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도쿄) : 리퍼베송스(L'Effervescence, 미슐랭 3스타), 2023년 봄
도쿄에 있는 미슐랭 3스타 식당들 중 하나에 다녀왔습니다. 3스타 식당이 12개나 되지만 3스타 식당들 예약하는 것은 1~2스타 식당들에 비해 현격히 어려웠습니다. 일본에서 6천만 명의 회원의 점수을 집계 하는 타베로그(Tabelog)의 평점을 기초로 3개의 식당을 골라 여러 경로로 예약을 시도 했고, 다행히 그 중 ⌜리퍼베송스(L'Effervescence, 감격/흥분/활기)⌟의 점심에 예약이 되어 다녀왔습니다. 타베로그 프랑스 식당 평점 1위인 곳으로, 매일 3개월 후의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습니다.
점심과 저녁 메뉴가 동일하고, 깃 있는 셔츠와 양복 상의를 입어야 하는 복장 규정(dress code)이 있습니다. 가격은 ¥36,300/인 으로 ⌜모수 서울⌟ 과 비슷합니다.
만 1년 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도쿄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큰 아이가 학기 중이고 점심 시간이라 올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는데, 고맙게도 교통 왕복 1.5시간 + 식사 2.5시간을 내어 와 주었네요. 식당 건물입니다.
다행히 조명이 어둡지는 않으나 여러 개의 다른 색온도 광원들이 섞여 있어 음식 사진 찍기에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 식당은 ⌜모수 서울⌟ 과는 대조적으로, 혁신적인 요리가 아닌 최상의 지역 식재료로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를 추구하는 곳이네요. 일본의 고급 식당답게, 각 코스(course)마다 주제어를 선정하고 각본(scenario)을 만들어 내려는 철학적 시도가 있습니다.
Welcome. omotenashi cocktail.
일본어로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hospitality)는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 또는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알콜의 유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Tofu sour cream.
올리브유 위에 두부로 만든 신맛 크림을 올려 내어 왔습니다. 야채 튀김과 빵 먹을 때 잘 어울렸습니다.
Bouquet of vegetable crisps.
연근, 당근, 감자 등 여러가지 채소 튀긴 것이 나왔는데요 종잇장처럼 얇아서 반투명할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여담 하나] 아래 사진 오른쪽에 벽돌색 손잡이의 칼(knife)가 보이시지요? 본 요리 나오기 전에 다양한 색의 손잡이가 있는 칼 세트를 가져와서 보여주며 각자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고 하더군요. 3스타 식당에서 쓰는 칼이니 당연히 좋은 제품을 쓰겠지만 굳이 고르라고 하기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보니 포르즈 드 라욜(Forge de Laguiole)이라고 프랑스의 200년 된 수공 칼 제조 업체였어요. 뭐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 요리 나올 때 포크(fork)는 계속 교체해 주면서 칼은 치울 접시에 대충 쓱쓱 닦아 다시 놓아주는 거에요 😅. 복장 규정까지 있는 3스타 식당에 참 어울리지 않는다(mismatch)...는 생각을 했네요 😁
Underwater forest.
작은 조각들(amuse bouche) 이후의 첫번째 요리입니다. 아래에 다시마 줄기를 깔고, 조개 껍질 위에 리조토(risotto)를 담아 수중 숲(underwater forest)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담음새를 연출했습니다.
눈으로 만은 확인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재료 하나 하나를 최고로 선정하려고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쌀 품종 중 맛으로만 치면 최고지만 재배가 어렵고 추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0.4% 이하로 희귀해졌다는 사사니시키 (ササニシキ) 쌀에, 홋카이도(北海道)의 명물인 북방 조개(北寄貝 홋키가이)와 성게(ウニ 우니), 직접 만든 캐비어(housemade caviar, 아마도 분자요리로 만든)를 섞어 만든 리조토 위에 파래(sea lettuce)를 뿌리고, 마지막으로 차조기 꽃(shiso flower)로 장식을 했습니다. 진한 성게의 맛에 조개와 캐비어가 더해져 깊은 바다내음을 담은 훌륭한 리조토였습니다. 해산물 맛이 진해서 처음 먹어보는 사사니시키 쌀 맛을 다 느껴보기는 힘들었습니다만, 대중적인 고시히카리(コシヒカリ)쌀보다 찰기가 적어 리조토에 더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Genesis of Civilization.
즉석에서 구워낸 감자 포카치아 빵(potato focaccia).
Ars longa, Vita brevis (Art is long, life is short).
장인의 채소들(artisanal vegetables). 밭에서 막 수확해 가져온 듯한 신선한 야채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줍니다.
드레싱은 간과 기름칠만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로 해서 채소의 싱싱함을 느껴보라고 하네요.
얼핏 보면 걍 모듬 채소(assorted vegetables)라고 말할 수 있는데, 좀 자세히 보면 다채로운 색깔의 조합, 식감의 조합, 맛의 조합을 생각해서 치밀하게 계산된 모듬인 것이 보입니다.
채소 공급처 목록을 가져와 보여줍니다. 대부분 도쿄에서 반경 1시간 정도이지만 뒷쪽 3개 현은 꽤 멀고 심지어는 관서 지방의 히로시마(広島)와 고치(高知)에서도 공급을 하네요. 저정도 싱싱함이라면 매일 아침마다 항공편으로 보내오는 거겠지요? 식재료의 차별화에 목을 거는 일본인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식당들이 싱싱한 채소 공급을 위해 식당 부근에 텃밭을 둡니다만, 도쿄 한복판에 텃밭을 두는 것은 무리일테고 품질 면에서도 최고라고 말하지는 못하니 대신 엄선한 곳에서 공급을 받는가 봅니다.
Fixed point.
도쿄 순무(Tokyo turnip)을 구운 것이 나왔습니다. 복잡성과 단순성(complexity and simplicity)이라고 제목을 붙였네요. 순무라는 알싸한 맛의 단순한 채소를 조리해서 제법 복잡한 맛을 끌어냈습니다. 이 식당 셰프가 가장 자부심을 갖는 대표 요리(signature dish)라고 합니다.
담음새가 마치... 포옹하고 있는 연인 같아 보이네요. 의도한 바? 꿈보다 해몽? ㅎㅎ
무심한 듯 스치고 지나가는 한줄의 소스(sauce), 쬐끄만 고수(cilantro) 이파리 쪼가리 하나, 잘게 썰어 깔은 빵조각들. 복잡한 맛의 설계를 위해서는 다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가 봅니다.
Ocean.
유장(乳漿 치즈를 만들고 난 후에 남은 액체, whey)에 졸인 바리(grouper)를 벚꽃(桜の花, 사쿠라노 하나)과 흰색 버터(beurre blanc)로 만든 소스, 죽순(bamboo shoot)과 아스파라거스(asparagus)를 곁들였습니다. 처음 먹어 보는 바리는 식감이 쫄깃하고, 지방기가 적은 담백한 맛이 참 좋더군요.
지방기 적은 생선살의 쫄깃함, 지방기 많은 껍질의 매끄러움, 아스파라가스와 죽순의 아삭함, 거기에 농후한 버터 맛의 소스. 훌륭한 편성(orchestration)입니다.
Forest.
교토(京都)산 오리를 도쿄도 끝자락의 히노하라 촌(檜原村, 히노하라무라. 전체 면적의 93%가 숲인 곳)의 미즈나라 떡갈나무(水楢柏, 미즈나라 오크, 위스키 숙성용 통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무)로 구웠다고 합니다. 적포도주 소스(port wine sauce)와 붉은 사탕무우(red beet) 갈은 것을 깔고, 시금치(spinach)와 검은 송로버섯(black truffle) 썰은 것을 올렸습니다.
장작불에 구웠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리고기 껍질의 식감이 완벽했습니다. 송로버섯의 미세한 맛은 소스와 고기에 묻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넉넉한 양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향은 참 좋네요. (캐비어와 푸아그라는 역으로 향은 거의 없고 식감과 맛이 강렬하지요)
무채색의 오리고기 껍질과 송로버섯 사이에 높은 채도의 녹색의 시금치, 그리고 살짝 익힌(rare) 오리고기 살의 색과 같은 계통의 그러나 좀 더 품위 있는 붉은 색을 비트(beet 사탕무우)로 강조해 강렬한 그림을 연출 하였고, 더불어 핏물에 대한 거부감도 먹음직스러운 식물성 색채로 감쇄시켰습니다. 3스타의 명성에 어울릴만한 빼어난 담음새네요.
오리 허벅지(duck thigh)와 머위 순(butterbur shoot)으로 만든 라비올리(ravioli)를 오리 콩소메(duck consomme, 맑은 수프)에 담았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머위 순의 맛이 궁금했는데, 짭짤한 콩소메 맛에 가려서 그런지 잘 느끼지는 못했고 기름기 많은 오리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Migration.
장인의 일본 치즈(artisanal Japanese cheeses) 5가지 일본산 치즈를 종류별로 담아 나왔습니다.
4가지 일본산 꿀 & 건포도와 함께 나왔습니다. 일본산 치즈들은 대체로 유럽산보다 맛이 덜 강렬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부드러운 일본산 맛을, 저는 강한 유럽산 맛을 선호 합니다. (마눌님과 큰 아이는 치즈를 그닥 좋아하지 않음)
New chapter.
코티지 치즈 무스(fromage blanc mousse)와 밀크 초콜렛(milk chocolate) 위에 핫사쿠 오렌지(八朔)를 올리고 초피(山椒, 산쇼) 잎을 살짝 뿌렸습니다.
핫사쿠 오렌지 속껍질에는 약간의 쓴 맛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죽이고 식감 좋게하려고 과육을 한올 한올 떼어냈네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의 유지 비용에서 인건비가 높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요? 입에 넣기가 왠지 미안해 지는 음식입니다. 오렌지의 상쾌한 맛과 치즈 무스의 궁합이 참 좋았습니다.
한입 크기 모듬 디저트입니다. 오른쪽 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레몬 슈(lemon choux), 땅콩 피낭시에(peanut financier), 육두구 사과 무스(nutmeg apple mousse), 로즈마리 크림 샌드(rosemary cream sando), 크리스탈 조생 온주밀감(早生 溫州蜜柑, 와세 운슈미캉), 생강 초콜렛(ginger chocolate). 하나 하나에서 무척 정성 들여 만든 흔적이 보이고 다 맛이 훌륭했습니다. (원래 작게 나오는 거지만) 맛 있어서 더 먹고 싶은데 감질나게 작은 크기가 아쉬웠지요.
식후 칵테일. 알콜 유무를 선택할 수 있고 말차(抹茶, 맛차)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평범.
식후에 선물이라며 일인당 하나씩 고르라고 하네요.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중 보존 가능한 것들입니다.
기름 2가지와 오래된 간장 그리고 건포도를 골랐습니다.
[여담 둘] 미슐랭 스타 식당이니 소믈리에(sommelier, 와인 감별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ASI 소믈리에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거에요. (최소 3명) 저희 테이블을 도와주던 사람은 젊어 보이는데도 뱃지를 달고 있길래 식사를 마칠 때 "당신 꽤 젊어 보이는데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습니까? 무척 어렵다고 들었는데 젊은 나이에 큰 일을 달성했네요."고 말해 줬더니 이 말이 부심을 자극했나 봅니다.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고 어깨에 힘을 주면서 "29세 소믈리에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더니 조금 후에 자기 명함을 가져와 하나씩 주면서, "다음에 또 오시게 될 때에는 제게 이메일을 보내십시오. 그럼 제가 우선 순위로 예약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네요. (아마도 공식적으로 최대 3개월 전에 가능한 예약보다 먼저 해주겠다는 말인듯 합니다) 다시 가야 하나요? 😜
전체적으로 아주 흡족하게 잘 먹었습니다만, 저희 가족이 이 식당의 진정한 가치를 입으로 확인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쌀, 각양 채소들, 해산물, 오리, 치즈, 과일 등 모든 식재료 하나 하나는 물론 심지어 장작까지도 최상품을 엄선해서 요리를 한 것인데 저희 가족의 혀가 그 진가를 분별해낼 정도의 수준은 못 되는 것 같아서요.
아울러 프랑스 요리의 진가는 와인 페어링(wine pairing)에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 식당에 소믈리에가 여럿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와인 페어링이 타 식당에 비해 현저히 뛰어날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은 와인을 마시지 않으니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봐야겠지요.
결론적으로 3스타 받기에 충분한 훌륭한 프랑스 요리점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테이스팅 메뉴(tasting menu)치고는 양도 꽤 많아서 상당히 배 부르게 먹었어요. 순무 요리, 바리(grouper), 오리 구이만 해도 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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