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
늘 분주하게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늘 바쁜 아빠였지만, 이 아빠의 진짜 관심사는 자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가는 곳마다 아이들을 늘 동행시키며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여행을 했고,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밤이 되면 낮에 가르쳤던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만 자세히 풀어 설명을 해주면서 아이들이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주곤 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빠를 따르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를 신뢰하였고, 닮고 싶어했고, 함께 있고 싶어했고, 뭐든지 아빠에게 해드리고 싶어했고, 아빠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가 아이들에게 심각한 어조로 말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이 조금은 더 있다. 하지만, 아빠는 이제 너희 곁을 떠나야할 때가 온 것 같구나. 곧 아빠가 가야할 곳에 너희는 올 수가 없단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부탁할 것이 있단다. 아빠가 너희를 그간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잘 알지?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 너희가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이 너희가 이 아빠의 아이들인 것을 알거야. 너희들이 아빠를 사랑하는 것을 아빠가 잘 알기때문데 너희가 아빠의 부탁대로 살아줄거라고 아빠는 믿어. 아빠 부탁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이 아빠를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이 아빠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아빠도 그 사람을 사랑할거란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내가 아직 잠시 동안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3:33~34, 14:15)
요한복음 17장 전체는 예수의 기도입니다. 성경에 포함된 기도문들이 몇 곳에 있는데, 신약에서 가장 긴 기도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1~5절에 예수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고, 6-19절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끝으로 20~26절에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 긴 기도를 읽어보면 아버지(하나님), 나(예수), 이 사람들(제자들)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κόσμος (코스모스, world)입니다. [격변화/전치사에 따라 κόσμῳ (코스모), κόσμον (코스몬), κόσμου (코스모우)등으로 쓰임.]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86번 사용되는데 치장/단장/질서/정돈 등으로 번역되는 곳도 몇군데 있으나 대부분은 "세상 (the world)"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특히 요한이 쓴 성경에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요한복음 78번과 요한 1/2/3서 23번 = 총 101번), 요한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핵심적 내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는 단어가 전 우주 (모든 피조계)를 포괄적으로 뜻하기도 하지만 요한이 이 단어를 사용했을 때는 대부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이 쓴 성경은 얼핏 보면 상반되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자랑거리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1서 2장 15~17절) 그런데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아는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과, 요한이 우리에게 사랑하지 말라고 한 세상은 다른 의미의 세상인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우리는 그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요한복음 16장 후반부와 17장의 기도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아버지)께서 계신 곳은 세상이 아니다.
- 하나님은 예수를 세상으로 보내셨다가 다시 데려 가셨다.
-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셨다.
- 제자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예수께 주어진 사람들이다.
-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제자들을 지키고 보호하셨지만, 이제는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시면서 제자들을 함께 데리고 가시지 않고 세상으로 보내셨다.
- 제자들은 세상에 보내졌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한다.
-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거룩함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을 세상이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알았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비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빕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나의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나는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아뢰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아버지를 알았으며,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세상,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의 편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그 세상이나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나 명예나 자랑거리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제자들과 그들로 인해 믿게 된 사람들을 당연히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누구보다,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 뿐만은 아니었지요. 그런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고 계셔서 제자들과 믿는 사람들을 그 배역한 세상으로 다시 보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을 보내어 고난 끝에 죽게 내어주셨는데, 그 이유가 믿는 자들을, 교회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세상을 세상 사람들이 하듯 이용해 먹고 착취하려는 사랑이 아니라, 아껴주고 보살펴주고 좋은 것을 주려는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득이 될 상대방의 부와 지위와 권력을 사랑하지 말고, 내게 손해가 나더라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아끼고 섬기고 사랑해주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4)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그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마태복음 18:12~13)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요나 4:10~11)
자신의 지위와 명예와 권리를 포기하고 비천한 삶으로 내려가는 것을 기꺼워 할 사람은 없습니다. 싫어하는 사람, 혐오하는 환경, 미움받는 상황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것만큼 인간에게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완전 역으로 거스려야 하는 이 상황을 맞닥뜨려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고, 그것을 위해 본인이 직접 그런 상황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한 교회를 다니지만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똑같이 사랑하여 그것을 밤낮으로 간구하고 추구하는 사람
- 세상의 것들이 다 헛되고 부질 없게 느껴지고 싫어서, 세상과는 담을 쌓다시피하고 오로지 자신의 믿음만을 지키기위해 애쓰는 사람
- 세상을 좋아하지 않지만, 포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혹 자신이 뭔가를 세상을 사랑할 수는 없을까를 늘 생각하는 사람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Zanzibar, Tanzania)에서 사역하시는 박현석/오영금 선교사 부부께서 나눠주신 일화가 있습니다. 현지에서 나무 가구 공장을 하고 계시는데 직원 중 한 명이 도둑질을 한 것을 알게 되어 대화를 했으나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잡아 떼어 부득이하게 내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하룻밤 집에서 머물도록 초청하고 최대한 극진하게 식사대접을 하라는 마음을 주셨답니다. 인간이니까 당연히 절대 그럴 마음이 우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깨물으며 몸과 마음을 쳐 복종케하는 마음으로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후에는 모든 사역이 두 부부가 밀어 붙여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앞장 서 끌고 나가듯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도둑질을 한 사람이 그 뒤로 소설 <레 미제라블 (Les Mizérable)>의 주인공 장 발장 (Jean Valjean)처럼 개과천선해서 새 사람이 되었을지, 아니면 계속 도둑질이나 하면서 살았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일 후에도 사역이 풀려가지 않고 어려움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바로 그 순간이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경험하게된 예상 밖의 일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고, 두 부부의 힘겨운 순종을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셨음을 확인할 뿐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라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하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 1:21~25)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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