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서울) : 모수 서울 (미슐랭 3스타), 2023년 봄
부제 <먹어볼 결심>
몇 년에 한 번 꼴로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 별을 받은 식당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프랑스에 갔을 때 얼떨결에 2스타급에 들어가 단품 메뉴로 먹어본 것 외에는 다 1스타급이고, 아직까지 3스타급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풀코스로 먹으려면 (wine paring 제외) 별 하나당 $200 정도는 얼추 잡아야 하고 거기에 세금이 약 10%, 그리고 팁이 약 20% 추가되니 3스타급에 가면 일인당 돈 백만원 정도 쉽게 깨지는 거지요.
이번 서울/도쿄 먹자 여행을 가면서 상대적인 가성비에 힘 입어 3스타 식당에서 먹어볼 결심을 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22년판에 3스타를 받은 식당이 딱 2개 있었습니다. 신라호텔의 ⌜라연⌟ 그리고 광주요 그룹의 ⌜가온⌟. 2023년판에서 ⌜라연⌟이 2스타로 떨어지고 ⌜가온⌟은 작년말 부로 영업을 중단하면서, 새롭게 3스타로 등극한 ⌜모수 서울⌟이 유일한 3스타 식당으로 남았습니다. 2년 사이에 가격이 점심/저녁 가격이 21만원/37만원으로 올랐으나, 환율/세금/팁 다 고려하면 미국 가격으로 환산할 때 $124/$219로 1스타급 가격인 셈이지요.
[2024년 9월 30일 update] 2024년 2월 5일부로 CJ의 투자계약이 종료되면서 모수 서울은 임시 폐업했습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6월에 같은 이태원 인근에서 다시 개업을 할 예정이었으나, 9월 말 현재 아직 개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종원 유튜브에 출연한 안성재 셰프 본인의 말에 따르면 겨울에 재 개업할 것으로 보입니다.
모수는 원래도 테이블이 몇개 되지 않아 예약이 어려운데, 3스타가 되면서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매주 일/월은 휴일이며, 매월 15일 10am에 2달 반 후의 예약을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2~2.5달 후 기간에 발생하는 취소건에 대한 알림 신청을 받습니다. 종업원의 말에 의하면 2달 이내의 기간에 발생하는 취소는 이메일로 (info@mosuseoul.com) 계속 문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고, 저희도 수시로 이메일을 보낸 끝에 점심 시간에 취소된 예약분을 운 좋게 할당받을 수 있었습니다. 점심과 저녁 메뉴를 비교해 보니 (홈페이지 메뉴의 가격이 아직 예전 가격이네요), 저녁에 추가되는 3가지가 엄청 특별한 요리들 같아보이지 않아 (우엉, 도토리 국수, 메추라기+채소) 점심이 훨씬 실속 있게 느껴졌습니다.
메뉴를 살펴보니 2/3이상이 해산물인데, 작은 아이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비린내 나는 것은 다 싫어하고, 물컹거리는 식감이 있는 것도 가급적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편식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작은 아이도 알고 미슐랭 3스타가 될 정도로 요리를 잘 하는 곳이니, 조금 모험이기는 하나 이번 기회를 해산물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하고 먹어볼 결심을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작은 아이를 포함해서 전 가족이 모수의 음식에 아주 감탄을 해서 이번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인상 깊고 맛있는 곳으로 꼽게 되었습니다.
식당 건물은 이태원 이면도로에 위치해 있습니다. 로고는 코스⌜모스⌟ 꽃의 문양이라고 합니다.
예약 시간 전에 종업원 한명이 입구로 내려와 기다렸다가 안으로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아담한 다이닝 홀(dining hall) 한편에 주문 제작한 듯한 진공관 앰프와 LP 플레이어가 잔잔한 음악을 흘려줍니다.
현대적인(contemporary) 느낌의 단순한 홀입니다. 테이블 간의 간격이 무척 넓어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예약은 더 힘든거지만 😅)
1층 다이닝 홀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게 완전 개방된 주방(open kitchen)입니다.
2층입니다. 테이블당 2~3명이 앉는 작은 테이블 위주이고 훨씬 조용해서 특별한 날 데이트 하기 좋아 보입니다.
화장실입니다. 한 유튜버에 의하면 한 사람이 화장실 사용하기가 무섭게 직원이 즉시로 들어가 사용한 흔적을 없앤다고 감탄을 하더군요. 제가 들어갔을 때에도 물방울 튄 자국 하나 없었습니다.
가죽으로 된 물잔 받침에 모수 로고가 붙어 있고
젓가락에도 로고가 붙어 있고
종이 냅킨 누름쇠도 로고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글라스 와인 목록(glass wine list)인데요, 제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와인도 완전 문외한이지만 리스트 위에 돔 페리뇽(Dom Perignon)은 들은 풍월로 알아서, '어? 식당에서 돔 페리뇽을 저렇게 싸게(?) 파나?' 하고 의아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식당들은 워낙 건물 비용, 재료 원가, 인건비가 높아서 이윤의 대부분을 와인에서 남기거든요. 나중에 검색해 보니, 미국 소매가가 $300 쯤 하네요. 한병에 평균 6잔 정도 나오니까 원가가 $50/잔 꼴이 되어 마진(margin)이 1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일 비싼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의 명품 귀부(貴腐) 와인 d'Yquem Sauternes도 소매가 $540/병 = $90/잔으로 마진이 30%. 오히려 5만원/잔 이하의 중저가 와인들이 마진을 몇 배 남기는 것 같아 보이니 참고 하세요.
제일 싼 거로 화이트 와인 한잔, 샴페인 한잔. 작은 아이가 마신 생애 첫 와인 이었습니다. (마진을 미리 알았으면 차라리 돔 페리뇽으로 주문해 줄걸... 😓)
오른쪽은 반투명한 종이에 인쇄한 음식 메뉴, 왼쪽은 와인 페어링(wine pairing) 메뉴. 두개를 겹치면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음식 나올 때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는데, 제가 사진 찍는데 정신이 팔려 거의 기억을 못합니다 😅)
손으로 집어 먹는 작은 조각들(amuse bouche)을 위해 젖은 수건이 나왔는데요, 거의 세수 수건만한 크기의 것이 나왔어요 ㅎㅎ
작은 조각들(amuse bouche) 첫번째. 구운 김으로 파삭~하게 컵을 만들어 간 감자를 채우고 그 위에 작은 단새우들을 올렸습니다.
김과 감자와 단새우의 맛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작은 조각들(amuse bouche) 두번째. 작은 열매와 채소 썰은 것들을 종잇장처럼 얇은 플레이크에 올려 나왔습니다.
작은 조각들(amuse bouche)이라고 부르기에는 꽤 컸던 세번째 - "전복 타코(abalone taco)"
유바(湯葉, 두유를 가열할 때 생기는 막을 건져 올린 것)를 튀겨 만든 껍질에 석쇠로 구운 통전복, 그리고 감태(가시파래)를 올렸습니다. 여기서부터 놀라기 시작했는데요, 타코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소스와 감태와 전복이 깜짝 놀랄만큼 조화(調和)로운 거에요.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참돔과 구운 생선 간장"
일식 마츠카와(まつかわずくり, 松皮作, 마츠가와즈쿠리, 뜨거운 물을 부어 껍질만 익힌 회)로 처리한 듯한 숙성 참돔을 얇게 썰은 참마와 함께 담아 기름을 살짝 더한 연한 간장 소스와 함께 나왔습니다. 참돔과 참마의 만남도 좋지만 은은한 간장 소스가 예술입니다.
"토종밀 국수"
일단 국수 면발이 끝내줍니다. 건면이면 단단한 느낌이 남고, 생면이면 물컹거릴텐데 쫀득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삶아낸 밀 국수. 알덴테(al dente)의 지존급이었습니다. 아래 깔린 소스는 간장, 산미, 기름이 섞여 새콤 달콤 쫍조름한 맛을 내고 위에 가볍게 뿌린 고춧가루는 스치고 지나가는 매콤함을 더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복잡 정교하면서도 균형이 잡힌 맛의 설계를 하는지, 남은 소스를 족히 5번은 찍어 먹어가면서 분석을 해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열심히 먹었습니다. ㅋㅋ 이 날 먹은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2가지 중 하나입니다.
"옥돔(tile fish)과 배추속"
제가 알기로 이름은 '돔'이지만 도미 종류가 아니고 농어 종류라서 비린내가 좀 날까 염려를 좀 했지만 비린내 전~~혀 없었습니다. 배추속으로 만들었다는 진한 녹색 소스 외에도 두세가지 소스가 더해졌는데, 이 또한 너무 훌륭했습니다.
"화덕불에 지진 고등어"
이날 메뉴 중에 가장 걱정했던 음식입니다. 저는 고등어 좋아하지만, 등푸른 생선들은 갓 잡힌 것 아니면 무척 비려서 작은 아이가 안좋아할 것 같았어요. 밑에 깔린 노르스름한 소스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콩나물 발효한 물로 만들었다는데요, 와~~ 고등어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았더군요.
구이 아래에 깔아 놓은 아삭한 미나리도 시원한 맛으로 고등어의 진한 맛을 돋보여주었어요.
"강냉이 솥밥"
작은 무쇠솥에 3가지 쌀을 섞어 밥을 지어왔습니다.
일단 솥을 보여준 후 밥을 퍼 담아 왔는데요, 와~~~~~~~ 이게 이날 먹은 베스트 2 중 하나입니다. 버터로 살짝 볶은 옥수수(강냉이) 알갱이가 들어갔는지 팝콘(pop corn)냄새도 은은히 나고 (아마도 오른쪽 아래에 있는 노르스름한 알갱이), 아주 미세하게 간이 되어서 맨밥으로 먹어도 너~~~~~무 맛있어요. 듬성 듬성 섞인 누룽지는 딱딱한 느낌 전혀 없이 살짝 바삭한 식감을 내는 정도. 몇 달 전에 제가 일본에 비해 한국 식당 밥이 대체로 맛 없다고 불평했는데요, 이 밥은 정말 명품급이었습니다.
"한우와 고추장"
이 접시가 나왔을 때, 겉 양념해 살짝 구운 한우에 은은한 나물까지는 좋아 보였지만 고추장이 고기 맛을 가려버릴 것 같아 고추장 없이 먹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살짝 찍어 맛을 보니, 고추장은 정말 쬐~~끔 스치고 지나가는 듯 느껴지고 한우와 너무 잘 어울리는 맛이더라고요. 그냥 나온 것 싹싹 다 긁어 먹었습니다.
(사진을 잘못 찍어 후핀에 맞았네요. 죄송 ㅠㅠ)
한우 한점에 은은한 고추장 소스에 담백한 나물. 우음~~~~~!!
후식(desserts)들 입니다.
자연스러운 단맛에 미세한 막걸리 향이 섞여 나는 빙수입니다. 알콜이 들었다는 느낌은 거의 나지 않고 한우 먹은 입을 살짝 씻어내는 정도였습니다.
"도라지와 우엉 절편(?)"
"청귤 껍질(green tangerine zest)을 뿌린 오메기주"
"통가콩(tonka bean)과 카라멜로 만든 아이스크림"
아래 깔린 것은 파의 일종인 sweet allium을 오래 볶아 caramelize한 것이라고 합니다.
3가지 차(tea)를 한개씩.
마지막으로 "연근 절편"
⌜모수⌟의 주인장인 안성재 셰프입니다. 원래 샌프란시스코에서 식당을 열었다가 서울로 옮겼다고 합니다. 음식이 어떠셨냐는 물음에 "So~~ creative!!"라고 대답했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음식 하나 하나가 익숙하거나 상투적이거나 진부하지 않고 일찌기 경험보지 못한 신기한 그러면서도 너무 기분 좋은 맛을 내는 거에요. 제가 요리는 전혀 할 줄 모르나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요리는 이렇습니다.
- 채식 요리를 제외하면, 주 재료는 단백질(포유류, 조류, 어류)로 특산물도 있고 많이 먹는 재료에 차이는 있으나 각 나라별로 결국은 유사점이 많고 신선도와 품질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기는 하지만 맛 자체가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맛을 내는 방법은 간만 살짝 해서 먹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요리라고 할 수는 없고, 대표적인 서양 요리들은 사용하는 지방(fat)의 종류, 즉 기름/버터/치즈/크림 등에 의해 큰 방향이 결정 되고 부가적으로 향초와 향신료(herbs & spices), 술(liquor)등으로 추가적인 차이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한국/일본/중국 요리들은 지방보다는 된장/간장/고추장/춘장 등 장맛이 압도적인(overwhelming) 음식들이 많지요. 태국/인도 요리들은 강렬한 향신료가 특징이고요. 설탕을 퍼 넣는 경우도 많습니다.
- 요리사의 실력이 판가름되는 것은 많은 경우 식재료의 좋은 조합(궁합)을 통해 맛의 상승 효과를 끌어내는 재능인데, 이것도 전혀 새로운 제 3의 맛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고급 식당에 가도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재료를 보면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범위의 맛 들인데 ⌜모수⌟의 요리들은 도드라지는 것 하나 없이 무척 복잡하면서도 너무 조화스럽게 허를 찌르는 맛이었던 것이지요. 마치 The Real Group의 정교한 아카펠라를 소스로 표현해낸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 깊은 조화스러움의 기본이 분명 한국의 묵은 장맛이라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이런 맛의 조합을 창출해내는지는 정말 마술 같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슐랭 가이드가 ⌜모수⌟의 분류를 한식이 아닌 이노베이티브(innovative, 획기적인)로 한 것과, 안성재 셰프 본인이 분류를 특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은 무척 적절하게 보입니다. 굳이 흠을 억지로 잡자면, 후식(desserts)들이 특징이 비교적 약했다고 할까요.
식사를 마치면서 저희 가족은 안성재 셰프가 천재인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다시 예약만 가능하다면 다음에 한국 갔을 때 꼭 다시 들러보고 싶은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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