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생애 (3): 마게도냐 교회와 2차 선교여행
2차 선교여행은 AD 48년 경 바울이 1차 여행을 다녀온 곳을 다시 방문하자는 제안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카인 마가라 하는 요한을 다시 데려가고 싶어하는 바나바와 이에 반대하는 바울의 의견이 심하게 대립 되면서 둘은 갈라서게 됩니다. 마가를 데리고 고향인 구브로 섬으로 다시 간 바나바는 섬 동쪽 살라미에서 13년 정도 사역하다가 AD 61년 경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울은 그 후로 구브로 섬에 간 적이 없기 때문에 바나바와 다시 만난 적이 없는 듯 하나 그 후로도 바울은 바나바를 대표적인 동역자로 여겼고, 나중에는 마가도 귀중한 동역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 9:6)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골 4:10)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몬 1:24)
바나바와 갈라 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온 실라와 함께 육로를 통해 수리아와 고향인 길리기아 지방을 거쳐서,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 지역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평생 동역자요 영적 아들로 여기게 된 디모데를 만나 그를 데리고 떠납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 (롬 16:21)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고전 4:17)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서쪽 아시아로 간 바울과 그 일행을 성령께서는 왠지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서쪽 끝 무시아에 이르러, 북쪽 흑해 연안인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썼지만 성령께서는 그것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드로아(트로이, 현재의 Çanakkale 차나칼레)에서 바울은 밤에 바다 건너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이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인 일행은 배를 타고 서북쪽의 마게도냐로 건너 가기를 결정합니다. 이 시점부터 화자가 3인칭이 아닌 1인칭 복수 “우리"로 바뀐 것으로 보아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여기서부터 바울과 동행했다고 보여집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9~10)
마게도냐로 건너간 바울 일행은 첫 성인 빌립보에서, 아마도 유대인 회당이 없었는지, 기도할 곳을 찾아 다니다가 자주색 옷감 상인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아시아 리디아 주의 두아디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가의 자주색 옷감이 생산되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그 두아디라성에서 빌립보까지 와서 옷감을 팔고 있는 사람으로 빌립보 성에도 집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전도를 할 때 이 여인이 믿게 되었고 그녀와 그 집안 사람들 모두 복음을 받아 들여 세례를 받은 후 바울 일행을 그 집에 머물게 합니다. 이 집이 아마도 빌립보 교회의 모체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리디아 라는 이름이 이 여인의 출신지 지명과 같아서, 여인의 실제 이름은 빌립보서에 나오는 유오디아나 순두게일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 4:2)
빌립보에는 로마의 퇴역군인들과 유공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로마 시민권과 하사받은 토지 덕에 형사적 특권 및 정치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빌립보에서 바울은 한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물리치게 되었는데, 그 일로 인해 되려 실라와 함께 태장을 맞고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기도하고 찬송하는 중에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고, 이 사건을 통해 간수와 그 집안 사람들 모두가 세례를 받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 16:31~32)
로마 시민인 것을 모르고 함부로 태장을 때리고 옥에 가뒀던 일 때문에 곤란해진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빌립보에서 떠나달라고 간청하였기에,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사도행전의 화자가 다시 3인칭으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저자 누가는 이때부터 빌립보에 잔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일행은 해안선을 따라 있는 로마 간선도로를 이용해 내려가, 유대인 회당이 있는 마게도냐의 수도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행 17:1)
그곳에서 3주간 성경을 강론하면서 많은 헬라인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거부하며 바울 일행을 잡아 해치려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 일행은 밤에 베뢰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훨씬 더 넓은 도량으로 바울의 말을 받아들였지만 데살로니가에서 뒤쫓아 온 사람들 때문에 바울은 다시 배를 타고 남쪽의 아가야 지방의 아덴(Athens)로 먼저 탈출하였고, 실라와 디모데도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행 17:13~15)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에서 바울 일행이 머문 시간은 불과 몇주에 불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교회들은 바울과 계속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감사와 애정을 담은 물질적 후원과 더불어 유대 교회를 향한 연보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5~16)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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