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서울) : 왕비집/목란, 2023년 봄
이번 짧은 여행의 주 된 목적은 '맛집 기행'이었습니다. 올 가을이면 동부 외진 곳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는 둘째 아이의 환송 여행이랄까요? 둘째 아이가 저와 취향이 여러모로 비슷한 편인데, 큰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자연이 멋진 곳으로 가는 여행을 가장 좋아하고 작은 아이는 맛있는 음식이 많은 도시로의 여행을 가장 좋아합니다. 맛 없어도 남기지 않고 다 먹기는 하는데 정말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즉시로 엔돌핀 수치가 100배쯤 올라가는 아이지요.
4년 간 제대로 된 가족 여행을 한번도 가지 못했기에, "예산 제한 없이 일주일 간 먹고 싶은 곳 다 데려가 줄테니까 계획 짜 보라"고 했더니 신바람이 나서 2달 넘게 폭풍 검색과 수 많은 전화/온라인/이메일로 예약을 해서 일주일 일정을 꽉 채웠습니다.
서울에서의 맛집 기행은 도착한 날 밤에 당장 만두, 찐빵, 떡볶이, 튀김 등등 남대문 시장의 길거리 음식로부터, 신진대사(metabolism) 능력이 저하된 중년 남자의 숨가쁜 폭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양념 갈비를 먹었습니다. 서울에 많던 갈비집들은 상당수 없어지고 살아남은 잘하는 집들은 상당수 변두리 쪽이더군요. 시내 쪽에서 평가가 그나마 괜찮은 ⌜왕비집⌟으로 갔습니다. 명동에 3개, 종로에 1개 매장이 있네요. 본점에 예약을 했었는데, 확인 답신이 없어 당일에 전화 걸어 확인해 보니 단체손님이 있어 자리가 없다고 하길래 😓 자리가 있다는 3호점으로 향했습니다.
명동이라 손님들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식당 깨끗했고, 음식 정갈하고 맛 괜찮았습니다.
방송으로 인기를 많이 얻은 이연복 셰프의 ⌜목란(木蘭)⌟도 가 봤습니다. 작은 아이가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고 관심이 많았거든요.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하는 곳인데, 공식 홈페이지가 없고 나무위키나 맛집 블로그들의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다행히 예상 외로 한번 전화에 예약이 가능했습니다. 매월 1일, 16일 양일 간에 다음달 각각 절반씩(1~15일, 16~말일)의 예약을 전화로만 받습니다. 월요일 휴무. 몇 백통씩 전화해야 했다는 이야기들을 읽었는데, 접수 시작 시간에 정확히 맞춰 전화하면 쉬운 듯 하고, 1일과 16일에 못하더라도 평일 예약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식사가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점심 1부 11:30am, 2부 1:30pm. 저녁 1부 5:00pm, 2부 7:30pm (변경될 수 있음)
10:30am에 예약 접수 시작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 사이트가 상당수 있으나 10:00am이 맞는 시간이었습니다. ☏ (02) 732-1245, (02) 732-0054
메뉴 중 6가지는 예약시 미리 주문을 해 두어야 합니다. 새우를 좋아하는 저와 마눌님은 멘보샤와 어향동구를 원했지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고 삼겹살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어향동구 대신 동파육을 주문했습니다.
이연복 셰프의 명성을 쌓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동파육(東坡肉)입니다. 6시간 동안 양념에 졸여서 청경채와 함께 담겨 나옵니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요리 답게, 간과 향신료의 밸런스가 훌륭하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며 녹아내리는 식감도 아주 좋았습니다. 아삭한 청경채와의 어울림도 좋았고요. 소(小)를 주문했지만 아무래도 기름진 삼겹살 덩어리이다 보니 3명이서 7조각을 먹기는 살짝 많고, 일인당 1~2 조각 정도 먹으면 딱 좋을듯 합니다.
다진 새우로 만든 샌드위치를 튀긴 멘보샤(面包虾)입니다. 식빵이 기름을 듬뿍 먹었을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느끼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파삭~한 식감의 토스트 속에 탱글한 새우 덩어리가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루더군요. 명불허전이네요. 사용한 식빵이 보통 먹는 것의 1/2 정도 두께라서 느끼함이 훨씬 덜한 것 같습니다. 찍어 먹으라고 칠리 소스를 곁들여 나왔지만 본래의 맛을 즐기고 싶어서 그냥 먹었습니다. 단, 이것도 3명이서 8조각을 먹기는 양이 좀 많군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엄~~~청 맛 있었던 탕수육. 저도 탕수육 좋아해서 한국 방문할 때 시간 잘 한다는 곳 몇 군데 가본 적이 있는데요, 이연복표 탕수육은 완성도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두툼하면서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얇게 입힌 튀김옷. 멘보샤도 그렇고 이연복 셰프가 TV에서 왜 걸핏하면 튀기는지가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튀김에 진심이시네요. 부먹(부어 먹음)으로 나왔지만 볶먹인가? 싶을 정도로 소스가 상당히 걸쭉해서 다 먹을 때까지 전혀 눅적함 없이 바삭함을 유지했습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목란은 부먹으로 만들기 위해 튀김옷에도 계란 노른자를 섞어 눅적함을 방지한다고 하고, 소스의 농도를 저렇게 맞추는 것도 LA의 스타 셰프의 감탄을 자아냈더군요.
마지막으로 짜장면. 이연복 셰프 본인이 짜장면은 차별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기에 그냥 호기심에 시켜본건데요, 면발 모양으로나 색깔로나 수타면 같아 보이지 않았고, 짜장 맛은 싱겁고 무척 달아서 제게는 별로였습니다.
눈을 휘둥그레 할만큼 맛있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세를 탈 자격이 있을 정도의 필살기 메뉴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품 없는 가격대라서 다음에 한국에 가면 다시 가서 다른 대표적인 음식들도 먹어보고 싶은 곳입니다. 하지만 3명이서 가서는 먹어야 할 양이 좀 부담스러워 6명 이상 모여 가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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