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떨림이 담겼던 전인권의 목소리를 추억하며
'라떼는 말이죠' 한국에서 발매되는 모든 음반과 테이프에는 소위 '건전 가요'라는 것이 마지막 트랙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했습니다. 음반의 성향과는 전혀 동떨어진 '갑툭튀'이다보니, 당연히 대다수의 음반은 무성의하게 Ctrl-C/V로 집어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건전가요를 직접 정성 들여 부른 한 음반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1985년 록그룹 <들국화>의 첫번째 앨범. 그 음반에서 이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전원이 함께 아카펠라로 불렀습니다. 충격이었지요. '아... 이 그룹은 자신들의 의사에 무관한 강제사항이라 할지라도 대충 하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결국 제대로 된 음반의 일부를 만들고 마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들국화 1집>이 한국 대중가요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압니다. 수록된 곡 9개는 하나도 빠짐 없이 히트를 쳤고, 그중에서도 <그것만이 내 세상>은 가히 전설적인 곡이 되었지요. 가사와 곡 자체도 훌륭하고, 밴드의 연주도 좋지만 전인권이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간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취향의 보컬이 절대 아니었는데도, 그의 목소리에서는 절규와도 같은 고뇌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라고 부를 때면 정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신이나 확신이 없는듯한 떨림과 두려움이 느껴졌지요. 군사정권의 억압에 답답해하던 대학생들, 입시 지옥의 스트레스 속에서 허덕거리던 수험생들, 자신의 미래도 나라의 미래도 잘 보이지 않는 암울함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청년들이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울부짖는 전인권의 목소리에 빠져든 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솔로로 전향한 후에도 전인권은 계속 호소력 있는 창법으로 <사랑한 후에> 와 같은 곡으로 저를 포함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한국을 떠나온 후에 전인권은 대마초와 필로폰등으로 인한 반복된 투옥, 정신병원 입원등으로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어 목소리도 망가지고 이미지도 망가지면서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2012년 들국화의 재결합을 통해 재기했으며, 과거의 기량을 뛰어넘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동영상을 찾아 들었습니다. <2012년 윤도현과 함께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제가 그리워했던 고뇌의 외침도 떨림도 두려움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의 전인권의 목소리와 노래를 더 좋아하고 사랑해주고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그 후로 전인권을 젊은 날의 추억 속에서만 그리워합니다.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제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많은 부분에 익숙해지고 둔감해지고 그래서 고뇌도 떨림도 두려움도 잃어가는... 그렇게 달라져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젊은 날의 제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혹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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