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의 댓가 (The Cost of Honesty)
정직의 댓가 (The Cost of Honesty)
식민지과 한국동란 이후 한국이 60여년에 걸쳐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거쳐 세계 10위권 규모의 부를 이뤘지만, 아직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지만, 결코 적지 않은 세금이 사회보장과 복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여러번의 정권교체을 통해 독재는 청산되었고 어설프나마 국민 참정의 민주주의도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 전체의 체감 온도는 그다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탐욕과 부정부패가 아직도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정직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필요를 인식하는 눈, 변화를 요구하는 입들이 너무나도 많은데도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정작 그 댓가를 치루려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기 중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이 겹친 어느 날 신문 4컷 만화에 "아빠, 청명과 한식이 뭐에요?" "맑고(淸) 밝게(明) 살려는 사람은 찬밥(寒食) 신세를 면치 못하는 다는 뜻이란다" 라는 웃픈 내용이 실렸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상과 복을 받고, 죄 지은 사람은 댓가를 치루었으면 참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정직한 사람이 도리어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 현실(reality)입니다.
정직하면 수퍼마켓 점원이 계산을 잘못해 생긴 '이게 웬 떡(?)'을 포기해야 합니다. 정직하면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주차장에서 차 빼다가 다른 차를 찌그러뜨렸을 때 몇 백불의 돈을 '쓸데 없이' 써야 합니다. 정직하면, 세금도 더 내야 합니다. 정직하면 직장에서 남보다 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실패한 프로젝트의 책임을 지고 감봉을 당할 수도 있고, 부정한 짓을 하는 상사의 눈 밖에 날 수도 있고, 심하면 해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정직하면 캄캄한 시골길을 가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었을 때 감방에서 몇 년 썩어 인생이 완전 쫑 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크게 밑지는 짓이고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에 댓가를 치루면서까지 정직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라고 외치고, 정직한 사람이 고생하다가 결국 승리한다는 류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고 감동하는 정도로 사회정의 구현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곤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상속"(inheritance)입니다.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 조차도 순조로운(?) 상속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댓가를 치룹니다. 일반인들도 좀더 나은 삶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열망 하나로 수입의 절반 넘는 돈을 사교육에 퍼붓고, 기러기 아빠가 되고, 은퇴 자금 탕진하는 것도 달게 감수합니다.
내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비싼 정직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그 보상을 내 아들 딸들이, 내 손자 손녀들이, 내 자손들이 대대로 상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오염되어 먹을 물 없는 곳에서 사용할 최첨단 정수기를 물려주기 보다는 깨끗한 물 자체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한 개의 돌이 되어 꽝꽝 얼어붙은 강가의
얼음 향해 잰 걸음으로 달려가
한 주먹의 힘만한 구멍밖에 내지 못한 채
쓸쓸한 비명소리 함께 어둔 강바닥으로 잠겨 간
그 시리던 시절의 돌팔매
봄이 오는 어느 날 바로 그 돌팔매 흔적으로부터
얼음장 꺼져갈 것임을 잊지 말자며
차가운 악수로 잡던 손들의 사랑처럼
한 포기 씀바귀 곱게 닦이온 뿌리 밑에서부터
이 나라 천지의 들은 녹으리라"
<도종환 시 "씀바귀" 중에서>
"농부라면 품과 시간을 들여 지은 채소가
얼마나 맛나는지 먹어보면 알아보겠지만
임업은 그렇게는 안 되지
일을 잘했나 못했나 결과가 나오는 건
우리들이 죽은 후야"
<영화 "Wood Job!"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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