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미슐랭 식당 (개선문 근처) L'Atelier de Joël Robuchon Etoile
이번 포스팅의 부제는 "멋 모르고 실수로 들어간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생각지도 않게 큰 돈을 쓰기는 했는데 100% 만족이었어요.
파리 관광 첫날 관광버스 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오후 늦게 간 곳이 개선문 (Arc de Triomphe) 부근이었습니다.
구경을 마치니 6시가 넘었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보니 지쳐서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Tripadvisor app으로 부근 식당을 검색했는데 개선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평점이 아주 좋은 식당이 하나 있는거에요.
[출처: Google Map]
피곤한데 잘 되었다 싶어서 그곳으로 결정을 했지요. 식당 이름은 L'Atelier de Joël Robuchon Etoile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 이뚜알). L'Atelier는 아틀리에 (예술가 작업실), Joël Robuchon은 사람 이름, Etoile (이뚜알)은 별 (star)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개선문 부근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있는 것이 별 모양을 연상케 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듯 해요.
Google Map 상으로는 분명 그 건물이 맞는데 아무리 봐도 레스토랑 간판은 안보이고 1층 전체에 큰 drug store만 있어서 밖을 돌다가 혹시나 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건물안 중앙에 내려가는 계단이 있더군요.
벽에 걸린 음식 사진이 없다면 영낙 없는 호텔 나이트 클럽 입구 분위기입니다. 😁 저희 가족들의 입은 행색을 주목해 주세요. 하루종일 뚜벅이 여행을 다닐 계획으로 아~~~주 casual하게 입고 나간 날 이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 reception desk에 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고...... 저희가 와서는 안될 곳임을 깨달았습니다. 😳 그렇다고 뒤돌아서 나가기는 너무 무안해서.... 예약도 하지 않았고 무심코 들어온지라 복장도 결례가 될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은지를 일단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친절하고 흔쾌하게 9시 예약으로 잡아놓은 자리가 있는데 1시간 반 내로 식사를 마친다면 괜찮다고 하는거에요.
파리에서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할 계획은 애초에 없이 왔기에 예상치 못한 예산초과 상황이지만, 뭐 저렇게 친절하게 맞아주는데 내친김에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 한번 맛 보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가서 검색을 해보니 식당 주인 Joël Robuchon (조엘 로부숑)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중 한명으로 세계 11개 국가에 식당을 가지고 있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올린 별만도 총 28개나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리에는 2개의 식당이 있는데 두 곳 다 미슐랭 별 2개를 받은 식당이고, 저희가 간 곳이 그 중 한 곳 이었던거죠. 2018년에 타계한 것으로 나오네요. 어쨌거나 무식하면 이렇게 용감할 수 있습니다 😅
저희 자리를 셋팅하는 짬을 타서 작은 아이가 대기실에 있는 놀이기구를 가지고 테이블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기다리면서 인테리어를 조금 둘러 봤습니다. 채도 높은 강렬한 빨간색과 검은색이 많이 사용되었네요. 미슐랭 2스타 답게 구석구석이 고급지고 세련된, 지극히 modern한 느낌입니다.
완전 open kitchen입니다.
한쪽 벽은 여러가지 향신료를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
안쪽에 테이블도 있는데 저희는 예약을 하지 않아서 bar에 앉았습니다.
저희가 들어갔을때는 자리가 거의 비어 있었는데 20~30분 지나니 다 차네요.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자리가 없어 다른 식당으로 갔어야 했겠지요. 다행히 저희 옆자리 손님은 semi casual이라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지만..
이렇게 입고 온 손님들이 이 식당의 격조에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날 저희 행색은 정말 ㅎㅎㅎ 😅
손 씻으러 화장실 가면서 안쪽의 인테리어를 조금 더 둘러보았습니다.
일본 풍의 대나무 밭이 실내 지하에 꾸며져 있네요. 조엘 로부숑이 일본의 식재료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듯 합니다. 도쿄에 낸 식당만도 4개나 된다고 해요.
화장실 밖의 대기 의자.
드디어 식사 주문을 했습니다. 메뉴판에서도 포스가... 영어로 된 메뉴는 없었는데, 다행히 영어를 잘 하는 여직원이 있어서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더군요.
하루 일과를 마친 후라 마눌님께서 white wine 한잔을... (2013년 독일산 Sander Riesling Trocken)
바게트를 개인 사이즈로 작게 만든 식전 빵이 나왔는데... 숙소 앞 빵집의 빵 만으로도 넘치게 맛이 있었건만... "네가 바게트 맛을 알어?"라고 질문을 던지는... 한국에서는 이런 빵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고, 미국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 바게트 빵을 먹어 봤지만 그 수준을 가볍게 넘네요.
채식을 즐겨하는 마눌님께서는 "Food and Life"라는 7가지 vegetarian tasting menu를 주문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pour commencer (to begin, 시작) 으로 퀴노아에 단 맛나는 piquillo 고추를 훈제후 섞어 튀기고 정체모를 곡물을 곱게 갈아 진한 노란색 덩어리를 만들어 얹었습니다. 달콤함과 고소함, 바삭함과 촉촉함에 노란색 덩어리의 매끄러운 식감이 휘감겨 들어오네요.
코스의 두번째로 나온 것은 le daikon 이라고 일본무 (大根, 다이콘)를 푹 조린 것에 연꽃 심 그리고 채소 몇가지를 얹고 발사믹 소스 같은 것을 뿌려 나왔습니다. 이 음식은 아주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큰 감흥이 없었나봐요 😉
이건 la betterave (beet 사탕무). 맨 아래에 달콤한 빨강색 사탕무를 놓고 사과 조린 것과 아보카도를 쌓아 올린 후 쓴맛 나는 채소를 몇개 흩뿌리고 녹색 겨자 소르베를 차갑게 올려 마무리 했습니다. 비트 무의 서걱한 식감에 달콤한 맛, 아보카도의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에 고소한 맛,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씁쓸한 맛 위를 상쾌하게 자극하는 겨자 맛... 정교한 밸런스를 잡아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집니다.
이건 l'artichaut (artichoke 아티초크) 라고 한국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건데요, chickpea (병아리 콩, 이집트 콩) 을 갈아 만든 puree 위에 아티초크 속을 구워서 나왔습니다. 콩 퓨리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아삭하고 진한 맛의 아티초크, 그리고 애교점 처럼 듬성 듬성 섞인 고춧가루.
이건 l'asperge blanche (white asparagus 흰 아스파라가스) 입니다. 채소들을 미소 된장으로 껄쭉하게 만든 소스와 시소(차조기) 잎 등을 사용하여 마치 일본인 요리사가 만든 것 같은 것 같은 느낌을 담아냈네요. 미소의 진한 구수한 맛이 아삭한 아스파라가스에 옷을 입히고, 살짝 살짝 들어간 espelette 고추 가루가 미세한 매운 맛을 더합니다.
이건 le riz (rice, 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중 하나인 risotto (리조토)를 피망 섞어 만든 것인데요
내용물은 좀 색다르네요. 쌀을 북 아프리카 쿠스쿠스처럼 으깨고 베리 종류를 듬성 듬성 넣고 사파란 (saffron)으로 노란색과 풍미를 더해 스페인 빠에야처럼 만들었어요.
마눌님의 코스요리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입니다. la cerise (cherry, 체리). 담겨나온 접시가 아주 창의적이지요? 😄
빨간 큰 덩어리가 체리 소르베이고, 노릇 노릇한 큐브(cube) 모양은 카라멜라이즈한 화이트 치즈 (caramelized white cheese), 불그스레한 작은 조각은 노르웨이 가정식에서 먹은 신맛의 rhubarb (대황), 거기에 쌀 뻥튀기!!! (갑자기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한구석에서 뻥튀기 하시는 아저씨의 "뻥이요~~~~~!!"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
코스 요리에 대해 정리를 하자면
- 가격이 저렴(?) 합니다. 미국에서 코스 메뉴나 테이스팅 메뉴를 시키면 미슐랭 별 하나당 대략 $100 정도 됩니다. 이 식당의 경우 별 2개였으니 $200 정도를 생각해야 하는데 98 € 였으니 코스 자체가 채식 코스였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현저히 싼 편은 맞습니다.
- 맛이나 식감이나 모두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한 설계가 느껴집니다. 아삭함/바삭함, 촉촉함, 부드러움, 단 맛, 쓴 맛, 새콤한 맛, 매콤한 맛, 기름진 맛, 상쾌한 맛 등이 켜켜이 겹쳐져 있는데 서로 충돌되는 것은 느껴지지 않고 어느 한 맛이 너무 도드라져 다른 풍미를 해치는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저는 채식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좋은 채소로 잘 요리하면 고기와는 또 다른 신세계가 있음을 느낀 계기였습니다. 이게 계기가 되어서 홋카이도(北海道) 비에이(美瑛)에서 지역 채소로 요리를 하는 Asperges (미슐랭 1스타)라는 레스토랑 요리를 꼭 먹어 보고 싶었는데 방문했던 2월 겨울에는 휴업이라 먹어볼 기회를 놓쳤네요.
저와 작은 아이는 단품 요리를 각각 하나씩 시켰습니다.
저는 le filet de bœuf (르 필레 드 브프, beef tenderloin 혹은 filet mignon,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부위 중 무게당 가격이 가장 높은 부위면서 실패가 별로 없는 안전한 선택이지요. Malabar pepper (마드라스 후추) 가 호쾌하게 통으로 무수히 박혀 있는 상태로 조리되어서 나왔습니다. Garnish(고명)로 나온 푸성귀의 비주얼이 조금 생뚱맞기는 한데, 싱싱함 100%라서 너그러이(?) 넘어가 줍니다.
흔하디 흔한 감자 튀김인데.... 왜 미국에서 감자 튀김을 "French" fries라고 부르는지 갑자기 이해가 갔다고 할까요?
Medium rare로 주문했는데 단면을 보니 정말 perfect하게 구워져 나왔습니다. 겉에서 안쪽까지 gradual하게 색깔이 변한 것으로 보아 수비드 (sous vide)로 하지 않고 팬에 직접 구운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스러웠습니다.
맛은 아주 직관적이고 기본에 지극히 충실하다고 할까요? 다른 기교 부리지 않고 좋은 소고기를 좋은 기본 향신료와 소금만을 가지고 정확히 구워서 나온 뭐 그런 맛?
신기했던 것은 저렇게 많은 통후추를 뒤덮다시피 했는데도 후추의 자극적인 맛은 느껴지지 않고 안심의 느끼함을 확실히 잡아주는 선까지만 딱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위에 덮여 있는 것이 사실은 전부 후추는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메뉴판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네요.
평가를 하자면 아주 잘 구운 스테이크인데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는 맛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격이 66 € 인데 미슐랭 2스타 식당인 것을 고려하면 좋은 가격이지만 45~50 € 정도면 또 가서 먹고 싶을 것 같아요.
이 날 먹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맛에 놀란 것은 작은 아이가 시킨 또 하나의 스테이크였습니다.
le bœuf (beef, 소고기). 메뉴에 적힌 설명을 보면 la noix d'entrecôte aux pimientos grilles (the rib steak with grilled pimientos, 구운 스페인산 고추를 곁들인 갈비살 스테이크)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옆에 놓일 garnish(고명) 고추와 작은 알감자를 위에 얹어 나온 것 말고는 지극히 평범한(?) 스테이크인데....
맛을 보고 나니 다른 곳에서 절대 먹을 수 없는 비범한 스테이크였습니다!! 갈비살이니 질길 이유는 없지만 오히려 안심 스테이크보다 부드럽게 씹히며 입에서 녹아 들어가는 듯한 식감도 놀라왔고, 무엇보다도 위에 얹은 것이 선명한 풋고추의 풍미를 내주면서도 매움과 청량감의 정확한 경계선에 머물면서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정확히 잡아주는 경이로운 밸런스는 저희 가족에 입에 두고 두고 회자되었습니다. 이것도 가격은 안심 스테이크와 같은 66 € 인데 이것만 먹으러 파리에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태어나서 먹어본 소고기 중에 단연 으뜸입니다.
이 스테이크에 따라 나온 potato purée (감자 퓌레, 음식을 으깨거나 갈아서 진하고 부드러운 액체처럼 만든 것) 또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아주 곱게 갈아서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슈크림과도 같은 식감인데 원래 감자를 좋아하는 저인데도 이런 맛을 감자로 낼 수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다녀온지 5년된 지금도 저희 둘째는 감자 먹을때면 이 potato purée 를 언급하고는 합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서 찾아보니 이 potato purée가 조엘 로부숑이 자랑하는 5가지 signature recipe 중 첫번째이더군요. 만드는 재료는 potato 1 Kg + 버터 454 g + 우유 240 ml + 소금 약간. [만드는 법 설명은 여기] 특별한 비법 없이 너무나도 간단한 요리인데도 이런 감자 맛을 파리를 이후 절대 맛보지 못했다가, 2년 뒤 도쿄 조엘 로부숑에 가서 딱 한번 더 맛 보았습니다.
계산서와 함께 나온 갓 구운 madeleine (마들렌 카스텔라)
총평을 하자면, 멋 모르고 실수로 들어갔다가 평소 예산의 3~4배 정도를 쓰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가지 썼다는 생각은 안들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살면서 뭐 이런 호사 부리는 날도 있어야지요 😜
너무나 만족스러운 친절과 음식에 감탄하며 숙소로 돌아와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이곳에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 글에 적은 맛의 평가는 전혀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메뉴 하나 하나에 혼신을 다한 흔적들이 보일 정도로 아주 좋았는데 그중의 백미(白眉)는 글 마지막에 적은 "고추를 곁들인 갈비살 스테이크"와 감자 퓌레였습니다. 미슐랭 별 2개의 의미인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만한 집"에 부합하는 훌륭한 레스토랑이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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