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간 동시 출현?
동물 인간 동시 출현?
Some creationist writers are taking interest at an article by Marlowe Hood, a French press correspondent, who gives Darwin a hard time.
다윈을 곤란케하는 프랑스 언론 기자 말로우 후드의 기사에 일부 창조론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Hood’s article concerns a survey of mitochondrial “DNA barcodes” examined on 100,000 species of animals by two geneticists looking for patterns of evolution.
후드의 기사는 진화의 패턴을 찾는 2명의 유전학자들이 10만 종의 동물에 대해 검사한 미토콘드리아 "DNA 바코드" 조사를 다룬 것이다.
That would be Mark Stoeckle from The Rockefeller University in New York and David Thaler at the University of Basel in Switzerland, who together published findings last week sure to jostle, if not overturn, more than one settled idea about how evolution unfolds.
이는 어떻게 진화가 전개되는가에 관한 한가지 이상의 합의된 생각을 확실히 밀쳐내는 (뒤집는 것이 아니라면) 발견을 지난주 공동으로 출간한 뉴욕 록펠러 대학의 마크 스토클과 스위스 바젤 대학의 데이비드 탈러이다.
The paper in Human Evolution is available in PDF form from Rockefeller University. Stoeckle and Thaler wanted to see if a Darwinian assumption was borne out by data: namely, that species become more diverse over time. They surveyed DNA deposited in GenBank and found that the assumption is false: genetic diversity across all groups is about the same. But then they said something that raised creationist eyebrows:
학술지 Human Evolution에 실린 논문은 록펠러 대학에서 PDF 파일로 제공된다. 스토클과 탈러는 "종(種)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해진다"는 다윈의 가정이 데이터에 의해 증명이 되는지 보고 싶었다. 그들은 GenBank에 기탁 된 DNA를 검사했는데 이 가정이 잘못되었고 모든 그룹에 걸쳐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같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에 이어 그들은 창조론자들을 놀래키는 뭔가를 말했다.
For the planet’s 7.6 billion people, 500 million house sparrows, or 100,000 sandpipers, genetic diversity “is about the same”, he said.
행성의 76억명 인간, 5억마리의 참새, 또는 10만마리 도요새를 볼때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같다"고 그는 말했다.
The study’s most startling result, perhaps, is that nine out of 10 species on Earth today, including humans, came into being 100,000 to 200,000 years ago.
이 연구에서 가장 놀랄만한 결과는 아마도 오늘날 지구상 10개 종(種) 중 9개가 10~20만년 전에 생겨났다는 부분일 것이다.
“This conclusion is very surprising, and I fought against it as hard as I could,” Thaler said.
"이 결론은 매우 놀랍다. 나는 전력을 다해 이 결론에 대항해 싸웠다"고 탈러는 말한다.
That reaction is understandable: how does one explain the fact that 90 percent of animal life, genetically speaking, is roughly the same age? Was there some catastrophic event 200,000 years ago that nearly wiped the slate clean?
이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90%의 동물이 유전적으로 대략 같은 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20만년전 과거를 거의 다 밀어내다시피하고 새 시작을 하게 한 파국적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One must not assume that they’re talking about the Biblical Flood or something, and just getting the date wrong, because that’s not the intent of the statement. Being evolutionists, Thaler and his colleague do not deny the millions of years of the moyboys during which live originated and evolved. They mean that some population bottleneck left most of the earlier species behind as today’s species emerged relatively recently. Their interpretation is likely to be contested by other scientists, but here’s the upshot:
이들이 날짜만 오해할뿐 성경의 대홍수 같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술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로서 탈러와 그의 동료는 생명이 비롯되고 진화한 수백만년의 moyboys (진화론에서 쓰는 “millions of years, billions of years”라는 뜻의 단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늘날의 종(種)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출현함에 따라, 어떤 개체 병목현상이 초기 종(種)대부분을 뒤쳐지게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해석은 다른 과학자들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지만, 결론은 이렇다.
What they saw was a lack of variation in so-called “neutral” mutations, which are the slight changes in DNA across generations that neither help nor hurt an individual’s chances of survival.
그들이 본 것은 소위 "중립적" 돌연변이에서 변이의 결여였다. 여기서의 변이란 개체의 생존기회에 도움이나 해가 되지 않는 세대간에 걸친 DNA의 미세한 변화를 말한다.
In other words, they were irrelevant in terms of the natural and sexual drivers of evolution.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연적 그리고 성(性)적으로 진화를 주도하는 측면에서 볼때 그들은 상관이 없었다.
How similar or not these “neutral” mutations are to each other is like tree rings — they reveal the approximate age of a species.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들이 상호 간에 얼마나 유사한지 아닌지는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이들은 종(種)의 대략적인 나이를 밝혀준다.
Which brings us back to our question: why did the overwhelming majority of species in existence today emerge at about the same time?
이것은 우리를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린다. 오늘날 존재하는 절대 다수의 종(種)은 왜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한 것일까?
In journal jargon, “Similar neutral variation of humans and other animals implies that the extant populations of most animal species have, like modern humans, recently passed through mitochondrial uniformity.” There are other possibilities than a population bottleneck, though. Hood’s article suggests that the continuity of evolutionary change could also explain the recent emergence of living species. Even so, Stoeckle and Thaler threw another grenade at Darwin:
학술 용어로 "인간과 다른 동물간의 비슷한 중립적 변이는 대부분의 동물종이 가지는 현존 개체가, 현대 인류처럼 미토콘드리아 균일성을 최근에 거쳤음을 암시한다." 개체 병목현상 외의 다른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진화적 변화의 연속성도 생존하는 종의 최근 출현을 설명할 수 있다고 후드의 기사는 제시한다. 그럼에도, 스토클과 탈러는 다윈에게 수류탄 하나를 더 투척한다.
And yet — another unexpected finding from the study — species have very clear genetic boundaries, and there’s nothing much in between.
(연구의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발견) 그럼에도 종(種)들은 매우 명확한 유전적 경계를 가지며,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별로 없다.
“If individuals are stars, then species are galaxies,” said Thaler. “They are compact clusters in the vastness of empty sequence space.”
"개체가 별이라면, 종(種)은 은하계"라고 탈러는 말했다. "이들은 빈 서열 공간의 광대함 속에 있는 고밀도 성단들이다."
The absence of “in-between” species is something that also perplexed Darwin, he said.
"중간"종(種)의 부재 역시 다윈을 당혹스럽게했다고 그는 말했다.
아래 표는 논문의 p. 20에서 발췌한 것이다. Y-축의 APD(Average Pairwise Difference)라는 수치가 개체간의 변이량을 표시하는 것인데 개체수에 비례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치(점선)와는 달리 모든 종 (種)의 실제치는 1%이하를 보이고 있다. 극히 낮은 계수(R^2=0.01)는 x-축과 y-축이 상관관계가 없음 (uncorrelated)을 나타낸다.
[원문 출처] "Is It Becoming Safer to Doubt Darwin?" by David F. Coppedge
[해설 기사] "Far from special: Humanity’s tiny DNA differences are ‘average’ in animal kingdom"
[논문] "Why should mitochondria define species?" by Mark Stoeckle & David Thaler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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