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챈: 왜 나는 대형교회를 떠나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
프랜시스 챈: 왜 나는 대형교회를 떠나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
[원문 출처] "Francis Chan: Why I quit my megachurch and started again"
in Premier Christianity (Feb 2019)
내가 문제의 일부인가? 이것이 그의 번창하는 대형교회를 점검하며 프랜시스 챈이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Cornerstone(모퉁이돌) 교회는 챈이 교회를 개척한지 15년 만에 30명에서 6,000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전형적인 서구의 복음주의 교회를 이끌고 있었고, Chan에 따르면, 그게 바로 문제였다. 모든 것이 “말하는 은사과 설교”를 중심으로 흘러갔다고 그는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기 보다는 설교자 챈에게 몰려 들었다. 본지가 마지막으로 그를 인터뷰했던 2010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저희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보다도 '프랜시스 챈'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들을 때입니다.”
챈의 첫번째 저서 “크레이지 러브 Crazy Love (David C Cook)”는 10 년 전에 출판되어 대서양 양쪽에서 엄청난 부수가 판매되었다. 그는 미적지근한 기독교에 격노하는 열정적 설교로 빠르게 명성을 쌓았으며 기독교 회합에서 많은 초청을 받는 강사가 되었다. 높아져가는 명성에 불편해하며, 그가 바꿔보려고 애쓰던 코너스톤 교회의 문화에 안주하지 않고, 챈은 가족들과 지구의 다른 편으로 이주했다. 자신이 없어도 코너스톤 교회는 생존 할 수 있고 생존 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아시아에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시간을 보내며, 그는 교회가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신선한 비전을 얻었다. 이제 51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로 돌아 왔지만, 그는 자신이 창립한 대형교회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We Are Church 라는 새로운 교회 개척 네트워크를 시작했다. 네트워크의 각 교회는 10 ~ 20 명으로 구성된다. 챈은 더 작은 규모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서로를 알고 서로의 짐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각 교회가 한 사람의 집에서 만난다. 따라서 큰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 모금할 필요가 없고, 교회 지도자들도 모두 자원 봉사이므로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다. 각 교회에 주어진 모든 돈은 가난한 사람들과 선교 사업에 쓰인다. 광역 교회 가족들은 “배가” (즉, 다른 회중을 시작할 때)가 되었는지 “끊임없이 평가”한다. 그래서 모든 목회자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다른 지도자를 훈련시킬 책무가 주어진다.
챈은 그의 새 저서 Letters to the Church (David C Cook)에서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고 기발하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종종 교회 지도자들에게 회중들이 일요일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묻는지를 설명한다. 전형적인 대답은 “정말 좋은 예배, 튼튼한 연령대별 사역, 특정 스타일/음량/길이의 노래, 잘 전달된 설교… 주차… 커피.” 그런 다음 같은 지도자에게 교회에 관한 성경적 명령을 나열해보라고 말한다. 이번 반응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12),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라” (야고보서 1:27)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태복음 28:19). 챈은 "첫 목록에 있는 것을 당신이 제공하지 않은 것, 아니면 둘째 목록에 있는 성경적 계명을 당신이 따르지 않은 것. 이 중 어떤 것이 사람들을 더 속상하게 하겠습니까” 묻는다.
거기서 유래된 훨씬 많은 것이 있다. 챈은 많은 교회들이 정글 (선교지)에서 “강력한 동물”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을 데려다가 우리(주일 예배)에 넣어 전시하는 동물원과도 같다고 주장한다. 책의 좀 더 냉소적인 부분에서 그는 “우리는 땅 끝까지 가는 권능 있고 두려움 없는 선교사들을 생산하는 대신, 부모집의 지하실에 살며 독신자들을 위한 모임이 없음을 불평하는 30대들을 떠맡았다”고 꼬집는다.
목회자이기보다 선지자인 챈은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크리스찬들이 그들의 신앙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성경을 더 믿고, 제자도의 댓가를 헤아려보라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의 말은 당신을 따뜻하고 아늑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은 동요시키고, 도발하고, 도전한다. 난 당신에게 경고했다.
Q: 코너스톤은 번창하는 교회였습니다. 왜 사임하셨나요?
A: 우리는 그저 성경을 보았고 교회로서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너무나 많은 명령들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정말로 말하기 은사와 설교를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많은, 어쩌면 모든, 교회가 그 당시 세워졌던대로요… 그리고 성경을 보면 이럴겁니다 “맙소사, 훨씬 더 많은 교류가 있어야만 해”
제가 던진 질문중 하나는 “내가 문제의 일부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은사를 사용하기보다 설교 한편 들으러 오는 것은 내가 그들을 그렇게 훈련시켰기 때문인가?” 좀 더 먼 미전도 지역으로 가서 재생산적인 뭔가를 시작하는게 어떨까? 좀 더 중국의 지하교회 같은. 내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온 몸에 의존하는 뭔가를.
제 아내는 “이봐요, 모든 것을 다 팔고, 그냥 비행기에 몸을 싣고, 주님께서 어디로 우리를 이끄시는지 봅시다”라고 했어요. 그 당시 아내는 5째 아이를 임신했었고 저는 “우와, 당신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면 해 봅시다!”라고 생각했죠. 그게 아마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르시는 곳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저희가 아시아로 떠나게 된 때에요.
Q: 얼마간 가 있었고 어떤 것을 경험했나요?
A: 겨우 2개월간 가 있었는데 놀라운 일들을 봤어요. 지하교회, 사람들의 열정. 인도에 갔는데 박해받는 교회와 그들이 견뎌낸 모든 것을 만나고 봤지요. 태국에서는 고아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돌봤어요. 그러나 내내 믿음의 순수함만을 봤지요.
거기서 저는 정말 쓸모 없었어요. 때로 미국에서 우리는 “내가 바다건너로 가면 내가 정말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라는 비전을 갖지요. 그러나 저는 그 나라 말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방해만 되었어요.
정말 많이 배우고 얻었고, 너무 좋았어요.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요. 그러나 제가 정말로 미국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느낌을 받는 시점에 도달했어요.
Q: 복음주의 교회가 어딘가 잘못 갔다고 생각하시는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A: 바로 어제 읽은 건데,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에서 작년에 얼마를 쓰고, 몇명이 세례를 받았나를 보면, 세례 한명에 150만불 (18억원)이 소요됩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교회들이 제자 삼지 않고, 사람들은 세례 받지 않으면서도 거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국의 지하교회는 엄청난 설교가들이나 예산 없이도 1억명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일상적인 사람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Q: 당신은 더 작은 교회의 모델을 장려하여, 큰 건물을 살 필요가 없고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세속적 일을 해서 사례금도 지불할 필요가 없도록 합니다. 당신은 이것이 모든 크리스찬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은사를 사용하게할 방법으로 봅니다.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나요?
A: 성경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신다…. 모두를 유익하게 하려고” (고린도전서 12: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런 유형의 능력을 동원해야 하고, 그것이 더 작은 표현 속에서 더 잘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에 1,000명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 모두가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의 거대한 운동은 수천명에게 설교하는 한명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신뢰하는 수백명 수천명의 믿는 자들을 동원함에서 옵니다. 이것이 세계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Q: 어떤 형태로이든 가까운 미래에 미국에서 박해가 시작되는 시점을 감지하실 수 있나요? 이 일이 벌어진자면, 당신이 제시하는 그 모델이 좀 더 매력적일 수 있을까요?
A: 그럼요. 확실하지요. 우리 교회 모임에서 우리의 체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인식하고 계신가요? 얼마나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까? 제 말은, 경제 침체가 생기면 어떻게 생존하려고 하는거지요? 우리가 받는 세금 감면 혜택 법 하나만 바뀌는 것 하나만으로 수많은 교회들과 성경대학들이 모두 문들 닫아야만 할겁니다. 성소수자 안건 그리고 뭐든지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너무나 엄청난 돈과 많은 정부로부터의 결별에 너무도 의존해야 하는 이 체계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어요. 너무 많은 것이 변했지요. 이것이 박해의 본론에 들어가게 될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확실하지요.
소련에 공산주의가 들어갔을때 큰 성당들과 교회들을 닫아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제자 삼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복음을 어떻게 나눌수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어요. 이건 중국에 공산주의가 들어갔을때와 다릅니다. 그들은 어떻게 제자 삼는지 아는 제자들의 토대가 있었고 지하로 들어가 재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제가 “봐요, 우리는 이것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30분 설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말씀을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나눠주는 목회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제자 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가진 교회를 찾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생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모일지를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는 동안 우리 자신을 더 튼튼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소명의 한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Q: 쓰신 책에서 우리고 예배시간에 단순히 성경의 말씀을 읽고, 공개 설교를 덜 강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A: 계시록 1:3은 “이 예언의 말씀을 (크게 소리내어)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성경에 예수께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께서 어떻게 하는 가를 당신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을 크게 소리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주십시오. 하지만 그렇게 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나요? 왠지 우리 마음 속에는 “그저 읽을 수는 없어. 그저 크게 소리내어 읽을 수는 없어. 요한계시록은 아냐! 우리가 잘못 해석하면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너무도 사탄적이라고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그저 큰 소리로 읽으라 그럼 축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저는 설교하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Q: 당신의 어린 시절의 삶과 목회로의 부르심을 처음 감지했을 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제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던 중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혼 하셨지요. 제 의붓 어머니께서는 차 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12살때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로 부모를 땅에 묻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지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땅에 묻히는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한 악몽을 꾸어야 했고 다음은 또 누구일까, 다음은 나일까 생각하곤 했어요. 이 삶은 빨리 끝나지요. 하지만 이 삶이 너무 짧기 때문에 저는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10대 초반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뒤쫓기 시작하고 그 분을 만나게 된 때... 아니면 그 분께서 저를 뒤쫓으셨고 그 때가 예수님과의 사랑을 발견한 때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학교 졸업 앨범을 뒤져 제가 졸업하기 전에 알던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예수께서 하신 것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천국과 지억에 관한 진실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줘야 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는 그저 한번도 제가 멈추지 않았던 것 같네요.
저는 그냥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public reading)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게 전부입니다. 설교하라, 가르치라, 공개적으로 성경을 읽으라.
Q: 당신이 쓴 “크레이지 러브”에서 당신은 언제든 죽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호흡을 그 분의 손에 잡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A: 예, 그 책에서 한 장이 “이 장을 다 읽기 전에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제목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사실입니다. 제가 봤거든요. 우리는 그 날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알지 못하고 극도로 정신 나간 방법으로 죽는 사람들을 저는 보아 왔습니다.
Q: 설교하는 중에 급사하는 사람들을 봤다는게 사실인가요?
A: 예… 당신을 질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고, 한 친구가 인터뷰 중에 “보세요, 이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제가 오토바이를 탈 건데 어떤 사람이 저를 감지 못한채 제 차선으로 끼어들 겁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될거에요”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후 정확히 그 일이 벌어졌지요. 비현실적이었지요. 제 말은 삶이 그렇게 예측불허라는 겁니다.
Q: 왜 하나님께서 그일이 벌어지도록 허락하셨을까요?
A: 저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100% 믿습니다. 인터뷰를 듣는 100만명이 있었고 그는 어떤 면에서 벌어질 일을 예언적으로 설명한 것이지요. 어떻게 그것이 듣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저는 항상 당신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모든 것이 선한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참사이든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삶이 쉽고 편안해서 정말로 중대한 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보이지 않는 것에 촛점을 맞추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로 이 세상의 일과 보이는 것에 촛점을 맞춘채 있게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Q: 어떤 사람들은 “우와~, 프랜시스는 좀 급진적으로 들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런 생각은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성경에서 읽은 것과 제 삶을 비교할 때 저는 그저 아직 갈 길이 멀고 그것을 위해 분투중이라고 느끼거든요. 제 안에 아직도 너무 큰 두려움이 있고 제가 겁쟁이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아닙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 제발요, 저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요.
사람들이 저를 떠받들 때가 저를 겁에 질리게 합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저를 “오, 저 사람은 범접할 수 없어. 저사람은 급진적이야”라고 대하고 있고, 이것은 내어 뻗지 않는 이 미적지근한 삶의 방식을 살수 있는 권한을 그들에게 주기 때문이지요. 저의 가장 큰 염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살기 원하시는 삶으로부터 제가 아직도 너무 멀리 있는 것이 진실인데도 사람들이 저를 극단주의자인것처럼 바로보는 것입니다.
Q: 아직도 당신 스스로를 복음적라고 말하나요? 묻는 이유는 이 단어가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 부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 당신이 복음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그 말은 당신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 라기 보다는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투표하는 가를 의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A: 그 단어를 제 스스로에게 적용하지만 공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요.
Q: 나쁜 소식이 있어요, 프랜시스. 이건 공적 인터뷰에요!
A: 하지만 당신은 영국에 있지요. 미국에 있는 누구도 이걸 읽고 있지 않아요. 슬프게도 이 단어가 이렇게 추한 단어가 되었고 너무 뒤틀려졌지요. 그래서… 예 저는 거기에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전 그저 “보세요, 저는 단지 내 스스로의 생각과 방법, 내가 자연스럽게 가려는 방법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신뢰하려고 아주 열심히 애쓰는 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 분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고 그 분의 길은 내 길과 다르며 그 분의 것이 내 것의 위에 있다는 이사야 55장을 믿으려고.” 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너무나도 오만함을 가지고 걸어 다닙니다. 모든 사람이 트윗 하고, 모든 사람이 블로그 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라지요. 저는 그들에게 “나는 내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 멈추고, 내 것보다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할것입니다. 그런 일로 내게 어떤 꼬리표를 붙일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나는 그저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되려고 할 뿐입니다” 라고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Q: 당신이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 예 사실 트위터를 한 적이 없고, 페이스북 계정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처음 벌어지기 시작했을때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신에 대한 견해를 공공연히 표명하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갑작스레 갖는 것은 괴상하지요.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제 영혼은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어요. 모든 사람들이 좋게 말해주는 것을 들어서 제가 심히 교만해진 때가 있었지요. 또 이런 극단적인 진술들을 들어서 화가 나고 상처 받았던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제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런 세계로부터 거리를 주는 것이 제게는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떻게 사람들이 반응할까에 기초해서 말하기 시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은 그것이 참되고 성경적인 것이기 때문에 말해야 하는 것인데도요.
언젠가 한 설교자가 “당신중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하심(presence)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의 부재(absence)를 위해 설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죠. 아, 이것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구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주님, 저는 주님께서 말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여기에 있고 사람들이 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비판받지 않으려면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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