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식당 "Protégé" in Palo Alto
스탠포드 대학 (Stanford University) 바로 앞의 도시 팔로 알토 (Palo Alto)에 프로테제이(Protégé, 제자)라는 미슐랭 별 하나를 받은 식당이 있습니다. 같은 팔로 알토의 가까운 곳에 별 두개를 받은 부메이(Baumé, 향유)도 있었지만 2022년 초에 별을 반납하고 쬐끔 더 저렴한 비스트로(bistro)로 전환해서 이제는 프로테제이(Protégé)가 팔로 알토에서 유일한 미슐랭 별 식당입니다.
이 식당은 소믈리에(sommelier, 와인 전문가)인 데니스 켈리(Dennis Kelly)가 셰프(chef)인 안토니 섹비아(Anthony Secviar)와 손을 잡고 50명의 투자를 받아 창업한 곳으로, 두 사람 모두 미국 서부에서 가장 높은 유명세를 떨치는 미슐랭 별셋 식당 프렌치 런드리(The French Laundry)에서 함께 일하던 사이입니다. 데니스는 10년 이상 수석 소믈리에 (head sommelier)로, 안토니는 6년간 주방 2개중 하나를 총 책임지는 부주방장(sous chef)으로 일했습니다. 창업 때는 페스트리 담당도 프렌치 런드리 출신이었습니다.
식당의 외관과 실내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테제이(Protégé)는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석 규모의 다이닝 룸(dining room)에서는 7 코스 메뉴 ($225)만을 제공합니다. 4년전인 2018 6월 처음 오픈했을 때 4 코스 메뉴가 $95였으니 코스 수가 늘어난 것을 고려하더라도 가격이 많이 뛰었네요.
다른 한 영역은 40석 규모의 라운지 (lounge)로 단품 메뉴 (a la carte)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미슐랭 별이 2개 이상인 식당들 대부분은 코스 메뉴만을 고집하는데, 별 1개 식당들의 경우는 보통 선택권이 있어서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쿨럭~) 이젠 많이 먹는 것도 점점 부담스럽거든요.
안쪽의 조용한 자리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의 테이블이 비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중후함 보다는 자연 채광을 적극 활용하는 밝고 발랄한 분위기네요.
메뉴에는 없는 달달한 무알콜 칵테일.
"Cool-Cumba" 칵테일. 재료는 진(gin), 딱총나무 꽃(elderflower), 알로에(aloe), 오이(cucumber), 민트(mint). 마신 사람이 별로랍니다 ㅋㅋ 달짝지근한 칵테일을 기대했던 것 같은데 재료를 보면 단맛을 더할 것이 보이지 않아요.
전채(appetizer)로 주문한 스페인 문어 (Spanish Octopus) 입니다. 부드럽게 잘 구운 문어와 아티초크(artichoke) 속대에, 갈은 병아리콩(panisse), 프랑스 품종인 피콜린 올리브(Picholine olive)를 다져 만든 타프나드(tapenade), 스페인의 토마토 소스인 로메스코(Romesco)를 곁들여 나왔습니다. 셰프(chef)인 안토니 섹비아(Anthony Secviar)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했던 식당 엘 불리(El Bulli)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스페인 색채가 여기 저기 보이는군요. 고소한 감칠 맛(うま味, 우마미), 짭짤하면서 강렬한 감칠 맛, 새콤한 감칠 맛이 잘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눈 질끈 감고 A5 와규(和牛) 스테이크 시켜봤습니다. 잎새 버섯(Maitake mushroom) 튀긴 것과, 블랙 올리브(black olive) 두알, 그위에 한련(nasturtium)이파리가 곁들여 나왔네요. 레어(rare)로 살짝 겉만 익히고 위에 소금만 살짝, 소스도 엄청난 마블링의 풍미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 무척 약하게 만들어 뿌렸습니다. 당연히 입에서 사르르 녹는 사악한(?) 소고기 맛입니다. 많이 먹으면 물리겠으나 워낙 쬐끔만 나오는 메뉴라서 ㅎㅎ
잎새 버섯은 처음 먹어봤는데, 송이 버섯만큼 강렬한 향은 없으나 감칠 맛이 꽤 좋더군요.
스테이크가 양이 너무 적은 것을 의식했는지 와규 스테이크에 밥을 덤으로 주었습니다. 고실고실하게 잘 지은 고시히카리(コシヒカリ) 쌀밥에 정체불명의 많은 재료로 만든 후리카케(ふりかけ)를 듬뿍 뿌려 나와 아삭아삭한 식감과 더불어 짭짤하고 고소한 감칠맛이 어우러져 무척 맛 있었습니다. (서양인 요리사가 지은 쌀밥이 고급 한식당의 밥보다 맛있다니.... 이건 국가의 자존심 문제라고 봐야.... 😩)
가리비 관자 (New Bedford sea scallops). 번철에 구운 (pan-seared) 관자에 고명으로 꽃상추(escarole)와 정체불명의 곡물류로 만든 칩(chip)을 올리고, 스페인산 백포도주 셰리(Sherry)로 만든 토마토 크림 소스에 담아 내왔습니다. 신선한 관자야 늘 맛있는 거지만 메사추세츠주 해안에서 잡은 관자를 한쪽만 센 불로 크런치하게 아주 잘 구웠고, 어떻게 만든건지 모를 소스 맛이 예술이네요.
돼지 갈비살(Bone-in Berkshire Pork Chop). 폭찹 자체는 흔한 음식인데 참 신기하게 조리를 했군요. 돼지 갈비살에 화살촉 양배추(arrowhead cabbage)를 덮고 그 위에 계란으로 만든 독일 파스타 스팻쯜(spätzle)과 캐슈넛(cashew nut) 부순 것을 가득 덮어 구웠습니다. 고명으로는 제철 체리(tart cherry)와 졸인 미니양파(caramalized shallot)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더했고요. 모든 메인 요리(entree)에서 아삭하거나 바삭한 식감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니 셰프의 소신 중 하나인가 봅니다. 맛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았는데 제가 좋아하는 맛의 조합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폭찹스럽지 않았다고 할까요?
디저트도 먹어봐야지요? 블루베리 파이 (Blueberry pie). (2달 전에 다녀온 곳이라) 옆에 곁들여 나온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인지 가물가물한데 유자맛이었던 것 같습니다. 싱싱한 제철 블루베리 꽉꽉 채워 본연의 자연스러운 단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설탕을 절제했고, 최대한 얇고 바삭하게 유지한 껍질(crust)은 흔한 냉동 파이 껍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디저트 하나 더. 다크 초콜렛 파브(Dark Chocolate Pavé). '파브'라는 음식이 좀 생소해서 검색해 보니 티라미수(tiramisu)처럼 크림과 비스켓을 층층이 쌓은 브라질 디저트네요. 이건 엄청 얇게 만든 다크 초콜렛 쿠키 위에 초콜렛 무스를 담고 그 위에 반은 설탕조림 땅콩(candied peanuts) 부순것 + 커피초코 아이스크림. 나머지 반은 체리, 다크 초콜렛 크림, 화이트 초콜렛 크림을 마치 해변가 조약돌(pebbles)처럼 장식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설명을 읽다보니 '파브'라는 이름이 조약돌 길포장(cobblestone pavement)를 뜻하는 프랑스어 pavé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셰프가 혹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크기가 미니 버거 정도로 작아서 저 같은 입 큰 개구리들은 한 입에도 먹을수 있겠다는... 😜
프렌치 런드리의 부주방장(sous chef) 출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음식의 맛도 보기도 무척 뛰어나 몹시 즐거웠고,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미슐랭 별 한개인 나파밸리의 오베르쥬 듀 솔레일 (Auberge du Soleil)과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의 완성도인데 양은 전체적으로 훨씬 적고, 가격은 20~40% 더 비쌉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종업원들을 위한 돈이라고 8%의 요금을 계산서에 슬그머니 추가하네요. 자유재량(discretionary)이라고는 하지만, 빼달라고 말하기도 머쓱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정정당당하게 가격을 올릴일이지 이런 꼼수를 부리다니... 아마도 50명의 투자를 받아 만든 식당이라 압박이 심해 그런듯 합니다. 결론적으로 가성비 생각하지 않고 기념일 같은 때에 분위기 있게 한끼 먹으러 가기에는 참 좋은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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