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마태의 일기
세리 마태의 일기
마태복음 9장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 부분이 바로 성경의 기록자인 마태 자신의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다가 왔고,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신과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써 내려 갔을까를 상상해 보게 되었다. 내 화법으로 적어 내려가다가, 다시 마태의 화법으로 바꾸어 적어본다.
MM년 X월 A일
“요즘은 내가 세리가 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처음에는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약소국가가 강대국에 기대어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고, 또 대 로마제국이 보여준 속국에 대한 개방적 관용성에 깊이 감동도 받은 바 있어, 넓은 의미에서 볼때 제국의 질서와 문화를 낙후된 우리 나라에 도입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명분 없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제사장들의 교권주의도 내 젊은 혈기에 눈 뜨고 봐줄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반발로 나는 더 큰 세상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아 식민지 출신도 출세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축적한 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 친구들도 차례대로 나를 떠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나를 창녀나 죄인과 동격으로 취급한다. 하긴, 그동안 내가 살아온 꼴을 보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정말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MM년X월 B일
“요즘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종종 본다. 세어 볼 수는 없지만 많을 때는 성인 남자들만해도 족히 몇천여명은 될 듯하다. 소문에 의하면 예수라는 사람이 사람들 병을 고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고 다닌다고 하고, 그 사람이 바로 예언자들이 약속한 이 나라의 구세주라고 한다. 문둥병이건 눈 먼 것이건 못 고치는 병이 없고, 귀신 들린 자들도 손만 얹으면 즉시 낫는다고 한다. 구세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사람인 것 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아니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정말 구세주라면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이 민족을 구할테고, 그러면 나 같이 로마제국에 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기 십상이니까.”
MM년X월 C일
“오늘 갑자기 사람들이 내가 근무하는 세관 앞에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라는 사람이 그 집에 방문했다고 한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지 발 디딜 자리도 없고, 들어갈 틈새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니까 갑자기 몇 명의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더니 기와를 뜯어내고 그 위에서 한 중풍병자를 침상째 내려보낸다. 그러더니 얼마 안있어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아까 그 중풍병자가 침상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놀랍다! 정말 놀랍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정말 구세주인지도 모르겠다!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번 듣기는 했어도 원래 사람들은 과장을 많이 하니까 반신반의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침상에 누워 지붕에서 내려간 중풍병자가 갑자기 일어나 걸어나오다니!!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집 문이 열리더니 군중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으로 볼 때 그 예수라는 사람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 그런데 그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왜 이쪽으로 오는 것일까? 그는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나를 따르라”고. 정말로 내게 말한 것인가? 세리인 나? 사람들이 경멸하고 싫어하는 나? 로마제국의 충실한 앞잡이 나? 지금 나보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꿈을 꾸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불가항력적으로 나는 일어나 내가 평생을 일해 온 세관을 버려두고 그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그와 그 제자들을 내 집으로 초청했다. 같은 세관에 근무하는 세리들도 다 불렀고 그 외에 내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다 불렀다. 예수 그를 따라다니던 무리들도 상당수 함께 왔다. 식사를 하는데 바리새인들이 몇 눈에 뜨인다. 나를 개처럼 취급하는 바리새인들. 그들만의 화려한 옷차림과 늘 떠는 거드름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 중에서도 그들은 금방 눈에 뜨인다. 그들이 예수라는 사람 앞에 서더니 그 거만한 목소리로 도전한다.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많이 겪어 이미 익숙한 나지만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집에 와서, 내가 초대한 손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집주인에게 모욕을 주다니...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로마제국의 앞잡이인 나를 불러 구원하고 해방시키러 왔다고!”
NN년Y월 D일
“최근 나는 40여년 전에 있었던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와의 만남에 대해 기록을 시작했다. 나이가 이미 많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나에게 있어 아마도 이 일은 그 분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까지 산에서 주신 가르침에 대한 기록과 가다라 지방의 돼지떼에 벌어진 일을 마칠수 있었고 오늘은 드디어 그 분과 내가 처음 만나던 날에 대해 기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십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항상 내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지지도 않고 마치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록을 하면서 나는 터져나오는 오열을 감당할 수 없어 여러번이나 쓰기를 멈춰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던 그 때에…. 주님께서는 나를 창피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오셨다고 당당히 내 편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나서 3년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어주셨다.…….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씀하셨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고침의 기적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풍랑을 잠잠케하신 그분의 권세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를 살리신 그 분의 능력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던 내게 직접 찾아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해 주신 것보더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분이 나의 삶의 전환점이셨고, 죄악의 수렁에서 나를 꺼내시고 내 삶 전체를 걸 소명을 주신 분이셨다. 나는 ‘다시 오시리라’ 말씀하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그 분께 대한 감사의 기도로 시작하고 또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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