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신앙
믿음이 시작되던 시절에는 아마도 하나님의 진품 신앙을 잠시 맛이나마 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의 단 맛 뒤에 남는 갈증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듯한 그 기쁨과 감격은 성경 말씀에 기록된 "생수"라는 표현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것들은 갈등의 여지 없이 배설물로 여겨졌고, 그렇기에 내가 가졌던 보화를 내려놓고 버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그 가치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진품의 소유를 지키지 못하고, 어느 순간엔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바꿔쳐진 짝퉁을 들고 다니게된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도 뭔가 찜찜해 하면서도, 전에 맛보았던 진품과의 유사성에 속아 진품이 분명할 것이라고 암시를 반복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내온 듯 합니다.
추정컨대 이미 짝퉁으로 바꿔쳐진 후에도,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의 기쁨도 있었고, 감격도 있었고, 내려놓음도 있었고, 열심과 교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직한 마음으로 돌이켜 볼 때 그것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면,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던가, 아니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품이 아닌 짝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인데, 내 양심은 내게 나의 신앙이 짝퉁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 신앙이 진품에서 짝퉁으로 바꿔쳐진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마음에 부딛혀 오는 단어는 믿음이 가지는 "수동성"입니다. "능동적"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더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언약을 따라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임하실 그 나라를 수동적인 믿음으로 기다리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일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든 확장해 보려고 애쓴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가까이 온 혹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는 수동적인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수동성"은 인내 속의 "기다림"이라는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시므온과 안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기약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본 제자들도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시기까지 기다림 속에서 예수님의 지상명령 수행을 보류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기다림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진품 신앙은 우리에게 가히 핵폭탄과 같은 능동성을 초래합니다. 그 폭발적 능동성을 사모하는 마음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모하는 마음은 나에게 조급함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간절한 수동적 기다림을 건너뛴 채, 나의 능동적 행동으로 그 결과와 열매를 흉내 내보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핵폭탄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허접한 폭죽 만드는 수준에서 지금도 헤메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능력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힘들고 더디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신앙서적과 설교로 대치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레마(ῥῆμά)" 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나의 지식과 선입견에 근거한 "짝퉁 로고스 (λόγος)"를 쉽게 갖다 놓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더러움을 제하시고 치료하시고 살려주시기를 기다리며 나의 죽음을 선포하는 대신, 나 스스로 깨끗하고 거룩해져 보려고 헛된 경건의 모양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무가 열매 맺기를 기다리지 못하여 엉뚱한 열매를 나무가지에 끈으로 매단 것과 같은 행위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못해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켜보려한 것과 같은 행위였으며, 아론과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지 못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이런 나의 조급함은 점점 그 가짜 열매에 자족하며 진짜를 위한 간절한 기다림으로부터 나를 멀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기다림의 자세로 있는가를 쉽게 나타내는 척도는 내 마음이 얼마나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있는가입니다. 설혹 내가 사역이란 이름으로 밤잠을 설치며 뛰어다닐지라도, 삶의 분주함과 소란으로부터 물러나, 나 만의 골방에서 그 분의 임재하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내게 없는 한 나에게 진품 신앙은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내게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이 오늘도 내게 찾아옵니다. 수많은 신앙서적과 설교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성경과 기도만을 의지해 나 홀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종종 무척이나 불안하고도 고독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은 작은 등불과도, 조그만 옹달샘과도 같이 내 가슴 속에 전해오는 성령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엇이든 그 명하신 바를 순종하며, 그 전하라 하신 바를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전하는 삶. 그 진품 신앙을 다시 되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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