파크도 있고, 전체 부지의 거의 반은 공지로 남겨 두고 있어 소유 부지의 총 면적은 무려 33.1 Km² 로 서울 송파구 면적 (33.87Km²)과 비슷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대학 캠퍼스인 서울대 관악 캠퍼스가 1.9 Km² 니까 천조국의 스케일을 짐작하실 수 있을겁니다.
이 학교는 설립자가 결혼 18년 만에 얻은 무녀독남 외아들이 만 15세 때 유럽 여행 도중에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아들의 이름을 붙여 세운 대학입니다. 유일한 자손을 잃어 상속자가 없던 설립자가 "학교 소유의 땅을 절대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서 거의 13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 부지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학교 캠퍼스 안에 교직원들이 사고 팔 수 있는 집과 콘도들도 있는데 그것도 건물 소유권만 있을뿐 토지 소유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졸업 후 집을 사려고 여기 저기 알아보던 중 당시 부동산이 호황이던 시기라서 저희 번번히 입찰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집이 팔려 여러번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어차피 교직원이 아니니 살 자격은 없지만) 호기심에 학교 내의 집들 가격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토지 소유권이 포함되지 않은 집들 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캠퍼스 밖 보다 전혀 싸지 않은 것을 알고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부동산이 비싼 지역의 집 가격은 일차적으로 위치에 따른 땅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상식이기때문에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모순될 것이 없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땅을 사고 파는 것을 수 천년간 해왔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 돈을 내고 산 땅은 영원히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다른 동산(movable asset)이나 건물과는 달리 땅의 소유권은 실체가 없는 개념에 불과합니다.
오랜 옛날 어느 때, 권력자나 나라가 땅의 소유권을 팔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와 톰 크루즈 주연 1992년 작 영화 "파 앤드 어웨이 (Far and Away)" 에서 나오듯이 말이지요. 사실은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 팔아 먹은 것과 다름 없는 행위지만, 이것은 공동체의 약속으로 여겨져서 그렇게 엿장수 맘대로 시작 된 땅의 소유권은 수천년 간의 인류 역사를 거쳐 오늘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제품의 가격은 공급과 수요 (supply & demand) 의 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법적으로 내 소유라고 인정된 땅이라 하더라도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땅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유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네요) 그런 면에서 보면 수백년, 수천년간 지속되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학교 재단이 영구히 소유하는 땅에 지은 내 집이나, 내 소유라고 '인정'되는 땅에 지은 내 집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길 하나를 건너 있는 학교 안과 밖의 집 시세가 다를 이유도 없다는 것이지요.
머리 아픈 제사법으로 앞을 가득 채운 내용 덕에 거의 읽히지 않는 성경 레위기 후반부에 보면 흥미로운 법이 나옵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땅 어디에서나, 땅 무르는 것을 허락하여야 한다.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무를 친척이 없으면, 형편이 좋아져서 판 것을 되돌려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판 땅을 되돌려 살 때에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이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그 나머지를 산 사람에게 치르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땅을 판 그 사람이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땅은 산 사람이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한다. 희년이 되면, 땅은 본래의 임자에게 되돌아간다. 땅을 판 사람은, 그 때에 가서야 유산 곧 분배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다." (레위기 25장 23~28절)
(구약 성경에 나오는 "땅 팔기"는 "땅 장기 임대하기"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류가 성경의 이 법대로 살았더라면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 받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인 부동산 투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파트 소유권에는 분명 토지 소유권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층수 (80층 짜리도 나왔습니다)에 반비례해 토지 지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아 자주 타지는 않습니다만, 이착륙할 때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보면서 "저 성냥갑보다 작게 보이는 집 한채의 소유권을 얻기 위해 수십년을 아둥바둥 거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Washington Dulles International Airport 상공]
EBS 세계테마 기행 "알프스의 매혹 스위스" 편에 보면 안드레아스 퓌러라는 빙하 파일럿을 소개 합니다. 그는 "정말 힘들고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저는 비행기를 타고 호텔 위를 비행해요. 그러면 내 문제가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죠." 라고 말합니다. (8분 0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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