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생애 (4): 고린도 교회와 2차 선교여행
바울이 홀로 도착한 아덴은 수호여신 아테나 여신을 기념하는 파르테논 신전을 위시해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철학의 도시였고 바울이 갔을때도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등 철학과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덴사람들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중에도 날마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잡아 아레오바고 언덕에 세워 설명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레오바고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아덴의 오래되고 유서 깊은 야외 법정및 귀족들의 회의장으로 모이던 장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아덴사람들에게 헛된 종교들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 촉구했지만 단지 몇명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철학의 하나 정도로 치부할 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행 17:32~33)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데살로니가 전서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실라와 디모데는 곧 바울이 있는 아덴에 도착했고, 바울은 겨우 3주밖에 머무르지 못했던 데살로니가의 새신자들이 내내 염려가 되어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디모데와 실라를 편지와 함께 다시 보냈던 것 같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살전 2:17~18, 3:1~2)
아덴에서 실망한 바울은 얼마 후 같은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를 만나 함께 일을 하며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행 18:2~3)
고린도는 지중해 동서 양쪽으로 2개의 항구를 가진 위치 덕에 당시부터 상업 중심지이자 해상 무역의 중심지인 국제적 도시로서 동서의 각종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모여 있는, 번창하되 무척 혼잡한 곳이었습니다. (아래 위성 사진은 1893년 개통되어 고린도의 동서를 관통하는 운하)
도시 중앙의 아폴로 신전을 필두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과 아프로디테 신전을 비롯해 12개 이상의 신전이 있었고 이에 속한 1,000여명 이상의 신전 매춘 사제들의 영향으로 도시 전체가 성적으로 극히 문란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또한 그런 세속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수많은 문제들을 가졌기에 바울의 마음을 애타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다시 방문하러 갔던 실라과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재 합류하면서 바울은 일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으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훼방을 했기에 바울은 회당 옆집으로 옮겨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어느날 밤 바울은 환상 중에, 두려워 말고 계속 말씀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 후로 1년 반을 고린도에서 머물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행 18:10~11)
디모데가 가져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 또한 바울에게 큰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그는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또 하나의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살전 3:6)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도시에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게 되자,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어떻게든 그를 처치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AD 51년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대표적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동생 갈리오가 이곳 고린도의 총독으로 새로 부임을 해 왔습니다. 통상 신임 총독들이 현지 사정에 어둡고 민심을 얻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용해,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정치 사회 문제로 몰아서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행 18:12~13)
갈리오가 바울을 재판하기 원치 않아하자, 사람들은 대신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다 구타했습니다. 결국 이 일이 있은지 며칠 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데리고 배편을 이용해 파송교회인 수리아 안디옥을 향해 떠났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행 18:18)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곳이 본래 바울이 선교하기 원했던 아시아에 있는 항구도시 에베소의 회당이었는데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고린도에서 함께 떠나와야 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마도 이 때 에베소에 남기로 결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 항구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에 문안한 후 안디옥으로 복귀해 잠시 머물렀습니다.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교회를 방문하고)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행 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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