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가을 (1) 거제도
경상도의 가을 (1) 거제도
10월 말에 가족 방문차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가기 조금 전에 지인들과의 만남을 위해서 미리 연락을 했더니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 시기에 때 맞춰 여행 계획이 있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합니다. 다소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몸만 따라가면 되는데 사양할 이유가 없지요 ㅎㅎ
일차 행선지는 남해의 거제도였습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일단 곧장 숙소로 가 바다쪽의 객실을 잡았습니다. 5년 전 개장한 대명리조트가 거제도의 대표적인 콘도였는데, 10월 중순에 개장해 일주일 된 한화 리조트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숙소에 대한 느낌은... 괜찮은 위치에 새로 개장한 곳이라 깨끗하고 luxury하게 보이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해서 시작한 기색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일단 설계는 잘 한 것 같지만 시공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마무리가 덜 된 티가 많이 났고, 현지인들 위주로 채용한 듯한 직원들은 교육이 덜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늦은 점심 먹고 돌아와 배정된 방에 가보니 웬일인지 히터를 한참 돌려놔서 실내 온도가 섭씨 33도입니다.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10월 말인 것을 생각해도 낮에 히터를 틀어야 하는 날씨가 아닌지라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드는 생각이 새로 지은 건물이라 화학물질 배출을 촉진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뜨겁게 달구어진 온돌 방에서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찬바람 맞으며 자느라 첫날 밤에 숙면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방의 찬장은 손고리를 채 붙여 놓지 않아 여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갖추어진 식기들도 통상 필요한 것인데 없는 것들이 보이고, 두개 있는 화장실 중 하나에만 샴푸와 비누와 수건이 있는 등 허술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미 예약을 받아 놓았기 때문에 부득이 하게 개장을 한 것 같은데, 제가 경영주라면 개장을 늦추거나, 아니면 준비가 덜 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숙박료를 현저히 할인해주던가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상 숙박비를 다 받고도 이런 상황이라 첫 인상은 많이 좋지 않았네요. 나름 어렵게 개장했을텐데 말이죠...
짐을 풀고 거제도의 멋진 풍경을 둘러보려고 길을 나섭니다. 10년쯤 전 동해안에서 시작해 해안따라 전국을 한바퀴 돌면서, 생전 처음으로 거제도를 반나절 가량 들러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기대치 않은 아름다운 경치에 젖어 하루 묵어가고 싶었지만 갑자기 숙소를 구하는게 여의치 않아 아쉽게 떠난 기억이 떠오릅니다. 곳곳에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동남쪽의 해안이 좋아 한려 해상 공원의 일부로 지정이 되었지요.
전에 와본적이 있는 친구들의 안내로 가보니 거제도 최남단에 "병대도 전망대" 라는 곳이 있습니다. 약 3Km 정도가 비포장 도로인데다 길이 많이 울퉁불퉁해서 승용차로 가기에는 사실 좀 그런데 살살 운전하면 그럭저럭 갈만은 합니다. 가는 길은 험해도 가서 보면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에 나무 deck으로 훌륭하게 잘 지어진 전망대가 있습니다. 비포장 도로 덕에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가까이 소병대도, 대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등의 작은 돌섬들이, 그리고 조금 멀리 나름 큰 가왕도가 눈에 들어 옵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해무(海霧)인지 뭔가 뿌옇게 많이 껴 있어서 쓰시마섬까지는 잘 보이지 않네요.
차를 다시 타고 동북쪽으로 조금 가서 해금강 방면 동쪽으로 반도처럼 길게 뻗어 나온 곳으로 들어갑니다. 도장포라는 작은 어촌 위 언덕 주차장에서 내리면 남쪽으로는 "신선대(神仙臺)" 라는 곳이, 북쪽으로는 "바람의 언덕" 이란 곳이 있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 이미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서, 어쩌면 한쪽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해가 지기 전에 가야할 곳으로 조금 험해 보이는 신선대를 먼저 택했습니다.
불룩 튀어나온 바위의 모양이 갓 모양과 비슷해서 '갓바위'라고도 불리고, 벼슬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옛날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곤 했다고 합니다.
신선대로 내려가는 길도 역시 나무 deck으로 깔끔하게 잘 단장해 놓아서 위험함 없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신선대에 이르면 큰 암반과 돌이 많아 좀 조심해야 하지만 위험한 수준은 아닙니다.
오래되어 이리저리 깨져나간 퇴적암 위에 외롭게 서있는 나무 한그루가 Carmel Pebble Beach의 17mile 도로에 있는 Lone Cypress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느덧 남해 바다의 서쪽하늘에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좀 늦은 감은 있는데 길이 잘 닦여 있으니 괜찮을 듯 하여 반대편의 바람의 언덕으로 향해 봅니다. 주차장에서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 도장포 선착장을 거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 산허리를 따라 낸 길을 따라 조금 돌아 가는 길이 있는데 가는 길은 산허리쪽을 택했습니다.
바닥이 깨끗하게 정돈되고 옆으로 꽃들이 예쁘게 잘 단장된 길을 따라 걸어가면 팬션 같아 보이는 개성있는 집들이 있는 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가면 끝에 있는 동백나무 숲 너머로 자그마한 풍차가 눈에 들어 옵니다.
이 곳 역시 나무 deck으로 깨끗하게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지 못할 정도로 해풍이 늘 세서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 날 저녁은 바람이 거의 없는데다가, 평일이고 해질 시간이 가까와서 그런지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짧게나마 고즈넉 함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미천한 사진실력이지만 자신들을 향하는 큰 렌즈 달린 카메라를 쳐다보니 화보 사진 찍는 기분 난다고 친구들이 좋아들 하네요. ㅎㅎ 나이들어 겪는 이런 마음의 소소한 설레임도 나쁘지 않겠지요.
시청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이브의 화원"과 "회전목마"등의 TV 드라마를 촬영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하는군요.
돌아오는 길은 도장포 선착장으로 내려가 언덕을 올라왔습니다. 그새 해가 완전히 지고 어렴풋이 남은 석양이 운치 있어, 삼각대는 없었지만 카메라를 돌 위에 대충 걸쳐 담아봤습니다.
거제도로 들어가는 길은 진주시에서 통영을 거쳐 서쪽에서 들어가는 경로와 부산쪽에서 거가대교(巨加大橋)를 통해 가덕도를 거쳐 북쪽에서 들어가는 경로가 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한화 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거가대교를 담아 봤습니다. 다리 위로 휘영청 걸린 보름달이 참 멋드러졌는데 사진 내공이 심히 모자라 1/10도 분위기가 나지 않네요 -.-;;; (삼각대를 왜 두고 나갔느냐는...)
숙소의 앞 바다를 동트기 전 미명부터 시작해서 시간 시간 담아 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바다가 가을의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10년전에 처음 왔던 때보다 팬션과 식당들을 비롯해서 많은 시설들이 늘어나 본격적인 관광지로 변모했습니다. 좋은 곳들은 다소 인공적인 시설물들이 생겨 자연 그대로의 느낌은 많이 없어졌어도, 그 때 봤던 옥색 바닷물빛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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