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 시작에 붙여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 (갈 6:17)
바울은 자신이 가진 예수의 흔적을 스티그마(στίγματα)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상처(scar), 또는 낙인등을 뜻하는 그리 명예롭지 못한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으며 (렘 20:8)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어 (고전 4:13)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와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속에서 (고후 6:4,5)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낙인을 보끄러워하지 않았고 그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롬 1:6)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 (행 5:41) 그들 역시 예수의 낙인을 가졌던 자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은 마치 그것이 실제로 낙인이라도 되는 듯이 목걸이에 신앙고백을 뜻하는 물고기 (ΙΧΘΥΣ, 익두스) 표시를 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Ιησουζ 예수스 (예수는)
Χριστοζ 크리스토스 (그리스도시요)
Θεον 데오스 (하나님의)
Υιοζ 유오스 (아들)
Σωτηρ 소테르 (구세주이십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사나 죽으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임을 (롬 14:8) 잊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빌 1:20,21) 이미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었음을 (고전 6:19)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Christian (그리스도의 소유된 사람)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행 11:26)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어 하나님을 아는 것에 (다아트 엘로힘, 호 6:3, 엡 4:13) 이르게 되자, 그들의 삶에는 신자들간의 올바른 관계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3-46) 어느 누구도 제 재물을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행 4:32)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부인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에서 핍박과 고통을 받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것임을 부인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명을 잃기까지 했지만 그들의 삶 속에 실증으로 나타나는 천국이 있었기에 그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천국이 곳곳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세상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였고 거대한 로마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실로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이었습니다. (히 11:38) 그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을 섬기는지에 대해서 세상은 그들을 의아해 했습니다. 병든자, 가난한 자, 갇힌 자 . . .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그 모든 자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면서 (히 13:3)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는 삶을 (고전 4:12)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고 (고전 2:!6) 그리스도의 심장 (빌 1:8) 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는 생활을 같이 배워가고자 모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을 도피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또한 배워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분의 군사 (딤후 2:3) 이므로,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만 할 것입니다. (고후 10:5) 그러나 세상은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아는 것에 속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이상을 사람들과의 만남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 만남의 대부분은 신자간의 만남이 아닌 세상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또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하는 것에 그 기본을 두어야 하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 오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매일 매일 충분한 시간을 쏟아야 하고, 아울러 올바른 신자간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섬기는 훈련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안에는 생수의 근원이 있을 수 없기에 세상에 생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여들고(Ecclesia) 다시 흩어지는(Diaspora)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 때에서 우리는 비로소 신자와 세상간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표면적으로 나타난 기독교의 부흥 뒷면에 바알의 썩은 물이 들어와 올바른 신자 간의 관계가 상실되었고, 이로 인해 신자와 세상간의 올바른 관계마저 깨어지면서,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중동과 북 아프리카가 현재는 선교의 불모지인 이슬람 국가로 하루 아침에 바뀌어 졌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어떤 면에서 공산주의 이상으로 무서운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시간, 신자간의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삶이 앞의 두가지 시간을 상실케 한다면 이미 우리가 세상과의 올바른 관계를 잃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책망 받았던 자들 역시 신실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법보다 바알의 법을 따를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역시 많은 바알의 법이 자연스럽게 기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어려운 상황에 부딛히면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열심히 찾을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 .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님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성되지 못한, 그렇기에 자주 실수하고 자주 좌절하는 신앙을 실험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 작은 실험실에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거벗은 마음으로 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생활에 뿌리 박힌 우상 숭배의 마음을 보고자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권면과 격려를 하는 가운데 우리 삶을 정결케 하며, 세상의 요령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엡 6:12) 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 (고전 1:25) 으로 대적하기에 힘쓸 것입니다. 혼자의 힘과 혼자의 노력으로는 어려울지라도 서로 믿음의 도전과 중보를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많은 승리를 나눈다면, 그리 힘든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뜻임을 알고, 말씀의 훈련을 기본으로 하여, 공동체 훈련을 통한 청교도적 삶,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삶, 이웃과의 나눔의 삶, 용서의 삶, 회개의 삶, 몸으로 제사드리는 헌신의 삶, 정직한 삶을 한가지씩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나는 그리스도의 것”임을 나타내는 “스티그마”를 갖고자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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