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사슴
늘 가는 산책길은 일종의 자연 보호 구역 (open space reserve)이라 늘 사슴, 토끼, 칠면조, 메추라기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평소와 같이 해 뜰 무렵 산책을 마치고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주택가를 지나고 있다가, 사슴 한마리가 정원의 살짝 깨진 스프링클러(sprinkler)에서 조금씩 새고 있는 물을 할짝 거리며 핥고 있는 모습을 발견 했습니다.
늘 무심코 지나치던 사슴 중 하나였을 뿐인데, 물을 할짝 거리는 이 모습을 본 순간 불현듯 '그렇구나. 야생 짐승들은 마실 물이 전혀 없구나' 라는 자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겨울철 3개월을 제외하면 비 내리는 날은 아예 없다시피한 지역입니다. 산책하러 가는 곳도 샘물 같은 것은 아예 없고 겨울에 내린 물이 고이는 저수지가 하나 있을 뿐이며 그나마 이르면 5월 늦어도 7월이면 완전히 말라 붙고 개울물도 완전히 멈추게 됩니다.
통상 물을 마시지 않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를 3일로 잡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사는 동물들은 매년 무려 5~7개월을 물을 마시지 않고 견뎌내야만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온 동물들이기에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생존력이 있어 풀, 나뭇잎등에서 간접적으로 수분을 취하기도 하고 도롱뇽(salamander) 같은 양서류는 습기가 남아 있는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몇 달씩 버텨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런 견뎌냄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닐테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심해지는 가뭄은 그런 짐승들의 한계를 넘겨 떼죽음에 이르게도 합니다.
세계 인구의 26%가 안전한 식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물 마음껏 쓸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감사해 왔는데, 물 한컵을 벌컥 벌컥 마실 수 있는 것조차 축복임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As the deer pants for the water brooks,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시편 42:1)
[추신]
때 마침, 지역 주민들끼리 소통하는 nextdoor.com에서 야생동물에게 물 주는 것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네요. 캘리포니아는 야생동물들이 인간에게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 먹이를 주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데, 먹이 뿐 아니라 물을 주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대한 유권 해석을 두고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심지어 집 정원에 bird bath를 두는 것도 기소될 수 있으며 실제로 본인이 기소되어 6개월 형을 받을 위기에 있다는 사람까지 등장하면서 뜨거운 찬반 토론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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