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생애 (2): 안디옥 교회와 1차 선교여행
십여년 전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박해로 인해 각지로 흩어진 기독교인들 중, 수리아(Cyria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구브로(Cypress 사이프러스 키프로스)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구브로 출신 지도자인 바나바를 보낸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행 11:19~22)
10년 전 사울의 열정과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도움을 주었던 바나바는 다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다소까지 사울을 찾아 가서 그를 데리고 와, 1년간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 제국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안디옥 교회는 AD 50년 경부터 박해를 피해 당시 실피오스 (Silpios) 라고 부르던 산 기슭의 암벽에 4Km의 길이에 달하는 굴을 파고 머물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알려집니다. 발굴된 동굴 교회의 규모로 추산할 때 아마도 수천명의 신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선지자 아가보가 큰 흉년이 들것을 예언했습니다. 유대의 대표적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13년 재임 기간에 4번의 큰 흉년이 있었고 그중 AD 45~48년에는 이스라엘이 큰 흉년을 겪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흉년을 겪고 있는 유대의 형제들에게 부조를 결정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 전달을 했는데,
이 시기에 예루살렘 교회는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가 유대왕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처형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을 통해 교회로 무사히 돌아와 피신했고, 원형극장에서 축제를 열던 헤롯 아그립바는 천사가 침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요세푸스는 아그립바가 5일간의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8~30)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행 12:23)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모임 장소를 제공했던 마리아는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오빠 바나바에게 아들인 마가라 하는 요한을 딸려 보냅니다. 아마도 교회에 대한 핍박의 위험때문에 예루살렘 밖으로 보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행 12:25)
바울의 선교 여행은 안디옥 교회에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 5명이 금식하던 중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3:2)
가야할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성령께서 지시한 바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일단 항구도시 실루기아(Seleucia 셀루샤 셀레우키아)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Cypress 사이프러스 키프로스)섬의 항구 도시 살라미로 갔고 예루살렘에서 데리고 온 바나바의 조카 마가라 하는 요한이 그들의 도우미로 동행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행 13:4~5)
섬 반대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 항구도시 바보(Paphos)에서,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인 바예수를 성령의 능력으로 제압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로 믿게 하는 과정이, 사울에게는 뭔가 큰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 대신 헬라어 이름 바울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과거의 사울이 가르치기를 주로 하는 교사라고 볼 수 있었던 반면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순서로 보자면, 안디옥 교회에서의 사울은 다섯명 사역자중 제일 마지막이었던 반면, 이 후로는 늘 첫번째로 거명되어 선교팀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음을 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행 13:9)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 13:1)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 13:13)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행 13:43)
구브로 섬을 떠난 바울 일행은 튀르키예 중남부 지방의 밤빌리아 버가를 거쳐 내륙의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주들은 큰 도시들을 건설할 때마다 자신을 기념하는 이름을 붙였고, 안티우쿠스 1세부터 12세까지 이름 붙인 안디옥이라는 이름의 도시들이 20개 이상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교회가 있는 안디옥이 제국의 수도였고, 일행이 도착한 비시디아 안디옥 역시 군사적, 경제적으로 무척 중요한 메트로폴리스였습니다. 구브로 섬에서 바울의 복음을 받아 들였던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들의 친족들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많이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 고증으로 미루어 보건대 서기오 바울의 간청이 바울과 일행이 이 도시에 가게 된 동기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반쪽 문장에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라고 무덤덤하게 적었지만 해안에서 가까운 버가와 내륙 산악지대의 비시디아 안디옥 사이는 해발 3,000m 이상의 봉우리가 즐비한 타우루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현대의 잘 닦인 도로를 이용해도 해발 1,200m 이상의 고개를 넘어서 190Km를 가야만 하는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대략 대구에서 출발해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설악산 두문동재 넘어서 강원도 끝까지 가는 정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마가라 하는 요한이 버가에서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간 것이 혹 힘들어서 그런것이었다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행 13:14)
바울 일행은 가는 곳마다 먼저 각지에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 전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 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유대인 회당에서 들어가 전한 복음은 많은 사람을 믿게 했고, 심지어 성 전체가 다 복음을 들으려고 모이기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오랜 시간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죽이려는 무리를 피해 루스드라와 더베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더베까지 무리를 끌고 뒤 따라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성밖에 내버렸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그간 복음을 전파하며 왔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 하면서, 금식 기도하며 장로들을 세우고 자신들을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로 돌아갑니다. 이 기간을 1차 선교여행으로 부르며 대략 AD 44~46년에 걸쳐 사역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돌아와 있던 약 2년간의 기간 동안에 유대에서 온 어떤 교사들이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교사들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다툼이 생기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한 몇명을 예루살렘에 보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베드로와 야고보의 중재로 율법 준수가 아닌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편지를 써서 유다와 실라를 동행시켜 안디옥으로 돌려 보냅니다.
같은 시기에 공교롭게도 1차 선교여행을 다녀온 로마 속령 갈라디아 지방의 도시들에도 거짓교사들이 들어가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강요하면서 복음이 왜곡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은 그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붙들고 자유하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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