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런던: Savoy Grill ★ (English)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는 Gordon Ramsay(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Savoy Grill로 갔습니다. (메인 가격대 단품 £33~65 / 코스 £110, 맛 9.0, 가성비 9.0, 인테리어 9.0, dress code는 smart casual)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요리사 Gordon Ramsay는 런던에만 6개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고 그 중 반이 미슐랭 별을 받았는데 (Restaurant Gordon Ramsay ★★★, Pétrus by Gordon Ramsay, ★ Savoy Grill ★) 이 중 둘은 프랑스 요리 위주입니다. 프랑스 요리는 다른 도시에서도 먹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저희는 런던에 온 김에 영국 음식을 위주로 하는 Savoy Grill에 가 봤습니다.
식당이 있는 Savoy Hotel은 The Waldorf Hilton, The Ritz와 더불어 런던 중심부의 전통있는 호텔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명동 사보이 호텔는 영국 사보이 호텔과는 무관한 한국 토종 호텔)
입구에 도착하니 갑자기 때 아닌 눈발이 날려서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12월이 되면 호텔에서 5~6pm에 비눗방울로 눈이 내리는 연출을 해주는 것이었어요. 손에 눈을 받아서 확인해 보기 전에는 감쪽 같아서 때 아닌 화이트 크리스마스 기분을 맛 봤습니다.
일부러 조금 일찍 갔습니다. Savoy Hotel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예쁘다고 소문난 곳이라서요. 이렇게 귀여운 미니 기차가 전시되어 있네요. 옆에 쓰여진 Savoy Route 1889. 호텔이 개업한 해입니다.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고 철도가 처음 놓인 곳이 영국이라 기차는 여전히 영국인의 정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 합니다.
호텔 로비에서 정면으로 내려가는 작은 통로가 있고 그 통로를 마치 상고대(rime ice)로 덮힌 숲 같은 분위기로 꾸며 놓았네요. 아마도 저 아래쪽이 원래 지었던 옛날 호텔 건물의 로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통로 반대편으로 가서 거꾸로 올려다 본 광경
아래쪽에는 선물을 가득 실은 산타클로스 썰매가 장식되어 있네요.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식당은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마자 왼쪽으로 돌아서 있습니다. 식당 인테리어는 전통적인 느낌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격조있는 분위기입니다. 6개월 전에 renovation을 해서 무척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메뉴는 점심 2 코스와 3 코스 메뉴가 각각 £55/£65, 저녁 5 코스 메뉴가 £110이고 단품 메뉴 주문도 가능합니다. 그 외에 아이들을 위한 코스 메뉴, (인근에 많은) 극장 갔다 와서 늦게 먹는 메뉴등도 있네요. 저희는 단품 메뉴로 골랐습니다.
Mocktail (알코올 뺀 칵테일)
Arnold Bennett Soufflé £23
1900년대 초에 활동하던 영국 소설가 아놀드 베넷이 Savoy Grill에 오면 늘 즐기던 음식이 훈제 대구(smoked haddock)를 넣은 오믈렛이었다고 합니다. 이 오믈렛을 soufflé (수플레, 거품 낸 계란 흰자를 오븐에 넣고 구워 쑤~욱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음식)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그의 이름을 붙였군요. Montgomery cheddar cheese로 만든 진한 소스를 뿌려 나왔습니다. 짭짤한 훈제 대구가 폭신하고 탱글한 수플레와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루었고, 치즈 소스 맛이 참 깊고 좋았습니다. <[영국음식] 아놀드 베넷 오믈렛 Omelette Arnold Bennet>
훈제 대구와 체다 치즈 둘다 지극히 영국적인 식재료지요. 미국에서 살면서 물컹하고 단순한 맛의 공장 제조 가짜 체다 치즈의 맛만 보다가 코스트코에서 산 체다 지방산 진짜 체다 치즈를 먹고 그 복잡하고 오묘한 맛과 풍미에 놀라서 한동안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게 계속 사다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영국 치즈 체다 ◆ Cheddar>
Beef Wellington £65
Gordon Ramsay가 가장 애정하는 메뉴가 바로 이 Beef Wellinton(비프 웰링턴)이라서 과거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마다 모두 이 음식을 signature menu로 제공했었는데, 프랑스 요리와 일관성이 없는 영국 음식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지, 현재 런던에서는 영국 음식점인 Savoy Grill에서만 제공을 합니다. 요리사마다 조금 다른 레시피가 있지만 공통점은 살짝 지진(seared) 소 허릿살 스테이크(beef fillet steak)를 버섯 볶은 것으로 감싸고 밖을 파이 생지(puff pastry)에 싸서 굽는 것입니다. [영국음식: 비프 웰링턴 Beef Wellington]
Gondon Ramsay의 레시피는 파이 생지로 싸기 전에 parma ham (prosciutto)으로 다시 한번 감싸줍니다. 집에서 레시피 따라서 한번 만들어 먹어본 적이 있는데요, red wine으로 만든 소스에 감탄했습니다. 각각의 재료 맛을 보면 짜고 시큼하고 이상한데 스테이크를 소스에 찍어 한 입에 넣고 먹으면 밸런스가 딱 맞는거에요. Gordon Ramsay 식당에서 제대로 만든 것을 먹어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고명으로 나온 Roscoff onion(연분홍색이 나고 단맛이 강한 작은 양파 종류) 조린 것도 고기와 정말 잘 어울렸고 그 위에 튀겨서 올린 바삭한 양파의 식감과 고소한 맛도 좋았습니다.
어두운 조명 때문에 고기색이 너무 탁하게 나와서 식당 페이지에서 사진 한장 퍼 왔습니다.
Glazed carrots £8.50
저 당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거 엄청 맛있네요 ㅎㅎ
<[영국음식] 영국 크리스마스 음식 ◆ 글레이즈드 캐롯 & 파스닙>
Pomme Purée £8.50
엄청 creamy한 mashed potato(으깬 감자). 2015년 파리에서 얼떨결에 들어가 먹어봤던 Joël Robuchon의 5대 signature dish 중 하나인 Pomme Purée 에 비견할 정도의 맛입니다. 훌륭했습니다.
BBQ Lobster Thermidor £90
처음 먹어 보는 Lobster Thermidor(테르미도르)는 와인 소스에 익힌 바닷가재 살을 소스에 버무려 그 껍질 속에 다시 넣고 그 위에 치즈를 얹어 굽는 요리입니다. 미국에서는 lobster 산지로 유명한 Maine주를 중심으로 Boston같은 도시에서 lobster 전문 식당들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요리해서 파는 곳은 보지 못했고 그냥 찐 바닷가재 살 자체를 즐기거나 버터 발라 구운 정도 요리가 대부분입니다. Gordon Ramsay가 요리하는 Lobster Thermidor의 경우 버터, 샬롯(shallot), 생선국물, 화이트 와인, 크림, 겨자, 파슬리, 레몬 쥬스, 파마잔 치즈 등으로 조리를 해서 구워냅니다. Lobster 요리가 대체로 비싼 편이기도 하고 이건 조리 과정이 나름 복잡해서 더 비싸지네요.
사실 저는 lobster보다는 새우나 게의 맛을 더 좋아하는데요, 이건 요리를 잘해서 그러건지 엄~~~~청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두워서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고 조리개를 더 열었더니 너무 열어서 사진이 다 뭉개졌네요 😔)
Lobster에 곁들여 나온 Paprika salted fries. 개별 주문하면 £8.50
겉바속촉. 스치고 지나가듯 가벼운 매콤함.
Fillet steak £64
Beef Wellington과 고기 부위도 같고 고명으로 나온 Roscoff onion 조림도 같지만, 고기를 번철에 충분히 지져서 마이야르 현상으로 감칠맛을 한껏 끌어올린 고기맛 자체를 더 풍성한 육즙과 함께 좀 더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방목해서 목초를 먹고 자란 영국 소라서 마블링이 거의 없습니다. 호불호가 있겠으나 저는 씹는 맛 있고, 기름기 적어 느끼하지 않게 담백하고, 육향이 훨씬 더 짙어서 이런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전세계 요리사들이 최고로 평가하는 스페인 Bodega El Capricho 스테이크의 경우 목초를 먹여 최대 15살이 될 때까지 기른 소의 고기이고 마블링이 많지 않습니다. [영국음식: 영국의 소고기 취식법] 같은 방식으로 소를 키우는 남미 지역에 여행가서 스테이크를 먹어본 여행자들 대부분이 그 짙은 육향에 놀라고는 하지요.
Apple Tarte Tatin (2인분) £29
2인분이라는데 보통 디저트의 3~4배 정도 크기입니다. 나눠 먹는다고 했더니, 보지 않는 새에 뒤에서 박살을(?) 냈네요 😅 손님들이 음식 사진 찍으면 보통 쪼개기 전에 먼저 보여주잖아요.
와~~~!! 맛있습니다!!! 제가 사과 자체는 좋아해도 사과로 만든 디저트는 좋아하지 않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레시피를 보니 맛 없을 수가 없네요. 보통의 과일 파이는 파이 생지 밑판 위에 과일을 얹어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파이 생지를 덮기도 하지요. 이 Tarte Tatin의 차이점은 과일을 팬에서 타기 직전까지 졸여 만든다는 것입니다.
팬에 버터로 한층, 그 위에 설탕으로 한층 더 깔은 후에 (살 찌는 소리가 막...) 사과를 올리고 불에 올려 졸입니다. 갈색 캐러멜이 되면 그 위에 파이 생지를 덮어 오븐에 구운 뒤 위 아래를 뒤집어서 접시에 담아 내 놓습니다. 진한 버터 캐러멜만 해도 맛이 없을 수 없는데, 이 디저트는 무척이나 신 맛의 사과를 사용해서 맛의 조화가 너무 훌륭했습니다. 그 위에 덤으로 salted caramel sauce까지 추가로 뿌리니 맛이 없으면 이상하지요 <영국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사과들 ②>
Tarte Tatin은 1880년대에 프랑스 Tatin이라는 호텔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디저트라고 합니다. 자매 둘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사과 파이를 만들다가 과로로 지쳐 버터와 설탕을 넣은 사과를 너무 오래 조리했고 타는 냄새가 나자 당황해서 파이 생지를 덮어 구워 냈는데 그걸 먹어본 손님들에게서 깜짝 놀랄 정도의 호평을 받게 되자 이 호텔의 signature dish로 삼았답니다.
깨뜨리기 전의 사진을 웹에서 퍼 왔습니다.
Sticky Toffee Pudding £16
Gordon Ramsay의 recipe에서 Pudding(푸딩)의 핵심 재료가 date(대추), 버터, 설탕이라서 대추의 끈적한 단맛이 기본을 형성합니다. 그 위에 버터, 설탕, 크림을 섞은 toffee sauce를 뿌리는데 Bourbon whiskey가 진한 향을 더합니다. 초콜렛과는 다른 진한 맛이 좋았습니다.
1월인 큰 아이 생일을 가족들이 함께 모인 김에 미리 챙겨 먹었습니다. 작은 초콜렛 케익을 서비스로 주네요.
계산서와 함께 나온 mince pie. 고소하고 달콤하니 맛 있었습니다. 원래는 고기가 들어갔었던 음식이지만 지금은 고기 없이 설탕과 말린 과일로만 속을 채운다고 합니다. <한국인과 설탕, 민스 파이 이야기>
식당 음식이 100% 영국 음식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영국 음식들을 먹어보기에는 추천하고 싶은 식당입니다. 가격이 싸지는 않아도 미슐랭 1스타 식당에서 이 정도의 양과 질을 갖춘 음식이라면 거품 없고 무척이나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Gordon Ramsay의 명성때문에 한국분들도 많이 오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Savoy Grill과는 상관 없지만 영화 <Notting Hill>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던 Savoy Hotel에서의 기자 회견 장면입니다. 평범한 여행전문 책방주인 영국인 남자와 대스타 미국인 여배우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인해 돌고 돌며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만남의 해피엔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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